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
연어
카일 플루토 코카트리스, 고통 속에 숨은 겁쟁이여 망각을 덮어 괴로움을 숨긴 얼빠진 머저리야 그토록 괴로워하기 싫어하면서 어찌하여 더욱 더 괴로운 길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느냐. 그 끝의 너에겐 어떠한 안식도 없는 것을, 잠깐의 달콤함에 안정을 느껴 제자리에 멈춰서려고 하는 무지렁이야, 세상에 헤엄치지 않고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더냐. 너의 순간순간이 정체되어 멈춰선다면 스스로 질식해 죽을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끝끝내 너에겐 기어코 선택지가 쥐어지는구나.
“오빠 오빠, 있지!”
그녀가 말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흔들며 바라보기 부담스러운 반짝거리는 눈으로 카일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엔 힘이 실리고 자존감이 넘쳐흘렀으며 히죽대는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던 자신의 오빠를 부르고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기도 하고 가사도 명확하지 않은 노래를 한소절씩 불렀다.
“…그래?”
그럼에도 카일의 눈은 여전히 가라 앉아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미소를 지으며 동생의 말에 맞장구만 쳐 주었을뿐. 자신의 가족, 그러니까 동생들에게 꿈이란 꿈으로 냅두어야 하는 허황된 이야기였으니까. 아무리 꿈을 가져봤자 결국엔 딜런의 도구로서 휘둘리기만 한다는걸 알고있던 카일은 굳이 그런 이야기까진 내뱉지 않았다.
“나 있지! 나 ―가 되고 싶어!”
내가 그 말에 어떤 반응을 했었지? 카일은 문득 저 멀리서 과거를 보고 있던 자신을 인지하고서 제 입가를 손으로 만졌다. 끊겼던 필름처럼 뚝뚝 끊어진 기억들, 자신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있는 카일은 이것또한 그 증상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꿈을 노래하던 동생에게 자신은 뭐라고 답을 해주었을까, 그러한 고민이 채이어지기도 전 다시한번 시야가 암전하며 카일이 바라보던 풍경이 흔들리며 바뀌었다.
“ 밀리는 청소부가 어때? 푸크크크..! 잘 할텐데!”
“언니는 촐싹거리니까 애완동물 산책 알바나 하는게 어때? 아 아직 알바생이 안왔구나 ”
뒤바뀐 풍경속 보이는 것은 자신의 동생들이 투닥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는 집안의 서재였다. 똑같이 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듯 서로가 서로에게 잘 어울릴법한 꿈들을 이야기하며 짓궃게 장난치던 시간. 다소 결벽증이 있는 밀리는 하얀 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한채로 정성스레 먼지를 털고 있었지만 벨리아는 마구잡이로 빗자루를 쓸며 밀리의 눈총을 받고있는게 전부였다.
“밀리는..바라는 꿈이 있어?”
과거의 카일이 물었다, 지금과는 다른 아니 어쩌면 똑같을지도 모르는 죽어버린 눈동자에 걱정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걱정을 눈치챘을까 밀리가 카일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피했다. 눈치가 좋았던 밀리는 진작부터 자신의 상태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밀리는 밝히고 싶었는지 조금씩 운을 떼며 카일에게 말했다.
“오빠..나는..”
그 말을 다 듣기도 전, 또 다시 시야가 암전하며 풍경이 뒤틀렸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허함속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오듯 한 가운데에 비추는 빛 아래엔 익숙한 느낌의 천체망원경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손끝이 저려오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깜빡거리는 눈동자가 말라 비틀어질것 같이 뜨겁고 입안에선 비릿한 피맛이 느껴진다. 그것에게서 멀어지려 뒷걸음을 칠 때 쯤, 한 발을 딛으려 할 때 첨벙거리는 옅은 물소리가 들려온다.
“…물?”
발목까지 차오른 물, 어두컴컴하고 습한 공기 무겁게 짓눌려오는 압박속에서 움직임을 허하지 않는 말도 안되는 공포감이 심장을 죄여온다. 아랫턱이 덜덜 떨리며 치아가 부딪치고 뒤에서 들려오는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점차 가까워오기 시작한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흡사 생선 비린내와 유사한 무언가가 짙은 냄새를 풍기며 걸어온다. 도망치기 위해 앞으로 뛰려는 순간 내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카일 플루토 코카트리스.”
“칼스”
거무죽죽한 피부에 손바닥에 투박하게 박힌 굳은 살, 손등부터 어깨까지 죽 찢어진 작살흉터와 붉은 기가 도는 백발과 자신과 같은 녹색눈동자. 카일을 죽이려 했던, 자신이 죽이지 못한 또 다른 형제. 멍하니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더욱 더 가까워진다. 애써 그의 팔을 뿌리치는 순간 천장에서 떨어진 돌덩이가 그를 짓뭉개며 칼스의 시체가 일그러져 녹색머리의 누군가가 되었다.
이건 누구지? 대체 뭐야?
그러한 말이 나오기도 전,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카일의 눈앞에 저 멀리 그림자에 삼켜진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단정한 자세, 한손엔 지팡이를 짚고 있는 그림자속에서도 형형한 녹색의 눈동자. 떨리는 눈빛으로 그 형상을 보고 있는 중에..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아냐!”
이불을 박차며 튕기듯 일어난 카일은 곧바로 자신의 배게 밑에서 손에 익은 자신의 리볼버를 꺼내 쥐었다. 리볼버의 실린더를 열어 젖히고 탄환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카일이 그제서야 숨을 크게 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에 흥건한 땀과 식은땀에 피부에 달라붙은 옷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어도 카일은 그저 아무것도 못한채 조용히 침대의 아래에 앉아 리볼버의 실린더를 천천히 돌렸다.
“…아니라고..난..당신이 아냐..”
힘겹게 들어올린 시야엔 그를 비웃듯 창밖의 그믐달이 비웃듯 입꼬리를 틀어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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