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Prologue
그 말을 들은 하늘색 소녀의 맑은 청아한 두 눈동자가 희둥그레졌다.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니. 이거 정말 행운의 찬스 아닌가?!
“좋아! 나갈수만 있다면 어떤 계약이던간에 다 받아줄게!”
라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긴 더듬이가 위로 바짝! 튕겨 올라가며 의기양양하게 제 앞에 있는 유령에게 대답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리네는 기가 빨리는 듯 당황하는 표정을 드러내었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옅게 웃어보았다. 아니, 비웃는 느낌이라고 묘사를 해야할까.
“그런데 무슨 계약이야?!”
“그건 알려줄 수 없어.”
어떤 계약인지 알려줄 수 없다는 리네의 말에 잠깐 마키아는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하늘색 소녀는 개인 사정인가보지! 라며 가볍게 넘겨보았다. 근데 유령에게도 개인적 사정이 있나? 이미 죽었는데 말이지. 라는 잠깐의 의문은 가졌긴 했지만, 이내 그 의문은 다시 접어두었다. 왜냐면 리네는 자신을 도와줄 존재니까! 의심하면 쓰겠나! 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나 어떻게 나가?”
“내가 천천히 알려줄거야, 물론 움직이면서.”
“그냥 여기서 알려주면 안돼?!”
“내 마음이니까 이 이상 더 질문하면 죽여버린다.”
끼깅.
자신을 죽여버리겠다는 유령의 섬뜩한 말에 흠칫, 약간 겁을 먹었는지 어깨가 쪼그라들며 긴 더듬이가 추욱 쳐진다.
“뭐, 물론 너랑 나는 이제 파트너 관계니까. 걱정은 하지마, 난 파트너는 죽일 생각은 거의 없으니까.”
긴 더듬이가 다시 뿅! 치켜세워졌다.
“정말?!”
“그렇다고 또 질문하면 진짜 죽여버린다.”
“…네”
다시 긴 더듬이가 추욱 쳐졌다. 그런 마키아의 모습을 보던 리네는 불투명하지만 새하얗게 보이는 얼굴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쳐다보더니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하늘색 소녀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같은 시선에 맞추어 아래로 약간 하강을 하였다. 하강을 한 리네와 마키아의 키 차이는 소름돋게 똑같다고 느꼈다. 생전에 리네가 살아있을 무렵의 키 라는걸 감안해보면 마키아는 리네의 환생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도 들게 만들만큼 말이다.
마키아와 같은 시선으로 눈을 마주친 리네는 아까까지 옅은 웃음과 한심하다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무표정이면서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뽀얀 하얗고 맑은 토끼의 소녀를 검은 두 눈동자로 응시하였다.
“우선 출발하기 전에, 여기에 있는 놈들에 대해서 알려줄게. 잘 들어, 알겠냐?”
리네의 말에 마키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 번세번 크게 위아래로 흔들어 대답을 전하였고, 마키아의 대답을 본 리네는 이어 자신의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괴물X끼들은 널 죽이려 달려들거야, 그러니까 살고싶으면 절대로 그 새X들을 동정도 하지말고, 망설이지도 마.”
“망설이다니? 망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너가 그 괴물놈들을 죽일 때 망설이지 말고 죽이라고.”
“에, 에엥?! 굳이 죽여야 되는거야?! 그냥 말로 해결하면 안돼?!”
애당초 누군가를 죽이는 것따윈 조금도 상상해본 적도, 그런 악한 마음도 가진 적이 없던 순수한 아이였기에, 그런 마키아는 당연히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적으로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아무리 본 적도 없는 곳에 끌려와서, 제물이 될 판이여도 처음 본 인물을 무작정 죽이겠는가? 적어도 마키아에게 있어선 절대로 용납되선 안되는 일이였던 것이다.
“X신. 그러면 너가 죽을텐데?”
그러자 되돌아오는 유령의 말에 잠깐 경직이 된다. 죽는다고? 난 제물인데? 제물인 나를 죽이면 안되는거 아니야?!
“난 제물인데?! 제물인 나를 막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거야?”
“물론 넌 제물이지, 근데, 제물이라고 해서 꼭 어디 특정한 장소에서 죽는다는 법은 없잖아?”
어라.
“쯧, 너가 말하는 제물은 소위 말하는 특정 대상에게 바치는 제물을 말하는 건가본데, 그건 특정 대상에게 바치는 제물이잖아?”
일단 마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말하는 제물은 이 세계에 바쳐지는 제물이라고. 이 세계의 제물, 이해했냐?”
이해 못했다.
“………… 그게 그거 아니야? 어쨌든 제물이잖”
“이 새X 등신 아니야? 머리 삐었냐? 바보야? 좀 두뇌회전이라는 걸 하라고”
계속해서 욕을 듣는 와중에도 마키아는 여전히 바보 라는 단어 이외엔 아는 단어가 없었기에 마냥 헤실~ 거리며 토끼같은 순수한 표정으로 웃어보이기만 하였다. 어쩌면 바보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 만큼 말이다. 그런 마키아의 모습을 확인 한 리네는 두 번째 한숨을 크게 하아- 내쉬곤, 제 앞에 있는 하늘색 소녀를 눈을 가늘게뜨며 노려보았다.
“하…… 똑똑히 잘 들어. 이번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거니까. 이번에 말하는 설명으로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내가 널 반토막 낼거야. 알았어?
“네, 넵……”
리네에게서 느껴지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소위 말하는 아, 얘 화났다. 라는 풍기가 마키아의 눈에 비쳐지게 된다. 마키아는 그런 리네를 보고 침을 꼴칵 삼키곤, 삐질삐질… 바닥에 착석하여 제 앞에 있는 유령의 얼굴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으며, 리네의 설명을 제대로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본 유령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잠시 앉아있는 하늘색 바보를 바라보았고, 그런 바보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리네는 입을 다시 열어보았다.
“너가 말하는 제물은, 누군가에게 바쳐지는 인물을 말하는거지?”
“으, 음… 아, 아마도?”
“그 인물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장소가 마련이 되있을거고, 죽이지는 않은 상태로 그 장소에 데려간 다음 누군가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그 장소에서 제물을 죽인다. 이거지? 완전 소설에서 나올법한 흔한 클리셰 같은거.”
“오! 맞아!!”
“그 제물은 보통 그 누군가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 진 알아?”
“음 … 그 누군가가 새로운 몸을 얻는다?”
“보통은 그것처럼 비슷하지, 즉, 그건 누군가에게 바치기 위한 제물일 뿐이잖아? 모두가 아니라. 그러니까 너가 말하는 제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고, 그 특정 누군가만 이득을 얻게해주는 인물인거야.”
그리곤 검정색 유령은 자신과, 그리고 제 앞에 있는 하늘색 소녀를 제 가느다랗고 불투명한 손가락 하나로 자신에게 한 번, 하늘색 소녀에게 한 번, 가르키곤, 동굴의 천장으로 손가락 위치를 움직였다.
“아까 말했듯이, 넌 이 세계의 수명을 늘려줄 존재야. 만약 그런 존재가 없다면 이 세계는 붕괴되어 여기 있는 괴물들은 다 죽어버리고 말아. 그러니까, 여기서의 제물은 특정 누군가에게만 이득을 주는게 아닌, 식물, 동물, 등등,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거지. 즉, 여기서의 제물은 이 세계의 제물이고, 이 세계의 제물은 이 세계 전체에 이득을 얻게 해주어야 하니, 어떠한 장소에서 죽어도 이 세계의 수명은 늘어날 수 있다는거야.”
“잠만! 그럼 그렇다는 건…”
“여기 있는 괴물놈들은 이 세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떨어진 제물을 어떻게든 죽이기만 한다면 세계의 붕괴를 늦춘 영웅이 되는 셈이야. 그러니 더더욱 널 죽이려 들겠지.”
“이, 이런게 어딨어! 난 이런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이건… 이건 너무 잔혹하잖아!”
“세계의 규범이니까 어쩔 수 없어, 규범을 깰 순 없으니까, 그냥 그렇다고 받아드려. 그리고 등신아, 내가 널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했잖아? 그새 또 까먹었냐?”
물론 까먹진 않았지만, 자신들 죽이려드는 괴물들을 마주친다면, 망설임없이 처음보는 살아있는 존재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이 들거 같았던 마키아는 망설였다. 물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지만, 마키아 본인은 그런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소녀에게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다니, 그런 소녀가 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부모에게, 주변인들에게 순수한 영향만 받고 자란 인간아이에게 너를 살해하려는 어른이 있다면, 망설이지말고 네 손에 들고있는 칼로 어른을 찔러 죽여라. 라고 말하면 그 인간아이는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못할 것이다. 그 인간아이는 순수한 영향만 받고 자랐기에, 당연히 그런 상황이 올 생각도 하지 못했고 ‘살인’ 이라는 막대한 죄를 가질 사유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분명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일터고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영혼을 지닌 마키아도 차마 괴물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난 괴물… 이라는 사람들을 죽이는 건 싫은데… 내가 잘 피하면 되는거 아니야?!”
“그러다 죽으면?”
“그, 그건…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되지! 리네!"
리네의 말 한마디에
“분명 서로가 서로를 죽일 필요없이… 내가 여길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야!!”
라고 말하자, 마키아의 뒤에서 엄청난 바람아 느껴지게 된다. 뭔가 툭! 하고 떨어질 때 느껴지는 바람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그런 거세한 바람이 소녀의 등 뒤를 때린 후에 엄청난 하얀색의 빛이 뒤를 돌아보고 있는 마키아도 알아차릴 만큼 밝은 기세로 마키아의 등을 비롯해 주변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러한 빛이 있는 쪽으로 마키아는 황급히 하얀 눈색과 연한 하늘색이 공존해있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뒤돌아보았다. 그런 뒤돌아본 후에 보이는 마키아의 두눈에는 대략 20cm 정도의 빛 형태가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키아의 눈 앞에는 전에 자신이 처음으로 마주했던 동굴에서 본 하얀색 메세지 창이 또 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SAVE THE CURRENT STORY?」 (현재 스토리를 저장하시겠습니까?)
「NO/YES」
아직 이 창에 띄워져 있는 ‘스토리’ 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마키아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오른쪽 버튼을 꾸욱- 눌렀다.
띠링-!
「THE CURRENT STORY SAVED」 (현재 스토리가 저장되었습니다.)
분명히 처음 봤을때는 지금 제 앞에 보이는 빛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왜 지금, 이 순간에 이러한 빛이 나온거지? 라며 마키아가 의아감을 들던 순간.
빛이 서서히 마키아의 눈 앞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감쪽같이 흔적도 안 보일만큼 자취를 감추었다.
“…저, 리네 혹시 이거 뭔지 알아?”
“아니, 모르는데.”
아까 나타났었던 빛은 리네에게도 보였던 것인지, 당황스러운 표정이 잠깐 드러낸 듯 하지만, 큰 관심은 가지지 않았는 지. 다시 그녀의 원래 표정이라고 볼 수 있는 무표정으로 돌아와 공허한 칠흑색의 눈으로 바라본 채 마키아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졌다.
“뭐, 딱히 관심없고. 너가 아까 나한테 무슨 방법이 있을거라고 했지? 너가 죽을 필요도 없고 서로 죽이지 않아도 너가 여길 나갈 수 있는 방법.”
“응? 어, 응응!!”
“방법은 있겠지, 근데 그 방법을 찾기 전에 너가 과연 포기 안 할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령의 말에 곧장 대답하는 하늘색 소녀의 모습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리네는 이 이상 여기서 소녀와 반대되는 의견을 꺼내어도, 그녀와 반대되는 말을 주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더 이상의 질문을 안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시선, 그리고 키로 커다란 동굴을 마주하고 있는 리네를 보고 문득 만져질까? 라는 마키아의 황당한 궁금증이 자신의 가녀린 손을 움직이게 하여 제 앞에 있는 유령의 옷가락을 잡아보려 했지만
역시나 잡히지 않아, 유령 쪽으로 뻗은 손은 자연스럽게 불투명한 유령의 몸을 통과해버리게 되었다. 리네는 마키아의 손이 자신의 몸을 통과시켰는지도 모르는 눈치인 듯, 그녀가 있던 연못 바로 왼쪽 편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표지판이 설치되어있었다. 표지판에 적혀있는 화살표 방향을 따라 길이 트여져 있는 곳을 향햐여 새하얀 불투명하게 처리되어 있는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켰다.
“일단 여기서부터 나가야지, 안 그래? 바보같은 등신아.”
‘칭찬인가?’
“이 동굴의 출구는 저쪽이야. 물론 화살표에도 적혀있지만.”
‘칭찬이였나보다!’
리네가 가리킨 이 동굴의 출구라고 주장하는 길은 아까 전 자신이 이 동굴로 오기 위해 통과했던 구멍보다 더 환하였고, 넓게 틔워져 있었다. 그 길에는 칠흑 같았던 어둠은 커녕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오로지 출구라는 역할만을 하는 듯 길과 빛이 방향을 제시해주었고, 그 방향을 표지판이 이해시켜주었다.
마키아는 리네가 알려준 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죽지않기 위해서, 벗어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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