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엘리시움/해쟝] 너무 늦은 자들
마르티네즈 어딘가에서 눈이 떨어져 녹는 소리가 납니다. 누군가 뒤로 물러나 부츠 밑창을 바닥에 문지르는군요.
붉게 도색된 컨테이너들. 페인트는 눈비 때문에 금속이 녹스는 불상사를 막아주지.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야.
지금의 하늘은 어떻죠?
당신은 차창 밖을 확인한다. 반사광 때문에 확신할 순 없지만 잿빛인 것 같다. 아마도.
눈이 내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훨씬 나빴을 겁니다. 종주국 시절에는 적당한 영양과 햇빛만으로도 *심각한* 수준의 신체적 외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의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혁명 이후까지도 폭스 병원에서는 실제로 환자들을 볕 좋은 곳에 눕힘으로써 치료하려는 시도가 종종 발견되었습니다. <자연 멸균 회복 촉진설>을 도입한 데는 환자들에게 줄 항생제가 부족하다는 뒷사정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다만 레바숄 북서부는 해가 잘 드는 지역이 아니고, 적당한 영양 또한 제공되지 않았기에 가설의 시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총알과 포탄이 죽이지 못한 환자들은 대부분 감염으로 인해 죽어가야 했습니다.
*적당한 영양*은 뭐지?
최소한 데킬라 선셋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데킬라 선셋은 상처에 쥐약이라고. 축축한 날과 눈비 오는 날, 심지어는 해가 충분히 맑지 않은 날도 마찬가지야. 네 의형제들과 옹기종기 사이좋게 뒷자석에 앉아서 마르티네즈의 비포장도로를 달리겠다고?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최악은 바로 그 데킬라 선셋이야. 총에 맞기도 전에 상처에 못할 짓을 하다니, 너처럼 대단한 경찰은 없을 걸. 넌 종말의 경찰이 아닌 종말 그 자체야. 종말의 때가 찾아아와아았어어어.
“해리, 괜찮아요? 안색이 좋지 않아요.”
유디트 미노 순경이 조수석에서 당신을 돌아본다.
당신이 손바닥 아래로 피가 미끈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상처가 느리지만 꾸준하게 새고 있습니다. (사건 해결에서 오는 아드레날린이 다 닳은 거야. 이대로 차에서 내리려 했다간 세 발짝도 못 가고 쓰러지고 말걸. 당장 파이롤리돈을 빨아야 해. 임시 자문에게 슬쩍 물어보자, 정말로 약을 끊은 게 맞냐고.)
지금 그게 중요해? 동정받고 있어. 세상에, 동정받고 있다고.
상사는 너다. 허세를 부려서라도 이 상황의 주도권은 너에게 있음을 확실히 해라.
“난 괜찮아. 정말이야.” 당신이 한 박자 늦게 웅얼거린다. “새드 FM을 안 틀어줘서 그래.”
새드 FM?! 지금 그 소리를 할 때야, 이 멍청아?
두개골 속의 반동분자에게 찬동하는 외부 세력이 있사옵니다, 폐하! 쟝 비크마르 위성경관이옵니다. 저 자는 동력 마차에 오른 뒤로 내내 당신을 신경쓰지 않는 척 고집스럽게 창 밖을 내다보다가, 방금 그 말을 듣고서야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사옵니다.
어떤 표정인데 그래?
쌍욕이옵니다, 폐하. 공습에 대비하시옵소서. 3… 2…
“씨발,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동력 마차 바닥에 장기를 줄줄 흘리고 있는 마당에 새드 FM?”
축하해, 이제 네가 장기를 쏟아내고 있단 사실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게 됐네.
“새드 FM은 내 영혼의 동반자라고. 우리가 섬에 갈 때 진범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음악을 통해 레바숄의 가호와 연결됐기 덕분이야.” 당신은 고집을 부리려 시도하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킴 경위가 옆에서 나지막하게 헛기침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희는 그 노래 때문에 범인을 *놓칠* 뻔 했습니다….”
그 탈영병은 음악 소리를 듣고 저희가 오는 걸 눈치챘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방폭문을 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희가 ‘레바숄의 가호’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경위는 생각한 전부를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새드 FM은 속도광 FM과 너무 가까운 주제고, 그는 아직 41번 관할서와 비밀을 공유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쟝 비크마르는 할 말을 잃은 듯한 얼굴이다. “이 머저리 새끼야, 지금 내가 들은 게 맞아? 네가 거대한 붐 박스로 처량한 음악을 발사하면서 ‘앵앵, 내가 이렇게 슬퍼’라고 광고하고 다닌 덕분에 범인을 놓칠 뻔했다고?” 이게 바로 공습이옵니다, 폐하.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겁니다. 술을 마실 수 없는 동안에는 위성경관의 분노 또한 좋은 닻이 되어 주니까요.
무슨 닻?
살아있다는 감각 말입니다. 고통을 통해 고통을 잊는 거죠.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가 서로에게 도움을 제공하던 방식입니다.
“미안해,” 당신이 웅얼거린다. 피가 계속 새는 탓인지 에브라트의 악명 높은 의자에 앉았을 때처럼 팔다리가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몸이 무겁고 머리는 몽롱하다.
비크마르 경관이라면 당신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다.
“그 빌어먹을 미안하다는 소리 좀 안 할 수 없어?” 쟝이 검지와 중지, 약지로 이마를 문지른다. 우울한 회색 눈 위로 얼핏 동정심이 비친다. 그는 뭔가 더 말하려다 말고, 망설임 끝에 입을 다물어버린다.
“됐다 그냥…. 잠이나 자지 그래. 너 상태 진짜 안 좋아 보여.”
고개를 끄덕인다.
앞에 앉은 미노 순경이 내심 안도한 기색으로 “잘 참았어요,” 라고 말한다. 당신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당신을 닦아세우길 멈춘— 비크마르 위성경관을 향한 격려다. 트렌트 하이델슈탐은 공기가 가벼워지자마자 잽싸게 끼어들어 “그래도 동력 마차의 바닥에 인체 내부를 흘리는 건 자제해 주세요. 마차를 두 개나 못 쓰게 되면 보고서를 쓰기 *아주* 어려워질 것 같거든요.” 하고 농담을 늘어놓는다. 킴은 평온하다. 그는 행진 박자에 맞추어 무릎을 가볍게 두드린다.
당신은 눈을 감고, 쟝 비크마르는 차창 바깥을 바라본다.
무결자의 폐보다 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잼록의 밤이다. 비디오 가게와 술집의 네온 사인들이 하나씩 머리 위를 지나간다. 당신은 눈을 감고 불편하게나마 선잠에 빠져든다. 옆에서 위성경관이 무어라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금세 조용해진다.
이번엔 꿈조차 당신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난다. 바깥은 아까보다 어둡고 차 안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하다. 엔진이 덜덜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운전대를 쥐고 있는 비크마르 경관의 어깨가 보인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갔어. 한 명씩 내렸지. 이제 너랑 나 뿐이야.” 그가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이 각도에선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눈을 껌뻑인 후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골반에서 척추까지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멈춘다. 드루아민의 효과가 떨어졌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프맅트에서 하나 사가야겠는걸. …아직 프맅트가 열려 있을까. 당신은 자세를 고치며 묻는다.
“내 집으로 가는 중이야? 미리 말해두자면 주소는 기억 나거든.”
“그것 참 다행이네, 파트너. 정말 다행이야. 네가 씨발 41번 관할서의 화장실 위치까지 다 까먹었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큼은 *참 편리하게도* 기억하고 있다니. 오늘 들은 것 중 체포에 성공했다는 것 다음으로 위안이 가는 소식이네.” 비크마르 경관이 비아냥거린다.
운전대를 쥔 손에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핏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지경입니다.
너한테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 게다가 이번엔 네가 난동을 부리고, 동료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기 때문도 아니야. 아주 개인적인 이유겠지. 그리고 말해줄 생각도 없어 보여. 너에게 화내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상태거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내게 화를 내면서 동시에 자기에게 화를 낸다고?
우울증 덕분이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거든.
“어쨌든 넌 집으로 못 가.”
“왜?!”
“왜냐고? 네 집 꼬라지가 대단하기 때문이지. 술병은 나뒹굴지, 우편함은 넘쳐흐르지. 신비동물학자도 그 거실에 자리잡은 기념비적인 바퀴벌레 군락을 보면 기립박수를 칠 거라고. 너 지금 씨발, 자다가 심장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 건 알아? 어깨와 다리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 잘도 손으로 가려지겠다. 그 몰골로 네 집에 들어갔다간 내일이 되기도 전에 감염으로 죽을걸.”
당신은 잠시 생각한 끝에 묻는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데?”
대답은 짧고 간결하다.
“내 집.”
경찰 정신 [신적: 성공] - 이 길을 종종 달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운전대는 당신이 잡고 있었고 쟝 비크마르 순경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라디오에서 애상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당신은 툴툴댄다. 채널을 돌리려는 당신의 손을 그가 잡아세운다.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바깥의 도로는 어둡고 차 안은 밝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창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이다. “그냥 둬,” 비크마르 경관이 말한다. “오늘따라 감상적인 기분이라도 드나 보지, 순경?” 당신이 놀리자 그가 눈을 굴린다. “그래, 오늘따라 우울해서 죽을 지경이다. 됐냐? 다 놀렸으면 그냥 둬. 디스코 음악에 하루 정도 휴가를 줄 때도 됐잖아.”
당신은 손을 내린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I wish I could live through every memory of you
Just one more time before you float off in the wind
And all the time we spent, waiting for the light to take us in
Have been the greatest moments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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