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미연시

내가 공식 미남들을 꼬셔야 한다고?! 무리무리무리! ~ 무리가 아니었다? ~

*미완, 천천히 정리

내가 공식 미남들을 꼬셔야 한다고?! 무리무리무리! ~ 무리가 아니었다? ~

같은 싸구려 미연시에 빙의한 상호와 희찬이로 희상 보고 싶다 플레이블 캐릭터인 상호와 흔히 나오는 친구 포지션_ 조력자인 희차이

처음 시작은 단순했음 정정. 어찌 보면 허접했음 부활동이 끝나고 돌아가는 희차이랑 쌍쌍바 하나씩 노나먹으면서 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글리치가 튀는거야 세상이 오류가 난 것처럼 바뀜 멀쩡하던 하늘이 빠르게 색을 바꾸고 구름에 긴 줄무늬가 생김 날아가던 새가 그대로 멈춰버리고바람이 거꾸로 불기도 함 분명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하늘이 점점 밝아지는 거임 웅장한 bgm까지 깔리며 여길 주목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걸 실제로 겪는 남학생 두 명은 ... 두려움에 떰 세상이 드디어 고장났나? 그때 보자고 했던 sf 영화가 탈이었나?

우리 이제 외계인에 잡혀가는 거 아인가 마! 재섭는 소리하지 마라! 오들오들 떠는 그들의 위로 떠오르는 타이틀 ...

내공미꼬 ~무리다~

이야 저대로 게임 내면 망하겠다 싶은 제목에 엉망으로 반짝이는 효과까지 더해져서 싸구려 티가 팍팍 남 타이틀은 올라온지 한 5초? 멍때리는 시간까지 더하면 대충 체감시간 10초? 정도 후에 휘릭 소리를 내며 사라짐 세상도 다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보임 노을 잘 지고 있고 새 잘 날아가고 있고 구름에 줄무늬 따윈 없고 체크 완료 이쯤 되면 무서운 것보다 황당한 게 더 커서 상호는 어이없어짐 신종 몰래카메라인가 싶기도 하고 남고생 둘한테 이럴 정도면 진짜 돈 낭비 시간 낭비 장난 아닌거잖아 이 어이없음을 공유하려고 옆을 돌아보는데 원래라면 같이 이야기해야 할 희찬이 표정이 굳어 있음

뭔데? 장난치지 마라! 라는 말에 돌아오는 ..

나... 시스템이라는 게 보인다

어느샌가 떨어트린 쌍쌍바가 바닥에서 녹아가고

그날부터 게임 시작

오프닝 날 밤부터 이벤트가 일어나는 미연시는 없기에 그날은 평화롭게 지나감 헤어지기 전까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조사한 결과 시스템이라고 해도 특별한게 보이는 건 아니었음 플레이어가 쓸법한 기능은 다 잠겨있고 조회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적음 거기서 알아낼 수 있는 거라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기상호라는 점과 공략 대상이 있다는 사실 뿐이었음 전부 물음표로 도배된 공략 대상 창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희찬은 어쩐지 그 쓸모를 알 것 같았음

이거 요새 유행하는 소설 아이가?! 뭐 주인공이 된 거 아니냐고 호들갑 떨던 상호와 헤어진 뒤 누워서 반투명한 창을 만지는 자신은 저 공략대상이 아니라고 오히려 저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친구 역할이라고

이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핸드폰을 만지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눈이 시려서

희찬은 시스템 창을 꺼버림 보기 싫다는 생각만으로 사라지는 게 정말 현실감이 없었음

짝사랑은 제정신이 아닌 일이고 아무리 영원히 밝히지 않기로 결심한 게 당장 엊그제라지만 그게 상대의 사랑에 꽃길을 깔아주겠다는 뜻은 아니었음 아니 기상호가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긴다면야 축하할 수도 있고 실컷 놀릴 수도 있고 울거나 부끄러워하는 애 달래주면서 여기 반 친구가 알려준 곳이라며 같이 가보려다가 머스마들끼리 가기 낯간지러워서 지운 장소들도 추천해줄 수 있긴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여까지 생각하는 내내 그래서 기상호는 울까 부끄러워할까 다른 모습을 보일까 생각하는 중증 짝사랑 중인 남고생한테 ‘공략 도움’을 시킨다? 너무 잔인하기 짝이 없음...

희찬은 그대로 밤새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듬

역으로 상호는 그날따라 흔한 설침 하나 없이 깊은 잠에 빠짐 자다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깊은 잠이었음 원래 다같이 쓰는 숙소라는 게 그렇잖아 아무리 푹 자도 누가 움직이는 소리에 짧게 깨거나 여러 생각 하다가 잠을 못 자거나 몰래 야식을 먹으려고 계획 하는 일도 비일비재한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아침이 왔다고 느낄 정도였음 아침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미라클 모닝이 될 수가?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와 학교에 가기 위해 알람을 맞춘 시간은 아직 몇십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니 억울하기 그지없음 상호는 열심히 자리에서 뒹굴고 그 결과 깨자마자 또랑또랑한 눈과 마주친 태성만 기겁함 야 이 씨?! 아침부터 튀어나오는 거한 욕설에 다른 애들도 뭔일이냐며 깨어나고 바라만 봤다는 상호의 항변은 피해자 공모씨의 증언에 그대로 묻힘 뭐라노 저 문디 자슥!

말도 안 하고 계속 보고만 있는 게 얼마나 공포인지 모르나!

슬프게도 상호의 편을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저 말에 동의하는 햄들만 한가득인데다가 감독님은 한술 더뜸 희찬이가 있으면 도와줬을텐데... 희차이... 보고 싶다 상호는 잉잉대며 아침을 먹음 태성햄이 해준 아침은 여전히 맛있고 평소라면 젓가락으로 전쟁을 벌여야 할 맛있는 반찬이 한 숟가락을 뜰 때마다 입 안으로 들어옴 잠깐 정신을 놓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계속 밥 위에 반찬이 생기는 거야 마치 누가 올려주는 것처럼

근데 그게 착각이 아니라 진짜 올려주는 거였다면?

공략 대상 중 한 명인데다가

유사 동거- 숙소도 동거다- 중인 주장이 올려주고 있었다면?

*주의 : 해당 썰은 상른 제조 시설+싸구려 미연시 썰로 최종은 희ㅅ6이 맞지만 다른 커플링 향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상대가 구애합니다. 캐붕 많습니다. 그게 미연시니까요.

상황을 이해한 상호는 ..

무서웠음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제일 먼저 느낌 아니 반찬을 올려주는 거야 좋지 받아먹는 것도 좋고 햄들한테 장난으로 먹여주면 안되냐 했다고 쳐먹여진 날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이유를 알 수 없음 어제 농구를 잘했나? 평범했음 평소보다 잘 친 감은 없잖아 있긴한데 엄밀히 따지면 일주일 전이 더 잘해서 절 3점 슛의 마스.터라 불러주십쇼... 이 난리 치다가 혼나기도 했단 말이지 그땐 아무 반응도 없던 준수햄이? 갑자기? 이런 일을? 더 두려운 건 이걸 보고 다른 햄들과 감독님이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는 거지 상식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 들지만 일단 밥에는 죄가 없어서 넙죽넙죽 그대로 잘 받아먹음 다른 사람들이 학교나 다른 이야기로 떠들 때 상호랑 준수만 말이 없음 다 먹어갈 때 쯤에서야 대화 비스무리한 걸 함

맛있냐?

햄이 줘서 그런가 입에서 살살 녹네여

웃긴 X끼

뭐가 웃긴지 픽하고 웃는 표정이 너무 잘생겨서

엄지를 치켜든 그대로 체하는 줄 알았는데 건강한 남고생의 위. 체하긴 무슨 끝내주는 소화를 마침 아주 깔끔함 만화나 드라마였으면 그대로 햄은 안 먹어요? 난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뭐.. 이딴.. 이런.. 대화를 이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드라마 주인공이 아니라 얌전히 식사를 마침 준수도

저 이후엔 재유랑 대화를 시작했고

와 아침부터 이런 일이 다 있나 놀라움

대충 가방을 싸고 나가는 중간에도 현실감이 없음 숙소부터 학교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준수와 같이 걸어 가는데 나가는 시간을 맞춘 것도 놀랍고 따라 나오려는 사람에게 눈짓으로 눈치를 준 것 같은 것도 놀라움

뒤는 착각이겠지 무시하고 걷는데 아니 고작 등교가 뭐라고 지금까지 걸어가던 익숙한 길을 발맞춰(세상에!) 걸어가는데 이상도 하지 일기예보에서 예고하던 비가 새벽에 왔나 오늘따라 주변 나무에 더 푸르러 보임 이슬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물이 햇빛을 영롱하게 반사하고 거기 비춰지는 준수의 모습이 누가 봐도 아, 이게 잘생겼다는 거구나 미남은 눈가를 찡그려도 잘생긴 거구나 느끼게 함 고작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멈춰서 손 차양을 만든 찰나엔 세상이 잠깐 멈춘 것 같기도 함 어디서 찰칵,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미남의 모습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억울함이지

이 햄은 세상 혼자 사나

그렇잖아 다른 사람이 눈가 찡그리면 화가 났는지 살펴보거나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볼텐데 모든 생각을 멈출 정도의 미모라니 너 표정이 왜 그러냐며 물어보는 목소리가 아주 기분 좋아 보이는 게 역시 세상 혼자 쓰는 중임

어차피 방과후에 만날텐데 어디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말고 오라 하는 것도 그렇고

햄 우리가 같은 농구부인거 까먹으신 건 아니죠?

겠냐? 오늘 감이 안 좋아. 끝나면 바로 돌아와. 체육관이든 숙소든 상관없으니까.

정 안되겠으면 본인 반으로 오라는 건 이 기상호를 너무 못 믿는 거 아인가

상호는 투덜거리며 반으로 가는 계단을 오름

아침부터 이어진 위화감이 가장 커진 건 학교였음

숙소와 등굣길이야 잠깐 준수햄의 기분이 미친 듯이 좋았구나 오늘 계를 탔구나 일단 내 덕은 아닐테니 어제의 농.신 오늘의 농.신 지상의 수호신인 재유햄에게 감사를 같은 농담을 하며 넘겨버리면 그만이잖아 충분히 그럴 자신도 있었고

그렇지만 평소와 달리 이목구비가 흐릿한 학생들은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배경에서 들리는 효과음처럼 웅성거림으로 끝나버리는

아무리 집중해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은?

이유는 단순함

이건 미연시고 게임 예산이 적어 중요한 엑스트라나 주조연이 아닌 이상 얼굴과 대사를 할애하지 않는 잔혹한 싸구려임

그치만 갑자기 세계가 똑 바뀐 상호가 뭘 알겠음 이제와 숙소로 돌아갈 용기, 즉 1교시를 쨀 용기도 없고 해결 방법도 모르겠다 어색하다고 피하지 말고 준수햄이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갈걸 그랬다 후회하며 반으로 감 너무 피곤해서 잠깐 귀가 안 들리는 걸 수도 있고 일단 교실 문을 닫으면 해결될 것 같다는 이유 없는 확신이 드는 거야

그 확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림

거진 뛰다시피 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상호를 반긴 건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될 희찬이임

기상호 인마 완전 겁 먹었네. 뭐가 그리 무섭드나?

가장 무서운 건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 이 아니라

희차이 너 오늘 길에 못 봤나?! 지금도 봐라!

다른 반 학생이 들어와 있는데 거들떠도 안 보고 이 대화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는 학생들임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서 나가 이야기하자고 희찬이 손을 끌고 나가려는 시도는 좋았지

운동부 남자애 치고 말라빠져 얇은 손목을 잡고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상호만 빠져나갈 수 있고 희찬이는 나올 수 없는 거야 힘으로 해결될 게 아니라는 듯 거짓말처럼 희찬이 팔은 그대로 있고 상호만 빠져나오는 게 세상의 물리엔진이 고장난 것 같았음

희찬이가 문 가까이에서 노크 하는 흉내를 내는데 분명 문이 열려 있음에도 똑똑, 하고 단단한 무언갈 두드리는 소리가 남 어디서 마임을 배워왔는지 재주도 좋다고 현실부정을 못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림 점점 질려가는 상호랑 다르게 희찬은 꽤 담담해보였음

적어도 상호 눈에 그렇게 보이면 성공이었겠지

기상부터 등교까지 필요하고 겪은 이벤트가 많고 앞으로도 많을 플레이블 캐릭터_ 상호랑 다르게 희찬은 조력자라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아주 잠깐 세상과 단절된 순간

기상호는 잠에서 깨어나고 정희찬은 학교로 옴

그건 이동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음 입은 기억도 없는 교복으로 갈아 입혀진 채 모르는 반에 덩그러니 떨어진 게 이동이 아니면 뭐겠어 심x의 강제이동도 이것보단 정상적이었을거임 거기다 학교 교실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교복을 입은 엑스트라들이 보여 여기까진 이해함 등교 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고 꼼짝 없이 그대로 있음 이건 이해할 수 없음

정희찬은 다행스럽게도 조연에 가까워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 멈춰있는 저들을 부러워 해야 할지 내보내 달라고 외쳐야 할지 감이 안 잡혔음 비명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머리 한 구석에 계속 이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임 누가 알려주지도 않은 상식이 머리에 박혀 들어오고 어쩌면 그게 조금은 무서웠을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지나 문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기상호를 보고 있자니 아무 상관도 없어지는 거야

상호 니 어제 문구 기억하제

그 이상한 거 말하는 기가

엉 그거.

이후엔 대략적으로 알아낸 걸 공유해줌 아무래도 우리가 ㅁi연시에 떨어진 것 같고 공략을

완료해야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 아침에 공략 대상이 한 명 공개됐는데 그게 준수햄이다.. 호감도도 보이는데 ..

같은 고등학교 특전인지 뭔지 꽤 차있는 하트를 보다가 아무것도 아이다며 말끝을 흐지부지 흐림

그래도 어떻게 준수햄을 공략하겠다고 덤벼들겠어

다른 사람은 없냐며 애타게 봄

그렇게 본다고 뭐가 나오나 싶었는데 어라?

진짜 뭔가 나오는 거야

흔히 만화 속 전구 하면 떠오르는 노란 전구가 허공에 띡, 생겨나더니 말린 종이가 아래 생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르르 풀리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렸음

겨우 다 펼쳐진 종이에 적혀 있던 건 ...

[ T i p ! 공략 대상을 만나기 위해선 이벤트를 활용하자 ]

그래서 이벤트가 뭔데? 어떻게 하는건데?

남고생 둘은 머리를 맞대고 겨우 생각함

일단 게임의 이벤트라 하면 장소를 넓히는 게 주일거다. 연습을 빼고 어디든 다녀오자.

우리가 봤던 그 ... 글씨도 글코 준수햄이 공략 대상인 것도 글코 알고 있는 햄들 보고 오면 될 거다.

희차이, 내 곧 준수햄한테 죽을 미래가 보이는데 착각이가?

걱정마라. 나도 함께 갈테니까.

한 명은 공략을 해야했고 한 명은 반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함

어디선가 지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함 어쩐지 딴데 새지 말고 바로 돌아오라는 준수햄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어쩌겠어 성준수를 끝까지 공략할게 아니라면 밖으로 가야 함

심장의 떨림이 공포를 사랑으로 착각하기 전에 새 사랑을, 미남이라는 단어에서 유추 가능하듯 새 남친을 찾아야만 했음

내 순정은 우예로 갔나

정희찬은 우는 기상호의 어깨를 두드려줌 친구는 닮는다더니 멀쩡한 사랑이니 순정이니 하는 달콤한 단어와는 연이 없나보다 할 수 없는 말은 삼키고 ‘친구’답게 조언을 해줌

역시 병찬햄일 확률이 높지 않겠냐고,

너도 좋아하는 상대이니 일석이조라고.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는 정희찬의 마음도 모른채 기상호는 그 말에 설득 당하고 있었음 친구의 조언은 늘 유용하고 쓸만했으니까 당연한 일임

제일 잘생긴 건 준수햄이지만 그 얼굴을 가까이서 오래 보는 건 심장에 여러 의미로 좋지 않아서 순순히 인천행을 택하고

정희찬은 신기하게도 기상호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선언하자마자 주머니에서 생겨난 기차표를 꺼내서 주인한테 쥐여줌 처음엔 마치 백지수표처럼 텅 비어 있었지만 감이 오잖아 어디로 가겠다고 결정하면 이 표에 목적지가 새겨질 거란 감이

그게 맞다는 것처럼 세상에 두 번째로 꺼내진 기차표는 인천행이었음 KTX216 2호차 6B

특이하게도 출발 시간만 적혀 있고 도착 시간은 적혀 있지 않았는데 시간은 ... 게임 안에서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것처럼 하교 시간 이후를 가리키고 있어서 둘은 황당한 눈빛을 교환함

그래도 어쩌겠어. 순순히 수업을 듣고 공부를 시작함. 조례 시간 때 다른 반 애인 희찬이가 같은 반에 있는 게 이상하지도 않은지 들어와 따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선생님. 1교시가 되자 자연스럽게 수업을 시작함. 희찬이 자리는… 창가 옆이었으면 좋겠다. 커튼이 바람에 크게 휘날리면 그 자리의 주인까지 가려지는 자리. 출석부 마지막 번호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어서 둘은 이해하길 포기함. 준비된 가방과 책상엔 책과 개인물품들도 있고 말이지. 수업 중 졸다가 어이 농구부! 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같이 반응해버렸을 땐 제법 웃음이 나오기도 했음.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반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긴 한데 괜히 시도하기보다 반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오는 게 좋다. 평소엔 엎드려 자는 게 대부분이면서 자기가 심심하거나 배고플까봐 쉬는 시간 10분 안에 매점을 다녀오는 마법을 보여주겠다고 뛰쳐나간 상호가 같은 학년 다은이랑 부딪히는 개그-우정-이벤트가 발동된 걸 반사적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희찬이도 좋고. 다른 미연시라면 함정 카드를 끼워넣어서 초록색 우정의 하트를 빨간색으로 변신시키겠지만 우리의 기상호. 매점 사냥을 위한 열정과 노력으로 훌륭한 매점 쇼-핑을 마치고 옴. 미연시 속 지상고에는 100% 매점이 있음.

너 아침도 아직이지? 이거 함 무바라. 새로 들어온 건데 맛있더라. 주절주절 늘어놓고 어떠냐고 기대하는 상호 앞에서

책상에 산을 쌓을 정도로 사오면 더 먹어치울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 없지 않고 해버리는 정희찬

니 내를 무슨 하마로 보나?

니가 무슨 하마가. 말라깽이지.

근데 뭔놈의 간식을 이레 많이 사왔노.

하나만 먹다 보면 질리지 않겠나. 한 입씩만 맛 봐라. 나머진 내가 먹게.

투닥투닥하면서 다음 쉬는 시간에는 간식을 까는 걸로 10분을 온전히 채움. 그렇게 1교시부터 하교 시간까지 있으면서 몇 개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1. 일부 시간을 제외하면 정희찬도 교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

2. 기상호가 움직일 때는 확률적으로 이벤트가 생긴다. 난이도는 천차만별이지만 함께 이벤트를 겪는 대상의 외모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으로 추정. -외모지상주의 게임이 분명하다. 외모에 밑줄 쫙, 별 다섯개.-

3. 가끔 기습 쪽지 시험을 친다고 한다. 잘보면 무슨 도움이 될까? 시험 보기 싫다

등 … 이 있었음

그리고 찾아온 대망의 하교 시간.

아이템의 사용은 간단했음. 실제 역까지 찾아가 앉을 필요 없이 출발 시각에 맞춰 표를 찢기만 하면 됨.

그렇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진 모름. 둘은 불안한 눈빛을 교환함. 한 명은 이 불안정한 세상이 맵 이동이라는 큰 리소스를 감당할 수 있을지. 상호가 무사히 도착할지가 걱정이었고, 한 명은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곁에 없을 희찬이가 걱정됨. 그나마 햄들은 멀쩡해 보이지만 나머지는 다 마네킹과 다름없는 세상 속에서 견뎌야 한다는 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해해줄 사람은 자신뿐인데 교실에서 나갈 수 없었던 때처럼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말할 수 없다는 게.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여기 남아있을 순 없었음.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라. 폰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으니까.

마. 곧 연습 시간인데 폰을 어떻게 보나. 내일 등교 시간 전까지 돌아올 니 걱정이나 해라.

표는… 편도인가? 슬쩍 내려다봐도 표는 변함이 없음. 그림 속 시계가 바뀐다거나 시간이 점멸한다거나 하면 다급함이라도 느낄 텐데 아이템은 어디까지나 선택자의 사용에 따른다는 듯 아무 변화도 없음. 아무 여지도 주지 않음. 즉 게임 클리어라는 명목 아래 표를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기상호 본인의 의지였고.

못 돌아오면 내는 진짜 죽겠지…?

합장하는 정희찬을 뒤로하며 창백하게 질린 손가락으로 절취선을 따라 표를 뜯어냄.

여기서 큰 오해가 있었는데.

기상호는 박병찬을 좋아함. 그 좋아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동경의 의미지, 사랑이 아님.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종종 상대의 행동을 오독하기 마련. 연습이 끝나고 수없이 쌓인 카톡에서 기상호의 당혹스러움을 읽어낸 희찬이가 오해를 풀기까지 몇 시간도 안 남음.

침대에서 입맞춤 하는 걸로 끝나는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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