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4화
추락한 성녀 04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추락한 성녀 04
루블, 보쓰, 히즈
***
“나를 위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무엇이든간에 당장 대령하겠다는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그는 가까스로 입을 다물었다. 아직 그 정도의 이성이라도 남은 것이 다행이었다.
‘다행? 아니지. 지금 이건 심각한 사태지.’
그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려댔다. 그동안 생각해오던 것 이상으로 이 여자는 위험하다.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것마저 들어주지 않을 셈이냐?”
순식간에 아마데아의 얼굴에 노여움이 스며들었다. 그 작은 변화에도 불에 덴 것처럼 반응하고 마는 본인이 이상하다고 헬레니온은 생각했다. 그는 다시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대체······ 남의 약점을 알아다 무엇에 쓰시려 하십니까?”
다행히도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조로 나온 듯하다. 눈앞의 여자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해 보였다.
“그야······ 그 여자는 나의 약점을 알고 그에 대해 공격하니, 나 또한 반격은 할 수 있어야지 않겠느냐. 간단한 것이어도 좋다.”
“역시 그레이스와 마찰이 있던 것이 맞군요. 무슨 일이었는지 자세히 들려주시지요.”
아마데아는 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그가 오기 전에 있던 일을 얘기했다. 물론 헬레니온은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았다. 주관이 들어간 점을 감안해서 들은 얘기는 요약하자면······.
“둘 다 말이 너무 심했던 것 아닙니까?”
아마데아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자 헬레니온이 재빨리 덧붙였다.
“물론 그레이스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리고 약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도 해드리겠습니다.”
표정이 조금 풀린 것을 본 뒤에야 헬레니온은 몰래 숨을 돌렸다. 이리도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왜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바로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주겠다고 하긴 했으나 그레이스에 대한 얘기는 극비였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레이스는 수완이 대단한 사람 입니다. 또한 당신을 선뜻 돌보겠다고 나선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레이스가 직접 나섰다는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을 보호해주겠다고는 했지만 제가 하던 일이 있습니다. 아까처럼 자리를 비울 일이 많아 늘 곁에 있어 주지 못하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당신 옆에서 붙어있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더 긴 이야기를 꺼낼 태도를 보이자 아마데아도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당신의 옆에 아무나 붙여둘 수는 없었습니다. 크게 필요한 조건은 두 가지. 하나는 무언가 일이 발생했을 때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치일 것. 다른 하나는 당신에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을 것.”
“그렇다면 그레이스는 실격이 아닌가. 나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화가 나는지 어조가 강하게 느껴졌다. 헬레이온은 그런 그녀를 잠시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결국 아마데아가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내 말이 틀린가?”
“······.”
이어진 채근에도 여전히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매우 유감인 말을 꺼내기 힘들어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정도는 반감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잠시 고민을 해봤으나 결국 온건하게 얘기를 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은 헬레니온이 마침내 말을 이었다.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그의 목소리가 전의 대화를 할 때와는 다르게 심각해져 아마데아 역시 뒷말을 듣기가 꺼려지기 시작했다.
“제 부하를 기억하십니까? 아트레우스라는 이름의 남자입니다.”
“그건, 기억한다. 그 붉은 머리의 사내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가 당신을 살리자는 의견에 어떤 식으로 나오셨는지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못할 리가. 성녀인 자신이 사냥당하듯이 내몰리던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 순간의 모멸감과 고통, 그리고······.
“그는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어 할 만큼이요.”
아마데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두려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도 그 감정을 안다. 갑작스레 나타난 가짜 성자 에메로스를 증오하지만, 그만큼 두려웠다. 그가 당장에라도 그녀의 위치를 알아내 목을 졸라올 거라는 생각에 매몰될 뻔하기도 했다.
“아트레우스 뿐만이 아닙니다. 그 옆에 있던 키안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말에 아마데아는 잡념을 멈추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 곁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당신의 죽음을 바랐습니다. 오직 그레이스만 빼고.”
아마데아는 일순간 숨을 멈췄다. 스스로가 어떤 곳에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적진이었다. 이곳의 모두는 빛을 증오하고 두려워한다. 그녀가 여기 있는 것이 알려진다면 아마 그들이 자신을 형체조차 남지 않을 지경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아우레티카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곳 또한 더는 그녀의 고향이 아니다. 안온한 생활은 고사하고 즉결 처형까지 허용한다는 표지가 돌아다닌다.
그녀가 있을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야가 암전하고 호흡이 힘들어진다. 눈앞에 헬레니온이 있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크게 흐느껴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은 남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만큼은 자존심이 남아있었다.
“그레이스는······ 당신과 비슷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더군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니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며 보류했습니다. 어쩌면 둘이 굉장히 비슷할지도.”
헬레니온이 씁쓸한 어조로 뱉은 말에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방금 뭐라고?
“그레이스가 날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나?”
“그녀가 미워하는 건 노력하지 않는 태도이지 당신이 아닙니다. 그레이스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럼 왜 그런······.”
헬레니온은 흔들리는 아마데아의 눈동자를 가만히 관찰하다가 말을 꺼낼 최적의 타이밍을 계산했다. 그녀가 느끼는 혼란이 어느정도로 잦아들되, 완전히 결론짓기 전.
“어느 정도는 제가 지시한 것도 있습니다. 당신께 이곳의 예절이나 문화 같은 것을 교육해 달라고 했으니까요.”
“왜 내게 그런걸 가르치지?”
“당신이 아녹스에서의 체류가 길어질 경우를 대비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언짢아하지만 마시고 말씀하신 대로 노력 해주신다면야 저도 그레이스에게 일러두겠습니다.”
체류가 길어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곳에서 살게 됐을 때를 대비한 것이지만. 헬레니온은 온건한 미소를 띄며 속내를 감췄다. 아직은 완전히 그녀를 믿을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빚이 있는 건 있는 거지만 그는 책임질 사람이 많았다.
서로 진심은 숨기고 하는 대화는 어딘가 어긋났다. 대화만 따지고 본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정작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콕 짚어 내기에는 잡히지 않는 정도에 그쳤기에 둘은 기분 탓으로 치부해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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