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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커미션 24. 어떤 후회

드림 - 샹크스+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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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니어야 했다.

너는 분명 무사히 탈출했을 것이다. 모두가 멍청하다 여길지 몰라도 나는 믿고 있었다. 너라면 능히 거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고. 내 자식은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재빠르다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름은 그저 너의 이름과 똑같은 다른 사람일 거라고. 당연하지 않으냐? 종족이 어떻든 너는 다른 이도 아닌 나, 사황 샹크스의 딸이다. 그러니 지금 처형장으로 향하는 건 그저 어리석은 아비가 완전히 마음을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무익한 발버둥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확인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믿으면서 왜 불안해하나? 나는 아직 한참 먼, 부족한 인간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다른 이도 아닌 자식의 일이다. 평정심을 유지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저 멀리 처형대가 보이고 온통 피칠갑을 한 인영을 본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마치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주 잠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면 멈췄던 심장이 추락해 바닥에 짓이겨진다. 가차 없이 쇠굽에 짓이겨지는 심장의 고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께를 쥐어뜯을 것처럼 잡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진짜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게 환각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능력자가 내게 싸움을 거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나, 날개가…….”

쇳소리를 내며 갉아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외면하고 싶어도 저기에 있는 건 나의 딸 루나였다. 그것도 두 날개가 잘린…….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니, 알고 있다. 정부군이 증원되었다는 이야기를 지옥 같은 섬에서 탈출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고 전속력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누가 동원된 거지? 소장급을 대체 얼마나 보낸 건가? 중장급 여럿을 내보내기라도 한 건가? 혹은……. 아니,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루나가 모두의 목숨을 짊어진 대가로 두 날개가 잘려 피투성이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째서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 걸까? 너는 이제 겨우 성인 딱지를 단 어린애인데. 충격이 지난 자리에 들이찬 것은 죄책감이었다. 나는 선장이고 모두를 지켜줄 의무가 있는 사람인데 어째서 그 때 네게 죄다 맡겨버린 것일까. 그 때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던가? 웃기는 이야기였다. 선장이 모두의 뒤에서 받쳐주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지독한 자기혐오와, 루나의 날개를 자른 놈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용암이 들끓는 것처럼 속이 부글거려 터질 것만 같았다. 처형장 뒤를 살핀다. 저기에 있을까? 어느 놈이냐. 어떤 개자식이 감히 이 샹크스의 딸을, 저렇게…….

가장 멀리, 가장 중앙에 있던 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목소리도 얼굴도 인식되지 않았지만 입모양만큼은 놀랄 만큼 선명하게 읽혔다. 그 자는 말했다.

네놈에게 죽은 새 한 마리를 선물해주마.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나가려는데 온몸이 붙들렸다. 작은 소리로 나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 우리 해적단인 건 알겠는데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 누구 목소리인지 가늠할 정신이 없어. 이거 놔. 지금 저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였는지 알고 이러는 건가?

그 순간 온갖 쓸모없는 말소리 중에서 선명한 말소리가 들렸다. 온 몸에 사람을 매달고서도 뛰쳐나가려 하는데, 그 말 하나가 귀에 박혀 머리까지 파고들었다.

루나가 지키려고 한 걸 저버리지 마!

루나가 지키려고 한 것? 내 딸이 지키려고 한 것? 그야 당연히, 우리 해적단……. 그제야 시야를 막던 안개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처형장 뒤에 있는 인물들은 단 하나 빠짐없이 유명한 얼굴이었다.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루나 하나를 죽이려고 삼대장이 모두 모였다고?

구역질나게도, 나는 지금 상황을 납득했다. 지금 저기서 루나를 빼오기 위해서 동료 몇이 희생되어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자신이 멀쩡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걸 생각하는 나 자신이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부모잖아?

그러나 나는 부모이자 동시에 선장이었다. 그 사실이 이렇게 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루나가 지키려고 한 것. 루나가 지키고 싶어 한 것. 그래, 나와 동료들. 하지만 그렇다면 너는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식이다. 너는 진심으로 내게 자식에게 지켜지는 부모라는 비참한 꼴을 당하게 만들 셈이냐?

나는 매달리듯이 루나를 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네게 인의를 말하지 말 것을. 이럴 줄 알았다면 동료보다 자신을 우선하라고 가르칠 것을. 아니, 지금이라도 좋았다. 네가 살고 싶어 한다면, 그렇기만 하다면 나는 얼마든지 여기서 달려 나갈 테니까.

말하렴, 내 딸아, 한 마디만 하렴. 소리 내지 않아도 좋아. 입모양만으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 말하렴. 살려달라고,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네 눈만 봐도 나는 알 수 있으니까. 마음속으로만 말해도 좋다. 살고 싶다고, 내게 그 한 마디만 해준다면 나는 모든 걸 걸고 움직일 수 있어.

그러나 너는, 웃었다.

너는 웃었다. 나와 동료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너는 그저 후련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네가 웃자마자, 거대한 칼날이, 네 목으로…….

눈앞이 깜깜했다. 또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너는 웃었고, 그리고,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누군가의 어깨에 얹혀 배로 돌아와 있었다. 아아, 너는 정말로. 너의 목숨보다 우리를 우선했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자마자 멈췄던 숨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지 않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너는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구나. 기어이, 내게 그걸 납득시켰구나. 평소와 똑같은 그 미소 하나로 나를 이겼구나. 그러나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웃는 얼굴이,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네 마지막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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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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