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7

: 인연이 닿은 재판(2)

아직은 입 밖으로 내뱉기에 거북한 사실이나 그걸 굳이 스스로의 입으로 내뱉으며 베리프의 이름까지 거론하고, 요구하자 코체의 흐릿했던 두 눈이 맑아지더니 이내 눈물로 가득 차고 떨군 고개를 따라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시올프와 테리의 마지막을 코체 또한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지, 코체는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제일 먼저 사과를 시작으로 염치없다는 말을 더하며 자신의 동료들인 베리프네는 괜찮냐고 물어왔고, 팔찌를 만지작거린 시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염치없지만 제 친구와 동료들은 괜찮은가요…?”

“다들 무사하시고 치료도 잘 받고 계십니다. 코체씨도 얌전히 치료를 받아주세요. 동료들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남을 우선 생각하고 지금 상황에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내뱉은 시타라의 말에 코체가 눈물이 무겁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게 난 창밖으로 들려오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져서, 저는…동료…제 친구들이 무슨 일을 당한 줄 알고….”

 

당장 어제 기관앞에서 들리던 소란, 그 목소리를 힘든 와중에 들었었는지 더더욱 날서있던 코체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일부러 이런 곳에 자리를 배정한건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현듯 든 생각. 그런 생각을 한편으로 밀어두며 이그니는 자세를 낮추고 앉은 자세의 시타라에게 모포를 받아 들고 시타라와 코체 사이에 모포를 깔았다. 그리고 코체의 곁으로 다가가 천천히 등을 토닥이며 근육의 이완을 도와주며 다른 팔로 코체의 몸을 들어서 기댈 수 있도록 유도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 의사 선생님이 좀 유능하셔야죠. 치료받게 누워서 다리 좀 펴주시겠어요?”

“네…네……. 죄송합니다…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진정하라는 듯이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 이그니의 노력이 무색하게 베리프처럼 죄송하다고 사과하려는 코체의 행동에 코체가 수감 된 방의 열려있는 감옥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시타라가 팔을 뻗어 감시를 위해 서 있는 군인의 갑옷을 한번 두드리며 부른다.

 

“저기요.”

 

갑옷을 울리는 진동에 상대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앉은 채로 다가온 시타라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신가.”

“환자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안 좋은데 탈수가 올 거 같으니까 따뜻한 물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치료만으로도 만족할 것이지 뭐, 탈수? 허락받았다고 뭐라도 될 줄 알고 있는 건가?”

 

안내를 맡아 들어온 군인 외에 원래 감옥 안에서 감시를 맡고 있던 군인이 시타라의 말을 듣고 비아냥거리자 시타라가 아예 아직 열려있는 감옥 밖으로 나와 바르게 기립하며 군인들을 상대로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아빠처럼 곱게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긴 시간 동안 의사로써 선배들과 마을을 지킨 사람 중 한 명으로 여러분이 제국에 속한 군인인 만큼, 이 정도의 요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까지 거론하며 치료에 관해 필요한 물을 요구하자 비아냥댔던 군인이 시타라 앞까지 다가오려다가 안내를 맡아 들어온 군인의 제지에 막혀 자리에 그대로 멈춘다. 그리고 군인은 시타라의 말이 무슨 소리인가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해왔다.

 

“갑자기 아빠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몇 번이나, 직접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입을 열며 팔찌를 다른 손으로 감싸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말했다.

 

“제국의 부당한 대우로 목이 잘린 의사 시올프, 테리 엘모 부부의 자식 시타라 엘모가 여기 있다고 이렌에서 소리쳐볼까요? 아직 축제 기간이라 전쟁에 관련되었던 사람들도 많고, 에드윈의 이렌이라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너…!”

“잠깐, 행동 조심해라.”

“하지만 선배…!”

 

뭐에 그리 화가 났는진 모르지만, 몇 번이나 시타라 앞으로 다가오려다 선배라 불린 군인의 제지에 군인이 멈춰서자 자신보다 크고, 나이 많아보이는 두 사람의 시선으로 느껴지는 위압감을 버티며 군인에게 시타라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일단 제 목적은 다친 환자부터 보살피는 겁니다. 저는 여기에 한 부부의 자식이 아닌 의사로 왔으니까요.”

 

제국과 울리세의 전쟁에서 제국의 병력에 비해 의사가 부족해 에드윈에서 ‘지원’을 받아 전쟁을 했다. 그렇게 바이트의 시올프와 테리 엘모를 데리고 갔고 그 둘을 군인들이 몰랐을 리는 없을 거라고 시타라는 생각했다. 더욱이 그게 부당한 일이었다면 군인들과 ‘나라 사이’에서도 유명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시타라의 생각이 맞았는지, 시타라의 말에 순간적으로 행동에 제한이 걸렸던 군인들은 시타라의 이어진 말에 안심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가지고, 목적부터 다시 한번 말하는 시타라의 말에 다른 군인에게 행동을 제지당했던 군인이 선배라 불린 옆 군인의 눈치를 살피더니 작은 제스처로 허락이 떨어지자 물을 가지러 감옥의 문밖으로 향한다.

 

후배인듯한 다른 군인이 밖으로 사라지자 입을 열어 시타라에게 머리의 투구까지 벗어들며 묵례하고 살짝 긴 숨과 함께 유감을 표했다.

 

“…엘모 부부의 일은 유감을 표한다. 그것에 대해선 제국에서도 곧 재판을 열어 문제를 일으킨 기사에게 죄를 물을 것이니 원한다면 의견을 전달해주겠다.”

 

깔끔한 인사, 그리고 악의가 하나도 묻지 않은 매끄러운 말에 시타라가 헛숨을 삼키며 두근대는 심장을 다스리며 답했다.

 

“…제국에서도 처우가 부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군요.”

 

감옥 밖, 복도에서 따뜻한 물을 기다리며 군인과 대치해 있는 시타라를 보고 이그니가 코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두 분의…일은 정확히 어떻게 된 건가요?”

 

치료 전, 이그니는 코체의 굳은 근육을 풀어주며 치료를 받기 쉬운 자세로 고쳐주며 코체에게 물었고 쇠창살 밖의 군인의 눈치를 한번 본 코체가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오신 건 아니…셨군요?”

“징집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분들의 이야기만 들었어요. 좋은 일도 아니니 기억을 굳이 상기시킬 수도 없으니 자세하게 물을 수도 없었고요. 그냥 적군이 아닌 제국군에 의해 목이 잘리셨었다고…일이 있어 저희 마을 분들과 붙어있을 순 없었기에 자세한 일은 모르는 상태죠.”

 

일이라고 얼버무리는 이그니의 말에 코체는 대충 사정을 짐작했는지 시타라의 등을 한번 바라보고 자신과 대화 중이었던 이그니에게 다시 시선을 옮겼다.

 

“제가 갇힌…이유를 밖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별로 좋은 대화 방법도 아니고 질질 끄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라 그냥 바로 말해줬으면 싶은 이그니가 원하는 바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의 가장 취약한, 마주하기 싫은 부분도 무기로 쓰는 시타라를 한번 살펴보고 이그니가 코체의 말에 답했다.

 

“동료분들이 전쟁 중에 게브하르트의 정교, 이그니교를 욕해서 갇혔다고 말하더군요.”

 

조용조용 말하기에 잘 안 들릴 법하지만, 무언가 서로 대화하고 있다는건 알아챈 군인이 편하게 이야기하라는 듯 시타라와 이그니를 한번 보고는 코체의 감옥의 반대편 방향인 입구 쪽으로 이동해줬고 코체가 기침을 몇 번 작게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있었던 일부터 말하자면 제국군과 저희는 마찰이 없을 수야 없었습니다.…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신을 따르는 자들에 대해 시비를 걸어왔거든요. 그리고 두 분이 얽혔던 소란스러운 일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몇 가지나요?”

 

몇 가지나 있었다는 말에 감옥 밖에서 서 있던 시타라가 자세히 듣기 위해 살짝 감옥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며 되물어보자 누워있는 코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전투가 있고 밤에 게브하르트의 군인이 군용품으로 준비된 마석을 훔치는 걸 저녁을 먹고 지나가던 저희가 목격했습니다. 그걸 도로 그대로 놓으라는 말을 하다가 말싸움으로 번지게 되었고 게브하르트쪽이 테르사를 따르는 겁쟁이들이 제국을 상대로 싸울 줄 아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하더군요.”

“잠깐, 마석을요?”

 

이번엔 이그니, 마석에 대해서 이 중에서 제일 지식이 밝은 이그니가 마석이라는 말이 나오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코체는 전쟁 중에 마석의 쓰임에 대해 전달받아 알고 있긴 했는지 그 행동을 막았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손댔던 이유를 제대로 물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 뭐 하는 겁니까?’ 했더니 오히려 뻔뻔하게 내가 개인용으로 가지고 있던 마석인데 잠깐 다른 마석과 비교하면서 떨어트렸던 거 뿐이라고 하면서 챙기려 하고….”

“마석은 하나하나가 값어치가 나가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걸 따로 챙기려 했다고요…?”

 

감옥 밖에 서서 대화에 참여한 시타라가 책으로 봤던 마석의 가치를 대략적으로 생각하고 의아함을 나타내자 이그니가 계속 말해달라는 듯이 코체를 바라보았다.

 

“네, 그러다가 부끄럽게도…여태까지 참아왔는데도 직접적으로 테르사님을 욕하는 말을 들어 그쪽은 이그니님의 가르침이 도둑질이냐고 한 것으로 몸싸움이 번졌습니다. 그 다툼을 말린 게 근처에 있던 두 분이셨고…”.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분명한 상태라지만 면전에서 본인에 대한 모욕을 들었음에도 당사자인 이그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표정을 최대한 관리하며 코체 모르게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한창 대화하다가 갑자기 눈앞에 상대가 말이 없어지니 환자인 코체는 닳을 만큼 닳아있는 상태로 자신이 말을 잘못했는지 생각하는 역효과를 낸 것 같지만, 이그니의 속을 어느 정도 아는 시타라는 이그니가 표정을 감추는 게 많이 늘었다는 생각했다.

 

분위기로 인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 채 시간이 좀 지나자 대야에 물을 담아 감시병이 들어오자 문 앞으로 자리를 옮겨줬던 군인이 받아서 들어 다가와 그걸 시타라에게 건네줬다.

 

끊긴 대화의 내용을 곱씹으며 시타라가 받아들고 언제 상대가 문을 닫을지 모르기에 감옥 안의 이그니에게 나와달라고 말하려던 순간 이그니가 다 안다는 듯이 감옥 밖으로 나와 군인과 대치하듯 쇠창살에 기대섰고, 시타라는 안심하며 안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조용히 물이 담긴 대야의 물을 덜어 가방에 가지고 왔던 병에 담아 누워있는 코체의 입가에 내민 시타라가 물을 마시는 것을 도와주고 확인한 뒤, 아까보다 편한 자세로 누운 코체의 상처를 한번 흩어보고 의료용 날붙이를 꺼내들고 이전에 환부에 감겨있던 더러워진 붕대들을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다.

 

“치료하는 거 괜찮아?”

“어, 괜찮아. 이런 것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

 

죄인이라는 걸 알리듯 발목 쪽에 달린 쇠공을 일부러 살짝 굴려 시타라가 움직이기 편하게 동선까지 정리해둔 걸 확인한 시타라가 이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이그니가 시타라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코체의 상처를 살피며 고통에 발버둥 칠 시 제압하려고 같이 들어왔던 이그니가 협조적인 상황을 위해 밖에 있다 보니 시타라는 최대한 빠르게 치료하기 위해 손을 바삐 움직였다.

 

천 위에 치료에 당장 쓸 필요한 약초와 도구들을 하나씩 놓은 시타라가 오염된 붕대를 치우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이내 다른 것들로 상한 부분을 헝겊에 따뜻한 물을 적셔 깨끗이 닦아내며 가벼운 상처들 위주로 다시 붕대를 감아준 다음 가장 심한 곪은 부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염이 심한 물에 닿으셨었나요? 다친 부분에 형체를 알 수 없는 파편이 살짝 들어가고 다른 오염물이 딱지에 엉켜서 붙어있네요.”

“다치고 돌아오던 길에 폭우로 인해 다리가 부서진 곳을 건너왔습니다…. 원래는 다른 나라에 머물러 기후가 잠잠해지고 올 계획이었으나….”

“…어쩔 수 없네요. 이거 좀 아프실 겁니다.”

 

군인 신분으로 전쟁에도 다녀왔지만, 현재는 징집 당시의 건강한 몸 상태가 아니기에 염려 가득한 경고를 전한 시타라가 코체에게 두껍게 감은 천을 입에 물려주며 오염물을 걷어내기 위해 몸으로 괜찮은 부분을 누르고 치료를 이어나갔다.

 

눌러지는 감각과 함께 상처 부위를 헤집는 고통이 찾아오자 최대한 참긴 참는다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코체의 비명이 퍼져나갔고, 시타라는 의사 생활에 익숙한 비명을 들으며 곪은 부분에 박힌 나무 조각과 걸쳐진 풀들을 소독된 핀셋으로 집어 하나씩 골라 나갔다.

 

감시하던 군인들은 군인 신분에도 전쟁이 끝났다고, 이젠 익숙하지 않은 갑자기 들려온 비명에 감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제 앞만 쳐다볼 뿐이었다.

 

 

-

 

 

“내일도 살피러 와야 할 거 같은데, 얌전히 끼니를 챙기고, 불안하시다면 챙겨드린 물이라도 마시며 계셔주세요. 치료를 위해 회복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상처를 건들고 다시 건드는 작업에 이빨을 갈 만큼(천을 물고 있어 갈진 않았지만) 비명을 지른 코체가 처음과 다른 방향으로 지친 표정으로 시타라가 두고 가는 모포에 누워서 겨우 고개를 끄덕이자 비명을 바로 옆에서 들어야 했던 감시병들이 길을 살짝 터주고 짐을 정리한 시타라와 이그니를 배웅했다.

 

감옥에서 나와 풀어뒀던 무기를 챙기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순간, 한 층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시타라는 발걸음을 돌려 뒤따라 나오던 아까 자신에게 제국의 상황을 알려줬던 군인 앞에 섰다.

 

“아까 건에 관해서…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책 같은 게 있을까요? 말씀하신 기사의 해당 재판은 언제 열리죠?”

 

시타라의 질문이 뭘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아챈 군인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자는 군의 명을 어기고 일방적인 자신의 권력과 가문의 권위를 내세워 우호국의 의사를 죽이고 제국군을 포함한 몇 병사들도 죽였다. 그런 자의 재판은 이그니교의 비호 아래 진행될 예정이라 재판 준비가 조금 오래 걸린다고 하더군.”

“비호요?”

“그자가 자신은 너무나도 신실한 자라 이그니교를 위해 참을 수 없어 했던 일이라고 결백을 내세웠더군. 그게 맘에 들었는지 이그니교가 그자의 무죄를 주장했다네.”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말해준 군인의 말에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전달받은 이그니가 자신의 이름 뒤에 ‘교’를 붙여서 물었다.

 

“…그 이그니교의 가르침이 뭐길래 자신이 나서서 멋대로 사람을 죽인대요?”

 

한번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이그니가 아샤의 검과 검집을 다시 착용하며 잘 대답해주는 군인을 향해 몸을 돌리자 한번 숨을 들이킨 군인이 천천히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읊어준다.

 

“태양처럼 넓은 마음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듬으며, 때론 불과 같은 성정으로 타인을 핍박하는 이를 불태우리라- 가 이그니교의 가르침이지.”

“거 행하신게 너무….”

 

이그니의 말에 대해 굳이 반론하지 않으며 군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그니교의 일부 사제들 또한 그자가 신전에 들릴 때마다 행했던 악행들을 말하며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네, 제국의 다른 종교인 루에이리교에서도 그자의 죄는 감형의 이유가 없다고 사형을 청하고 있고.”

 

이그니의 뒷말을 이해한다는 듯 이그니의 말을 감추듯 자른 군인이 직접 상황을 전하자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단검을 버벅거리며 착용한 시타라가 조금 수그러든 마음으로 군인을 대했다.

 

“꽤 자세하게 알고 계시네요.”

“자네들이 오기 전 트릭손님이 모시고 있던 분이 본교 소속인 사제님이셨다. 제국을 오가시는 분이시라 바쁜 와중에도 소식을 들려주러 오셨었지.”

“허, 두 분. 아직 안 가셨습니까.”

 

군인의 말에 이어 때마침 나타난 트릭손이 탐탁치 않는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지하를 향한 계단을 내려왔다. 시타라와 이그니를 한번씩 훑어본 트릭손이 계단 앞에 서자 시타라가 가방의 끈을 잡으며 말했다.

 

“내일 다시 치료를 위해 방문해야 할 것 같은 데 약속을 잡으려면 기다려야 할 거 같아서요.”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대며 시타라가 시간을 끌고 있던 이유를 대자 트릭손은 뒷짐을 지고 한칸 높은 계단에서 멈춰서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저희 측에서 말한 건 죄인을 살펴보게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지 후일까진 말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상처가 너무 심하셔서 소독을 주로 할 뿐이었는데도 소독에도 비명을 지르실 정도였습니다. 곪은 상처가 심해 더 늦었으면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었고요. 얼마나 정도가 심각했는지는… 여기 비명을 같이 들어주신 다른 군인분들께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타라의 말에 트릭손이 문 가까이 서 있는 군인들을 한번 살펴보았고 확실히 들어갈 때보다 낯이 많이 어두워진 감시병들을 확인했는지 혀를 차자 시타라는 답을 재촉하며 말했다.

 

“어찌하실 건가요?”

“죄인을 치료한 비용은 줄 수 없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되겠군요.”

“받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대신 내일도, 후일도 치료하게 해주시지요. 원래는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다 소독을 진행해야 회복되는 상처들입니다.”

 

돈을 받을 생각도 안 했다는 시타라의 말에 대변인은 짐짓 당황했다. 계속해서 곤란하다는 의견만 내비치며 확실한 의견은 주지 않고 내려다만 보고 서있는 트릭손에게 시타라가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그리고 제가 안타깝게도 당장 오기 전 새로운 사실을 알아서요. 환자분들과 저는 사건의 관계자더라고요.”

“무슨 말씀이시죠?”

 

시타라의 말에 트릭손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어보았고, 마침 계단 위에 다른 인영이 드리워졌다.

 

“대변인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건물의 입구 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추고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온다. 트릭손이 그의 행동에 놀라 시타라와 대화 중임에도 자신의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이고 사제님, 이런 냄새나는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다뇨.”

 

계단을 내려와 감옥을 향하는 입구 쪽에 나타난 자는 안타깝게도 지난번 피하고자 했던 에드윈 이렌의 미친놈으로 손꼽히는 클리드 에우 레이프였다.

 

“어, 저번에 만난….”

“말할 거야?”

 

트릭손의 말소리가 들려 다른 약속을 잡기위해 대기하고있던 시타라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말을 잇지 못하자 시타라와 같이 누군지 확인한 이그니가 시타라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그니의 말이 내포하는 뜻을 알아챈 시타라는 심각하게 ‘관계자’에 대해서도, 이그니가 지난번에 말했던 ‘불의 정령’에 대해서도 언급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냥 진짜 터트릴까?”

 

둘이서만 들릴 목소리로 이그니가 속닥거리는 사이, 클리드는 트릭손을 지나 시타라와 이그니 앞에 서며 인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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