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룩
총 8개의 포스트
박문대는 지금, 아주 빠르게 걷고 있다. ‘아슬아슬한데.’ 휴대전화를 두고 온 게 화근이었다. 집까지 다시 갔다 돌아오는 데 5분이나 소요됐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다. 분명 오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습기 가득한 바람이 훅 불어왔다. ‘아.’ 박문대는 뛰기 시작했다. 비는 눈에 띌 정도로 점차 빠르게 쏟아졌다. 눈앞에 기다란 횡단보도가 보였다. ‘저
하루걸러 하루 오는 비. 박문대는 이 비가 부디 아침이 되기 전에는 멈춰주길 바랐다. 냉장고를 열자 찬 기운이 훅 얼굴로 불어온다. 일요일 저녁의 잿빛 하늘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는 김빠진 캔 음료를 땄다. 탁. 빈 캔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힘을 지나치게 줘 버렸다. “아 깜짝이야. 문대문대 화났어?” 옆에서 곧장 질문이 날아온다
닫힌 창문을 통해 넘어온 빛이 검은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햇볕이 그리 뜨겁지 않을 텐데도 소년의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꼭 감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군가 그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무심한 듯 툭툭 치는 손길에 소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웬일이냐? 네가 잠을 다 자고, 이반.”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잿빛 머리
시끌벅적한 리월항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들뜬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기다란 색색의 천은 바람에 맞춰 유유히 흔들리고 주렁주렁 열린 소등은 어서 밤이 되어 제빛을 발하길 기다렸다. 회색 바닥에 또각또각 청아한 구두 소리가 울렸다. 루미네와 페이몬은 번화한 항구를 이곳저곳 둘러보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산들바람에 옷자락 끝이 펄럭였다. 그들이 발을 멈춘
반투명한 커튼 사이로 햇빛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알하이탐은 반쯤 벗겨진 이불 속에서 느리게 눈을 떴다. 턱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곤히 잠든 그의 애인이 보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조심히 카베가 베고 누운 오른팔을 빼려다 급격히 몰려오는 저릿함에 지그시 미간을 좁혔다. 알하이탐은 가시 돋친 듯한 고통이 잦아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며 조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남자가 그와 완벽히 대조되는 화려한 트리 앞으로 걸어왔다. 남자는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네. 너무 서둘렀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주위를 쓱 둘러보자 많은 연인이 서로 꼭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시선을 다시 트리로 옮겼다. '그 애는 언제쯤 오려나. 눈이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