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의 너_ 4
간이 체육대회
간이 체육대회 당일 아침에 들어보니 총경기는 3가지였다. 축구, 농구, 티볼. 전부 다 남녀가 함께할 수 있었다. 참가인원이 반 대항전으로 알맞아 반 대항전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연과 송규현은 같은 팀이 되었다. 둘이 다른 팀이었다면 재밌는 모습이 나왔을지도.
모든 경기는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 진행된다. 오전 수업 시간 내내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승부욕은 확실히 굉장했다.
점심을 먹고 5교시가 시작하는 종이 치자, 축구부터 시작되었다. 룰도 제대로 모르는 축구는 3반이 점수를 많이 따 이기는 추세인 것 정도만 알았다. 저 멀리 축구 경기장 옆 농구장 근처에서는 농구 시합에 나갈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눈에 띄는 저 여학생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손목을 풀고 있었다. 서다연이다. 다연이 있는 농구장을 보다가 시끄러운 함성 소리에 축구장을 보니 처음부터 이 악물고 게임을 하던 3반이 승리했다.
금방 끝나버린 축구를 뒤로 하고 농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방금의 뜨거웠던 3반과 달리 우리 반인 4반은 차가운 냉기를 뿜는 듯했다.
"4반에 농구 잘하는 애들 다 나가네. 대박이다."
"저 셋 나갔으면 게임 끝난 거지 뭐."
앞에서 남자애들이 떠들며 말하는 그 셋은 서다연, 강민준, 송규현이다. 셋은 전부터 농구를 즐겨 했던 탓에 실력이 좋았다. 게다가 다연과 강민준은 옛날부터 농구를 같이했기에 합도 좋았다.
다연은 4반의 관중석을 찬찬히 살펴보며 나를 찾는 듯했다. 어느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연은 사탕을 발견한 아이같이 웃으며 나에게 주먹을 쥐고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이기고 오겠다는 메세지였다. 차마 크게 소리치진 못하고 입 모양으로 화이팅이라고 얘기했다. 그에 다연은 전보다 더 밝은 웃음을 보이며 뒤 돌아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저 학교 내에서 하는 간이 체육대회임에도 생각보다 긴장되고 응원하게 만드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붙게 된 반은 2반이다. 2반도 만만치 않은 실력이라고 들었다.
가위바위보에 이긴 강민준 덕에 먼저 공격하는 반은 우리 반이었다. 공을 먼저 잡은 강민준은 먼저 달려가던 규현에게 공을 패스했다. 그대로 규현은 골대로 공을 던져 점수를 얻었다.
'송규현 농구도 잘하는구나.'
날아오는 적팀의 공을 잡은 규현은 패스하라는 몸짓의 다연을 보았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골을 넣었다. 다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규현을 노려보는 듯 했다. 그 뒤로 서로는 서로에게 패스하지 않았고 이 경기는 둘 만의 경기가 되어버렸다. 결국 전반전에서 모든 체력을 다 써버린 둘은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후반전에 들어갔다. 지친 상태여서 실력은 전과 달랐지만 남은 팀원들도 실력이 나쁘지 않았던 터라 순조롭게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2반의 교체 선수가 들어오기 전 까진.
점수는 35:6, 2반이 이기기엔 점수 차가 좀 컸다.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기에 모두가 4반의 승리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심판은 선수 교체를 뜻하는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2반의 대기 선수 중 시크하게 생긴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등번호 4번인 선수가 경기장으로 나오자 2반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경기가 새로 시작되며 금방 공은 상대 팀 4번에게 넘어갔다. 3점 슛 라인보다 훨씬 뒤였는데도 그 자리에서 던지자, 포물선을 그리며 깔끔하게 골대에 들어갔다. 구경하던 학생들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나 또한 저 슛을 보고 놀랐다. 한편으로는 다연이 신경 쓰였다. 너무 지쳐버린 다연은 저 선수를 보며 속으로 욕하고 있는 것 같다.
"쟤 이름이 뭐지?"
"하시연이래. 얼굴도 잘생겼다. 여잔데도 반할 듯."
정말 4번은 그러했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꼬셔버릴 외모.
"그래도 서다연이 원탑이지."
"서다연도 예쁜데 사귀라 하면 하시연 고를래."
"왜?"
"서다연은 고양이처럼 생겨서 여자 같은 느낌이 강한데, 하시연은 늑대처럼 생겨서 잘생겼잖아."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반의 학생들은 농구 경기를 보는 건지, 선수를 보는 건지. 선수에 대한 감상만 늘어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학생이 끼어들며 말한다.
"왜 니들은 여자를 보고 있냐 남자나 봐라. 여자는 우리가 데려간다."
"쟤들이 너네를 봐주긴 하냐?"
남학생의 말을 들은 여학생은 한숨을 푹 쉬며 답했다.
"함 꼬셔봐?"
"해봐라 되나."
"딱 대. 경기 끝나고 음료수 주러 간다."
몰래 듣고 있던 나는 흠칫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다연이가 즐겨 마시던 이온 음료를 사놓았고 나도 경기가 끝난 후 이 음료수를 가져다주려 했다.
그 와중 경기는 단 한 명의 실력으로 우리 반의 점수를 확 따라잡고 있었다. 우리 팀은 당황했는지 공에 손을 못 댈 정도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연과 규현은 지쳐 힘을 쓰지 못해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강민준이 공을 잡더니 중앙까지 달려가 공을 넣었다. 순식간이었다. 점수가 높은 슛은 아니었기에 전과 같은 호응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흐름을 잡아 여전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준의 슛은 저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우리 팀의 패스는 저절로 전부 강민준의 손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공은 계속 골대로 들어갔다. 강민준의 공이 골대로 들어갈 때마다 점점 호응 소리는 커졌다.
그대로 후반전도 끝나버리고 시간상 1라운드로 승부를 내는 이 경기는 완전히 끝났다. 결국 이번 농구 경기의 점수는 77:71 조금 아슬한 점수 차이로 우리 반이 우승했다.
경기가 끝나고 음료수를 주러 가기 위해 일어나면서 옆을 보니 아까 그 남학생은 벌써 음료수를 주러 내려갔는지 없었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다연은 남의 음료수를 마시고 있을 것 같아서 불안했다. 조금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 다연에게 달려갔다. 남학생은 언제 이곳에 온 건지 다연에게 음료수를 건네고 있었다.
"서다연. 경기 고생했다. 마셔."
"음료수 필요 없는데."
다연은 단박에 거절했다.
"어? 아, 어."
"뭐해? 안 가고."
"아냐. 가."
떠나는 남학생보다 조금 뒤에 있던 나를 바로 본 다연은 나를 불렀다.
"서하야!"
"응! 이긴 거 축하해. 경기 너무 좋았어."
"당연하지. 내가 골을 몇 개나 넣었는데."
말은 다 끝났지만, 다연의 표정은 내 손에 꼭 잡혀있는 음료수를 보면서 무언갈 기다리고 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거 안 줘?"
"어? 어떤 거?"
"네 손에 있는 거."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파란색의 캔을 보며 다연은 말했다.
"아까 필요 없다고…."
"쟤 음료수가 필요 없다는 거지 네 음료수는 필요해."
"어?"
내 음료수가 필요하다는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는 게 느껴졌다. 꼭 말하는 게 음료수가 아닌 나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
"아? 어. 여기."
음료수를 달라며 내밀고 있는 손을 보며 잠깐 멍때리다가 황급히 내어줬다.
음료수를 준 후 강민준에게 가는 길에 방금 그 남학생을 보았다. 다연에게 주기를 실패한 음료수를 하시연에게 주고 있었다.
"뭐? 방금 쟤한테 주려고 했던 거 아니냐?"
쟤라고 말하면서 하시연은 다연을 가리켰다.
"아. 그건 맞는데."
"내가 쓰레기통처럼 보이냐? 꺼져."
하시연은 정말 경멸한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말했다. 대답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야 꼬시긴커녕 거하게 차였네. 그러게 뭘 그렇게 떠들어대."
내 옆에 있던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울상을 짓고 지나가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조금은 고소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던 나를 보며 다연이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표정인데. 엄청 즐거워 보인다?"
"뭐. 우리 반이 이겼으니까."
숨길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다연에게 말했다.
"뭐, 알았어."
이 말을 끝으로 다연은 뜸 들이는가 싶더니 숨을 크게 쉬고 내 손목을 살짝 잡았다.
"서하야 그, 나 할 말 있어. 오늘 학교 끝나고 반에 잠깐 남아."
"응?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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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다연. 종례 마치고 나가서 체육 도구 정리 좀 도와라."
"네? 아 쌤. 오늘은 안 되는데."
"너 어차피 끝나고 할 것도 없잖아. 금방 끝날 거니까 좀 도와줘라."
"아…. 알겠습니다."
다연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곤란하다며 나를 잠깐 쳐다봤다가 선생님께 대답했다.
"서하야. 빨리 갔다 올 테니까 반에서 좀만 기다려. 진짜 빨리 올게!"
한숨을 쉬며 얘기하더니 다연은 밖으로 달려갔다.
나는 다연의 말대로 반에서 기다렸다. 우리 반에서 창문을 보면 운동장이 바로 보인다. 창가 자리 책상에 걸터앉아 해가 조금씩 지고 있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다연이 있었고 체육대회에 사용했던 체육 도구를 한 번에 여러 개를 들어 옮기고 있었다.
"어디든 보기만 하면 니가 있는 건 매일 신기해. 내가 찾아서 보는 걸까 니가 항상 내 근처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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