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창작

찬장 위의 토론

촉촉한 숲 by 청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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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속이 상하지 않는 겁니까?”

반듯한 유리병 하나가 깨진 유리에게 물었다.

“찬장의 모든 병들이 당신을 조롱하고 멋대로 동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 들림에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것들에 미칠 것 같지 않으십니까?”

“속이 상할 이유가 무어 있겠습니까.”

“다들 자신의 반듯한 모습과 당신의 조각난 모습을 비교하며 멸시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것인가요?”

“그들은 저의 조각만을 볼 뿐이지요. 깨어짐 너머의 저를 볼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너머에 있으므로 그 모욕들은 내게 닿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내면의 아름다움 같은 것입니까? 저는 그것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나의 중심은 유동성입니다. 그것은 나와 당신과 모든 유리가 그렇지요. 유리는 반듯한 모습으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몇백 년, 몇 만 년이 흐르면 당신도 나도 점점 흘러내려 종국에는 저 아래의 물웅덩이처럼 변해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의 깨어짐도 내게는 큰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시점은 우리에게 너무 멉니다. 모두가 반듯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비싸게 팔릴 날 만을 기다리고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당신처럼 깨어져 있다는 것은 어찌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팔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결국 팔릴지라도 그 값을 받는 것은 우리가 아닌 우릴 만들어낸 손들입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팔려 가 무언가를 담고 그것을 다시 쏟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라, 그 가치도 결국엔 커다란 손을 가진 자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 가치를 다하는 삶을 상상해 보자면, 결국 무언가를 담아 뚜껑이 닫히고, 플라스틱 박스에 켜켜이 담겨 어딘가로 옮겨지며, 속에 남은 것도 없이 탈탈 털려지는 것의 연속일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삶을 진심으로 원하는 겁니까?”

“진심으로 원하지 않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겁니다.”

“글쎄요, 저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나의 깨어진 조각들은 그럼 어디로 갈까요? 다시 불 속으로 던져질지도 모르지만, 어딘가의 쓰레기장으로 옮겨갈지도 모릅니다. 쓰레기장은 플라스틱 박스 탑과 달리 광활하겠지요. 냄새는 좀 나겠지만 그 편이 더 많은 것을 자유로이 경험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 당신이 지향하는 삶이 완전히 틀렸다고 매도할 의도는 아닙니다. 어딘가엔 완벽한 유리병으로 추앙받는 자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유리잔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완벽함보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유리병은 말이 없다.

“사유를 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부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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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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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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