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2
: 내딛기 위한 발돋움(3)
“마법이라니까 생각났는데 아일린...씨? 아일린님...은 너처럼 오기 힘들겠지?”
지도를 보며 설명을 들으면서 거론되지 않았던 이그니의 가족이라는 신의 이름에 시타라가 존칭을 붙여서 말하려고 하자 이그니가 종이에 목탄으로 뭔갈 그려나가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쭉- 그어버려 실수하고, 너무 크게 웃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참아가며 다시 새 종이를 꺼내 그려나간다.
“크큽, 신이라고 꼭 존칭 안 붙여도 돼. 특히나 너는 신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 아일린이 자기를 그렇게 부른 거 알면 정말 정말 웃긴 표정이 될 거야. 물론 내 입장에선 존칭 붙이는데 더 재미있겠지만. 아일린은 아일린의 자리에서 하는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구.”
또다시, 나중에 설명해준다던, 길어질 게 분명한 설명이 필요한 말이 나오자 시타라가 물어봤다.
“아까 저녁때 말도 그렇고 정령이랑 신들이 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데?”
하지만 답해줄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듯이, 이그니의 대답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고, 시타라의 시선을 느낀 이그니는 말을 고르고 골랐는지 결국 입을 열었다.
“…네가 나중에 네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면 알게 될 거야. 자 우선은 이걸 뭉쳐서…손에 쥐고 작게 숨을 불어 넣어봐. 열이 올라올 건데 갑자기 느껴질 때 뜨겁다고 손을 바로 펴진 말고. 엄청 뜨겁지도 않을거라 목소리가 들리면 손을 펴면 돼.”
이그니가 무언가를 그린 종이를 구겨서 손에 쥔 시타라가 이그니가 시킨 대로 바람을 후 불자 작은 빛이 손가락 새로 깜빡이더니 이내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거…실내에서 해도 괜찮은 거야?”
이그니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열기도 그렇고, 누가 봐도 불에 타오르는 모양새가 보이자 실내의 환경을 걱정한 시타라가 불안한 기색을 띠었다.
“괜찮아 안전해~ 불을 다루는 내가 여기 있는데.”
“올바분들 한테 못 할 짓 하는 기분인데. 손을 그냥 펴버릴까….”
“나 아직도 그렇게 못 미더워?”
“아니 표정이 진짜 나빠 보여.”
둘의 대화 속에서 연기는 거침없이 피어올랐고, 이내 이그니가 말했던 순간이 다가왔다.
-“-요.”
“어?”
뚜렷한 발음 하나가 들리고 손가락 새로 주황빛이 깜빡이던 이전과 다르게 밝게 빛나며 새어 나오자 이그니가 천천히 시타라의 손가락을 하나둘 피게 했다. 손바닥에 쥐었던 종이가 타들어 가는 향과 빛무리와 함께 재가 흩날리듯 별처럼 떠오르고 시타라의 곁을 한번 돌더니 이내 종이가 손안에서 완전히 타오르며 불의 형태가 일렁거리며 손안에 자리 잡았다.
“괜찮은거야?”
처음 보는 광경에, 그리고 손에 불이 아예 자리 잡은 상황에 시타라가 당황하며 불안한 기색으로 이그니에게 연신 확인을 요청했다. 이그니 말대로 엄청 뜨겁진 않았지만 시타라의 입장에서는 직업도 직업이겠다, 초목이 가득한 지역에서 살다 왔으니 불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날 좀 믿어줘. 이프리트, 자신의 몸을 태워버린 자.”
이그니의 말에 시타라 손안의 불에서 작은 빛이 하나 새어 나오더니 아샤의 몸을 한 바퀴 돌고는 불 속으로 쏙 들어가자 불에서 뿔 두 개가 솟아오르곤 이그니를 통해 역정을 쏟아낸다.
-“누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가, ‘밤을 걷는 자들’의 색을 가진 이여!”
“미리 귀띔이라도 해 둘 걸 그랬나? 매번 이래야 하나.”
명백히 공격성을 띄며 이그니의 앞까지 쏟아지느라 치우친 불덩어리를 향해 왼손을 뻗은 아샤의 잿빛 머리 끝이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아샤의 왼쪽 눈이 주황빛으로 물들자 이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프리트, 불의 정령왕. 다시 한번, 재해가 아닌 온기를 전해야지?”
아샤의 육체 위에 덧씌워지듯 변화한 이그니의 모습에 시타라의 눈이 머무르고 불도 제 앞의 존재를 확인했는지 이내 작게 잦아들며 뿔이 달린, 귀엽다고 느낄만한 작고 작은 도마뱀으로 변화한다.
-“이그니님! 이그니님이셨군요! 저는 영락없이 밤을 걷는 자들인 줄 알고!”
“아…그자들의 후손이긴 할 거야. 그래서 파장이 맞은 거 같기도 하고? 하여튼 이쪽을 봐줘.”
뿔이 달린 작은 도마뱀이 이그니가 가리킨 방향으로 빙글- 몸을 돌려 자신이 발을 딛고 위에 있는 손의 주인쪽으로 시선을 향하고는 입을 떡하니 벌린다. 이후 이그니와 손 주인인 시타라를 몇 번을 번갈아 보며 돌아봤다.
-“…말씀하셨나요?”
주어가 없어 내용은 모르지만, 느낌상으로 이그니가 나중에 설명을 한다던 내용이 분명해 보여 시타라가 이어 나올 말들을 기다렸지만 이그니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말 안 했어, 천천히 할 거야. 강요는 하지 않고, 부담도 주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야지.”
-“그렇죠…지난번에도 자신의 선택이셨으니까요. 안녕하세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라고 합니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시드님.”
“시드?”
말을 기다렸지만 원했던 답은 들려오지 않고, 반짝여서인지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이그니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던 시타라가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호칭에 이프리트에게 고갤 숙여 물어보자 도마뱀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당신은 아주 크나큰 존재가 될 분이십니다. 큰 존재가 되시는 만큼 저를 통해 아낌없이 축복을 사용해주신다면 저에게도 큰 기쁨일 겁니다.”
번지르르하다고 느낄만한 아부성이 짙은 말에 이그니가 떨떠름하게 이프리트라 부른 도마뱀을 쳐다봤다.
“너…이번엔 고분고분하다?”
눈앞의 자신에겐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적대감을 내비쳐놓곤, 처음 보는 시타라를 ‘잘’ ‘모시듯’ 대하는 이프리트를 보며 이그니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갤 한번 까딱이자 손바닥 위를 빙글 돌고는 도마뱀 특유의 날카로운 눈을 데록 굴려 이그니에게 난색을 보였다.
-“그야 그때는 좀…안 좋은 걸 보기가 그랬으니까요. 제 입장도 생각 해주세요!”
“서로 나 모르는 영문모를 말들만 하고, 나 이거 계속해도 되는 거 맞아?”
자신을 위해 선택권을 주겠다고,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해놓고 영문모를 소리만 늘어놓는 두 존재(신과 정령)들이 맘에 안 들었는지 투덜거리자 이프리트가 또 다시 손바닥 위에서 빙글 돌고는 양 앞발까지 세워가며 도리질했다. 귀여운 행동에 시타라가 눈을 떼지 못하자 이그니가 한숨 내쉬고는 사과를 전했다.
“미안해, 시타라. 이프리트, 이번엔 최대한 조용히 기록되고 싶어서 축복을 사용하되 너의 힘으로 이름을 빌리고자 해. 할 수 있겠어?”
이그니의 불의 권능을 직접 축복 받은게 아닌, 정령술, 개인의 역량에서 발달한 힘으로 인식 받을 수 있게 하려던 준비였는지 이그니가 설명해오자 이프리트의 고개가 세차게 끄덕인다.
물론 조용히 기록되기엔 불의 정령‘왕’이다 보니…이 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전령새 정도로 부리던 수족의 신분을 본인 기준으로 생각한 이’와 ‘잘 모르니 일단 알려주는 사람 말대로 따른 이’는 깊게 생각을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럼요. 시드님의 손발이 될 수 있는 명예의 기회인걸요! 애초에 시드님의 정령 친화력은 어디에도 찾기 힘들 테니까 탈바꿈도 쉬울겁니다. 다만…저를 통하면 다른 정령들의 움직임도 시드님께 보여서 조금 피곤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 괜찮으신가요?”
자신보다 대단한 이들 사이에서 인간계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바보 도마뱀이 주인들처럼 생각하지않고 생각없이 주변에 휩쓸려 주의사항만 말하고 동의했다.
“그건 내가 애들 입 다물게 시킬게, 아일린한테도 말해두면 되고.”
-“아, 아일린님이 불타는 요람에 찾아오셔서는 추궁…하셨는데요, 이그니님 어디 계시냐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다던 아일린이 거론되자 시타라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반응했다.
“내가 일을 맡기고 와서 그래.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지금은 시타라에게 집중해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다는 내용이 이그니의 부탁이었는지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하며 생각하던 시타라에게 이어 들리게 된 말은 약간 무서웠다.
-“가급적, 빨리 부탁드립니다. 아일린님이 새 연구에 도마뱀이 필요할 거 같다고 그러셨어요.”
“걔 또 그러네, 함부로 그러겠어? 그냥 하는 소리지.”
손을 휘적이며 빨리 할 일이나 하라는 재촉하는 투에 이프리트가 조금 울며(눈물처럼 보이는 불똥이 똑똑 손바닥에 떨어지다가 사라졌으나 시타라 손에는 조금 따뜻하기만 하고 다치진 않았다) 자신의 몸에 붙은 비늘을 하나 떼어내고 불길로 일어난 바람에 실어 보내자 흩날리는 재처럼 바람에 날리던 비늘이 이프리트를 소환한 종이를 쥐었던 시타라의 손 쪽으로 다시 내려오고는 손안에 스며들어 갔다.
-“그러면…안정되시고 나서 다시 한번 저를 찾아주세요!”
한쪽 앞발을 들고 인사하듯 흔든 뒤 몸을 다시 한번 빙글 돌고는 그대로 작은 불빛과 함께 사라지자 시타라가 계속 피고 있던 손을 한번 쥐었다 폈다 하고는 이그니를 바라본다.
“제대로 말은 안 해주고…이제 된…거야?”
“응, 일단 당장 사용하긴 힘들 거고. 안정된 다음에 사용법도 알려줄게. 오늘은 알게 된 것도 많고, 피곤했을 테니깐 쉬어.”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와 탁자를 다시 원래 위치로 옮겨두고 짧게 인사한 이그니가 방 밖으로 나가자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시타라가 어느새 조용해진 자신의 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정리하고 잠이 들기를 청했다.
-
-“그런데 언제 말씀하시려고요?”
거울을 쳐다보며 아샤의 머리를 살펴보고 피부를 살펴보던 이그니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재차 자신이 사용한 아샤의 상태를 살피기 여지없자 아샤의 머리 끝에서 다시 불길이 피어오르고 이그니의 어깨위에 이프리트가 내려앉는다.
-“이그니님! 또 늦게 말했다가는 저번의 시드님처럼 스스로를 불태우실 수도 있어요.”
대답을 재촉하는 목소리, 이프리트가 도마뱀의 모습으로 이그니의 어깨 위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듯 양발을 흔들자 이그니가 뚝, 끊기듯 행동을 멈추고 거울을 통해 시선을 그대로 내려 어깨 위의 이프리트를 쳐다본다.
“알아, 그래서 하루에 시타라가 알 수 있을 만큼만 이야기 해주고 있어. 적당히, 받아들일 정도만. 그렇지않으면 또 존재가 무너져서 슬퍼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빨리 전하긴 해야 될 거 같아요. 아까 시드님 앞이라 말씀 못 드린것도 있는데 아스트라(Astra)가 이그니님을 뵙기를 청했었습니다.”
“아스트라가?”
천계를 다스리는 천인들의 왕, 이그니가 직접 움직여 인정한 수족과 다름없는 자의 명칭이 거론되자 거울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고개를 돌려 이프리트를 쳐다봤다.
-“부재중이시라 전하니깐 조금 곤란해하면서 편지를 하나 전했어요. 보시겠어요?”
“줘봐. 그 알아서 할 일 하고 얌전한 애가 직접 찾아올 정도면 진짜로 고민 끝에 온 거일 텐데. 혹시 주변에 다른 이들도 대동하고 왔어?”
오래전 있었던 [별을 가린 전쟁]때의 일 때문인지, 천왕의 행동 거취에 대해서 민감해진 이그니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이프리트에게 물었지만 이프리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정말로 정말로 혼자 왔었어요. 상황이 급변하게 되면 하시고 싶은 말을 다 못 전할 수도 있으니까 가급적 이그니님과 시드님 두 분이 대화가 잘 되셨으면 해요.”
말을 마친 이프리트의 꼬리가 불로 타오르더니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리곤 그대로 불타오르듯 사라지자 그 자리에 노란빛을 내며 종이 하나가 툭- 이그니의 손에 떨어졌다.
다른 손으로 편지를 봉했던 인장을 작게 피어오른 불로 녹여내고 종이에서 떼어내더니 녹여진 인장을 집어삼키자 접혀있던 종이가 펼쳐져 내용을 확인한 이그니의 표정이 작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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