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의 너_ 3

서다연의 질투

***

 

 내가 어렸을 때 갑작스럽게 생긴 엄마의 병은 당시로서는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집보다도 병원을 더 들락거리게 되었을 때 너는 나와 함께 엄마의 딸처럼 자주 병문안을 가주었다. 엄마가 투병하다 결국 엄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되었을 때도 너는 수술실 밖에서 날 기다려주었다.

 

 엄마와 마지막 만남을 가졌던 병원이 바다 근처라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바다로 나와 울고 있었을 땐 담요를 덮어주며 옆에 같이 앉아 나를 위로해 줬다. 여름임에도 밤이 되니 쌀쌀했다. 다연은 전혀 추워하지 않고 반팔을 입고 있었지만.

 

 "자, 이거 해봐. 재밌어."

 "응? 이게 뭔데."

 "폭죽. 아 얼른 들어. 팔 빠질 것 같애."

 

 건네는 폭죽을 잡아 들자 너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성냥으로 끝을 불로 붙이더니 귀에 손짓하며 말했다.

 

 "소리 되게 크니까 놀라지 마."

 "응."

 

 폭죽이 시끄럽고 반짝거리며 터지자 방금까지 흐르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흐르지 않았다. 이건 폭죽 때문일까. 너 때문일까.

 

 "예쁘지."

 "응. 너무 예뻐."

 

 사실은 폭죽보다 내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도록 날 위해 웃어주는 네가 더 예뻤다. 원망이 되어 마지막일 뻔한 이 바다가 너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배경이 되어버렸다.

 

**

 

 "좀 걷다 들어갈까?"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아."

 

 바람이 따뜻할 때 바다에 오는 건 항상 기일이었다. 늘 그렇듯 오늘 또한 엄마의 기일이다. 매년 똑같이 여름에 이곳을 오는 날은 오늘뿐이구나.

 

 찰박거리는 파도 소리는 천천히, 작게 속삭이듯 들려와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충분히 여름의 바닷가를 즐기며 걷다가 엄마의 묘지로 향했다.

 

 엄마의 묘지는 바다를 보고 있어 앞에 서 있으면 바닷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상쾌해진다. 엄마가 좋아했던 떡볶이와 음료수를 들고 와 묘지 앞에서 인사했다. 떡볶이는 다연과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항상 딸인 나보다 먼저 인사하는 건 너였다.

 

 "엄마. 나 왔어. 좀… 오랜만에 온 것 같다."

 "이 불효녀 자식이 여름에 오는 건 기일 뿐인 게 어디 있냐. 아무 날에나 와도 좋아하실텐데."

 

 어색하게 웃음으로 넘기며 빈말을 했다.

 

 "미안 엄마. 더 자주 올게."

 

 자주 오고 싶어도 자주 오지 못했던 건, 혼자 오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름엔 다연이도 바빴으니까 선뜻 말을 못 꺼냈다. 그렇다고 혼자 왔다가는 엄마에게 안 좋은 모습만 잔뜩 보여주고 떠날 것 같았기에. 네가 옆에 없다면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이다.

 

 "떡볶이나 먹자."

 "응."

 

 여기가 아니라면 엄마가 생전 좋아했던 떡볶이였기에 떡볶이를 먹으려니 자꾸 엄마 생각이 나 평범하게는 먹지 못했다. 평소에는 먹지 못하는 떡볶이를 여기서만 엄마 옆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먹을 수 있게 된다.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떡을 하나 입에 집어넣었다. 포장한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먹은 떡볶이를 한 번 씹었을 땐 매콤한 양념의 향이 느껴져 내가 떡볶이를 먹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그만큼 엄마가 생각나 눈물도 차올랐다. 엄마와 너의 옆이라 차마 울 수는 없었다. 눈물과 함께 떡을 몇 번 씹어 넘기고 나니 다음 떡을 먹기엔 힘들었다.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네가 먹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것이 익숙한지 묵묵하게 떡볶이를 먹으며 내가 마냥 슬퍼하지 않게 계속 말을 건넸다.

 

 

 "자 오늘은 짝피구한다. 번호대로 부를 테니까 찾아가라.

… 12, 14"

 

 딱히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종목인 피구라 의욕 없이 대충 하고 싶었지만 14번, 송규현은 의욕이 넘쳐흘렀다.

 

 "나 꼭 이기고 싶으니까 협조해 줘."

 "… 그래."

 

 왜 이런 게임에 저렇게 이기고 싶어 하는 건지. 내키지 않는 제안에 고민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의욕 넘치는 사람 앞에서 대답을 안 할 순 없기에 대답했다. 평생 체육 자체를 의욕이 넘치게 해보지 않았던 터라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이왕 협조하겠다고 대답한 거 열심히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여보기로 했다.

 

 "야, 내가 공 잡을 테니까 너는 그냥 피해."

 "응."

 

 게임 시작하기 전 저 말 그대로였다. 난 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날아오는 공이면 공마다 다 잡아서 던져 상대 팀을 맞췄다. 4번째 주고받기 정도였을까, 다연이의 짝이 아웃돼 다연이도 함께 아웃되었다.

 

 '송규현이 원래 이렇게 체육을 잘했나.' 하고 생각을 할 때 순간 공이 머리 위로 날아가 내 등 바로 뒤에 있던 상대방에게 공이 잡혔다. 그걸 눈치챘을 땐 이미 조금 늦었을 때였다.

 

 어라?

 

그때 송규현은 내 허리를 살포시 잡아 들어 올려서는 자신의 뒤로 나를 넘기고 공을 잡았다.

 

 모두가 송규현을 보고 멋지다며 소리 질렀다. 그중 다연이 넌 한쪽 눈썹이 올라가 있었다. 불만이 있다는 표정이다. 뭐 때문에 불만이 있는 건지 생각하다가 경기에 집중이 흐트러졌지만 내 앞의 송규현의 모습에 이내 다시 붙잡았다.

 

 그렇게 3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우승하였다. 아무 보상도 없는 게임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송규현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신나있었다. 그 신난 감정도 잠시 아까 다연이의 그 표정이 무엇 때문에 나온 건지 궁금증이 돋아 심란해졌다.

 

 "덥다."

 "여름이라 그런지 바람도 뜨거운 것 같고."

 

 체육 시간이 끝나고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문득 아까 체육 시간 때의 불만 가득한 다연이의 표정이 생각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물었다.

 

 "아까 체육 시간 때 기분이 왜 안 좋았던 거야?"

 "내가? 딱히 안 좋진 않았는데."

 "표정이 안 좋던데."

 "더워서 그랬나."

 

 강당이라 에어컨도 빵빵해 오히려 추울 정도였는데 덥다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핑계겠지. 말하고 싶지 않아 보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박서하!"

 

 뒤를 돌아보니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며 멈춰 있는 송규현이 보였다.

 

 "잠깐만 이리 와 봐."

 

 다연의 눈치를 보면서 송규현 쪽으로 이동했다.

 

 "서다연 너는 좀 비켜주라."

 "아? 뭐 그래."

 

 무엇 때문인지 얼굴이 약간 빨개진 상태로 머뭇거리며 아주 작게 무언갈 말했다.

 

 "번호… 좀 주라."

 

 나는 귀가 밝은 편이라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였다.

 

 "번호?"

 

 송규현의 목소리보다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하자 송규현은 당황한 듯 나를 쳐다봤다.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되는데."

 "아니야 줄게."

 

 주머니에 있던 메모장에 번호를 적어서 주니 딱딱하게 굳어있었던 송규현의 표정은 신기할 정도로 풀렸다. 그와 동시에 다연의 한쪽 눈썹은 올라가 있었다.

 

 "너 쟤랑 친해?"

 "아니, 딱히."

 "원래 번호 잘 안 주면서 쟤는 왜 줘."

 "괜찮은 애인 거 같아서."

 "잘 모르겠는데."

 

 다연의 말투는 정말 마음에 안 들 때 가끔 나오는 조금 날카로운 느낌의 말투였다. 항상 다연은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둘러서 말했다.

 

 "내가 쟤한테 번호 주는 게 싫어?"

 "아니 뭐 줘도 되는데, 저렇게 막 줘도 되나 싶어서."

 "괜찮을 거야."

 

 반에서 지내다 보면 송규현은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했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열심히 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엔 10시에 끝났지만, 오늘은 조금 늦게 끝났다.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잠깐 휴대폰을 살펴봤는데 두 사람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한 명은 다연이었고 한 명은 송규현이었다.

 

 [내일 학교에서 간이 체육대회 한다던데 구경 와] 10시 3분

 

 [안녕 나 송규현이야] 8시 34분

 [내일 간이 체육대회 한대서 봐주면 좋겠어] 8시 34분

 

 둘이 나에게 문자 보낸 주제는 같았다. 간이 체육대회. 아까 반에서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간이 체육대회는 원하는 사람만 참가하는 체육대회라 딱히 참가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하지만 다연과 송규현 둘 다 참가한다 하니 흥미롭게 느껴졌다.

 

 '재밌을 거 같은 데 가봐야지.'

 

 [무슨 종목 참가해?]

 

 둘 모두에게 같은 문자를 보냈다.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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