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5

: 거리 속 귀찮은 인연(3)

“코체씨는 어느 부위가 어느정도로 다치셨었나요? 그때 전달 받았던 건 상처 부위의 크기 정도여서요.”

“아, 코체는 상처가 크게 난 상태로 강행군을 당해 상처가 곪았을 거예요.”

 

페찬에게 불려온 베리프는 아직 다쳐서인지 앉아서 하는 일을 맡고 있었고, 잠시 일을 밀어두고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 같이 앉아 시타라의 질문에 답했다. 아직 다친 자신의 다리를 옆으로 내밀며 자신의 몸을 지표 삼아 상처 부분을 짚어가며 상처의 크기를 그렸다.

 

“이 부분에 붕대를 감았었고 이 부분이 곪았었을 거예요. 팔도 여기가 다쳤을 것이고 머리에도 파편이 튀어 상처 부위를 덮고자 고정하기 위해 붕대를 감았었죠.”

 

베리프가 설명하는 상처들의 설명을 듣던 시타라가 한둘이 아닌 설명에 미간을 좁히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봤다.

 

“그 정도로 다친 사람은 보통 다른 것에 실려 오고 가지 않나요? 강행군이라니…환자를 어떻게 대했길래….”

“군에 항의할 것이 있어 항의했다가 보복성으로 다 같이 강행군을 당할 때에 합류됐어요. 저희도 원래는 괜찮았지만, 그 강행군으로 상처가 더 오래도록 남게 된 거였고요. 하지만 회복이 더뎌졌다고 해도 그 항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작 돌아오셨어야 하는 분들은 못 돌아오셨으니까요.”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군인들을 보복했다는 말에 시타라가 탐탁지 않아 하자 베리프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는 듯 자신의 상처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다가 시야에 들어온 시타라의 착용 중인 팔찌를 발견하고 홀린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팔찌…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흔한 물건인가요?”

“아, 이거는 저희 아빠 거에요. 아빠가 돌아가셔서 유품으로 챙겨서 제가 쓰고 있는 거예요.”

 

시타라가 자신의 팔에 찬 넝쿨 모양이 구불구불 새겨진 팔찌를 소매를 걷어 잘 보이게 들어 보여주자 팔찌를 확인한 베리프가 자신의 얼굴을 한번 쓸어 마른 세수를 한 다음 유난히 떨리는 시선으로 시타라를 쳐다본다. 이그니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베리프의 팔을 붙잡았다.

 

‘설마.’

 

-‘그분들도 그러셨는데….’

 

처음 베리프 일행을 기관 앞에서 만날 당시, 베리프와 그 일행들이 간간히 말하던 ‘의사’에 대해 떠올리고 기시감을 느낀 이그니가 물었다.

 

“혹시 시타라의 부모님을 아세요? 엘모 부부를 아시나요?”

“아……아….”

 

시타라의 성이자 시타라 부모님의 성 ‘엘모’. 그 이름을 듣자 순간적으로 자신의 팔을 세차게 잡은 이그니의 물음이 베리프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답이었는지, 그리고 눈앞의 시타라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었는지 베리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지며 귀신을 본 듯한 떨리는 시선으로 시타라를 바라봤다.

 

이그니가 잡은 팔은 분명히 아플텐데도 시타라와 시타라가 착용하고 있던 팔찌, 그리고 마침내 짧은 머리카락 틈으로 시야에 들어온 작은 귀걸이까지 확인한 시선을 천천히 숙였다.

 

“그분들의 따님이셨군요…따님…항상 두 분이 치료하실 적에 말씀해주셨던….”

 

베리프의 말을 들은 시타라가 베리프에게 보여주려고 정리했던 소매를 다시 원래 상태로 정리하며 식사를 이어 하려다가 들린 말에 식기를 떨어트리듯이 내려놓자 베리프는 이그니의 붙잡던 손을 밀어내고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성치 않은 다리로 덜덜 떨어가며 무릎을 꿇고 불완전한 무게 중심 상태로 거의 앞쪽으로 쓰러지듯 스스로 머리를 박았다.

 

쿵-!

 

목재로 만들어진 바닥이 울릴 정도의 충격과 소리에, 각자 할 일을 하던 페찬과 바르프가 달려와 몸이 아픈 아들을 억지로라도 세우려 달려왔다.

 

“베리프! 왜 그러니!”

“베리프! 어디가 갑자기 아픈게냐!”

“죄송…죄송합니다…두 분은 그리 가실게…가실게, 아니셨는데…저희를 위한다고 막아서시다가…제국군에….”

 

성치 않은 자신의 신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불편한 자세로 시타라에게 잘못을 비는 베리프의 행동과 말에 시타라는 연이어 귓가에 들려오는 말들을 곱씹으며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가 무색하게 들린 단어들은 가벼운 식사가 들어갔음에도 자신의 속에서 역류하기에 충분한 말들이었고, 올라오는 토기에 시타라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으……웁.”

 

자신이 물었지만 어떻게 이런 식인지 당황스러운 상황을 같이 이해하려던 이그니가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시타라 쪽을 확인했다. 상태를 눈치챈 이그니가 의자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쓰려지려고 하는 시타라의 상체를 받치듯 붙잡고 등을 토닥이며 말을 걸었다.

 

“시타라, 정신 차려. 시타라, 시타라. 속이 많이 안 좋아?”

 

앞쪽으로 쓰려지려고 하는 시타라의 몸을 자신의 몸에 기대게 하며 시타라의 상태를 물어보는 이그니의 눈에는 울음을 참으며 숨을 연신 삼키지 못하는 시타라가 보였다. 이그니는 자세를 낮추고 베리프의 상태를 보러온 페찬과 바르프에게 자리 좀 비우겠다고 한 다음 시타라를 등에 걸치듯이 업어 상태가 안 좋아진 시타라를 시타라가 묵고 있는 객실로 데리고 올라갔다.

 

시타라와 이그니가 떠난 이후에도 베리프는 몸을 떨어가며 진정되지 않는 상태로 시타라가 간 방향으로 머리를 박은 채 울고 있을 뿐이었다.

 

 

-

 

 

속이 진정됐는지 누워서 연신 얕은 숨소리를 소리를 내뱉고 있는, 어느새 정신을 잃은 시타라의 두 손을 붙잡고 이그니가 옅은 주황빛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소리들로 눈앞의 이에게 듣고, 들리길 바라며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네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 네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지만…왜 너는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야?】

 

조용하지만 나긋한 ‘귀’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따듯하게 타오르는 불의 소리처럼 이그니의 목소리가 바닥에 내려앉으며 공간을 채워나갔고 이그니는 계속 들리지 않는 소리로 말을 걸며 시타라의 안색을 살폈다.

 

【-…-…아일린이 네가 인간으로 환생하겠다고 나에게 전달했을 때 나는 네가 크피르의 보호 아래 환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너는 크피르의 자유를 부러워했었잖아. 이곳저곳 다니던 크피르를 부러워했었지. 그래서 차라리 이왕 이렇게 된 거 네가…원하는 여행을 하게 해주자고.】

 

어느새 시타라의 방안을 가득 채운, 시타라의 손에 흘려 넣던 마법을 거두고 시타라의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의 이마에 대고 누구에게 하는지 모르는,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이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네가 가호도 없이, 기억도 없이, 일반적인 사람으로 환생하겠다고 했을 때…아일린과 같이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 항상 같이 다니고, 항상 서로를 위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 뭔가 알고 있어 보이는 크피르를 찾아갔지만 크피르는 너와 약속한 게 있다며 너를 설득해달라는 내 말을 거절했어.】

 

그 당시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어 설명을 요구했지만 말하지 않던 상대에게 조금 원망을 담았을지도 모르는 내용을 내뱉으며 지금의 시타라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을 말하는 이그니의 눈빛은 더없이 온화했고 상대를 염려하는 시선뿐이었다.

 

“너는…옛날에 디디에르에게 무슨 말을 들었던 거야?”

 

 

-

 

 

시간이 흐르고 아침이 완전히 지나고 낮이 될 때쯤, 짧게 잠으로나마 휴식을 취한 시타라가 침대에서 눈을 떴다. 깨어나자마자 역류했던 탓에 속이 아픈지 목이 따가운 느낌에 물을 찾았고 옆에 있다가 잠에서 깬 시타라를 발견한 이그니가 바로 일어나 협탁에 놓았던 물이 담긴 잔을 내밀고는 꽃 절임의 포장도 뜯어주며 건넸다.

 

“속 달래는데 당분도 괜찮지?”

“나…그대로 쓰러졌었던 거야?”

 

당시의 감각만을 기억했던 듯, 아픈 속을 달래기 위해 이그니에게 물과 꽃 절임을 받아들고 천천히 움직이며 물었다.

 

“내가 업고 올라오던 중에 그대로 정신 잃었어. 그래도 정신 잃으면서 토기는 멎었는지 침대에 눕혔을 땐 숨소리만 내고 있었고.”

“미안해…갑자기 아득해져서는 알고 있는 대로 심호흡이라도 억지로 하려 했는데 머리가 안 돌아서 정리할 수가 없더라.”

“네가 뭐가 미안해. 대신 지금부터 준비하려면 움직이기 조금 빠듯할 거 같은데 괜찮겠어?”

“그래, 일단…덜먹은 끼니는 어쩔 수 없고, 나가서 걷자. 걷다 보면 생각도 조금 정리되겠지.”

 

이그니의 식사도 건너뛰게 해서 미안하다고 넌지시 말한 시타라의 행동에 이그니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말했다.

 

건네받은 꽂 절임을 입에 물고 마신 물컵을 내려놓은 뒤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시타라가 조금 비틀거리자 이그니가 부축하며 옆에 마련된 개별 공간으로 행색을 정리하려는 시타라를 들여보내고 방 밖으로 문을 닫고 나오자 페찬이 문 앞의 복도에 서 있었다.

 

“…그 후로 계속 서 계셨던 건 아니죠?”

 

1층에서 있었던 소란부터 지금까지 서 있었냐 물어보는 이그니의 말에 페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까 2시에 약속이 있다고 들어서…혹시 몰라서 방금 올라왔어요. 그리고…미안해요,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쟁 중에 그런 일이 있었을 줄….”

 

베리프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며 페찬이 난색을 보이고 시타라의 상태는 어떤지 물어왔다.

 

“지금은 진정됐어요. 잠깐 눈도 붙였고요. 저희는 이대로 준비하고 예정보다 일찍 나가서 더 필요한 것 좀 사야 할 거 같은데…이따 다녀와서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을까요? 시타라가 괜찮다 하면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야 하는데…저희를 우선으로 살펴주시기까지 하고 어쩜 좋아….”

“그 이야기는 시타라에게 직접 해주세요. 저는 당사자가 아니고 친구니까요.”

 

페찬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향해 가벼운 짐을 챙기고 준비를 끝낸 이그니가 다시 시타라의 방 문앞으로 와서는 페찬이 기다리다가 떠난 자리에 서서 시타라의 방문 앞을 두드렸다.

 

“시타라, 들어가도 될까. 내 짐은 적당히 챙겼는데.”

“들어와.”

 

이전에 처음 이렌에 도착했을 때의 복장과 비슷한, 하지만 겉에 의사 가운처럼 보이는 형태의 외투를 입은 시타라가 가슴께의 주머니에 작은 장식을 달자 이그니가 고갤 끄덕였다.

 

“마을에서 입었던 겉옷까지 입으시고, 의사 선생님이 본격적이시네.”

“그때 어리다고 무시당했던 게 기억나서 복장부터 제대로 갖춰 입으려고. 야영하게 되면 이 정도까진 못 입지만. 그러는 너도 갖춰 입었네?”

 

시타라가 쳐다본 아샤의 복장은 셔츠 위에 한쪽엔 견장을 차고 양쪽 팔 부분엔 팔을 감싸는 형태의 갑옷 부품이 달려있었다.

 

“뭐 이 정도면 봐줄 만하지? 너무 위협적으로 보이면 안 되니까 이 정도까지만- 했지. 여차하면 펑 터트리고.”

“처음에 기록될 수 있다고 마법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목격자를 없애면 되지 않을까?”

“나 의사야….”

 

시타라의 기분을 풀어주려 하는 것인지, 한결같은 이그니의 실없는 소리를 듣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낸 시타라가 작게 웃음을 짓고는 베리프가 말했던 코체의 부상을 떠올리며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점검하자 이그니가 아샤의 무구들의 상태를 확인을 끝내고 검 손잡이에 손을 얹고 기다린다.

 

“좋아, 가기 전에 혹시 모르니 아까 사기로 했던 단검만 하나 사서 가면 되겠다.”

 

짐을 다 점검한 시타라가 왕진을 나갈 짐만 따로 작은 가방에 챙겨 넣으며, 열쇠로 자신이 머무는 방의 문을 잠그고 손잡이를 몇 번 움직인 것을 끝으로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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