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09

: 모험의 시작은

"아이고,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두 분 다 손을 멈추고 계시네~"

"잠시 뭔가 생각하느라고요.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페찬의 말에 시타라가 아니라는 듯 미소를 띠며 고갤 젓자 페찬은 다행이라는 듯 손에 든 작은 접시를 이그니와 시타라의 식탁에 놓아 소개해.

 

"아까 말했던 특별메뉴에요. 역시 두 사람이 드시기엔 좀 많은가? 싶어서 소량으로만 가져와 봤어요."

 

인상 좋은 페찬씨가 웃고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는 듯 짧은 인사를 나눈 이그니와 시타라가 고갤 돌리자 음식위에 뿌려진 소스에 작게 보이는건 아까 시타라가 편식한 채소의 뿌리였다.

 

호의로 가져온 음식에 편식거리가 보이는 시타라가 당황스러워하고,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는지 이그니가 컵에 미리 따라져 있던 물을 마시곤 페찬에게 요청한다.

 

"혹시 물 좀 더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아이고 그럼요. 이런 거야 간단하죠."

 

비워진 컵을 받아든 페찬이 물을 더 가지러 자리를 비우자 이그니가 시타라가 괜찮은지 물어본다.

 

"괜찮아? 이렌에서는 이걸 잘 먹나 보지?"

"소스로…아예 이렇게 만드는 법도 있구나…"

 

특별메뉴로 손을 움직이던 시타라가 포크로 살짝 소스에 덩어리로 있는 뿌리를 건드리며 한숨을 쉬자 이그니가 먼저 먹어보려는 듯 음식을 덜어가고 시타라의 시선을 받으며 이그니가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뿌리 특유의 톡 쏘는 짠맛이 소스에 은은하게 우러나서 괜찮은 거 같아."

 

이그니의 안심하라는 듯 내뱉는 상세한 맛 표현에 시타라가 용기를 내서 조금 조각을 떼어 입에 넣자 페찬이 때맞춰 탁자에 이그니 쪽에로 물컵을 내려놓는다.

 

"맛이 어떠신가요? 레틸 뿌리 소스를 이용한 저희 올바만의 저녁 특별메뉴랍니다~"

 

언제나 자신 있는 태도인 페찬의 말에 시타라도 맛이 괜찮긴 했는지 고갤 끄덕인다.

 

"아까도 느꼈는데 페찬씨는 되게 멋있는 분이시네요. 저 레틸 뿌리 싫어하거든요…."

 

시타라의 말에 페찬이 놀라며 미안하다는 듯 난감해하자 시타라가 페찬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까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어 말했다.

 

"안 먹는데 먹게 할 정도의 실력이 멋있어서 그래요. 자신 있게 말씀하신 거에는 다 이유가 있으시네요."

 

미안해하는 페찬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특별메뉴를 더 덜어 먹는 시타라가 페찬에게 웃어 보이자 페찬이 그제야 자신을 탕 쳐 보인다.

 

“제가 레틸 뿌리를 요리를 잘해서 남편을 휘어잡았죠. 레틸 뿌리 요리가 남편 친척들의 고향 음식이었는데 먹어본 뒤로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저 저 사람 또 부끄러운 소릴.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바르프 올바 입니다.”

 

페찬의 남편, 베리프의 아버지 올바의 남주인 바르프 올바가 인사했다.

 

바르프는 여관 관리실 밖으로 나오며 또 자신의 이야기를 하냐며 페찬의 곁에 가서 쿡 찔렀고 페찬은 자기가 뭘 했다고 이리 유난이냐고 옆에 온 바르프를 쿡 찌르는걸 돌려주며 말했다.

 

서로 친구같이 사이좋아 보이는 부부의 모습에 시타라가 낯설지만 그리운듯한 두 사람의 행동에 소리 내서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작은 채비 후에 밤바람을 걱정하며 외투를 걸치고 아샤와 시타라가 나왔다. 저녁 식사를 이르게 해서 그런지 아직 붉은빛을 내며 해가 지고있는 중이었고 햇빛을 받은 아샤의 눈에 작은 노란빛이 반짝이고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보랏빛 눈에 별처럼 작은 노란빛이 반짝인 걸 본 시타라가 짧게 이그니를 부르자 해지는 곳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그니가 시타라쪽으로 고갤 돌렸다. 해가 지면서 자연스레 어두워진 역광에 아샤의 보라색 눈이 더없이 빛나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식사할 때 하려던 말은 뭐였어?”

“아, 별건 아니고. 그냥 우린 식사를 안 한다고? 일종의 취미생활이라 가끔 즐기려고 입에 댈 뿐이지 필수적으로 식사를 챙기진 않아. ”

“그런거 치고는 되게 음식 종류별로 잘 시켰던데? 페찬씨네가 추천해주신 거야?”

“아니? 아샤의 지식이지. 아샤가 너한테 편식 운운하며 그렇게 말한 거는 이유가 있긴 하더라. 잘 크고, 많이 움직이려면 잘 먹어야 해서 일부로라도 음식에 대해 공부했었나 봐.”

“…좀 얄밉네. 혼자만 그러고.”

 

친구인 시타라, 자신도 몰랐던 뒷배경에 시타라는 아샤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입을 삐죽였다.

 

제국의 건물 앞에서는 대변인 앞에서 성년이 아님에도, 어린아이가 아니고 의사라고 답했던 시타라 치고는 생각보다 유치한 반응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인파가 많아질 때까지, 원래 했어야 되는 이야기를 해볼까?”

“축복에 관한 것 말야?”

“맞아, 그래서 혼자 고민은 좀 해봤어?”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진짜 기억이 안나는데….”

 

시타라가 독자적인 시간을 가지며 나름 고민해봤으나 생각나는 건 딱히 없었는지 조금 앓는 소리를 했다.

 

“어렸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피곤해서 생각이 안 났을 수도 있고. 뭐 괜찮아 한 번만 그랬던 것도 아닌데.”

“한번?”

“이건 더 길어지는 이야기니까 나중에 하고-”

 

말을 고르는지 잠깐의 고민, 이그니는 최대한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을 숨기기로 했다.

 

‘그 쉼터는 아샤의 무덤이나 다름없으니.’

 

시타라와 이그니가 처음 만났던 산의 초입의 쉼터, 시타라에게는 어렸을 때 갓난 양을 찾아 비를 피한 장소였지만 지반이 무너져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제는 아샤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쉼터를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튼, 너는 지금 내 축복 중 하나인 ‘불’에 대한 축복을 쓸 수 있는 상태야.”

“불을?”

 

자세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목적만 내뱉어서 시타라에게 해야 되는 말, 시타라가 궁금했던 말을 이어나갔다.

 

“신들이 각자 내릴 수 있는 축복은 그 신의 권능에 따라 달라져. 나는 주신이자, 불과 태양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지. 그중에서 대표적인 게 불에 대한 축복, 마법인데…지금은 정령술 쪽으로 인식이 더 강할거야.”

“축복이라고 둘 다 불리던 것 같은데, 정령술과 마법은 달라?”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려나…나는 주신이라서 다른 신의 권능을 빌려서 사용할 수 있어. 이건 다른 신들이 허락한 내용이야.”

 

아까 짐을 풀기 위해 숙소를 찾아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골목을 누비며 걸어나갔다.

 

“그러나 빌려 쓴 건 어디까지나 빌려서 온 거라 빌려온 권능에 대해서 축복을 내리진 못하거든? 하지만 그 예외로 단 한 명의 신이 있지.”

“예외의 신?”

 

유난히 신나 보이는 설명, 그에 시타라는 ‘잊혀진 신’을 떠올렸다. 이그니가 저렇게 감정을 들어낼때는 언제나 그 신이 있었다.

 

“그 잊혀졌다는 신?”

“맞아, 그 신의 권능은 대지와 풍요, 생명이었으니까.”

“대지라는건….”

“응, 자연에 관한 마법인 정령술은 축복이지만, 마법과 다르게 인식되는 건 그 신이 없어지고 난 이후야. 신이 없어지면서 이 땅에 흩뿌려졌고, 그러면서 권능은 회복을 위해 스며들었지. 그래서 그 영향으로 정령술은 축복보다는 개인의 노력으로 인식되었거든.”

 

유난히 선명해보이는 아샤의 보랏빛 눈이 골목을 꺾자 햇빛을 받아 잠시 노랗게 물들었다가 사그라 들었다.

 

“힘은 이 땅에 녹아들었고, 정령술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태어났지. 그래서 축복이지만 정령술은 축복의 취급을 못 받게 되었어. 물론 다른 신들의 권능은 그대로라 내 권능인 불, 프리드의 물, 크피르의 바람은 신들이 살피는 인간만이 정령왕을 소환 할 수있다고 떠들고 다니긴 하더라.”

“불…물, 바람…어? 정령술은 4대 원소라는 말이 있지않아?”

 

시타라가 이그니의 말을 따라가며 생각하다가 하나가 빠진 내용에 물어본다.

 

“땅은…사실상 실장 되었어. 대지의 권능을 가졌던 신이 없어지면서 땅의 정령왕은 몇 백년이나 기록에 남질 않아 실종상태나 다름없거든. 허락을 내려줄 신도, 정령왕의 자질을 가진 인간을 살필 신도 없어져서 하급 땅 정령을 겨우 불러내는 정도로 정령 자체의 교감도를 확인한다더라.”

“…슬픈이야기네.”

“뭐, 너는 그런 거 상관없지만. 불에 대한 축복은 나중에 사용하는 법을 알려줄게.”

 

이그니의 결론에 시타라가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지금 알아보는 건 안 되겠지?”

“이왕 같이 돌아보게 된 거 수련삼아서 이렌 밖으로 잠깐 나가서 말해줄까 생각도 했는데…인파와 짐 검사를 생각하면 지금 오고 가는 건 힘들 거 같아. 관문과 거리가 꽤 되기도 하고? 이따가 네 방에 잠깐 찾아가도 될까?”

 

약초를 늘어놓을 공간이 필요할 거로 생각하고, 시타라가 편히 혼자 쉴 수 있도록 시타라에게 큰방 객실을 넘겨줬던 이그니가 물어보자 자신의 방을 생각하곤 시타라가 고갤 끄덕인다.

 

“조용히 이야기할 공간을 찾는 거지? …괜찮아.”

“정령의 웃음소리가 걱정되기는 하는데…뭐 그건 내가 조용히 하게 시켜볼게.”

“정령?”

 

“내가 너한테…아니다, 설명을 이리하면 안 되지. 자연에 관한 마법을 쓸 수 있게 하는 신의 축복인 정령술은 정령과 교감 자체가 가능한 인간에게 전해지는 거라 필요 외의 정령과 접촉할 수도 있거든. 강화나 회복같은 경우는 열망과 축복의 권능인 디디에르의 축복이라 아예 인간에게 귀속되게 내려지는 건데 정령술은 그와 달리 사용할 때마다 중간과정이 있어 주변 정령들이 시끄러워질 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 네가 얼버무릴 때 정령과 계약했다고 할까 했었는데 정령과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있어?”

“그건 축복이 아니라 잊혀진 신에 의해 자신의 힘으로 소질 있는 자들이 쟁취한 경우. 정령술이 개인의 노력으로 인식된 건 이 이유가 크지. 정령도 지성체라 마음에 드는 인간은 자신의 힘을 쓰는 걸 바로 승낙할 때도 있거든. 물론 이것도 정령 측과 인간 측의 합당한 거래와 계약 후에 이행 가능합니다~”

“생각보다 다양하구나… 그러면 네가 강화라고 했던 부분은 정령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던 거였네?”

“이 정도만 알려준 거로 거기까지 도달하다니 예리한데?”

“네가 너무 허술한 거잖아.”

 

자신이 몰랐던 정보를 전해 들으며 습득하고 질문까지 하는 시타라를 보며 이그니가 덧붙였다.

 

“신의 축복은 관심이 더 쏠릴 수밖에 없어서…그리고 너는 정령 자체들과도 친화적일 테니까 차라리 불의 축복은 맞지만, 개인의 자질로 불의 정령과 말을 맞춰서 정령과 계약한 쪽으로 맞추는 게 나을 거 같아.”

“친화적일 거라니 그건 어떻게 알아?”

“조금 질투 나지만 너는 사람들이나 정령들이 많-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거든.”

 

여관에 오기 전 지나왔던 시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낮에 들렸던 상점들을 다시 들러 살만한 물건이 더 없나 확인하는 시타라와 이그니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 제국의 개놈들 봤어?”

“습. 말조심해, ‘제국’이야. 언제 어디에서 제국민이 있을 줄 알고.”

“아차차- 그건 그렇군. 아까 게브하르트쪽에 넘겼다는 병사들 있잖아. 벌이 얕았던 이유가 기관의 병사들이 게브하르트를 따르는 에드윈의 귀족에 속한 사병들이라 하더군. 일부러 보고서에 에드윈의 책임을 가중시키며 넘겨서 벌의 처우가 가벼워진 듯해. 제국에 더 잘 보이려고 한 거 아니겠어?”

“자네 그걸 이제 알았어? 게브하르트 깃발 아래쪽에 작은 문양이 박혀있었지, 아마 아까 봤던 제국 기관의 대변인이 에드윈의 ‘안트루’가의 방계였을 거야.”

 

상점가를 가만히 걸으며 들리는 말은 그 기관에서 병사들을 막던 자들은 제국을 따르는 에드윈 귀족들의 하인들이며, 제국에 반하는 에드윈의 국민을 본보기로 가둬둔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었다. 본보기라니 그렇게까지? 하는 의문과 함께 나라의 정세도 알아야 하는 게 조금 골치라는 듯 이그니에게 눈을 돌리자 이그니는 떨떠름하게 표정이 굳어있었다.

 

“왜 그래? 또 거북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래?”

“아니 안투르가…라니깐 생각난 건데 거기가 에드윈의 개국 공신 중 하나였을 거라 좀 그렇네. 테르사는 이거 알고 있나?”

“개국 공신이 지금 자신의 나라의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는 거야?”

 

들려오는 말처럼, 제국민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목적지를 향해 서로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앞만 보고 걸으며 태연스레 걸어갔다.

 

“…인간계에 오기 위해서는 심적으로 강했어야 했나…이래저래 속 안 좋은 이야기도 많고 체력보단 정신적으로 힘드네.”

“이번 기회에 목표로 삼아봐. 새로 목표가 생겨도 괜찮고.”

“이런 건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오늘만 해도 자신의 낯이 뜨거워지고 염치없는 소리를 많이 들어 죽을상을 한 이그니의 등을 머뭇거리다 몇 번 토닥인 시타라가 손을 거두고 아까 낮에 들렸던 상점 중 하나인 지도 상점으로 딸랑이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이그니가 주변을 살펴보곤 따라서 들어간다.

 

“어서 옵쇼.”

“안녕하세요, 아까 낮에 여기서 지도를 산 모험가인데 저희가 모험이 처음이라 혹시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으실까 하고요.”

“아, 그렇지 그렇지, 아까 대륙 지도랑 세부 지도 사간 양반들이구만. 좋아, 내가 입이 좀 근질근질했는데 이야기할 상대가 생겨서 나야 좋구먼. 근데 그…혹시…고향이 어디요?”

“아 저희는 바이트에서 왔어요. 저기 그 옛날에 채광산업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겉옷에 고이 접어 넣어뒀던, 아까 사 갔던 지도들을 꺼내 들며 문 앞에 서 있는 시타라와 아샤를 보고 지도 상점의 사장이 구석에 배치된 탁자와 의자 쪽으로 자리를 안내하고 가볍게 마실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바이트에서 왔구만! 옛날에 거기로 간다고 지도를 사간 양반들이 꽤 돼서 알고 있지. 바이트에 다녀온 친구들이 산의 내용에 관한지도 같은 거 만들면 안 되냐고 정보를 좀 주기도 하고말야. 앉게, 앉아.”

 

바이트에서 왔다는 말에 얼굴이 밝아진 지도 상점의 주인이 밝은 목소리로 손님들을 반겼다.

 

“산에 대한 지도요?”

“그 왜 쉼터가 어디고 빈 곳이 어디고 뭐 그런 정보가 담긴 지도 말이요. 쉼터는 그렇다 쳐도 국가사업이 철수하고 친구들의 요청도 쏙 들어갔지만 말이야.”

“주로 다른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만 남아있게 돼서 아는 사람들만 이용하겠다 쉼터가 어디 있는지 그런 것을 표시할 생각은 따로 안 해봤었네요…나중에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말해볼게요.”

“그래서 두 분은 뭐가 궁금한가?”

 

사갔던 지도를 세 사람이 보기 좋게 펼치고 시타라와 이그니의 자리에 준비된 차를 놓고 주인장이 앉으며 용건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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