네 그림자마저도 삼키고 싶어

프롤로그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언니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서 이름이 붙여졌을 때부터 그런 운명으로 점지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니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는 매우 기뻐하셨다고 한다. 친가는 대대로 남자아이가 많이 태어나서, 아버지 역시 막내 고모 한 명 외에는 여동생도 누나도 없었기에, 첫째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 그리고 어머니를 닮아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사실에 아버지께서는 홀딱 마음을 빼앗기셨다. 며칠간 오던 비도 활짝 개고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며 정원의 모든 이파리에 이슬이 맺혀 있던 마법 같은 초가을 아침에 언니가 태어났다. 아직 친척 누구에게도 연락이 가지 않은 때였다.

당신을 닮아서 정말 아름다운 아이가 될 거야,” 아버지는 마법에 홀린 듯이 중얼거리셨다고 한다. “어느 무도회에 가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는 미인 말이야. 그래, 이름은 벨이 좋겠다. 어느 무도회에서든 우리 딸은 가장 매력적인 숙녀가 될 테니까. (She will be the belle of any ball.)”

언니의 아름다운 적갈색 머리카락이-이때는 조금 더 밝은 붉은색이었지만, 그럼에도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야 모르지만-좀 더 길어지고 아장아장 걷는 것은 물론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시절에 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언니가 늘 싫어!”라고 하며 고집을 피우는 것에 지쳐 있었고, 나는 예정보다 열흘이나 늦게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20시간이 넘는 난산을 겪었기에 그 사이에 친가 친척들이 모두 도착하여 모여 있었다. 지긋지긋하게 계속 비가 내리던 늦가을, 곧 해가 질 시간이라 더욱 우중충해진 오후 5시쯤에 말이다.

또 여자애야? 네가 장남은 아니니까 큰 상관은 없겠다만, 그래도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매끼리는 질투가 많아서 액세서리며 옷이며 신발이며 네 거니 내 거니 매일 싸운다더라.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거냐? 순한 편인 벨 한 명마저도 힘들다고 쩔쩔매지 않았느냐?”

유모는 구해놨고? 허약해진 몸으로 돌보기엔 힘들 것 같구나. 보통 둘째는 쉽게 쑥 나온다던데,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요새 집안 사정이 어렵기라도그건 또 아닌 것 같다만.”

왜 신생아가 이렇게 찡그리고 있지? 첫째 딸은 안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딸애가 태어나면서도 찡그리고 있다니, 너희 부부가 고충이 많겠다. 다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니 미간 찌푸리지 말고 새겨들어. 하이고, 아무리 내 남동생이라도 어떻게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나쁜 점만 닮아서 똑같이 저렇게 보기 싫게 얼굴을 우그러트릴까?”

어머니는 제대로 몸을 풀지도 못한 채로 억지로 웃으며 그 모든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심하게 울자, 막내 고모가 내 쪽을 흘겨보며 혀를 쯧, 찼다고 한다.

오라버니.”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니?”

또 허황되게 무슨 프랑스어씩으로나 된 이름을 고작 딸애한테 붙여주려고 그러시나요? 당치도 않은 짓이에요. 우린 이상한 가톨릭도 아니잖아요. 분별있고 제대로 된 영어 이름을 주라고요. 저렇게 울어대는 것을 보니 성경적 가치를 본따 이름을 지어야 애가 좀 성품이 누그러지겠네요. 채리티 어때요? 관용이라는 뜻이잖아요. 저 애는 관용을 베푸는 법을 일찍부터 좀 배워놔야 그나마 인품이라도 칭찬받게 생겼어요.”

쏟아지는 잔소리와 타박, 난산을 겪었기에 피곤하다 못해 탈진 직전인 아내를 두고 말싸움할 사내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한숨섞인 목소리로 그러자.” 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내 이름은 채리티가 되었다.

그 날 내 칭찬을 한 사람은 오직 언니만이 유일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 혀 짧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목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동생을 낳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친척 어른들이 가정적인 따스함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감탄을 했다는데-물론 입에 혀 대신 칼을 찬 게 분명한 막내 고모는 나중에 어린애가 아기를 보면 대체 몇 명이나 봤다고 예쁘고 못생긴 아기를 구별할 줄 아냐고 말했다고 하지만-나는 대체 이게 진짜인지 아니면 친척들 모두 일종의 집단 망상을 했는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동생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우면 곧잘 하는 행동을 언니는 절대 단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예로, 나는 6살 때 성홍열에 걸려서 매우 아팠었다. 언니는 그때까지 성홍열에 걸린 적이 없었기에, 내 방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침대에 누워서 색색거리며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 나를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아파, 채리티?”

나는 대답할 힘도 없었다. 그저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더니 언니는 손수건에 물을 묻혀 내 얼굴을 닦아 주면서 그 아버지가 아침식사 전에 식전기도를 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건강하기를 반복해서 말했다든지, 어머니가 계속 침울하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든지, 이런 소식과 함께, 하녀들이 계속 나만 돌보다가 지쳐서 잠시 자는 사이에 들어왔다는 말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로 보일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언니는,

그러니까 내가 너 대신 아플래. 너만 아픈 건 싫어.”

라는 말과 함께,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꽤 오랫동안. 내가 기침하는데도 내 머리를 잡아 못 움직이게 한 채로. 그러더니 처음에 아무도 모르게 들어온 것처럼 사뿐사뿐 소리없이 밖으로 나갔다.

다다음날부터 언니는 고열에 시달렸고, 며칠 후에는 온몸에 붉게 발진이 났다. 거의 다 나아가던 나는 뒷전이 되었고, 아버지는 의사를 거의 우리 집에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언니를 돌봤다. 언니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괜찮다고 하며 나는 어떤지 물어보더니, 내가 다 나았다는 말에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어른들은 아픈데도 동생을 끔찍하게 챙기는 언니라며 칭찬이 자자했고, 언니가 다행히도 아무런 후유증 없이 회복하자 맑고 깨끗한 영혼을 데려가지 않은 주님께 기도를 올려댔다. 오직 나만이, 나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언니는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내 피해망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내가 태어난 이후 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막내는 그렇게 친척들이 학수고대하던 아들이었다. 내가 9살 때, 언니가 12살 때 태어난 나이차 많은 동생이었기에 당연히 그 애와 경쟁하거나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나는 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제끼는 소리에 불편해하고 짜증을 냈으며, 밥을 먹을 때 더럽게 오만 곳에 흘려대는 모습에 비위가 상하곤 했다. 한 번은 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짜증나진 않았어?”

언니는 그 커다란 사슴 같은 눈을 깜박였다. 언니의 머리카락은 어릴때의 붉은 기운이 훨씬 어두워져, 마치 증조할아버지가 썼다는 마호가니 서랍같이 붉은 기운이 도는 매우 매력적인 적갈색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 머리카락은 좋게 말하면 아마빛, 있는 그대로 말하면 2월쯤에 보이는 추수한지 오래된 갈변한 지푸라기 색, 나쁘게 말하면 설거지물처럼 탁한 회갈색에 더 가까운 금발이었다. 어디 색깔만 달랐겠는가? 언니는 부드럽게 굽이치는 머리카락이었고, 내 머리카락은 힘이 없이 그저 축 처져 있는, 아무리 머리를 빗고 기름을 발라도 푸석푸석해 보이는 머리카락이었다. 막내 고모는 내 친할아버지 같은 머리라고 했었다. 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닮지 않고 한 세대 건너뛰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눈에서 났을 것이다. 언니의 크고 아름다운 눈은 조금의 누런빛도 있지 않은, 맑고 청아한 살짝 초록빛이 섞인 푸른빛이었다. 울새의 알 같은 그런 고운 색 말이다. 게다가 언니가 미소짓거나 웃을 때, 마치 온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려 노력하듯 언니의 눈꼬리는 매력적으로 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내 눈은 옅은 푸른빛에 다시, 또 다시 물을 탄 듯 희끄무레한 푸른빛이라 청아하긴커녕 내 인상을 더욱 흐리멍텅하게 보이게 했고, 나는 근시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보면 생기넘치고 웃음으로 가득 찬 눈보다는 찌푸리고 째려보는 듯한 눈과 마주하곤 했다.

아니? ?”

다니엘이 태어난 다음부터 좀 짜증이 날 때가 있어서.”

, 그렇진 않아. 하지만 나는 이미 네 어린 시절을 기억하니깐 이미 겪어봐서인지 좀 감흥이 없긴 하다.”

그런데 언니는 그 다음날부터 다니엘이 칭얼대거나 울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서 안고 달래고 얼굴을 닦아주고 놀아주곤 했다. 이게 감흥이 없는 사람의 행동인가? 결과적으로 언니는 다니엘하고 친해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 우애가 좋은 남매다, 따스한 마음씨를 가졌다, 제 동생을 저렇게까지 잘 돌보는 것을 보니 나중에 정말 현모양처가 될 것이다, 기타 등등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칭송이란 칭송은 모두 받았다. 어느 날, 평소보다 많은 부인들이 어머니와의 티 타임을 가진다고 모였을 때, 어떤 부인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언니는 고개를 살포시 굽히고 두 볼을 살짝 붉힌 채, 신고 있던 신발 끝을 보면서 말했다.

별 거 아니에요. 그저 채리티가, 다니엘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해서, 그럼 신경쓰이지 않게끔, 다니엘하고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말 하나로 나는 이기적이고 이름값 못 하고 철없고 친절함이라고는 메말라버린 못된 애가 되었다. 언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비난할때마다 난처하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러지 마세요, 아직 채리티도 어리니까요, 라고 말을 하곤 했지만, 오히려 이 상황이 되서까지도 여동생을 감싸다니 정말 착한 애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그리고 보통, 언니에게 미소지으며 그런 말을 한 어른은 나에게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론 입은 아직 미소짓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눈이 차갑게 굳는 것을 보았다-좋은 언니 만나서 다행인 줄 알라고 했다.

그랬기에, 언니가 16살이 되어 컨트리 클럽에서 크리스마스에 열린 데뷔탕트를 치르자마자 구혼 편지들이 갈매기떼처럼 날아든 것은 그닥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 해의 데뷔탕트 무도회는 유달리 화려했는데, 언니는 그 모든 크리스마스 장식과 반짝이는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만든 석상들에도 지지 않는, 오히려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는 존재감을 뿜어냈기에, 그 이후에도 몇 년간 모든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가한 소녀들은 언니의 미모와 교양, 예절바름, 우아함 등에 비교당하는 불상사를 겪어야만 했다. 나는 아직도 언니가 흰 실크에 마치 서리라도 피어난 듯 섬세한 레이스 장식을 한 드레스를 입고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음에도 언니 주변을 무슨 구름이나 안개처럼 둘러싸던 남자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언니 나이보다 훨씬 많은 남자들부터 어린 남자애들까지 모두 말이다. 사실상 그 자리에 없던 남자들은 아기거나 아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거나 너무 나이들어서 거동이 힘든 남자들밖에 없었다.

이렇게만 묘사해 놓으면 언니가 마치 남자들에게만 인기가 많았을 것이고, 여자들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받거나 언니라는 사람이 여자들을 등한시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놀랄 바는 아니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의 언니는 그걸 해냈다. 부인들은 우리 집에 오면 늘 언니의 아름다움만큼이나 고운 마음씨, 우아한 몸짓, 고상한 말투, 예절바른 됨됨이 등을 칭송했고 젊은 여자들은 언니와 친해지려고 갖은 애를 썼다.

반면 나는 어땠는가? 나 역시 언니에게 비교당한 불행한 소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내게 언니가 없었더라도 내 데뷔탕트 날 나는 퍽 불행했을 것이다. 데뷔탕트에 참가한 후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 때마다 너무 민망하고 부담스러워서 숨어다녔고, 억지로 끌려나왔을 때도 시야가 흐려 눈을 반쯤 감고 있거나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봤으니 말이다. 그것뿐인가? 어쩌다 벽난로 쪽에 앉았을 때 눈이 따가워 계속 깜작거리다 그만 눈물이 흘러 화장이 망가졌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나는 인기가 없었다. 가끔 어떤 애들이-보통 착하고 신실하고 마음씨 곱다고 소문난 애들이었다-나를 끼워 놀아주려고 했지만 거기서도 나는 어색해했고, 부인들은 나를 일컬어 그래도 건강은 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마지못해 덧붙였다. 보통 푸석거리는 머리카락, 구부정한 어깨, 앞으로 휜 등, 영원히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을 것 같은 입매, 뚱한 침묵, 찌푸리고 있는 눈에 대해서 한바탕 이러쿵 저러쿵 쏟아놓은 다음이었다.

언니는 나를 곧잘 티 파티네, 오찬이네,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갈 때마다 나는 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언니를 초대하기 위해 나를 참아준다는 인상을 받았고, 곧 나는 언니의 초대 역시 거부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곤 했다. 분명히 나와 대비해서 자신을 돋보이려는 수작이었으니까, 그래서 언니가 아무리 애타게 애원해도 나는 꿈쩍하지 않았고, 언니도 토라져서인지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간교한 년이 그 짓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애타게 우리 집에 와서 언니를 찾아대서 우리 집이 젊은이들이 모인 패셔너블하고 인기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을 알고 있다.

아무튼, 그랬기에 나는 언니가 빨리 결혼해서 나가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언니는 오히려 18살까지 결혼하지 않고 자기는 조금 더 신중하고 싶다고 하며 결혼을 미뤘다. 그렇다고 구혼 편지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엔 너무 어리다 생각된 남자들이 하나둘씩 크더니 언니에게도 편지를 넣어서 결론적으로 결혼하거나 사고로 죽은 남자들보다 커버린 남자들이 많아 총 편지 수는 늘어나기만 했다.

그렇기에 나한테는 아무 편지도 안 온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반더헤이든 가문의 딸애, 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언니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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