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1

: 내딛기 위한 발돋움(2)

“본에서도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두 신을 모신다고 하셨는데 제국과는 좀…아니 많이, 인상이 다른 것 같네요. 제국은 신을 둘이나 모시는 나라임에도 한쪽만 세력이 큰 건가요?”

“제국은 루에이리도 모시긴 한다지만 게브하르트는 본처럼 환경에 따라 신을 모시는 게 아닌 국력을 위해 권능이 강한 신들을 모시기로 했던 거 같아. 그중에 주신과 죽음. 얼마나 강력해 보이는가? 그리고 루에이리는 자신의 전달자인 신관을 통해 말을 한 적이 있는데…내용이….”

“내용이?”

‘잊어버린 자들이 보내는 기도는 필요가 없다.’ 였다고 하지. 무슨 뜻인지는 오직 루에이리를 모시는 자들만 안다고 하고.”

“한 나라 안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종교 간 파벌 싸움 같은 건 없다고 들리네요? 맞나요?”

 

시타라의 물음에 가게 주인이 말했다.

 

“루에이리가 죽음과 문화의 신이라 그런지 내세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은 제국에서 루에이리의 종교를 함부로 하진 않네. 실제로 장례문화를 주로 행하고 받은 축복도 잠과 같은 편안한 죽음이라 너나 할 것 없이 바라고 있기도 하고 말야.”

 

결국에는 강한 신을 뒷배 삼아 함부로 힘을 휘두르다가도 권능이 주는 느낌이 강한 ‘죽음’ 앞에서 사린다는 소리였다.

 

“정말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그런 사람들이네요.”

“하하….”

 

시타라가 말하는 제국의 평가에 이그니의 영혼 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을 굳이 확인하지 않은 시타라가 이그니에게 이따가 위로의 말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도 마셨으니 이만 가봐야겠어요. 돌아가서 할 일도 있거든요.”

“도움이라니, 낮의 일도 있고 나야 이야기할 상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네. 아, 인연도 인연인데 잠시만 기다려보게나.”

 

식은 찻잔의 차를 마저 털은 이그니를 보며 샀던 지도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타라에게 사장은 지도가 나열된 책장의 서랍에서 돌돌 감긴 작은 종이를 두 개 정도 꺼내 건넸다.

 

“이건 뭔가요?”

 

건네주는 작은 종이 스크롤을 받아든 시타라가 양손안에 들어오는 두 스크롤의 정체를 물었다.

 

“나도 모른다네, 친구가 어디서 모르는 지도 같은 걸 구했다며 나한테 가져왔는데 지도가 아닌거 같아. 그래서 이걸 어쩌나 싶긴 했는데 말도 잘 통한 모험가라면 나중에 정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의문형이지만 선물 아닌 선물을 건네받고 시타라는 종이를 고정한 매듭을 풀어 종이를 먼저 살펴봤다. 탁자에 펼쳤던 시타라가 정리하던 지도를 마저 정리해 챙겨 넣은 이그니가 시타라 곁에 와서 종이 스크롤의 정체를 확인하고 짧게 감탄했다.

 

“오, 이게 남아있네.”

 

지도를 최대한 축소 시키고, 그런 지도를 조각내서 만든 것 같은, 아까 봤던 세계 지도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는 스크롤을 보자마자 아는 물건인지 바로 감탄을 내뱉는 이그니의 말에, 시타라가 물어봤다.

 

“아는 물건이야?”

 

자신들의 뒤로 찻잔을 정리하고 작은 공간으로 사라진 사장을 확인한 이그니가 자신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대 대며 조용히 쉿- 하고 말했다.

 

“나중에 쓰게 될 일이 있을 거야, 잘 챙겨둬. 꼭, 아까 풀었던 매듭으로 다시 말아서 고정하고.”

 

이그니는 좋은 걸 발견했다는 듯 스크롤을 확인하고 정리하려는 시타라에게 당부하며, 사람 좋게 돌아서며 선물해준 주인장이 아예 잊을 수 있도록(?) 몸으로 시야를 가리며 찻잔을 정리하고 손의 물기를 닦으면서 나오는 주인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거일수록 원래 주인한테 더 말해줘야 됐던 거 아닌가…?’

 

인사를 전하는 이그니 뒤로, 시타라는 생각했지만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이그니가 말한 대로 처음과 같이 다시 스크롤을 정리하고, 자신의 겉옷 안쪽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다시 에드윈 이렌에 들릴 때 다시 인사하러 올게요.”

“보통은 축제 끝나고 가려는 사람들이 많던데 자네들은 금방 떠날 것처럼 말하는구먼?”

“저희가 이렌 안에서 할 일이 좀 많아서요. 아마 못 들릴 거 같아서 그렇죠~”

“그건 그렇지, 이것저것 물어본 걸 보니 일이 급해 보여. 테르사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네.”

 

아샤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트고 인사하는 이그니를 보며 기다리다가, 주인장의 인사에 같이 화답했다.

 

“테르사의 축복이 있기를.”

 

지도 가게에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 한번 묵례를 하고 가게를 나온 두 사람은 가게가 자리 잡고 있는 거리의 길을 꺾어가며 멀어질 정도로 이동하다가 이쯤 되었다 싶었는지 골목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나라 간의 정세를 파악하고자 찾아간 거였는데 괜찮겠어? 큰일 아니야? 이그니를 데리고 이그니를 뒷배로 생각하는 제국민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여행이라니.”

 

둘만 있게 되면 위로부터 해야겠다는 아까 가게 안에서 들었던 생각도 잠시, 시타라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을 머릿속으로 이동하는 내내 정리했는지 굉장히 직설적으로 들었던 문제점들을 상기시키는 발언을 했다.

 

그런 시타라의 말을 듣고 직격타를 맞았는지 이그니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잠시, 이그니가 입을 열었다.

 

“나도…루에이리 처럼이라도 행동할 걸 그랬나 봐. 아니…애초에 내가 땅을 준 것도 아닌데.”

“응?”

“신에게 현재의 땅을 받은 게브하르트의 건국 시초였던 탐험가가 속한 집단의 출발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남쪽으로 탐험하고 돌아왔다고 해. 그렇지만 건국 시초인 탐험가에게 땅을 준 건 내가 아니야. 루에이리가 바다의 신인 프리드에게 말해서 탐험가 자체의 일도 있겠다 북쪽으로의 접근을 떨어트려 놓을 수 있도록 일부러 남쪽의 땅을 하사 한 거지.”

 

현재의 본도 접근이 불가능한 북쪽에 명백히 숨겨진 무언가가 있으니 관심을 떨어트려 놓기 위해 자리를 잡도록 남쪽에 배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까 들은 말을 떠올린 시타라가 짧게 감탄을 내뱉고 말했다.

 

“그러면 잊어버린 자들이 보내는 기도가 필요 없다고 했던건…정말 말 그대로였겠구나.”

 

‘잊어버린 자들이 보내는 기도는 필요가 없다.’고 했다던 루에이리의 말. 말 그대로 땅을 줬던건 루에이리였지 이그니가 아니었다.

 

“아무렴, 루에이리는 조용하더라도 할 말은 하는 놈이라. 진실을 아는 자들은 본인의 사람일테니 본인은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소리지.”

“신경을 끈다니…그러고보니 북쪽이라고 하니깐 생각난 건데…북쪽은 왜 여태까지 미지의 영역이야?”

 

미지의 영역으로 알려진 북쪽, 그런 북쪽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신에게 땅을 하사받았다는 제국의 일도 있겠다 시타라의 호기심은 자연스러웠다.

 

“북쪽에는 마계가 있어. 마인이 있는 마계. 아주 오래전에 천계와 마계에 큰 전쟁이 있었기도 해서 마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인간들이 살고 있는 구역과는 아예 단절시켜놨어. 물론 소수민족들은 마계에 계속 오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접근이 어렵게 지금은 결계를 쳐놔서 땅이 끊어진 것처럼 인식되고, 마수를 배치해 둔거야.…하여튼 너무 강한 자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만들어둔 안전 막인 거지.”

“책으로만 전해지던 마인들은 어디 있는 건가 했는데, 인간들과 마계에 사는 서로를 위해서 아예 길을 막아둔 거구나….”

 

이그니도 인간의 정보를 통해서 나름 얻게 된 소식이 있었는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본이 나중에 북쪽을 개발을 위해 향한다고 하니까 조금 길을 내주고 차라리 돌아가게 해서 마계의 영역에는 발을 옮기기 힘들게 해야 되겠네. 마계 자체에서도 이전과 왕래하는 소수민족이 아닌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본 측은 달갑지 않을 테니 말야.”

 

정보를 토대로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린 이그니의 모습에 시타라가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알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너한테 물어보길 잘한 것 같아.”

“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을 새롭게 들을 수도 있고, 너는 얼굴 안 구겨져도 되니까? 아까 듣느라 많이 피곤해 보였어.”

“잊, 잊어…아니 잊진 말고…아니 나는 정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루에이리처럼 나서 볼 걸 그랬어.”

 

몇 번을 말했던 루에이리처럼. 그냥 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면서 생각한 시타라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했는지 이그니가 바로 말했다.

 

“그때 당시 내 상태랑 상황이 안 좋았거든. 그리고 신관이라는 직책이 신관이라도 신관 자체 역량이 안 좋으면 이게 전달이 안 돼. 일방적으로 해봤자 와전될 수도 있으니 말을 안 하는 게 좋지.”

 

서로가 서로의 말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없으면, 말을 아예 안 하는 게 좋다는 말에 시타라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게브하르트의 루에이리…신전이라고 해야 하나 교단이라 해야 하나? 거기에 가게 되면 대신 루에이리한테 라도 부탁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야겠다…루에이리의 말을 저 정도로 잘 전하다니 루에이리가 고생한 보람이 정말 있네.”

 

고생? 이라는 말에 시타라에게 오늘은 너무 많은 걸 들었을 거라고 시타라에게 내일 다시 말해준다며, 이그니가 대화의 주제를 시장으로 돌렸다. 다시 숙소로 향하기 위해 먼저 골목을 빠져나오고 시타라가 어느새 밤이 되어 반짝이는 불빛들만 보이는 조용해진 거리를 보고 게브하르트의 외교건물이 있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긴 첨탑이 자리 잡은 끝에 건물의 소속을 알리는 게브하르트의 작은 깃발이 나부꼈다.

 

-

 

 

“이야기 듣느라 피곤했지? 나도 나라 간의 상황은 모르고 신들과 관계만 알고 있다 보니 내가 모르던 부분까지 듣느라고 적당히 끊질 못했네.”

 

외투를 정리하고 시타라가 머무는 큰방에 찾아온 이그니가 작은 탁자와 의자를 끌고 침대 근처로 옮기자 시타라가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아까 자매 신이라던 아스트리트와 디디에르 관계는 알고 조금 놀랐어. 신들끼리도 가족이 있구나?”

“처음에 신이 태어날 때 여러 샘 속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같은 샘에서 태어난 이들끼리 가족을 맺기로 했지. 샘도 다양하고 가진 권능도 다양해서 신들이라고 모두가 가족이 있진 않아. 10명의 신들 중 가족관계가 셋 정도니까. 아까 말한 아스트리트와 디디에르, 나와 아일린, 그리고…-…잠들어있는 신과 루에이리 이렇게.”

 

잠깐의 공백을 거론하고, 허공으로 흩어진 단어 끝, 시타라의 반응을 살핀 이그니가 말을 정정하며 루에이리를 덧붙였다. 시타라는 분명히 말했지만 들리지 않는 단어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까 무슨 말을 하지 않았어?”

“여기 올 때처럼 말을 해도 잘 안 들릴 거야. 잊혀진 신의 존재가 공석이다 보니 이름을 말하는 말 자체가 없는 소리가 되었거든. ‘이름’ 이란 게 정말 중요해서 말이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타라를 향해 살풋- 웃은 이그니가 빈 종이를 꺼내 들고 시타라에게 부탁해 꺼내둔 목탄을 들어 무언가를 그려나갔다.

 

“일단 네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원소계열 중에 불로, 불은 펜보다는 목탄이 접근성이 좋을 거야. 섬세함은 떨어지지만, 이놈들은 불의 냄새를 좋아하거든.”

“원래는 엄청 뭐가 세밀해야 하는 거야? 저번에 바닥에 낙서할 때도 그렇고…미안한 말이지만 네 솜씨가 섬세하진 않았던 거 같아서.”

 

아샤의 진실을 알려줄 당시, 확인할 수 있었던 이그니의 그림 솜씨를 떠올린 시타라가 질문했다.

 

“권능이 권능이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할 수 있으니 그런 쪽으로 실력을 키울 필요도, 감각도 없었거든. 더군다나 내 힘은 쓸어버리는 쪽에 가까워 성질이 안 맞다 보니 무언가를 성립하는 쪽은 아일린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 아일린은 달과 마법의 신이니까.”

 

약간 손쉽게 할 수 있는데 굳이? 라는 뜻을 가진 말을 듣자 조금 재수 없어 하려던 시타라가 성질이 안 맞았다는 말에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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