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AU(?)

솔카이 인지 카이솔인지

이전에 푼 썰을 기반으로 적어봅니다.

사실 La Giostra(회전목마)라는 이름으로 길게 쓸려고 했는데 안되서 그냥 생각나는 부분만 짧게 적을려고해요.

카이솔인지 솔카이인지 솔카이솔인지 몰라서… 여러분들이 판단해주세요.


그 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햇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제 눈앞을 가리지만, 그건 절대 기분 나쁜게 아니었다. 마치 포근하게 제 몸을 감싸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 감각에 빠져 눈을 감고 싶어졌다.

“프레… 프레데릭!”

그런 그의 의식을 끌고 온건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대학 캠퍼스 내의 작은 광장, 그곳의 나무로 된 벤치에 앉아 고개를 올리는 그곳에는 제 친구가 서있었다.

태양빛의 역광에 비쳐 순간 누군지 알아볼 수 없어서 프레데릭은 눈을 찡그릴 수 밖에 없었다. 보이는 단발의 머리카락과 익숙한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일텐데.

“음…”

“프레데릭? 왜 그래? 머리 아파?”

“넌..”

“또 잔거야? 하하하. 나잖아. 카이 키스크. 네 연인.”

그제서야, 태양빛에 눈이 익숙해져갔다. 눈앞에 있던 제 ‘연인’의 얼굴을 마주보고 누군지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얀 피부에 파란 눈동자, 금발의 머리카락을 올려 묶어올린. 자신과 같은 하얀 가운 차림의 남성.
자신의 연인 ‘카이 키스크’. 같은 대학교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동기이자, 이 연구시설에서 함께 연구하고 있는 동문.

그걸 인식하니 마치 안개가 낀거 같았던 모든 것들이 정리되었다. 너무 강렬한 태양은 마치 무대장치처럼 주변을 비추기 위해 저 위에서 내리쬐고, 흐렸던 눈동자는 빛이 돌아와 제 연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먹먹해진 귀의 이명이 사그러들어. 알아차렸을 때 보인 연인의 얼굴은 평소의 그것과 같았다. 너무 깊게 잠들었던걸까? 연인을 순간 알아보지 못하다니. 괜한 쑥쓰러움에 프레데릭은 벤치에서 일어나 제 겉옷을 정돈했다.

“태양빛이 따뜻해서, 순간… 깊게 잠든 모양이군. 괜찮아, 이제 일어났으니까.”

“탕비실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 타서 마시자. 아직 시간은 남았으니까. 점심시간이 한참인데 잠들었길래 혹시 식사 안했나 싶어서 먼저 말걸은거야.”

순간, 보였던 단발이 무색하고, 눈앞에 제 연인은 머리를 올려 제 머리색과 같은 노란색의 리본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얼마나 태양빛에 잠들었는지 연인마저 못 알아보다니. 이 말을 했다간 분명 놀림감이 될 것이다. 그런 제 생각은 말하지 않은 채 대신 제 연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연인은 그런 그의 투박한 행동이 익숙한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맞잡아주었다. 따뜻한 태양이 그런 두 사람을 축복하듯이 여전히 따뜻한 태양빛을 내리쬐어준다. 이 얼마나, 완벽한 순간인가.


“아니야. 이러지 않았어. 이건 아니야.”

기어 세포의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상용화에 성공해 수 많은 사람들은 기어 세포의 도움으로 불치병에서 벗어나거나 수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우리들은 위대한 발명을 한 존재로서 상을 타고, 교과서에도 그 이름이 올려지게 되었어. 일본 열도도 사라지지 않았어, 사람들은 여전히 이 열도에 평범하게 살아가.

“이럴리가 없어. 이러지 않았다고!”

아스카와 관계가 망가지지 않았고, 너의 연인은 여전히 너의 곁에 있어. 이 얼마나 완벽한 순간이지?

“닥쳐!”

참지 못한 듯이, 프레데릭은 제 주먹을 벽에 내려쳤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 모든걸 비추어주던 거대한 스크린은 흠집 하나 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이건, 프레데릭의 ‘이상’일 뿐. '솔의 ‘현실’이 아니다. 프레데릭은 환상을 비추는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를 갈았다. 어째서 못 알아차렸지? 어째서 당연하게 여겼지?

행복한 나날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리아는 병에 걸렸고, 아스카와의 관계는 무너졌으며, 프레데릭은 기어로 개조된다. 그게 본래의 이야기였다. 본래 그의 과거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야기는 어떠한가? 그저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흘러갔고, 슬프고 아픈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앞의 모든 것이 낙원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결같이 떠있는 태양처럼.

지금까지 현실이라고 한결같이 믿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지자 하늘에서 쭉 자신을 비추어주던 태양은 그저 이 거대한 무대의 위에 걸쳐진 조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프레데릭은 조명을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이 조명은 마치 연기를 진행하는 진행자를 비추듯이 그 어떤 순간에도 그의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고 365일 태양이 떠있을 수 없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태풍도 오곤한다. 하지만 이 꿈 속에서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이야기가 완벽한 해피엔딩이었던 것처럼, 언제나 태양이 떠있었다.

어쩌면 이 한결같은 태양이 처음부터 이 모든걸 알려주던 것일지도 몰랐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알려주는 것 말이다.

환상은 마치 한낮의 꿈처럼, 유리조각처럼 수십개, 수백개의 조각이 되어 하늘에서 무너져내렸다.
연인과의 행복한 나날, 기어가 상용화되어 수명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연인의 빛처럼 밝은 미소. 기어 세포 제작에 참여한 자로서 받은 수 많은 상과 찬사들이 조각조각 떨어져 남은건 거대한 무대와 그 무대에서 자신을 비추는 조명 한개.

그리고, 그 거대한 벽 너머에 있던 익숙한 사람의 낯이었다.

카이 키스크, 이 망할 연극 속 자신의 연인. 그의 복장은 이전의 하얀 가운이 아닌 연왕으로서, 그리고 과거 성기사단에 속했던 자로서의 제복을 입은 상태였다. 달라지지 않은건 선명한 푸른 눈동자와 올려 묶은 금발 뿐. 그저 다른건, 머리를 묶던 노란 머리끈은 카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지금 눈앞의 그는. 프레데릭의 연인, 카이 키스크가 아니라. 이률리아 연왕국의 제1 연왕이자, 디지의 남편. 그리고, 자신을 라이벌로 여기던 젊고 어린 천재 기사였다.

“드디어, 알아차렸구나. 솔.”

“하, 한참 나를 프레데릭으로 부르더니. 이제와서 그리 부르는거냐?”

“어쩔 수 없었어. 그때는 솔을 ‘솔’이라고 불렀다면 분명 너는 무너지고 처음부터 꿈을 다시 시작했을거야.”

“일부러, 내 현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거라고?”

“그렇다기보단. 솔이 스스로 알지 않으면 안됐어. 이 꿈을 몇번 반복한거라고 생각해? 이걸로, 대략 20번일려나. 이 꿈은, 네가 버리지 못한 아리아에 대한 미련이 만든 것이니까.”

잘그락. 어느새 프레데릭의 모습에서 솔 배드가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발걸음에 맞춰 바닥에 떨어진 꿈의 조각들이 짓밟힌다. 그가 원하는건 이런 가짜 행복이 아니었으니까.
당당한 그의 모습에 다행이라는 듯이 카이는 가볍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몇번의 시도를 반복하다 드디어 솔이 스스로 미련에서 벗어난 것이니까.

“대체, 여긴 뭐지? 왜, 꿈 속 아리아 대신 네가 나온거냐? 그것도 연인으로!”

“궁금한게 많지? 말했다 시피, 이곳은 네가 버리지 못한 아리아에 대한 미련이 증폭되어서 만들어진 꿈이야. 현실의 너는 며칠 째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어.”

팍.
눈앞에 켜진 또 다른 전등에는 현실의 일부분이 비쳐보였다. 그곳에는 침대에 누운 솔과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 신은 물론, 디지와 밸런타인 자매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근처에는 패러독스 박사와 파우스트가 조심스럽게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큰 로브를 눌러썼지만, 아스카 역시. 그런 그의 곁에서 이 상황을 해결할려는 듯이 수 많은 마법진을 띄우고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된건지 우리도 알 수 없었지만. 네 뇌파를 검사한 결과 특정한 꿈을 반복해서 꾸는걸 알았어. 우리는 기어 메이커의 도움으로 이 꿈에 간섭했지. 처음에는 신이나 기어 메이커가 간섭했어. 그리고 꿈이라고 네게 알렸지.”

불이 꺼졌다가 금방 다시 켜진다. 하지만 보이는건 아까와 같은 침대가 아닌 ‘프레데릭’과 그런 그의 앞에 선 신, 혹은 아스카였다. 그들은 무언가를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프레데릭’은 이내 고통스러워하더니 모든 것이 아까 솔에게 보여주던 이상의 꿈처럼 무너져내렸다.

“처음에는 신이 자원했어. 신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다짜고짜 진실을 말했지. 물론, 꿈이 리셋되어버리자 이번에는 기어 메이커가 나섰고. 그래서 알았어, 이 꿈이 네가 가진 아리아에 대한 미련이라는걸.”

“내가, 아리아의 죽음에 여전히 미련을 가졌다고? 그 녀석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가지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죽음에 어느정도 마음을 정리했어.”

“겉으로는 그럴지도 몰라, 솔. 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아주 작은 미련은 남기는 편이야. 무자비한 계시는, 그 미련을 증폭시켜서 너를 붙잡아둘려고 한거 같아.”

설마, 내가 그런 환각에 빠지다니. 솔은 거칠게 혀를 찼다. 평소의 솔이라면 분명 이 정도의 꼼수에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당시의 솔은 기어 메이커, 아스카의 진실을 안 직후였다. 그와의 최종전을 준비하면서 마음 한켠에 과거에 대한 미련이라는 작은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기어 메이커는 이 꿈이라는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고 생각했어. 신은 연기는 잘 하지 못하고, 기어 메이커는 너의 뇌파를 살펴야했으니까. 어찌저찌 남은 사람이 나뿐이었어. 여러 사람으로 꿈에 간섭했지만 안타깝게도 전부 실패했지.”

같은 연구자, 친구, 지인, 형제. 온갖 역할로 관여한 꿈이었지만, ‘프레데릭’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곳이 꿈이라는걸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꿈속의 이상에 빠져들었다.

친구관계는 여전히 멀쩡했고, 연인, 아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기어 세포의 연구는 성공해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다. 어쩌면,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상에 눈을 돌리는건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이 꿈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꿈은 리셋되고 만다. 그렇게 몇번이고 반복한 결과. 카이는 그의 가장 큰 집착대상, ‘연인 아리아’의 자리를 자신으로 바꾸었다.

실패하면 그의 정신에 데미지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게 기어 메이커의 견해였지만, 이 이상 시간을 소모할 수 없었다. 잘못하면 일어나도 솔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건 직접적인 충격요법과도 같았다.

집착대상을 전혀 다른 인물로 치환시킨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꿈속이라고 해도, 도련님(坊や)과 연인이 되다니.”

“솔의 부드러운 손길은 신기했어. 이전부터 갑자기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거나 갑자기 말도 없이 방에 들어온 적은 있었지만, 그런 쑥맥같은 모습이라니.”

솔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보여준 상냥한 모습이 생각난건지, 카이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솔 배드가이는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항상 제멋대로 하던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뻘쭘해하면서 연인의 몸을 끌어안는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솔 답지 않지만, 그건 프레데릭 다운 일일려나. 걱정하지마, 이 꿈 속의 상황은 밖에서는 보지 못하니까. 대신 뇌파의 변화만 보았을거야.”

“그 덕분에, 정신차린 것도 있으니 뭐라고 하진 않겠어. 망할.”

솔은 당연하다는 듯이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여성이었던 아리아의 역할을 남성이었던 카이가 대신 맡으면서 꿈 속에는 여러 위화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위화감 덕분에 솔은 프레데릭의 이상이라는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그런 꿈을 꿨다는 것 자체가 흑역사라고 말해야할까.

“설마, 그 노란색 머리끈도.”

“들켰네. 이거. 디지의 머리끈이야. 꿈속에서 넌 디지가 기어 세포의 영향을 받지 않은 평범한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난걸 상상하곤 했어. 그 꿈속에서 몇번이고 디지에게 이 노란 머리끈을 달아주었지. 마치, 현실의 디지에게 해주지 못한걸 해주듯이 말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분명, 솔에게도 애정받았으면서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아이. 제 어린 아이에 대한 미련도 남았던걸까? 그 미련의 흔적처럼 프레데릭은 항상 꿈에서 ‘딸’에게 이 노란 머리끈을 해주었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끈은 디지의 그것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이름도, 머리색도 달랐지만, 그건 분명 프레데릭이 생각한 ‘평범한 아이였을 디지’라는 망상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일어나. 디지도, 신도.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마치 너는 기다리지 않는 것 처럼 말하는군.”

“물론, 나도 너를 기다리고 있어. 이 망상속의 연인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으로서.”

두 사람의 관계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연인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거칠지만 그런 사이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알게되어가는 ‘소중한 관계’. 그렇기에, 지금 연인이라는 가짜 탈에서 벗어나. 진짜 ‘카이 키스크’로서 만나길 기도하는 것이었다.

탁. 탁.

하나 둘 전등이 꺼지고, 카이의 모습도, 현실의 모습도 사라졌다. 하지만 솔은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이건 쭉 내리쬐던 햇빛이 사라진다는게 아니라, 이 말도안되는 꿈속이라는 연극의 종막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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