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종착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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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에 와닿는 피부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미묘한 곡선을 따라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면 어깨가 흠칫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형님... 간지러워요. 옅은 웃음이 서린 목소리는 작았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란은 소리없이 웃어버린다. 타박이나 거절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란은 전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이번엔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꼭 끌어안고 있으면 그만큼 온전히 닿아있다는 생각에 기뻐지고 만다.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떨어지면 입술이 닿았던 곳이 붉게 물든 게 보였다. 그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이번엔 귓가로, 그 다음엔 뒷목으로. 제멋대로 여기저기에 입술을 부비고 만다.

"형님..."

결국 이엔은 애써 붙잡고 있던 노트북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란이 이렇게 나올 때면 질 수 밖에 없다고. 난처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웃어버리며 그렇게 생각한다. 탁, 하고 노트북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귀를 쫑긋하며 이엔을 바라보았다. 제가 원하던 것을 끝내 달성한 그는 제법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리곤 자, 하고 팔을 벌리며 이엔이 제 품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호즈노미야 란은 욕망이라고는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가 언제나 희미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실 그에게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욕이든, 식욕이든, 성욕이든. 그 어떤 감정이나 욕망이라도 깊어지길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그는 내내 떨곤 했다. 광인에 가까운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고 참아내는 삶이었다. 멋대로 끼어들기에는 너무 무겁고 짙었다. 그러니까 한발짝 뒤에서. 전혀 다른 세상의 것처럼.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욕망하겠는가?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순간이 란에게는 그 날의 고백이었다. 가지마. 내 곁에 있어. 네가 나를... 제일 좋아해주면 좋겠어. 눈물이 날 것 같던 순간. 오랜 시간 동안 발치에 들러붙어있던 미치광이의 본능마저 잊어버린 채 외쳤던 바람.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래도 가장 소중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그는 바로 그 순간에 절절하게 실감했다.

손가락 하나하나 깍지를 껴 쥔 손은 포옹 만큼이나 다정했다. 한 손이 부자유스러운 만큼 움직임도 부자유스러워야 맞는데, 란은 아랑곳않았다. 옷깃 사이로 드러난 쇄골에 입을 맞추면 이엔은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간지럽기보다는 부끄럽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그의 입술이 닿으면, 닿은 곳부터 열기가 번지는 듯 했기에. 착실하게 몸을 떨면서 흐트러진 옷차림으로-자기가 흐트러트린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자신을 바라보는 이엔을 볼 때마다 란의 눈동자에는 붉은 욕망이 고였다.

닿는 곳에 모두 입맞추고, 문지르고, 제가 지나갔던 흔적을 남기고. 이엔의 몸에 생긴 작은 상처 하나에도 깜짝 놀라는 주제에 제 흔적을 남기는 것은 만족스러워 해버리고 만다. 희미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면, 등허리로 오싹한 느낌이 올라왔다. 더위는 그다지 타지 않는 편인데도 방 안이 조금 더웠다. 란은 이엔의 허리를 한번 꽉 깨물었다가 몸을 일으켰다. 옷이 거의 벗겨진 이엔과는 달리 잘 챙겨입은 채였다. 꼭 붙어있다가 떨어지는 것이 묘하게 아쉬워 한숨을 내쉬고 만다. 여전히 다리가 얽혀있는데도 그 잠깐이 아쉬워서.

란은 입고 있던 티셔츠의 밑단을 잡고 한번에 위로 들어올렸다. 급한 몸짓으로 대충 안경을 피해서 벗어낸 티셔츠를 곧장 침대 아래로 내던져버린다. 조금 가빠진 숨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엔은 더 붉어질 것도 없는 뺨을 조금 더 붉혔다. 란은 그다지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오히려 내버려두면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다.- 벗은 몸은 제법 보기좋게 모양이 잡혀 있었다. 그러고보니 형님은 다리도 길고 완전 모델같은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바지의 후크를 푸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이 향하는 건 아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엔... 너무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데...."

란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 표정으로 뻔뻔하게 말했다. 잠시 멍해있던 이엔은 그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만다.

"그, 그렇게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렇게가 뭔데?"

"그..! 그....!!"

잠시 어버버 거리던 이엔을 보며 란은 장난스럽게 웃어버린다. 또 놀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엔은 입을 비죽이고 마는데, 란은 다정하게 그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어느새 둘 다 맨 몸이었다. 둘 사이에는 이제 얇은 천 한장 조차도 없었다. 맞닿은 가슴에서 쿵, 쿵, 하고 크게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그정도로 두근거리는 행위였다.

굳이? 라고 생각하던 때도 아마 있었던 것 같은데. 란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연인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관계라던가. 그런 것들과 별 다른 인연이 없이 살아온게 대충 30년이었다. 살아오다 보면 정말로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체온으로 나누는 감정과 행위에서 비롯되는 사랑을. 그러나 뒤늦게서야 깨닫고 만다. 한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손을 맞잡으면서 느껴지는 감동과 입술을 맞대면서 느끼는 환희와 몸이 맞닿아야지만이 느껴지는 온전한 소속감이. 그것들을 위해서 욕망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새 둘 다 숨을 가쁘게 내쉬게 되었다. 허벅지를 쓸어쥐고는 안쪽을 더듬으면 이엔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한껏 붉어진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이엔..."

란의 목소리가 지독하게 낮았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그저 신음과 비슷한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몇 번이나 이엔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는 동안 이엔은 귓가에 오르는 열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손을 허우적 거리다가 시트를 꽉 쥐면, 란이 대신 제 손을 쥐도록 잡아주었다. 가버리는 건 싫다는 듯이, 온통 붙잡아두고 있었다.

이윽고 깊은 곳으로 꾹 밀어넣고 나면. 란은 잠시 숨을 들이쉬며 허리를 세웠다. 그 탓에 더 깊이 닿아버리고 만다. 이엔은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신음에 순간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발갛게 물이 든 입술을 손으로 더듬는 대신 몸을 한 번 크게 움직인다. 이엔은 다급하게 입을 벌려 숨을 들이마신다. 그런 이엔을 지나치게 열렬하게 바라보는 것 치고는 제법 여유로운 태도였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통에 이엔은 그 여유를 억울해 할 새도 없었다. 형님... 하고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란은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아무리 집어삼켜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자극이 온 몸을 달아오르게 할수록 더 갈증이 났다. 조금만 더. 더. 그렇게 되뇌일수록 마음이 급해지기만 했다. 란은 한 손으로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땀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쓸어올린 그대로 곧은 이마가 드러났다. 이엔은 팔을 뻗어 란의 목을 끌어안았다.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있는 것이 좋았다. 아주 약간의 틈도 없이 계속 붙어있고 싶었다. 꼭 하나인 것처럼. 란은 그대로 이엔을 안아올렸다. 더 깊어지는 감각에 높은 신음이 흘렀다.

온전히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충만한 경험이었다. 그저 눈 앞의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상처입히고 싶다는 마음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얽힌다. 그러나 이엔을 아플 정도로 깨무는 것으로 가학적인 마음은 애써 잠재워버렸다. 소중한 사람은 소중하게. 불행에서 의미를 찾던 게 과거였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득해지고 만다.

소중한 물건을 스스로 부숴버리던 날을 기억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짙게 느껴지던 희열과, 평범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절망을. 이토록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의 자신은 그때에 믿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함께 있고, 평범하게... 언제나 바라던 것처럼. 이엔은 언제나 그에게 웃어주었고, 좋아한다고 말하며 꼭 안아주었다. 그대로도 괜찮다고, 언제나 곁에 있어주겠다고. 이엔의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정말로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호즈노미야 이엔은 광인이라 여겼던 호즈노미야 란을 구원해준 단 한 명의 천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흐트러진 갈색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넘겨주었다. 이엔은 지친 얼굴로 옅은 숨을 내쉬고 있다. 란은 애정을 담아 그의 눈가에 입을 맞춘다. 손가락하나 까딱 할 힘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엔은 옅게 웃고 만다.

"형님... 아파요..."

"음, 그건 딱히 변명할 말이 없네... 미안... 호 해줄까?"

"그거 병주고 약주고라는 거 알고 있죠?"

"..."

란은 머쓱한 표정으로 이엔의 몸 위에 남은 자국들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미안해야 맞는데, 미안하기도 한데, 조금쯤은 흡족했다. 이엔은 란이 꽤 배가 불러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살짝 흘겼다. 란은 우물쭈물하며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엔을 달래주어야 했다. 그 모습이 옛날부터 이엔의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던 모습들과 겹쳐져 어쩐지 웃음이 나고 마는 것이었다. 이엔은 란의 가슴께에 머리를 기대고 폭 안겨들었다. 란이 곧 그런 이엔을 꼭 끌어안아주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박동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등을 도닥여주는 손길이 언제나처럼 상냥했다. 조금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에 이엔은 눈을 감는다. 함께 있으면 좋은 꿈을 꿀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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