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보고 와서 쓰는 AU 1
근데 파묘 관련 내용 지관밖에 없음
※실제 지명이나 종교와 아무 관련없습니다 걍 여기저기서 모티브 가져다 얼기설기 붙임
#1
젊은 시절부터 일찍 진로를 정하고 지관업에 종사한 수호는 적당히 능력도 있고 성실해서 그 쪽 업계에서 이름을 제법 알렸음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중계업자가 연락을 했는데 어떤 오지에 있는 고분을 파헤칠 건데 거들 수 있냐는 희한한 의뢰가 있다며 수호에게 받을 수 있을 지를 물었음
도굴이 아니고서야 정식으로 허가 받아서 고분을 파는 일은 대규모가 되니까 혼자 일하는 수호에게 들어올만한 일은 아니었음 근데 왜 이걸 나한테 말한 거지?? 찜찜했는데 사실 이유가 있었음 의뢰자가 최대한 인원을 적게 하고 싶으니 그들이 쓰는 말을 쓸 수 있는 외국어 가능+유능하고 입 무거울 것 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조건이 맞는 게 수호뿐이었음
느낌이 영 안 좋아 거절하고 싶었지만 보수 총액도 그렇고 제시하는 선금이 제법 짭짤했던지라 한참 고민하던 수호는 결국 수락했음
인터넷은 커녕 전화도 안 될 정도의 오지인 만큼 길도 개판이라 힘겹게 가는데 현지인들에게 길 물어보면 거기 가면 안 된다는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을 뿐임 거길 왜 가냐 저주받는다 가지 마라 만류하는 사람들을 지나면서 마치 공포영화의 프롤로그같은 느낌에 수호는 당장 돌아가고 싶어졌으나 이미 받은 게 있으니 가는 수밖에 없었음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수호는 소규모로 할 거라면서 왜인지 세워져있는 여러 텐트와 사람들이 여럿 모인 걸 보았음 고고학자는 그렇다 치고 공무원으로 보이는 이들과 어떤 종교의 성직자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고고학자의 의뢰였나? 아니 그러면 전문 발굴팀이랑 와야지 왜 타국 지관을 고용했지? 보수랑 일정만 간단히 듣고 홀홀단신으로 왔던 수호는 사람들과 합류하고 나서야 제대로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음
고분이라고 한 곳은 옛날 그 나라에 있던 토착신이 묻힌 곳으로 새로 들어간 신흥 종교가 토착종교를 밀어내면서 그들이 믿던 신을 없앤다는 의미로 신의 모습을 조각한 신상을 관에 담아 땅에 묻어버리는 의식을 했는데 토착종교가 거의 사라진 지금 그런 의식도 의미가 없어졌을테니 신을 묻었다는 관을 꺼내 정리하겠다는 거였음
뒤늦게 꺼림칙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수호는 난리를 쳤지만 이미 받은 선금과 여기까지 들은 이상 돌아가는 건 계약에 어긋난다는 성직자들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합류하게 됨
주최자인 성직자들의 목적은 그렇고 소문을 어찌저찌 전해들은 고고학자는 신의 모습을 딴 조각이나 유물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거니까 협상을 통해 세상에 공개하겠다며 흥분해있었음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쫓아내지도 못 해서 성직자들은 그냥 그러려니 내버려뒀음
본격적으로 고분에 들어가기 전에 그 나라의 공무원들은 유적으로 등록하지 않은 곳이니 파도 된다고 허가해주고 두툼한 봉투를 챙긴 뒤 돌아갔음 갈 사람들 다 가자 캠프에는 수호를 포함해 다섯 명이 남았는데 성직자들은 토착 종교를 밀어내고 새롭게 국교가 된 종교 소속으로 앳되어보이는 청년과 성인 둘로 셋이나 있었음 그 중 앳된 청년은 성직자로 종교에 귀의해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아까운 외모였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아이돌 아니면 배우할 상인데
다들 자기소개하는 동안에도 청년만은 입 꾹 다물고 새초롬하게 있는 게 낯가리나 싶었던 수호는 말 붙이려고 한 마디 함
"어이구 외모가 훤칠하시네 종교에 귀의하실 때 그 나라 아가씨들 눈물께나 흘렸겠어요 그쵸?"
아무도 웃지 않고 대꾸도 없었음 민망해진 수호가 아니 뭐 아님 말구, 하고 머쓱하게 넘어감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른 성직자가 대신 청년을 소개해줌
"하비엘 아스라한이라고, 저희 종교의 성기사 입니다. 성기사로써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며 침묵할 것을 맹세했기에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성기사요? 내가 아는 그 성기사? 요즘 시대에?"
무슨 이야기에서나 등장할 법한 옛스러운 단어가 나오자 수호는 깜짝 놀랐지만 성직자는 사람 좋은 듯 웃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며 수호 씨도 이런 일을 하니만큼 이해할 거라고 하길래 좀 민망해하던 수호가 그렇죠 참 하고 답했음 엑소시즘이나 퇴마도 현대에서 아직도 행해지는데 성기사도 당연히 있을 수 있지
이야기를 듣던 고고학자는 갑자기 표정을 찌푸리고 한 걸음 물러섰지만 수호는 단순히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청년이 성기사라니 뭔가 대단한 능력이라도 있나보다 감탄하느라 바빴음 멀찍이 그의 곁을 맴도는 듯한 무언가도 일부러 내버려둔 것인가 지레짐작하는데 소개가 끝났으니 현장으로 가자면서 성직자가 움직였기에 다들 그를 따라 고분으로 향했음
정글 깊숙한 곳에 있는 고분은 옛날에도 돈 왕창 썼겠다 싶을 정도로 컸는데 무엇보다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도 길었음 성직자들의 설명으론 안에 묻은 것이 혹여 관 밖으로 나오더라도 길을 잃고 헤매어 지상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미로처럼 만들었다고 함 문제는 하필 그 미로의 지도가 소실되어서 발굴단은 길을 찾으면서 관이 있는 곳을 가야 한다는 거임
그나마 다행인 건 함정은 없다는 거? 보통 영화 보면 함정도 만들지 않냐는 수호의 질문에 성직자는 안에 갇힌 것에겐 함정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만들 필요없다고 답했음 하지만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신이 잊혀지기 전에 도굴꾼이 와서 관을 가지고 미로를 나오면 신이 세상에 다시 나오는 건데 정말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묻진 않았음 돈 많이 받았으니 할 일만 하고 가면 되는 거라고 자기세뇌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다만 그런 일이면 지관이 아니라 탐험가를 부르든지 탐정을 부르든지 왜 자기가 길 찾는 일을 해야 하냐고 투덜거리긴 했음 도움이 될 줄 알았던 고고학자는 별 영양가도 없이 벽면을 훑어보고 뭐 확인하느라 바빴고 성직자들은 지겨워보였음
오로지 수호와 하비엘이라는 성기사만 길 찾느라 분주했는데 앞장 서 걷는 수호와 속도를 맞춰 걷는 성기사 청년은 정말 한 마디도 안 했음 교리대로 말 한 마디 안 하고 살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대답이 안 돌아올 걸 아니까 안 물어봤음
첫 날은 고분의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로 아무 수확없이 지나갔고 사람들이 사는 번화가까지 왔다갔다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발굴이 끝날 때까지 정글 한 복판에 쳐진 텐트에서 지내게 된 수호는 팔자에도 없는 정글탐험을 한다고 텐트의 천막을 만지며 불안해했음 호랑이같은 거 나오면 이게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발톱 한번에 다 찢길텐데
정글은 높은 나무와 커다란 나뭇잎때문에 이른 시간인데도 금세 깜깜해졌음 저녁은 다같이 모여서 먹어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각자 텐트에 들어가서 보냈는데 이것저것 조사하고 발견하면서 혼자 신난 고고학자와 달리 수호는 설마 이런 오지에서 지내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에 존나 심심... 혹시 몰라 시간 떼울 영상을 잔뜩 다운받은 패드를 들여다보는데 보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밤이 깊어진 쯤 영상 보는 것도 지겨워져서 내팽개쳤음
이어폰을 빼니까 바람 불면 나뭇잎 스치는 소리인지 뭔지 쫘아아악, 챠아아악 하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서 분위기도 그렇고 하는 일도 그렇고 하도 기분이 이상해진 수호가 바람 좀 쐴 겸 텐트 근처만 돌아다니는데 성직자 쪽도 아직 안 자는지 텐트 천막 틈으로 촛불빛이 어른거리길래 조심히 다가감
그제서야 수호는 아까부터 들리던 이상한 소리가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가 강하게 부딪히는 마찰음이라는 것을 알아챘음 짜악, 차악 하는 찢어지는 것같은 마찰음에 호기심이 생긴 수호가 근처에 있던 상자에 슬쩍 올라가서 내부를 엿보는데...
안에서는 하비엘의 상의를 벗기고 무릎을 꿇린 채로 등짝에 채찍질을 하는 성직자들이 있었음 하비엘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고 성직자들은 신에게 그의 죄를 사해달라는 말만 고장난 라디오처럼 읊어댔음
와씨 미친 광경 봤다 쟤네 사이비 아냐??? 빨리 이 미친 놈들에게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한 수호가 후다닥 제 텐트로 돌아가서 억지로 잠을 청했음 정체를 알게 된 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전날 밤, 아니, 오래 되어보이는 흉터도 보였으니까 아마 오랫동안 이어졌을 학대를 행하고도 멀쩡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는 성직자들을 보니 역겨웠지만 아는 척 하면 안 되니까 과장되게 웃는 낯으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함
성직자들은 아침 기도를 한 후에 고분에 들어가자며 셋이서 나갔고 수호와 고고학자만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데 수호가 슬쩍 운을 띄워보니 고고학자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
아주 큰 죄를 짓고-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여 목숨을 내놓고 성전의 최전선에 서는 사람을 저 쪽에서는 성기사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저 청년도 죄를 지었을 거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 혹독한 처사를 당하고 있을 거다
새벽까지만 해도 청년을 불쌍히 여기던 수호는 범죄자랑 어떻게 좁아터진 고분 안에 들어가냐며 입장을 바꿨으나 보수를 떠올리며 진정함 어쩐지 보수가 쎄더니만 일도 일이지만 같이 일하는 놈들도 정상이 아니었음
고분은 통로 군데군데에 벽이 무너져서 흙이 침범하거나 나무뿌리가 뚫고 들어오는 일이 있어서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가야 했는데 수호는 삽을 챙겼지만 하비엘은 곡괭이를 챙겨서 더 무서웠음 범죄자인 걸 몰랐을 땐 괜찮았는데 이젠 아니까 그걸로 자기 찍으면 어떡하냐고 범죄자한테 무기는 왜 쥐어주는 거냐고 투덜거렸음
하지만 무덤 안에서 힘쓰는 일은 하비엘이 당연하게 다 도맡고 있으니까... 근데 또 막상 힘쓰는 일 생기면 걔한테만 다 떠넘기는 건 신경쓰여서 수호도 같이 함 그러면 말없이 수호를 보다가도 지 할 일하곤 했음
미로는 쓸데없이 통로도 많고 갈림길도 많아서 빙빙 돌면서 헤매는 일도 많았는데 돈 지불한 성직자 놈들은 첫날 이후로 동행하지 않았고 고고학자는 유적 초입에 새겨진 석판이나 조각들 기록한다고 지 캠프에 있었으므로 수호랑 하비엘만 안에서 겁나게 헤맸음 길 헤매는 게 일상이니 밥먹으러 들락날락하는 것도 귀찮아서 마실 거랑 먹을 거 챙겨들어갔는데 하비엘은 늘 안 가져와서 수호가 툴툴대면서 둘의 몫을 챙겨야 했음
대답이 안 돌아와도 꿋꿋이 말 걸어주고 먹을 것도 챙겨줬던 보람이 있는지 하비엘은 조금씩 수호한테 곁을 내줬고 어디 간다 싶으면 쫄래쫄래 따라다님 아침 먹고 고분에 들어가기 전에 바람 잘 드는 곳에서 쉬고 있으면 하비엘도 옆에 앉아서 졸곤 했는데 거리를 둔 채로 휴식시간을 보내면서 고분에 들어갔을 땐 붙어서 길을 찾았음
그러다보니 범죄자라는 걸 알아도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자부하는 수호의 눈에 별로 그렇게 위협적인 놈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렇게 쳐맞는데도 성직자들에게 한번 대든 적이 없는 걸 보면 나름 사연이 있겠거니 여기게 됨 무엇보다 그의 뒤를 항상 따라다니는 영들이 마음에 걸렸음
수호는 영능력자이긴 한데 신을 받지 않은 반쪽짜리라 영혼을 봐도 천도나 퇴치같은 본격적인 건 못함 하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그 계열에서 쓰는 주술같은 건 야매로 쓸 수 있었음 부적은 직접 못 써도 남이 쓴 부적은 잘 활용할 수 있는 정도?
아무튼 수호가 하비엘에게 붙은 영을 처음 봤을 땐 울면서 그의 뒤를 따라다녔으니 살해당한 피해자들인 줄로만 알았음 그런데 살해당한 사람들치곤 원망이나 살의보단 서러움이나 슬픔밖에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봐도 속사정이 있어보였음 물론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해도 살인은 범죄이라는 건 알고 있음 그래도 이런 시대에 교도소를 가면 갔지 밤마다 채찍질 당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하고 일하고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속죄하는 거라면 몰라도 상관도 없는 종교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음
차마 본인에게 묻지는 못 하고 속에 의문을 담아만 두던 수호는 어느 덧 하비엘과 대화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음
함정은 없지만 밀림 속에서 관리가 안 된 고분은 독을 가진 생물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는데 하비엘이 처리해줬음 수호는 독벌레보다도 범죄자인 하비엘이 자기 공격할까봐 그게 더 무서워서 난리친 거지만 수호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줄 안 하비엘이 장난인지 아니면 죽었으니까 안심하라고 확인시켜줄 생각이었는지 벌레를 수호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고 한국의 벌레와 차원이 다른 밀림의 노래기를 본 수호가 빽빽대니까 웃음을 터트린 게 계기가 되어 하비엘이 입을 열게 되었음
"저 쪽으로 가보자."
"저긴 아까 옆으로 빠지는 길과 연결된 통로입니다."
"그니까 가보자고 거기도 샛길 있나보게."
"제가 봤는데 없었습니다."
한 번 입을 열자 언제 자기가 말 안 했냐는 듯이 시원스럽게 말을 하면서 수호와 투닥거리기도 했음 이런 식으로 둘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어느 새 내적 친밀감이 쌓이면서 수호는 더 이상 하비엘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됨
그 날 발굴은 일찍 끝내고 생필품 사러 번화가로 나가는 일행에 합류한 수호는 물건 대충 산 다음에 국제전화 걸어서 알고 지내던 흥신소 사람에게 연락함 자세한 사정은 말하면 안되니까 대충 일하느라 외국 나왔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주변 눈치보면서 목소리를 낮춤
"여기 일행 중에 어떤 종교 성기사... 이름이 하비엘 아스라한 인데 마젠타노 사람이거든? 얘 배경 조사 좀 해줘라 내가 내일 또 전화할게."
직업 특성상 괜찮은 사람들의 의뢰만 맡고 싶어 했던 수호가 사람 뒷조사를 의뢰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던 지라 수화기 너머 상대는 흔쾌히 들어줬음
다음 날 필요한 물건을 사는 걸 잊었다면서 금방 사오겠다며 번화가로 나간 수호는 물건은 대충 아무거나 사고 전화부터 걸었음
그런데 흥신소 사람이 전해주기로는 하비엘 아스라한 이라는 자가 살인 용의자로 재판을 받은 적은 없음 범죄기록도 없음 자기가 알던 사정과 달라 당황한 수호에게 그 대신 출생기록서랑 다 확인해봤다고 흥신소 사람이 재빨리 기록을 읊어주었음 국제전화 오래하면 돈 많이 나가니까
하비엘 아스라한은 고아였으나 운 좋게도 귀족 가문에 입양되어 의무교육도 받고 괜찮은 유년시절을 보냈음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를 입양한 가문의 가업이 점점 기울면서 사채빚을 잔뜩 지고 파산함 양부모는 동반자살했고 그들의 자식들도 객사하는 등 비참하게 죽었는데 입양아인 하비엘만 살아남아 종교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까지만 서류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수호가 알겠다며 통화를 끝냈음
발굴 현장으로 돌아가서 곧장 하비엘을 찾은 수호는 하비엘을 끌고 외진 곳으로 감 하비엘은 이유는 몰라도 수호 뜻대로 끌려가 주었음
"니가 죽인 사람들 사채업자냐?"
그러자 하비엘이 서늘한 눈빛으로 수호를 노려보았음 닥치라는 뜻이었겠지만 수호는 안 닥쳤음
"그 인간들 죽인 게 미안해서 거기 들어가서 평생 속죄라도 하려고? 글쎄다, 사채업자 새끼들 뒤져서 살아난 사람이 훨씬 많을텐데. 정당한 복수는 범죄로 안 친다고 그쪽 교리는 안 그러든?"
비슷한 사정으로 가족을 잃었고 다른 진로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일찍 일을 해야 했던 수호는 만약 하비엘이 가족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사채업자를 죽인 죄를 사하고자 그 지랄같은 일들을 감내하고 있다면 그건 아니라고 오지랖 좀 떨 생각이었음 죄를 용서받으려면 교도소 가서 형을 살든지 범죄기록 없다는 거 보니 아예 신고조차 안 된 거 같은데 어떻게 묻은 건지도 모르겠고
수호의 말에 하나도 답하지 않은 하비엘은 수호를 그 자리에 둔 채 자리를 떴고 수호만 괜한 말을 했나 뒤늦게 후회함 캠프로 돌아간 둘은 시간이 되어 다시 고분으로 향했고 한참 말없이 통로를 지나던 하비엘이 입을 열었음
자기가 이 짓을 하는 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물론 사채업자를 죽인 건 맞고 살인이 큰 죄라는 것도 알지만 마젠타노에는 아직도 계급사회의 잔재가 남아있는 탓에 감히 귀족에게 돈을 재촉한 사채업자들을 죽인 건 그 나라의 법상 중한 죄가 아니었음 하비엘이 고아긴 해도 귀족가문에 입양된 서류상은 귀족이라 교도소에 가더라도 몇 달만 형 살고 금방 나올만한 일
그런데도 하비엘이 종교에 귀의한 건 자살한 자신의 양부모가 공공묘지에 묻히기를 바라서였음 아무리 귀족이라도 교리상 자살한 자는 공공묘지에 묻힐 수 없었기에 그들은 죽은 지 몇 달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매장되지 않은 상태로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음 하비엘은 자신이 성기사가 되는 대신 양부모님을 공공묘지에 묻어달라는 거래를 한 거였음
"그러니까 저에게 더 이상 신경쓰지 마십시오."
생전에 제대로 은혜도 갚지 못 했으니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굳게 다문 하비엘은 묵묵히 앞서 나갔음
저런 사정이면 더 이상 참견할 주제는 못 되지. 역시 괜히 오지랖 부렸다고 자책한 수호는 빨리 이 기분 더러운 일을 끝내야겠다고 죽어라 길을 헤매고 다녔고 그 이후로 둘은 대화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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