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독제독

prologue

이독제독 by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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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 오다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 누가 당신을 사.” 

페로몬 풀풀 풍겨대며 다가오는 그를 마주하며 서 있는 것도 힘겹지만 가까스로 버틴다. 비아냥엔 비아냥으로 대해야 하지만, 그 역시 그렇게 받아들인 듯 한술 더 떠서 제 성질 더러움을 뽐낸다. 이독제독이 무색하게 꼬리 내리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하지만, 꽉 쥐고있는 손과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는 게 지금은 나의 독이다. 이런 힘겨움을 알리 없어 코끝까지 다가온 그. 파랗게 질린 입술을 슬쩍 보곤 피식 웃고 페로몬을 갈무리 한다. 주변의 모든 인물이 저와 같은 우성알파임에 자각 없이 살았을 것 같아 더욱 기분이 더러워진다. ‘길들여지지 않은’ 우성 알파 따위와 대면할 일은 평생 없을 줄 알았고, 제 주변 우성 알파들과 다른 대우와 대처에 지금 이 공간 조차 꿈이길 간절히 빈다.

 “일반 알파는 처음이라 실례, ……베타도 너 처럼 뻣대진 않았어서 말야.”

알아서 기거나 진짜 기게 하거나. 

뒤엣말은 안 들리는 척 하고 싶었지만, 귓가에 직접 대고 말하는 터에 털만 잔뜩 곤두선다. ‘지랄.’ 차마 뱉지 못한 말을 눈으로 뱉는다. 고새 읽었는지 다시 피식 웃는다. 저, 웃음은 아무리 평생 봐도 재수 없을 것 같다.

“자의로 공부하는게 얼마만인지, 그래도 모르겠더라고. 일반 알파는 왜 태어난건지.” 

이 세계는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베타가 존재한다. 우성과 열성이 존재하고, 그리고 일반 알파가 존재한다. 일반 알파와 오메가는 모체의 선택에 의해 태어난다. 그러나 일반 오메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성은 우성 그자체로 가치가 있고 열성은 처제술과 적응력이 뛰어나 거슬리지 않게 없는듯 생존해가지만, 반반도 아닌 번식 능력은 있으나 우월한 미모도 귀여운 외모도 없는 일반을 선택해서 기를 양육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양육강식의 하위단계인 오메가는 일반을 절대 선택하지 않았다. 일반으로 태어난 알파는 선택적으로 태어났으므로 선택권이 없는 것과 같다. 형제 중 막내로, 갖혀지내다 싶이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간다. 세력이 약한 알파 가문의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로 자라서 아이는 낳지 못하게 될, 절대적인 돈의 교환 혹은 매매를 위한 존재.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 그말을 제 입에서 듣고 싶은듯 그는 말을 이었다. 

“글은 좀 읽을거고. 필체는…….”

혼자 생각에 빠진듯 중얼거리다, 한켠 서랍을 열어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싸인 해.” 

“이게 무슨.” 

“일과표. 싸인하면 네 아버지 계좌로 입금 될 거야.” 

빡빡한 일정보다 과한 금액이 눈에 띈다. 본 적 없는 액수는 억 단위를 넘어, 도대체 공이 몇 개인지 세느라 나름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휘둥그레진다. 그러니까, 이 돈이.

 “네 몸값.” 

내 몸값이라는 얘기다. 돈의 가치를 생각해본 적 없었고, 액수를 보기전까지 저 알파가 질릴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문제 였는데, 이렇게 가치를 눈으로 보고나니 그동안의 삶이 눈에 그려졌다. ‘일반 알파 성장기’라는 책을 하루 열 시간 이상 썼고, 익숙해져 시간이 빨라지면 다른 언어의 ‘일반 알파 성장기’를 수시로 써야 했다. 다른 지식과 관련된 책은 일절 보지 못하고 그를 동경하고 존경하면서 살아왔다. 그 책엔 이런 내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후 ……시간에 비례해 반납한다.’ 

이 문구만 없었다면 싸인 했을지 모른다. 서열과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연대는 끈끈하게 이어지지만 신뢰를 잃은 가문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폭리 취하고, 사업을 엉망으로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밖에 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최상위 피라미드에 가기위한 열성오메가의 노력은 여기서도 발휘된다. 입김 하나로 업체가 무너지진 않지만 연대로 똘똘 뭉쳐도 가벼운 오메가 입김에 무너지는게 이 세계의 한계점이다. 그렇기에 잘 길러진 오메가를 원하고 투자를 뒷받침 하는 오메가를 얻는다. 심성, 취향, 습관까지 관여해가며 들이곤 하는데, 외모에 빠져 교육받지 못한 오메가를 얻고 패가망신한 가(家)도 수두룩 하다. 입발린 말과 상큼한 외모로 알파의 혼을 쏙 빼놓는 오메가 보단 의리로 다짐한 일반 알파를 원하는 돈 많은 알파가 많아지며, 성골로 진입하기 위해 태어나기전부터 그거래는 이미진행중이었다. 

“내가 죽으면, 돈을 더 그 쪽에 줘야 하는 겁니까?”

“이 쪽이지. 일과표를 더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결과는 알잖아?” 

“이 거래를 거절한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죽겠지. 몸값은 그쪽이 더 비싼 편이라.” 

씽긋 웃으며 천장을 올려다 보는 그를 보고, 순간 아버지를 떠올렸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유모지만, 아버지가 무너지면 형들의 안녕을 야기할 수 없기 때문. 

“다른 조건 하나만 붙여요. 그럼 싸인 할게요.” 그 조건은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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