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0

: 내딛기 위한 발돋움(1)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를 두 사람 앞에 놓자 시타라가 감사하다고 가볍게 묵례하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온기를 느끼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모험하려면 나라끼리의 관계나 정세를 생각해야 될 것 같아서요. 저희가 마을 밖은 처음이라 아는데 없네요.”

 

“아까 낮에? 아 외교기관 건물 앞에 있던 일이 구만. 쯔쯔, 축제인데 소란이나 일으키고 말이야. 하여튼 안투르가도 큰일이지.”

 

안투르가가 언급되자 시타라와 이그니는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여 탁자의 빈 곳에 펼쳐진 대륙 지도를 손으로 짚으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안투르가가 큰일이라는 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안투르가는 원래 개국 공신으로 후작가였다네, 그리고 바이트 방향이 아닌 이렌의 반대편 방향의 영지도 안투르가의 영지였지. 하지만 예전에 에드윈의 공작가와 영지를 걸고 영지전을 한 다음에 영지를 빼앗기고 후작이지만 백작의 영향력밖에 행하지 못하게 되었어.”

“공작가와 전투를요?”

“어쩌다가….”

 

낮의 일의 상세한 이야기를 알기위해 꺼낸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안투르가에 대한 배경을 잘 알고있는지, 주인장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왜였는지는 모르네. 소문에 의했을때는 각 가문간의 친목과 훈련을 위한 모의 전투라고 소식을 듣긴 했다만 어느 순간 영지를 건 전투가 되어있더군. 어느 쪽이 진실인진 내 주변 사람들도 몰라. 훈련이 목적이었다면 다른 공작가와 훈련을 했을 테지만 공작가인 레시아크가가 먼저 안투르가에 말을 꺼냈다는 것만 확실하지.”

 

안투르가에 이어 모르는 귀족가의 이름이 나오자 시타라는 외우기 위함인지 천천히 입안에서 발음을 굴려보고, 이그니는 귀족이 뭐든 무관심하게 생각하며 다음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레시아크가에서는 그당시에 게브하르트 황실의 친인척이 시집을 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는데…하여튼 그 후에 안투르가의 주인도 타계하고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은 후계가 후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지.”

 

게브하르트와 울리세의 전쟁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있고, 안투르가의 쇠퇴는 예정된 일이라는 것처럼 영향력이 약해진 배경을 늘어놓았다.

 

“현 후작이 건강이 좋지 않다고요?”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았다고는 하는데 차도를 보인다고 했거든. 성격도 온화하시고. 그런데 전 후작님이 타계하며 일하던 집을 나오게 된 내 친구말로는 방계의 간섭이 시작되었다고 하더군.”

“아까 들린 말로는 외교기관이 안투르가의 방계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그놈은 트릭손 안투르라고 중간성도 받지 못한, 나라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 방계 중의 방계지. 안투르가는 개국 공신이라 중간성을 에드윈에서 하사받고 가신들에게도 중간성을 허락하고 그랬었다고 하더군. 내 그 세모난 수염을 언젠가 네모나게 쥐어 뜯고 싶….”

 

말을 하고는 주변을 둘러보고 상점 밖의 거리를 창으로 쳐다본 주인이 다시 작게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컸는데 바이트의 주민이라 하니 내 한 말은 지켜주쇼.”

“그럼요. 저희는 방금 말은 못 들었는걸요. 사장님이 믿을만한 분이시니 앞으로 들을 설명이 더 귀에 잘 들어올 거 같아요.”

 

제국이 넓은 만큼, 제국민이 어디에나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묻어나오는 말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의 성격은 어디 안 가는지 약간의 장난스러운 톤의 목소리가 상황 환기를 유도하자 아샤가 받아주며 넉살스럽게 굴었다.

 

“아이구, 이야기가 길었구먼, 자자 대륙 아실링의 지도를 보면-”

 

지도 가게 사장의 손가락이 지도를 짚으며 동쪽부터 가리키기 시작했다.

 

“여기가 우리 에드윈(Edwyn)이 자리잡은 동쪽으로 예언과 균형의 신인 테르사(Thersa)를 모시고 있지. 모시는 신의 성격인지 아니면 나라의 성격인지 이렌에 왕궁이 위치해 있지 않고 조금 위쪽에 있다네. 본 교단 또한 이렌에는 분교만 있어. 남쪽에 걸친 쪽은 게브하르트와 같이 쓰는 항구가 위치해있어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 더더욱 말을 조심해야 된다 하더군.”

 

그 후에 동쪽 아래에 게브하르트와 같이 쓴다는 항구를 지나 바다쪽과 북쪽의 다른 길로 이어지는 내륙 근처에 섬처럼 동떨어진 나라를 짚으며 말했다.

 

“이쪽은 본(Vaughn)일세. 불과 태양, 주신 이그니(Ignis)바다와 평화의 신 프리드(Fried)를 모시는 나라야. 다른 나라에 비해 바다가 이루는 곳이 많아 쓸 수 있는 땅 자체의 크기는 작지만 국민과 귀족들 간의 결합도 상당해 국력이 상당하다더군. 본의 왕 군터(Gunter)는 민간인 등용 정책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지. 땅덩어리만 좁지 북쪽에서 내륙으로 이어진 미개발 구역도 곧 개발할 거라고 하고.”

 

본의 미개발 구역이라는 북쪽 방향으로 그려진 산과 강의 길을 따라 다시 에드윈쪽의 내륙으로 시선을 이동하던 시타라가 지도상으로 끊어져 보이는 곳을 확인하고 물어봤다.

 

“확실히 에드윈 위쪽으로 본의 강이랑 산맥이 이어진 것 같은데 끊어져 있네요. 본에서 미개발 구역에는 뭐가 있다고 하나요?”

“손님이 눈치가 빠르구만, 일단 이전부터 남아있던 기록에 의하면 내륙 쪽으로 길이 이어진 게 분명하다고는 하는데…오간 사람들에 의하면 길이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마수가 들끓어서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본에서도 타국과 왕래를 땅이 아니라 배로 오가는 상황이지.”

 

섬이나 다름없는 영토가 작은 나라. 하지만 본의 설명을 들었을 때 결코 약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수밖에없었다.

 

“에드윈의 위엔 나라가 아예 없네요?”

 

가만히 있다가 던지듯이 말한 이그니의 말에 본에서 머물러있던 손을 이어 에드윈의 살짝 위쪽으로 옮기고는 말을 꺼냈다.


“이쪽은 옛날에 뭐 다른 나라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정보가 없다네. 왜인지 모르게 다른 나라에서도 차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그리고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는게 북쪽에 제일 가까운 발부르가(Walburga)지.”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서 정보가 없다는, 오래도록 주인 없는 널따란 땅에 눈을 머물던 시타라가 사장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옆에서 시타라를 쳐다보던 이그니가 시선을 돌리고 지도를 향해 쳐다봤다.

 

발부르가는 리카르다(Ricarda)라는 왕을 따르는 나라라고 하더군. 그리고 다른 나라와 다르게 왕족의 주요 구성원이 전원 여성이라고 하네. 모시는 신도 전쟁과 승리의 신인 힐다(Hilda)라고 하고. 아마 힐다가 처음에 축복을 내렸던 게 가장 앞에서 용맹하게 싸운 자에게 자신의 축복을 내렸다고 해서 이어진 것 같아. 그래서 전쟁이 나면 왕의 자식들이 가장 용맹하게 싸운다고 하는 나라지.”

 

전쟁이라는 단어에 최근까지 화자 될만한 사건이었던 게브하르트와 울리세의 전쟁에 대해 물었다.

 

“전쟁이라고…하니깐 떠오른건데, 울리세는 지원군이 없었나요?”

 

게브하르트와 에드윈이 우호국인만큼, 울리세도 우호국이 있을 게 분명하였으나 전쟁에 참전한 국가에 대해서는 세 나라밖에 거론되지 않았었다.

 

“다들 알게 모르게 게브하르트의 압박이 있었던 모양이야. 울리세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발부르가는 글쎄…내가 아는건 없군. 여기가 울리세(Ulisse). 모시는 신은 사랑과 질투의 신 아스트리트(Astrid). 발부르가와 조금 거리 있는 위치였지만 서로 지도자의 자식들을 배움을 위해 유학 보낼 만큼 교류가 왕성했다고 하네.”

 

게브하르트와 울리세의 전쟁에서 돌았던 소문 중에는 ‘울리세가 왜 제국을 적대했는가?’ 하는 의문이 많았지만, 사람들이 쉽게 말을 꺼내지 않던 일을 떠올리곤 조금 쓰게 입을 다물었다.

 

“여긴 뭐죠? 발부르가와 울리세 사이에 조금 국경선이 흐릿하게 표시되어있는 거 같은데 일부로 인가요?”

“아 거기는 나라지만 나라가 아닌 땅이라네.”

 

시타라의 생각을 아는지, 별로 좋지 않은 화제를 넘어가고자 울리세와 발부르가 사이를 가르는 부분을 이그니가 물었다.

 

“…나라지만 나라가 아닌가요? 하지만, 여기 지도의 비어있는 북쪽 가까이의 땅과는 또 표시가 다른데….”

 

두 나라의 영토 사이를 길게 가르며 구불하게 이어진 산과 산, 그리고 평야로만 표시된 곳을 가리키자 사장이 시타라의 말에 끄덕여왔다.

 

“거긴 이티엘(Ithiel)이라네. 바람과 지혜의 신 크피르(Kfir)를 따라 험난한 북쪽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 곳이지. 한곳에 정착하진 않고 카르탈(Kartal)이라고 하는 지도자를 따라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다니는 유목민이라고 하네. 계절에 따라 보이는 위치도 다르다고 하고 영토는 확실한데 자유로운 족속에 땅도 산이 대부분이라 제국과 맞닿아있어도 딱히 영향력을 강제로 펼치진 않고 있다고 하네.”

“나라의 형태가 다양하네요. 그러면 여기는요?”

 

울리세 아래쪽, 서쪽에 붙은 곳을 시타라가 가리키자 사장이 설명할 나라의 특징을 떠올렸는지 밝게 웃는다.

 

“여긴 티파니(Tiphanie)라네, 열망과 축복의 신 디디에르(Didier)를 모시는 각 나라를 유랑하며 여는 축제가 유명한 국가로 지도자도 티파니라고 부른다고 하지. 마법사…에서 지도자가 이어졌다고 하는데 타국과 다르게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여성들만 있다고 하고, 여긴 티파니가 지도자이자 교주라고 하며 국가 원수로 자리 잡은 종교도시 국가라고 하네. 여성이 지도자라는 점에서 왕정체제가 있는 발부르가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쪽이지.”

“울리세의 신인 아스트리트와 티파니의 디디에르는 자매신이라고 들었는데 나라 간의 접점 같은 건 없었나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그니는 알법한 사실을 질문삼아 이그니가 자신의 입으로 거론하자 시타라가 첨 듣는 사실이라는 듯 이그니를 바라본다.

 

“오, 손님은 신학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은가 보군. 그걸 아는 이는 별로 없던데 말야. 과거에는 울리세와 티파니도 교류가 많았다고는 하는데, 울리세는 다른 나라들처럼 종교가 있는 왕정체제고 티파니는 종교가 나라를 좌우하는 종교 국가다 보니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다른 나라들 정도로만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제국과 울리세의 전쟁 당시 둘 사이에 위치한 티파니는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타국과의 교류를 멀리하고 나라 자체를 닫았다고 하고….”

“신들도 가족이라고 다 챙기는 건 아닌가 보네요….”

 

가족이라는 부분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의 설명에 시타라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오래 산 신들을 한낱 인간이 어찌 알겠나, 패전국인 울리세의 처우는 어떻게 될지도 아직 정해진 것도 아닌 마당에 종교 또한 문제겠지.”

 

“그러고 보니 저렇게 제국과 맞닿아있는데 울리세의 국토는 어찌 되기로 한 건가요?”

“이상하게 울리세의 땅도…전쟁에 승리한 제국이 차지하겠다고 의견을 내비치진 않고 있네. 그리고 이건 정말 소문인데, 이티엘과 티파니에게 알아서 하라고 한듯하네…전쟁도 그렇고 제국은 영 속을 모르겠어.”

 

살짝 끝말을 작은 목소리로 말해 말을 마친 사장의 손이 한숨과 함께 대륙 아실링의 가장 아래쪽, 남쪽에 크게 자리 잡은 게브하르트를 가리켰다. 설명하는 동안 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야기의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가게의 주인은 두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정보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국’ 게브하르트(Gebhard)라네. 불과 태양, 주신 이그니 문화와 죽음의 신 루에이리(Ruairi)를 모시는 나라지. 개국 당시 지도자가 유일하게, 혼자서, 미지의 영역으로 인식되고있는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었다는 탐험가의 후손인데 용기를 높이 사 신들에게 선물로 가장 넓은 땅을 선물 받았다고 하는 게 건국신화에 있다는데…그래서인진 몰라도 자신들은 신에게 인정받은 후손이고, 그런 신의 교리라면서 자신의 신을 믿으라고 아주 판을 쳐.”

 

지도를 파는 상점의 주인인 사장은 다시 한번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제국의 정교 믿음(?)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며 주신 이그니가 자신들의 뒷배라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을 덧붙였다.

 

낮의 일도 우호국이고 친구의 나라인 에드윈의 내부라 그나마 행동이 덜 했던 거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다른 종교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폭력까지 휘두르는 일이 벌어졌다며 자신의 단골손님도 술에 취해 다른 나라에서 테르사의 말씀을 본인들끼리 이야기만 했는데도 그 나라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제국 사람에 의해 다쳐서 왔다고 말했다.

 

“정말…신이 들으면 창피해할…소식이네요.”

“신들은 뭐하나 저런 놈들 천벌 안 내리고.”

 

말을 흐리며 시타라가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이그니를 확인하자 가게 주인의 시야 밖의 탁자 아래에서 이그니의 손이 주먹을 꽉 쥐고 떨리고 있었다.

 

그 위의, 이그니의 표정은 정말 탐탁지 않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앞의 이가 신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에드윈의 국민이 제국의 횡포에 진저리치는 표정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게 불편하다고 하면 이그니가 상처받겠지.’

‘내 이름, 아니 내 얼굴에 먹칠이란 먹칠은 다하는군.’

 

사장의 말에 속사정을 잠깐 알고있는 시타라는 속으로 신들도 지금 문제가 생겨서 제국을 어떻게 못 한대요…하는 말을 삼키며 이젠 미지근하게 식은 찻잔을 입에 대고 목을 축였다.

 

“다른 나라들과는 사이가 다 고만고만해. 하지만 어느 곳에나 제국민이 있기는 마련이고 이단이나 다름없이 자신에게 이로운 교리만 떼서 종교를 뒷배 삼아 판치는 놈들도 있다고 하지. 에드윈이 그나마 친구라는 관계하에 기관식으로 말하면 ‘보여주기식’으로 처벌을 행하는 거고 다른 나라에 가면…가급적 이그니를 신으로 모시는 교리를 겉으로만이라도 존중하는 척 대하게.”

 

적당히 호응하라는 조언에 시타라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피로가 묻어나오는 끄덕임을, 이그니는 대놓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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