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긴히지 백가시

나는 백야차인데, 누구보다 이 전장에 오래 목숨 부지하고 살아 있는데, 진즉 여기저기 싸돌며 이런부류 저런부류 다 어울렸는데. 

근데 아귀랑 한 번 어울렸다고 몸에 뭐가 붙었나.

자꾸 머리를 헤집는 좀벌레가 있는 것마냥 생각이 난다고.

이악물고 전쟁터에서 싸우다가도 멈칫한다. 

길게 올려묶은 머리카락만 보이면 그만 가시아귀 생각이 다음 움직임을 못하도록 내 머릿속을 좀먹는 것이다. 무엇 하나 궁금하지 않다고 머리를 백지로 만들어놓은 게 삼초 전인데 그새 뭐 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전쟁터에서 이렇게 희희낙락 남의 생각이나 하고 있다가는 정말 죽을텐데.

그리고 정말 목덜미를 스쳐지난 금속에 목이 따끔거리고 잠시 말문이 막힌다. 덕분에 정신을 차렸으나 염증이라도 난 듯이 가슴께가 따갑고 쓰리고 간지럽고 불쾌하고. 다친 건 목인데.

난리통에 여유롭기도 하다.

평소라면 그 여유를 싸움에 썼을 터다.

여유롭게 멱을 쥐어 단칼에 목을 베었을 터다. 

그런데 감히 그깟 잡념이 나를.

선명히 트인 시선 끝에 쇳자락이 제 배를 긁어 뚫어낸 것을 마침내 마주한다. 

그리고 기어이 잡념의 뜻을 알아챈다.

나를 죽이기 위한 신의 뜻임을. 

전쟁통에 사랑을 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으라는 뜻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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