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관계자캐

관계캐 썰

https://youtu.be/bc4B4cl7S_s


"...진짜 마신다!"

"네~"

공주는 커다란 잔에 거품이 퐁실퐁실하게 떠 있는 맥주를 한 입 들이켰다. 그리곤 맛없다는 뜻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공주의 인중에 하얀 거품이 남은 것을 윌리엄은 손가락을 이용해 닦아주었다. 언제나 몸에 밴 매너가 라스피에게 도움이 크게 되었다.

"맛없어..."

"그럼 술이 맛있겠나요~"

"치, 어른들은 뭐가 맛있다고 마시는 거야?"

"글쎄요~ 전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공주는 맥주를 조금씩 홀짝였다. 쓴 맛이 싫었지만 목을 넘길 때의 탄산의 톡톡 쏘는 느낌과 적당히 부드러운 맛이 마음에 들었다. 윌리엄은 그런 공주를 쳐다보며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언제 그 공주님이 이렇게 크신 거지.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는 싫어. 그러니까 윌, 행복해줘."

"...안타까운 말인데요 제가 행복할 기회는 이미 사라져있어요. 공주님."

윌리엄은 그리 말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분명 공주가 원망스러웠지만 그것은 절대 공주 탓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원망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뒤섞이며 윌리엄은 그렇게 공주 곁을 떠났다. 그러나 공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름처럼 라스피 공주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윌리엄을 구하고 싶어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광장 속, 공주가 생명 전의 마법을 해제 시키려는 그 순간, 윌리엄은 단상으로 뛰어들어 공주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리는 이제까지 라스피에게 해본 적 없던 과격한 짓을 했다. 그 때문에 라스피의 마법진은 파괴되었고 결국 시도는 실패로 남게 되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진 라스피는 윌리엄의 처음으로 듣는 화난 목소리를 들었다.

"미쳤어?!"

"윌...?"

"누가 댁 보고 죽으랬어!? 멍청해 빠지더니 생각이 고작 그거야!?"

"..."

"아직 용서도 안 했는데 멋대로 죽으려고 하지 마!!!"

천둥이 치는 듯 소리가 내려온다. 라스피는 커다란 동공으로 윌리엄을 쳐다보면서 그리 말했다. 윌리엄은 생각해봐도 이 공주가 정신이 나간 건가 싶었다. 그야 라스피에게 들려온 한 마디는 슬픔도 원망도 짜증도 아닌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데?"

너의 대답은 뭐야? 윌. 마치 공주의 보라색 눈동자가 그렇게 말을 거는 것처럼 올곧게 빛나고 있었다. 한 점의 망설임도 들어있지 않은 반짝임이 윌리엄을 잠시 움찔, 하게 만들었다. 험악한 표정을 지은 윌리엄이 소리쳤다.

"그딴 거 묻지 마 내가 알 것 같아!? 적어도 이 방법은 틀렸어!!"

"....큭, 흡 아하하하!!"

웃어? 지금, 웃는 거야? 윌리엄은 어이가 없어 화가 났다. 지금이 웃을 때냐고. 라스피는 그저 윌리엄이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행동해준 것이 신기했다. 내가 처음 보는 모습이네, 그것도 너인 거지? 그동안 보고 싶었어. 항상 어딘가 선을 긋는 네 모습도 난 이해해줄 수 있지만.. 윌, 그래도 넌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가끔은 화를 내고, 웃어도 되고, 울어도 돼.

"네가 그런 식으로 소리치는 거 처음이네!"


"윌... 나랑 췬아개 지내쟈...."

변해도 공주님은 공주님이네, 본질은 변한 게 없구나. 턱을 한 손에 받쳐 라스피를 가만히 응시했다. 웃기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이게 뭐람. 윌리엄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그래요 공주님~ 근데 저희 이미 친한 거 아니었나요? 상처네요~ 라며 조금은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흑흑 소리를 내며 우는 시늉을 했다.

"롸슷피라고 안 불르잔야..."

"뢋슷피요?"

"라슷피이..."

"뭐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라스피라고 불러돨라거~!!!"

공주는 마치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 마냥 땅바닥에 구르면서 떼를 썼다. 이것 참, 꽐라 공주님이시네. 윌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라스피를 구경할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재밌어서 웃음이 절로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품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어요 공주님~ 수풀로 굴러가버렸네요~"

"몰라! 그럼 냐도 이제 닥딱하게 윌리엄이라 부를거야..."

"전 딱히 윌이라 불러 달라고 한 적도 없었는걸요?"

그러면서 바닥에 엎드린 공주의 머리 쪽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여 라스피와 시선을 맞추는 윌리엄이었다. 고개를 든 라스피는 그저 삐진 표정으로 윌리엄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징쨔?"

"네 진짜~"

라스피를 일으켜 세우며 더 마시겠다 징징 거리는 공주를 끌고 숙소로 향했다. 밤하늘이 반짝거리는 별로 가득 차 아름다웠다. 윌리엄의 귤색 동공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자신이 이 철딱서니 없는 공주에게 구원 받았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고마운 마음은 가득 피어났다. 집사였을 뿐인 자신에게 언제나 손을 뻗어준 공주의 맹목적인 호의에.

"윌..."

"네. 말하세요~"

그러나 그것은 라스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둘은 서로가 고마웠다. 

"항상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공주는 푹 잠에 빠졌다. 어린아이의 단잠에 빠진 것 처럼 푹. 윌리엄의 귤색 눈동자가 살짝 미세하게 커졌다. 눈동자는 위에 있는 별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스르륵 내려 라스피에게 향했다. 

"알고 있어요~"

"라스피."

아름다운 밤하늘이 둘을 반짝이는 조명처럼 밝혀주었다. 둘도, 둘의 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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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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