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동급생

A의 시선

쓰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썼습니다. 

한도윤의 동급생, A(누군가)의 시선으로 본 이야기 입니다. 

모브 이야기가 불편하신 분들은 스루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조금 특이한 애였다.

칠판을 두드리며 수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라디오처럼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5교시는 누구랄 것 없이 몰려오는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이미 옛적에 백기를 흔들어버린 몇몇 아이들은 아닌 척 이미 잠에 취해있는 다소 평화로운 오후. 아직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이른 더위에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참 쨍했다.

'집에 가고 싶다.'

나는 문학책을 팔랑팔랑 넘기다가 노트를 꺼냈다. 선생님의 물음에 의미 없이 네~하고 대답하며 노트 위로 선을 긋는다.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공부가 뒷전이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은 다른 길에 있으니 지루한 이야기들은 흥미가 없다. 얇은 샤프심이 종이에 여러 번 그어지고, 손등에 번지는 흑연을 지우며 딴짓을 하고 속으론 수업이 아니라 어서 학교가 끝나길 바라던 중, 문득 그가 눈에 들어온다.

옆 분단의 대각선 앞. 다른 남자애들과는 다르게 어딘가 곱상하고, 조금 특이한 애. 대게 애들이 한도윤에 대한 인식이었다. 점심시간에 축구하러 나가지도 않고, 어울리는 애들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꽤 구형의 MP3로 노래나 듣고 혼자 다니는 걔는 아무래도 같은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많이 튀는 아이였다. 

무엇보다 나는 저렇게 머리 긴 남자애는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래봤자 어깨에 조금 닿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남자인데. 두발규정에 길이에 대한 건 없어서 선생님들도 딱히 별말 하지 못하고 늘 혀를 쯧 차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르겠어.'

리액션도, 표정 변화도 잘 없어서 읽기 힘든 애였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애들도 굳이 한도윤에게 잘 다가가지 않았다. 말을 걸면 대답은 잘 해주고, 같은 조가 되어도 잔머리 굴리며 뒤로 내빼는 애들보다는 훨씬 좋은 애였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애. 그 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 특이한 애에서 그냥 나쁘지 않은 애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시간은 빨랐다. 

2학년, 어색하기만 했던 새 교복이 매일 입었더니 헤지고, 몸에 딱 맞게 될 무렵 기운차게 교실 문을 열었던 나는 구석에 앉아있던 걔를 발견했다. 

'또 같은 반이네.'

친한 친구들의 옆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여전히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말을 걸 만큼 용기가 많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힐끔 보는 것이었다.

"쟤 왜 자꾸 쳐다봐. 설마, 좋아해?"

"뭐? 그런 거 절대 아니거든!"

"절대 아닌 게 어딨어?"

지꿎은 애들의 말에 고개와 팔을 흔들어가며 부정을 하며 진! 짜 아니거든! 이라고 크게 외쳐서야 애들이 알았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부정하니까 오히려 이상하잖아."

"맞아, 저 정도면 꽤 잘생겼고 괜찮아 보이는데."

"네가 좋아하는 게 아니면 내가 확 고백해버릴까!?"

장난스런 목소리가 여러 번 오가는 와중에 혹시나 들었을까, 급히 다시 고개를 돌리니 그새 그의 귀엔 이어폰이 걸려있었다. 어디서 자기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채 창밖을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을 쫓다가 고개를 돌렸다.

해가 지났지만 한도윤은 여전히 같이 다니는 무리는 없었고, 그렇다고 교실에서 붕 뜬 존재도 아니었다. 모두와 무난하게 지내지만 친하다고 표현하긴 어려운 관계. 그걸로 좋은가? 그 시절의 나는 친구들과 다니는 게 훨씬 좋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좀 특이하고 별난 애일지도. 

그럴 무렵, 옆 반에서 누가 찾아왔다.

"저기, 한도윤 있어?" 

"아, 저기 있다. 쟤 아니야?"

"아, 맞다. 도윤아!"

얘네는... 명찰을 슬쩍 봤다. 김주용과 유태희였다. 이름 되게 곱상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입구에서 길을 비켰다. 습관처럼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뚫고 목소리가 닿았는지 한도윤이 뒷문을 바라보고, 자신을 찾는 이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와.'

한도윤이 저렇게 동요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동요라고 해야 할까, 그의 감정이 숨김 없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는 걸 본 순간 든 생각은 '아, 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 구나.'였다. 나는 뒷문과 가까운 자리의 의자에 걸터앉으며 그 애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진짜?"

"봐봐, 내가 멤버 구해 온다니까."

어깨를 당당히 핀 김주용을 중심으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한도윤과 유태희를 바라봤다. 

"무슨 악기 할 줄 알아?"

"나, 그냥 취미로 기타…. 잘은 못해."

"괜찮아, 좋아하는 걸로 충분해."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이들을 사이로, 누군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키 크다….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 큰 애는 자연스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야, 너희 뭐 해? 기타? 밴드?"

"어?"

"나도 기타 칠 줄 아는데. 나도 끼워줘."

"뭐, 진짜!? 좋다! 어때? 기타는 둘 있어도 괜찮지 않아? 어, 안되나?"

"아니, 그래도 괜찮아."

"뭐야, 벌써 네명이나 모였네! 짱이다!"

해맑게 떠드는 김주용을 두고 대화를 하게 된 네사람을 보며 키 큰 애의 가슴팍에 붙은 명찰을 눈을 가늘게 뜨며 떠듬 읽었다. 황… 익선. 

"야, 너 뭐해. 쟤네 뚫어지겠다."

"사랑하는 임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느라 질투가 나나 보지."

"뭐!? 그런 거 아니라니까!"

시선을 돌려 친구들에게 소리치면서도, 이날을 회상하면 그래. 마스커레이드라는 밴드가 만들어지려던 때에 나도 그 자리에서 그들을 엿본 것이다. 낯을 가리는 베이스와 행동력이 좋아 리더가 된 기타. 자신감이 없어서 서브로도 만족하는 서브 기타와, 그들의 분위기 메이커인 드럼. 

그 뒤로 한도윤이 종종 수업 시간에 괜히 미소를 짓거나,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엿보며 나는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 있는 것 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내심 은연중에 그를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해가 또다시 바뀌었다. 

고등학교 3학년, 밀려오는 입시에 대한 불안감에 벌써 걱정을 하며 새로운 교실의 문을 열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아."하고 소리를 냈다. 소리에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리는 그를 애써 모른 척 하며 비어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한도윤이다. 또 같은 반이 됐네.  

종업식 전보다 어쩐지 좀 더 길어진 것 같은 머리카락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친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3년 내내 같은 반이라니, 좀 신기했다. 

"좋겠네~ 좋아하는 애랑 또 같은 반이라서."

"너 진짜…."

"오, 나 쟤 누구랑 대화하는 거 처음 봐."

 이번엔 황익선도 같은 반이었다. 한결 편하고 친근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아쉬운 기분도 들었다. 왜 아쉬운지는 모르겠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어쩐지 그런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1학기 자리는 고정이니까, 다들 여기 와서 번호 뽑아가라."

마음대로 앉아있던 애들 사이로 야유가 지나갔다. 칠판에 랜덤으로 적힌 자리 배치표의 번호와 A4를 자로 쭉쭉 찢어 넣은 번호표를 눈 딱 감고 뽑았다. 15번…. 칠판을 보고 자리를 봤을 때 그 옆에 앉은 이를 보고 비명을 삼켰다.

"안, …안녕."

"안녕."

안녕……. 어색한 침묵을 삼킨다. 처음이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을 하면서 처음으로 자리가 붙어있었다. 눈만 굴려 친구들을 바라보니 힘내라며 화이팅! 하는 애들에게 조용히 주먹을 들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옆자리가 되고 한 달, 경험하기로 한도윤은 생각보다 더 조용한 애였다. 수업 시간에 자는 일은 잘 없었지만 노트엔 늘 수업과 다른 것들이 메모가 있었고,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거, 3번이 아니라 2번이야."

떡 하니 보이는 오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소곤거리니 아, 하며 뒤늦게 답을 고치는 애를 보고 무뚝뚝한 게 아니라 조금 맹한 거구나 싶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황익선이 그의 자리로 쪼르르 왔는데 대체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번 주엔 여기 연습실 빌렸어. 새로 생겨서 할인 하더라고."

"괜찮아 보인다. 다른 애들은 시간이 된대?"

"당연하지, 알바하는 너 말곤 다들 아주 널찍하다 못해 한가하니까 걱정 말고."

연습도 하는구나. 옆자리에서 아닌 척 이야기를 듣거나 친구들 옆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바라보는 건 일상의 한 조각이었다. 

"밴드 하는 거야? 연주?"

 어느 날은 문뜩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물어보니 당황한 기색이 서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표정이었다. 금방 침착해져서 응, 하고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금방 진정한다고 생각했다.

"인디밴드 그런 거야?"

"아니, 락."

"락?"

우와…. 진짜 이미지랑 안 어울린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황익선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음? 하고 웃는 애를 뒤로 하고 다시 한도윤을 바라봤다. 그리고 또 물었다. 락밴드─?

"그 진한 화장 막 하고 비명 지르는 락?"

"다들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닌데, 어… 맞아."

김주용도, 유태희도 같은 멤버인 거겠지? 그래서 머리 기르는 걸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삼키다가 가까이에서 보는 한도윤의 귀에 시선이 멈췄다. 긴 머리카락 사이에 숨겨진 귀를 뚫은 구멍과 굴곡진 형태. 투명한… 헙. 귀도 뚫었구나. 오…….

"멋지다…."

"어?"

"간지 작살난다…."

네 비밀은 지켜줄게, 라는 나를 향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한도윤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왠지 다른 애들은 모르는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조용하고 얌전하기만 할 것 같은 애의 취미가 락이라니, 우연히 티비를 틀다 나온 음악방송에 긴 머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남성을 보며 한도윤도 저러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나한텐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보였는데, 한번 궁금해서 무대 풀 영상을 보니 높은 음을 지르는 걸 보고 락은 어렵구나 생각을 했다. 

내겐 한도윤은 나쁘지 않은 애에서 '좋은 애, 그리고 조금 특이한 취미를 가진 애'가 되었다.

2학기가 되고 자리가 바뀌면서 좀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래도 이제 걔의 뒷모습이 많이 신경 쓰이진 않았다. 황익선 말고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애들이 생겨 그가 혼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연! 이게 바로 실연?"

"그런 거 아니래도!"

질리지도 않은지 꾸준한 놀림에 깩 지르는 건 늘 내 몫이었다. 딱 죽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수능을 끝내고, 눈을 감으며 클릭한 뒤 화면에 당당히 떠 있는 합격통지를 확인했을 땐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다. 서로 꽃다발을 들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내 시선에 유독 조용한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꽃다발도 없이 졸업장만 들고 다른 애들을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혼자인 모습이 눈에 밟혀서 나는 내 꽃다발을 들고 걔한테 다가갔다.

"한도윤."

"어?"

무작정 품에 내 꽃다발을 쥐여줬다. 

"난, 이거 아니어도 할아버지가 주신 꽃다발도 있고, 오빠가 준 것도 있어. 그러니까 이건 너 해."

"아니, 괜찮은데."

"졸업식이잖아. 축하해야 하는 날인데 그냥 받아."

거절하려는 한도윤에게서 한걸음 떨어졌다. 

"졸업 축하해. 나중에 너네 음악 꼭 들려줘."

내 말을 듣던 한도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려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본 미소였다. 

"고마워. 너도 졸업 축하해."

대꾸해야 할 말을 잊은 건 나였다. 그 낯선 미소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몸을 휙 돌린 나는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힐끔 본 한도윤은 이제 아까보다 덜 외로워 보여서 만족했다. 

"아빠가 준 꽃다발, 친구 줬어. 미안해."

"왜 미안해, 오히려 잘했어."

상황을 보고 있던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담아 주며 그렇게 칭찬해줬다. 

"그런데 설마 우리 딸, 쟤가 남친인 건……."

"아니라니까!"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다. 바쁜 대학 생활에 지치기도 하고, 낡아가면서도 가끔 포기 못하는 일이 있었다. SNS에서 우연히 접한 소식, 마스커레이드라는 이름을 달고 무대 위로 오르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러 가는 거였다. 

"우와 엄청 엉망이잖아."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땐 그런 감상이었다. 락을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프로'들의 노래만 듣다가 듣게 된 녀석들의 음악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음악을 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여서, 그게 좋아서 그들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소식을 들여다봤다.

"오늘 약속 있어? 없으면 같이 술 마시러 갈래?"

"냅둬, 쟤 둘째 주엔 늘 약속 있는 거 몰라?"

"엥? 무슨 약속?"

나는 씩 웃으며 SNS 계정을 보여줬다. 

"얘네 무대 보러 가!"

무대 아래는 어두웠다. 그 위의 조명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걸까, 늘 인파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군대 가 있는 동안의 공백기엔 다른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러 공연장에 갔다. 여전히 락은 잘 모르지만 어느새 빠져버린다는 것은 이런 것을 뜻하는 구나 싶었다. 2년이라는 시간 뒤, 다시 무대에 오른 머스커레이들을 보자마자 빵 터졌다.

"다 까까머리잖아!"

와하하 웃으면서도 그들의 음악을 즐겼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저 그 노래들이, 그 무대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여 보는 나 또한 즐거워졌다. 서울로 떠나는 그 걸음들이 참 아쉽게 느껴졌고, 어느새 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시간만 맞으면 공연을 보러 기꺼이 서울까지 올라갔다. 공연 뿐만이 아니라 투명한 피어싱이 시꺼멓고 뻘건 걸로 바뀌고, 짧은 머리카락이 다시 길어지고, 시뻘건 렌즈를 끼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 옆자리 친구를 보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렌즈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해!"

돌아가는 길엔 질린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날에는 공연 날짜만 띄엄띄엄 올라가던 공식 SNS에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다. 새로운 보컬이 생겼다는 좋은 소식이었다. 진짜 밴드 모습을 갖춰가네! 드디어! 즐거운 마음으로 개인 SNS 스토리에도 해당 소식을 재 업로드 했다. 

확실히, 보컬 영입 후 무대가 더 좋아졌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보컬이 아니라 자신의 것에 열중하는 연주는 안정적이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귀에 좀 더 편안하게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를 들으며 마이크를 쥔 남자를 바라봤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칼과 멀리서도 보이는 화려한 피어싱. 

'어쩐지 도윤이랑 자주 부딪힐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마스커레이드는 꾸준히 나아갔다. 무대가 잘 되고, 공식 계정 팔로워 수가 늘어가고 나름의 굿즈가 생기자 왠지 부끄러워서 발을 동동거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도 몇 년. 혼자만의 팬심이지만 이 밴드가 참 좋았다.

그래서 믿기질 않았다.

베스타 출연 소식에 걱정하는 사람 반, 응원하는 사람 반으로 팬덤은 술렁거렸다. 그래도 잘 될 거라고 불안을 덜어내며 매번 방영을 챙겨보고 짧은 분량에도 잘라서 재 업로드 하고 응원하던 찰나에 일어난 일.

"뭐…?"

시퍼렇게 질린 낯의 한도윤을 나는 가만히 바라봤다. 카메라가 곧이어 같은 밴드의 멤버들을 비춘다. 덤덤히 받아드리는 한편 카메라 앞임을 깜박하고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보컬. 

그렇게 마스커레이드는 파국으로 떨어진다. 

"… …그럴 애가 아닌데."

과열된 SNS는 한도윤을 향해 일방적으로 배신자라 손가락질 한다. 그 중심에는 보컬이 있었다. 그 외의 다른 멤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고립되어가면서도 한도윤은 꿋꿋하게 카메라 앞에 서고 무대에 오른다. 

눈에 띄게 짧아진 머리카락과 바뀐 스타일링. 가끔 도를 넘는 MC의 멘트에도 반응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한도윤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페이터 창을 열었다가 몇번이고 내린다. 밴드를 만들고, 다른 사람과 음악을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던 어린 날의 그를 떠올린다. 3년을 같은 반이었는데도 짝이 될 때까지 기억해주지 않아 서운했지만 그만큼 선이 높았던 그 다정한 아이를 기억한다. 

[ 도윤아, 괜찮을 거야. ]

보내지 못한 문자를 한참 바라본다. 의미 없지만 네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밴드를 사랑하는 너는 배신한 게 아니라고 나는 믿었다. 무너지는 무대 앞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휩쓸리면서도 나는 너를 걱정했다. 

세상이 유독 네게만 매섭구나.

나는 휴대폰 화면을 닫았다. 새벽 늦은 시간, 구조 소식을 들으며 겨우 숨을 내뱉었다. 이 이야기는 별거 없다. 그저, 너와 같은 반이었으며, 이제 배신자로 더 유명해진 너를 떠올리며 그렇지 않은 너를 회고하는 나의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한도윤, 내 기억 속의 한도윤. 그것을 그릴 뿐이었다. 추억에 되 잠겨 안타까워하던 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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