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6

: 인연이 닿은 재판(1)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시장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다보니 이렌에 오고 나서 제일 많이 다니게 된 길은 이틀 만에 원래 여기서 살던 사람인 양 익숙해졌고, 길을 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신구 노점을 지나다니면서 봐뒀던, 조금 크게 상점 형태로 지어진 무기점의 문을 열며 시타라가 가게 안에 있을 상점 주인에게 인사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자 안에 앉은 이마에 크게 상처 난 험상궂게 생긴 사장이 먼저 상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타라만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가 이내 들어오는 이그니를 보고는 영업용으로 미소를 띄웠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무기나 갑옷이 있으신가요?”

 

명백히 좋은 상점은 아닌 것을 알리는 투명한 대우에 두 사람은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 잠깐 어울려 줄까 싶었는지 이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 제 몸을 지키실만한 무기가 필요하셔서요.”

 

사장의 반응이 불편했던 이그니가 주도권은 여기 있다는 듯 공손하게 양손으로 손바닥을 보이며 시타라를 가리키자 사장의 시선이 시타라를 따라가고 시타라의 복장을 위아래로 흩어보며 고개를 기울이곤 조금 낮게 하. 소리를 냈다.

 

“의사가 뭔 무기가…그럼 의사 선생님은 찾으시는 무기가 있으신가요?”

 

시타라가 먼저 들어와 서 있음에도 이그니와 대화하던 사장이 이그니의 대답에 시타라에게 그제야 말을 걸자 시타라가 단호하게 고갤 젓는다.

 

“누가 봐도 여긴 없겠네요. 안녕히 계세요.”

 

둘이 대화하는 동안 길게 한번 주변을 둘러본 시타라가 주인의 태도 때문인지 정말로 찾는 무기가 없었는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장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그니에게 가자는 듯 끄덕이자 이그니가 들어왔던 문을 다시 열며 시타라가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잡고 가볍게 인사한다.

 

“보는 눈이 없으시네.”

 

고개는 인사하듯 한번 숙였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인사가 아닌 말이 나오자 그걸 들은 사장이 뒤늦게 반응한다.

 

“…뭐, 무슨 소릴 했어!”

 

문을 붙잡고 있던 이그니가 시타라가 가게 밖으로 완전히 나온 걸 확인하고 본인도 뒤따라 나오며 일부러 소리 나게 쾅-! 하고 문을 닫자, 뭐라 하려던 사장이 버럭대려던 소리가 가게 밖으로 나오진 못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막히고 만다. 문이 부서질 듯이 닫히고, 표정을 정색하며 굳힌 이그니가 가게 이름을 확인하고는 작게 읊조렸다.

 

뭐라 말한 것 같긴 하지만 들을 수 없는 ‘말’에 시타라가 몇 걸음 앞서서 가능 방향을 정하고는 이그니를 불렀다.

 

“뭐해, 준비하기 빠듯해. 열 내지 말고 가자.”

“네, 선생님.”

 

첫 번째로 제일 크게 자리 잡고 있던 무기점에서 기분만 상하고, 거리가 좀 떨어진 상점에도 들어가고, 다른 무기점을 찾아 물어가며 이곳저곳을 방문해 봤지만, 이렇다 할 끌리는 무기는 찾지 못했다.

 

에드윈 이렌의 지도를 접어서 일부분만 작게 펴 더 둘러볼 장소가 있는지 상점가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는 시타라의 옆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이그니가 노점처럼 펼쳐진 무기상을 확인하고 시타라에게 손짓을 하자 시타라가 걸음을 멈추고 이그니 옆으로 가서는 주인장을 쳐다봤다.

 

이번엔 아까의 불친절했던 상점과 다르게 둘에게 똑같이 인사가 없는 노점.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레몬 빛이 도는 흰 머리카락을 잔머리 몇 가닥을 그대로 둔 채 한 방향으로 정리해 묶고, 바닥에 보를 펴서 무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판매를 위해 내놓은 검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닦고,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살사람은 사고 말 사람은 말라는 조용한 태도에 적어도 아까와 같은 일은 없겠다 싶었는지 시타라는 자세를 낮추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이 중에 제가 쓸만한 단검이 있을까요?”

“응?”

 

나이가 들어감에 눈과 귀가 같이 어두워져서인지, 아니면 시타라의 말을 잘못 들어서인지 자신의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던 노인이 고개를 들며 고개를 설레 젓자 시타라가 다시 한번 말해주고, 이번에는 제대로 들었는지 답한다.

 

“아이구, 내가 눈이 어두워서 말야. 사람에 맞는 무기를 찾아줄 순 없는데 단검이 필요한 거라면 이쪽에서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누가 봐도 본인보다 어린 상대임에도 존댓말을 쓰며 답한 노인. 팔기 위해 늘어놓은 무기 쪽에서 자신 앞에 놓인 한 구역을 가리킨 노인이 다시 손을 움직여 물건을 닦으려 하자 시타라가 봐도 모르겠는지 다시 한번 요청했다.

 

“제가 의사인데 다니면서 호신용으로 쓸만한 검이 필요해서요. 그래도 추천은 어려우실까요?”

“내가 뭘 알겠어요. 나는 그냥 골목에서 떠돌던 사람인걸요. 이 무기들도 이 나이 먹도록 주인을 잃고 모은 무기들 뿐이라요.”

 

시타라의 공손한 말에 나이 들어서인지 이빨 빠진 입을 오물거리며 웃은 노인은 다시 자신의 손에 쥔 검의 검날을 살피며 헝겊으로 닦던 손을 재차 움직이며 기분이 좋은지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이거….”

 

시타라가 노점 주인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 단검 쪽을 먼저 살펴보던 이그니가 시타라에게 검을 하나 집어 손잡이 쪽으로 돌려 건네자 시타라가 받아들고는 손잡이를 쥐더니 손에 맞는지 팔을 들어보며 짧게 공중에서 내려치듯 휘둘러보곤 고갤 끄덕였다.

 

“손에 맞고 좋은 거 같은데? 다른 사람한테 맞는 검을 볼 수도 있었어?”

 

시타라의 반응에 이그니가 아니라는 듯이 고갤 젓고는 칼의 날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에 맞을지는 몰랐고, 그 검을 쓰면 활용도가 좋을 것 같아서. 만들어지면서가 아니라 검 자체가 불에 여러 번 담가졌던 것 같아.”

 

자신의 앞쪽에서 대화하는 시타라와 이그니의 대화가 소란스러웠는지 처음 대화도 잘 못 듣고 자신의 할 일만 하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 시타라가 쥔 검을 보자 검을 닦던 손도 내려놓고 손짓을 해 시타라가 자신의 쪽으로 단검을 내밀게 했다. 소중한 걸 어루만지듯 검의 날 쪽을 헝겊으로 한번 쓸어냈다.

 

“이 검도 이제 주인을 만나나보요. 많이 외로웠지.”

 

누가 봐도 사연 있어 보이는 말. 노인은 자신이 살면서 하나씩 무기를 모았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지, 시타라가 쥐고 있는 칼에 관한 이야기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검의 이전 주인을 아시나요?”

“전에 나를, 아니 골목의 잡배들을 보살펴주던 이의 검입니다. 세간에는 정말 최악으로 손꼽히던 범죄자로 기록됐지만, 우리 같은 바닥의 낮은 존재들에겐 상냥했어요. 과일 같은 손도 못 댈 먹을 거를 원한다면 구해다가 나눠주고, 어디서 본인의 사람이 맞고 오면 상대가 누구라도 때린 그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기까지 하며 복수까지 해줬지요.”

 

최악으로 손꼽히던 범죄자로 기록되었다는 말처럼 중간에 신경 쓰이는 말이 많이 있었지만 노인은 단검의 전 주인에 대해 나쁘지 않은 기억들뿐인지 있던 일에 대해 입꼬리를 올리고 순하게 웃으며 이야기 해줬다. 시타라는 단검을 바라보고, 이그니는 옛날 이야기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게 좋은지 노인을 바라봤다.

 

“그 사람의 마지막은 정말, 뭐가 바쁘다고 여태 봐주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지도 않고 외롭게 떠나버려서…검만 남았어요.”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시타라의 품 쪽으로 밀어주며 노인은 시타라를 향해 눈을 접으며 웃어 보였다.

 

“그 친구를 잘…보살펴주세요.”

 

노점의 주인장은 단검의 칼집인지 무두질 된 가죽 주머니까지 시타라에게 넘기면서 느리게 말하느라 길게 늘어지던 어조와는 다르게 재빠른 행동으로 노점을 정리했다. 말과는 상반되는 빠른 움직임을 띄는 노인의 움직임에 가죽 주머니를 받아들고 살피던 시타라와 이그니가 허둥대며 값을 치루려고 노인을 붙잡으려 했지만, 노인은 붙잡으려는 손도 마다하고 손을 밀어내고 노래만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불꽃으로 그대를 지키리라 맹세하니, 따스함에 화답하고자 활짝 핀 꽃으로 그대 앞에….”

 

값을 치르기 위해 돈주머니를 꺼내 들었다가 손이 치워진 시타라가 방금 일어났던 일에 빠른 걸음으로 이미 저 멀리 가버린 노인의 뒷모습을 보고 허망하게 떨리는 손으로 다시 검을 살피려고 손안에 든 것을 정리했다.

 

여전히 방금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검을 마저 살펴서인지 아직 취급이 미숙해서 시타라가 검을 놓쳐 떨어트릴 뻔하자 그대로 아래로 떨어질 뻔한 검을 이그니가 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받아들었다.

 

“…조심해야지.”

“어…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도 살다가 이런 일을 다 겪네.”

 

노인이 있던 자리에, 노인이 놓고 간 검에 딱 맞는 착용에 필요한 장비들까지 발견한 이그니가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받아든 단검과 함께 시타라에게 필요한 형태로 조립해서 건네줬다.

 

“정말 이상한 할머니였지? 보기와 다르게 손이랑 행동은 빠르시네.”

“값도 못 치렀는데…좋은…분이시네.”

 

칼집과 이어지는 고정하는 벨트를 받아 바로 착용한 시타라가 내지 못한 단검의 값을 단검을 집어 들었던 위치의 바닥 구석에 놓고 짧게 기도하며 약속된 장소로 시간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불꽃으로 그대를 지키리라 맹세-”

 

짧게 들린 정령의 노랫소리를 뒤로하며.

 

 

-

 

 

2시. 또 다시 서게 된 제국 게브하르트의 국기가 달린 외교 목적으로 세워진 건물 앞에 시타라와 이그니가 서자, 그때의 소란에서 가까이에 있어 시간을 같이 들었던 몇 사람들이 시타라와 이그니의 주변을 옹호하듯이 둘러싸고 건물을 쳐다보며 항의하듯 서 있자 외부에 건물을 지키기 위해 서 있는 게브하르트측의 병사들이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웅성거리는 소란을 저지하진 못하고 건물만 지키며 책임자가 나오길 기다리며 먼 곳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약속된 시간으로부터 ‘조금’ 지나고 문이 열리자 트릭손 안투르가 나오며 자신의 자랑인듯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런, 제가 조금 늦었군요. 귀한 손님이 와계셔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약속만 이행해주신다면 상관없습니다. 환자는 어디에 있나요?”

 

예의상 사과하는 말에 당연히 이럴 줄 알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는 듯 웃어 보이며 목적을 말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트릭손이 자신이 열고 나왔던 문을 잡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환자는 건물 내부에 있는 지하 감옥에 있습니다. 반항이 너무 심하고 의심이 강해서 저희 쪽이 다쳐 죄인의 형량이 더 늘어날까 봐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저 말에 대한 사실 확인은 아직 못하지만 트릭손의 얼굴만 보면 ‘거짓말하는구나’하고 알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시타라의 뒤에 서 있다가 표정이 안 보이는 방향으로 싸늘하게 차가운 표정으로 기분을 내비친 이그니가 건물 실내로 들어간 시타라를 따라 들어가려 하자 철컹-! 소리를 내며 이그니의 앞쪽을 군인들이 막아선다.

 

이그니가 자신을 막아선 군인들을 상대로 쳐다보고 뒤쪽의 소리에 돌아본 시타라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돌아봤다.

 

“지금 뭐 하는 건가요?”

 

누가 봐도 이그니가 시타라를 따라 건물로 들어오는 걸 막는 행동. 병장기가 맞부딪혀 울리는 소리였다는 걸 확인해주듯 시타라가 지나온 문 앞의 군인들이 세로로 들고 만 있던 병장기가 서로 가로지르며 막혀있자 시타라가 표정을 굳히고 자신의 옆에 서서 들어오려던 트릭손에게 다시 물었다.

 

“다시 여쭤야 될까요?”

“제가 약속한 내용은 의사 선생님이 대상이었지, 다른 사람까지 출입을 허락하지는 않았었습니다만?”

“저희보다 건장한 군인들도 감옥 밖으로 수감 된 환자를 못 데리고 나오셨다면서 저를 도와줄 조수 하나도 못 데리고 들어가게 하시면 저는 치료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시타라가 트릭손이 했던 말을 토대로 지적하며 자신이 지나온 문 쪽으로 다가가 이그니를 막은 군인들의 병장기 창대를 손을 살짝 치우며 밀어내자 그 틈을 타 이그니가 군인들에게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아예 밀치고는 시타라와 트릭손 사이에 섰다.

 

“저희 의사 선생님과 제가 보시는 바와 같이 그쪽이 당장 어제, 말하셨던 것처럼 어린아이인줄 알 정도로 군인들보다 체격이 좀 작아서요. 아무래도 상대도 군인이신데 치료 중에 고통에 움직이기라도 하시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당장 어제 트릭손이 시타라를 보자마자 말했던 내용이었다. 어린아이가 무슨 의사냐는 식의. 그걸 기억하며 그대로 내뱉은 이그니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희의 안전을 위해서 이 정도는 봐주셔야죠?’ 하며 말을 덧붙인 이그니가 시타라의 말을 뒷받침하는 나름의 이유를 대며 트릭손에게 말하자 트릭손은 ‘그거 하나도 제대로 못 막냐’는 시선으로 군인들에게 화풀이로 눈빛을 쏘아 보내고는 감옥이 있는 방향으로 앞장서 자리를 옮겼다.

 

군인은 트릭손이 약속 시간보다 핑계를 대며 늦게 나왔던 것처럼 단지, 미리 전달받았던 것처럼 트릭손의 말을 따랐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얼굴 가리고 다 뒤엎으면 안 되겠지?”

“여기 에드윈 이렌이야 정신차려….”

 

약속 시각으로부터 몇 분 지나지도 않았지만, 마찰로 인해 인내심이 닳아버린 것인지 아니면 치료를 위해, 환자의 안전을 생각하며 삭히는 중인 시타라 대신 화를 내주는 이그니에게 시타라는 아까 트릭손에게 단호하게 말하며 지었던 표정을 지우고 트릭손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이그니를 달랬다.

 

시타라가 트릭손을 따라 감옥으로 향하는 듯한 내려가는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가며 계단 끝에 배치된 나무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향하는 나무문이 열리고, 쇠창살로 만든 또 하나의 문과 창살과 창살 사이로 긴 통로가 보이고, 긴 통로 끝에 양옆으로 즐비한 쇠창살로 만들어진 감옥을 보여주며 트릭손이 입을 열었다.

 

“지하 감옥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착용하신 무기는 여기, 놓고 가주시지요.”

 

감옥으로 향하는 문을 등지고, 문 옆에 작게 마련된 탁자를 가리키며 트릭손이 말하자 시타라가 트릭손의 말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희가 죄인을 무력을 써서 탈출이라도 시킬 것 같아 이러시는 건가요?”

“설마요, 환자를 위해 들어오신 의사 선생님을 그렇게 무지한 사람으로 볼 순 없지요. 하지만 움직임이 없을 거라고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희는 제국과 에드윈 간의 불화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제, 권한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니 말입니다. 아니면 죄인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안투르가가 에드윈의 개국공신 가문이라 하지 않았나?’

‘가지가지 한다 진짜.’

 

다수의 에드윈 사람들의 요구로 이뤄지고, 흐름을 탄 시타라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자리인데도 자신을 치켜세우면서 명백히 제국을 위하는 말을 하는 트릭손의 행동과 일 처리에 두 사람이 불만 가득하게 쳐다봤다. 물론 시타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그니는 질색하는 쪽으로 말이다.

 

“되게 깐깐하네.”

 

아샤의 신분으로 이렌에 오자마자 거북한 소리를 들은 이그니는 이제 아예 속에 담아두기보다 밖으로 토하는 쪽을 선택했는지 상황을 보고 말을 가리지 않기를 택했다.

 

이그니가 아샤의 검과 작은 단검이 묶인 벨트를 풀어내며 입구 옆, 마련된 탁자에 내려놓았고, 시타라 또한 아까 구입(이라 쓰고 선물이나 다름없이 가지게 된)한 단검을 아샤의 무기들 옆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짐 검사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감옥 문 옆에 서있던 군인이 왕진을 위해 챙겨서 나왔던 짐을 다 하나하나 꺼내 보았기에 시타라는 군인이 챙겨 넣지않은 물건들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으며 확인당한 가방의 끈을 잡았다.

 

“좋습니다. ‘신경쓰이는 말’이 있었지만 이리 순순히 따라주시니 더욱 믿음이 가는군요.”

(뜻: 내가 너희보다 윗사람이라 봐주는거다 알아?)

“저희도 요구조건에 따라드렸으니 저희가 치료를 위해 요구하는 조건이 생긴다면, 잘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뜻: 봐 줄거면 더 봐주지 그러세요.)

 

트릭손이 이그니가 뱉었던 말을 콕 집으며 말하자 시타라는 대충 한 귀로 흘리며 트릭손에게 대뜸 요구했다. 그런 시타라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 트릭손은 말에 대답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고 고개를 대놓고 돌렸다.

 

“저는 먼저 온 귀한 손님이 계셔서 그런 냄새 아니,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치료 잘 끝내시고 되실 때 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심인 말을 실수라는 듯이 내뱉은 다음 시타라와 이그니를 들여보내고 감옥으로 향하는 문은 닫지 않은 채 쇠창살로 만든 이중문만 닫아두고 병사 한 명을 두고 자리를 비우고 가는 트릭손을 쇠창살 사이로 한번 쳐다본 시타라가 안내해주는 군인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죄인을 감시하기 위함인지 복도 방향이 쇠창살로 만들어진 방을 지나 맨 끝을 향해 안내하던 군인이 어느새 한 지점에 서서는 쇠창살을 잡았다.

 

군인의 안내에 뒤따라가던 둘이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차가운 바닥과 반 지하 형태로 지나가는 사람의 발만 보일 정도로 작게 위쪽에 나 있는 창, 다리 한쪽에 쇠공이 달린 채로 앉을 부분 정도만 쌓여있는 짚에 겨우 앉아있는 환자, 코체였다.

 

코체는 작은 온기를 겨우 보존 할 법한 짚더미 위에 앉아서는 최대한 고통을 배제하기 위해서인지 곪아 보이는 상처 부위를 아무것도 없는 곳 방향으로 돌리고 쭈그려 앉아있었고, 환부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해 불편한 갑옷들도 벗지 못하고 상처들과 함께 살이 눌려가고 있었다.

 

“…아샤, 안에 들어가면 가져온 모포를 깔고 갑옷을 벗긴 다음 코체씨를 눕혀줘.”

 

상처를 제때 돌보지 못했는지 베리프가 짚어줬던 위치의 상처는 곪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붕대는 피와 진물로 인해 노랗게, 혹은 갈색으로 물들어있었고 피가 묻은 붕대는 이미 때가 타 오염되어 있어 상처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은 상태였다.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전쟁 당시 포탄의 파편으로 인해 찢어져 봉합했다던 이마의 상처 위 붕대에는 어딘가에 또 부딪혔었는지 상처 옆이 검붉게 물들어있어 봉합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까지 생각해야 했다.

 

쇠창살에 연결된 잠금 문에 있던 자물쇠를 돌려 군인이 열어주자 시타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자세를 낮추고 들어가고, 이그니가 따라 들어갔다.

 

바닥만 쳐다보다가 사람 그림자가 드리우자, 구겨지듯 앉아서 바닥을 보고있던 코체가 놀라며 벽쪽으로 다리를 끌며 물러선다.

 

“안녕하세요, 코체씨. 저는 의사입니다. 자세 좀 편하게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불편하시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나, 나는 몰라! 손대지 마! 제국은 믿을 수가 없어!”

 

상대를 놀라지 않게 하려고 자세를 낮추며 조곤조곤하면서도 명확하게 소개와 원하는 바를 밝혔지만, 겁을 먹어 말이 들리지 않아 보이는 코체의 행동에 시타라는 우선 상대를 안심시켜야 했다.

 

자의나 다름없이 들어왔음에도 게브하르트 산하에 있는 자의 안내를 따라 들어왔으니 오해를 불러올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시타라는 수감된 코체가 베리프와 같은 군인 이였다는 말을 떠올리곤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으로 소매를 걷어, 차고 다니는 팔찌를 코체에게 보여주었다.

 

“손대지…!”

 

시타라의 말에 환자를 편하게 눕히고 도와주기 위해 곁으로 다가오려던 이그니를 향해 갑자기 움직일 때 발생하는 근육의 아픔도 생각하지 않고 팔을 휘두르려던 코체가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시타라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보고 행동을 멈추자 시타라가 ‘잠깐’ 말을 삼키고 다시 한번 말을 전한다.

 

“…시올프, 테리 엘모의 자식이자 제자, 의사 시타라 엘모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코체씨.”

 

두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자 베리프와 비슷했던 반응을 보이며 코체의 신체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자, 시타라는 입을 한번 꾹- 다물고 다시 처음과 같은 어조로 말한다.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베리프씨를 만나 부탁으로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 온 의사입니다. 여기 모포에 누워서 상처를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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