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14
: 거리 속 귀찮은 인연(2)
“미안해…곤란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어쩌다가? 어떤 점이?”
따라오는 기척은 없는 걸 확인한 이그니가 손짓을 하자 둘이 올바를 향하는 길로 다시 나오며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필요한 약초랑 물품을 사려고 가던 길에 길을 모르겠다고 하니깐…처음에는 건물 외형을 물어보고 방금 잡혔을 때는 이그니교라 말하던데 이그니교의 이그니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시타라의 말에 살짝 돌아보자 시타라가 이그니를 한번 확인하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그니가 너무 익숙해져서 깊게 생각을 안 했었지 뭐야.”
시타라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추며 이그니가 옆에서 걷고있는 시타라를 쳐다보며 벙찌자, 시타라가 본인이 말해놓고도 부끄러운지 양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길바닥만 쳐다봤다. 그런 어색한 기류 속에서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한 건 이그니였다.
“내가 익숙해졌다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긴 한데…그, 그! 사람을 그렇게 막 믿고 그러면 안 돼.”
이그니의 말에 시타라가 고개를 들어 이그니를 쳐다봤지만, 이그니 또한 말하면서도 아까의 말 때문인지 고개를 돌려 홧홧하게 열 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었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그으…나만 해도 믿었던 이의 후손들이 힘줬다고 날 욕 먹이고 있잖아? 네 선택을 존중하기야 하겠다만….”
“사실은 어제 꿨던 꿈 때문에 그런가…갑자기 신뢰도가 높아져 버렸어.”
“꿈?”
꿈에 본인이 나왔던 것일까, 궁금해진 이그니가 내용을 물어보자 시타라가 그나마 덜 뜨거운 손등으로 자신의 뺨에 대고 걸으며 말했다.
“네가 어제 이프리트랑 말을 트게 해주면서 보여준 모습 있잖아.”
도무지 잊기 힘든,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그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상대가 정말로 주신 이그니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확실하게 날려줄 수 있는 확신을 주는 존재감. 누구라도 앞에서 불이 사람이 되었다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생각할 정도의 반짝임과 타오르는 흐름의 화려함을 목격한다면 그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샤의 모습 위로 불처럼 일부분이 빛나며 타오르던 모습. 근데 꿈에서는 신체 일부분이 아닌 너라고 완전히 인식되는 모습으로 나왔었거든.”
꿈속에서 본 모습이 마치 눈에서 아른거리는 것처럼, 먼 곳을 바라보는 시타라의 시선이 아침이라 길 이곳저곳을 비추는 햇빛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봐서일까? 너라고 인식할만한 인물이 나와서는 뭘 이것저것 말해줬거든.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말해줄 때의 분위기랑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어서인지…그래서…이그니?”
어느 순간, 옆에서 같이 걸으며 들리던 발걸음 소리가 멈추고, 뒤에 서 있을 법한 이그니를 향해 시타라가 돌아보자, 시타라를 바라보고 있는 이그니의 표정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아샤의 얼굴로 지어지는 표정이라기엔 지나치게 서늘하면서도 금방이라도 수면 아래로 잠길듯한 무거운 느낌이었다.
“대화 내용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이그니의 표정을 확인한 시타라가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하고, 자신이 꿈속에서 봤던 내용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흘렸다.
“…응. 어렴풋이 생각나는 단어는 ‘꼭’ 이러며 당부하는 말이었어. 나갈게? 그러면서….”
“그래, 꼭 마중 나갈게…꼭 마중 나갈게. 꼭 너를….”
어느새 정리된 표정을 띄운 이그니의 말을 듣고 그 내용이 맞다며 신기하다고, 시타라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꿈에서 들은 말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고, 꿈에서 봤던 풍경이 ‘따뜻하다’고 느껴서인지 시타라 본인에게는 좋은 꿈으로 다가왔던 영향이었다.
“아, 맞아. 그런 말을 해줬었어.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꿈에서의 내 시야가 이상한 거 있지? 꿈에서 누워있었는데 침대 턱 같은 거에 가려져서 그렇게 보였나?”
재잘재잘 자신의 꿈의 장면과 느꼈던 감정을 말하며 다시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시타라의 뒷모습을 보고는 이그니는 또다시 아샤와는 다른 표정으로 웃고 시타라를 따라갔다.
-
올바에 도착 후, 방에 들리는 길에 아침을 주문하고, 늘어난 짐을 방에 놓고 온 두 사람에게 바르프가 다른 테이블에 음식을 내어오며 두 사람 몫의 음식을 가져다둔 좌석으로 안내했다.
꿈 이야기는 아까의 단발성인 이야깃거리였는지, 아니면 이미 누군가에게 털어놔서인지 시타라는 더 이상 꿨던 꿈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평화로운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이상한 사람은 괜찮으려나?”
식기와 그릇이 달그락- 거리며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시타라와 이그니가 오늘 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약초에 이야기가 넘어가다 부족했던 약초를 사오다 만났던 사람에 대해 생각났는지 시타라가 주제를 꺼냈다.
당장 입속으로 들어오는 맛있는 음식과 주변의 편안한 분위기로 인해 아까의 일에 대한 불쾌감은 이미 눈 녹듯 사라진 뒤였다.
“그런 놈을 신경을 다 쓰고 너무 착하다니까.…솔직히 말해서 네가 상처받을까 봐 말 안 했는데 걔 길 물어보려던 것도 아니었을걸. 아까 하던 거 보니까 교리를 전도하겠다고 돌아다니던 놈 일 거야.”
“어? 무슨 소리야. 나도 지금은 당연히 알고있지. 도망칠 때 보니까 좀 충격받아 보여서 말 꺼내 본 거야.”
식전 스프가 담겨있던 비워진 그릇의 바닥을 식기로 삭삭 긁던 이그니가 시타라에게 귀찮게 달라붙던 클리드가 생각나 퉁명스레 말했다. 하지만 시타라의 대답을 들은 이그니가 숟가락까지 놓으며 시타라를 쳐다보자 시타라는 슬쩍 손을 놓고 시선을 피해왔다.
“나 안왔으면 어쩌려고 했어?”
“마침 그때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 중이 긴했는데…아니다 이 말부터 해야겠다. 도와줘서 고마워.”
시타라가 고개까지 숙이며 이그니에게 말하자 이그니는 한번 한숨을 쉰 다음 나눠 먹는 음식을 덜어 조각낸 뒤, 자신의 입에 넣고 길게 씹어 삼키곤 말했다.
“당장 어제는 게브하르트의 외교기관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눈에 안 띄기 위해서 안 보였던 거였을걸? 안 그래도 불평불만이 가득했는데 나와서 돌아다닐 리가.”
이그니의 말을 듣자 시장을 자주 오가야 되는 시타라 입장에서 불안해졌는지 식사를 재개하려던 시타라가 식기를 놓으며 불편함을 표했다.
“또 만나지 않겠지…? 그 사람 너무 집요하긴 했어.”
“집요로 끝날 정도가 아니야. 그건 집착이지. 그런 놈이 또 걸리지 않을지 불안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지킬 수단을 마련하긴 해야겠네. 오늘 일 다녀오고 나서 바로 정령들한테 일 처리해달라고 할게.”
“지킬 수단이라 하니깐 생각난 건데, 아샤의 검은 쓸만해?”
“검은 상당히 쓸만한 정도더라고. 검이 안 좋아도 나야 뭐 휘두르면 금방 적응할 거긴 하지만? 그리고 나는 항상 직접 움직이는 쪽이라 그때 다치고 난 후에 움직여본 것도 일부러 재활 겸 몸에 적응하느라고 그런 거야.”
‘어쩐지 그때 말을 진짜 안듣더라. 적응하려고 그런거였구나.’
분명 환자인데도 앓는 소리를 내면서 크게 움직이고 혼나고를 반복하던 아샤를 떠올린 시타라가 아샤의 검을 매는 위치를 한번 살펴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쓸며 고민을 내뱉었다.
“아까 클리드…씨? 같은 사람 앞에선 네 말대로 함부로 힘을 쓸 순 없을 것 같아서. 나도 검을 사둬야 할까? 가끔 치료목적으로 오던 모험가분들이 간단한 검술을 알려주긴 했는데 검마다 사용법이 다를 테니까 새로 배워야 하겠지?”
시타라의 말에 이그니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자신의 입에 넣었던 식사를 몇 번 씹어 넘기고 답했다.
“마법도 만능이 아니다 보니깐 둘 다 쓰는 게 좋긴 할 거야. 검 종류를 따로 생각해둔 건 없고?”
“정말 기초적인 휘두르는 것만 배우기도 했고, 나는 검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근데 너한테 처음에 휘둘렀던 수술 도구처럼 짧고 가지고 다니기 편했으면 좋겠어.”
“수술도구 자체를 쓰긴 힘들테니까…적당한 단검을 이따가 기관에 가기 전에 찾아보는 게 좋겠네.”
“클리드 그 사람 때문에 없던 소비도 생겼네.”
주제를 꺼낼 때 분명히 시타라의 성격에서 비롯된 걱정이었지만 여행의 여비를 생각해야되는 입장에서 늘어난 소비는 신경쓰이는 문제였다. 하지만 둘의 뒤에서 들린 물음은 둘의 무기에 대한 내용보다 거론되는 이름에 대한 경악이 묻어나왔다.
“클리드요? 누구요?”
두 사람이 남이 들으면 살벌하다는 평을 낼 수 있을 만한 만남에 관한 있던 일을 자연스럽게 꺼내며 무기에 대해 고민을 할 적에 어느새 테이블 옆을 지나가던 페찬이 이야기를 들었는지 시타라가 거론한 이름을 되물으며 다가오자 시타라와 이그니는 식기를 입에 문체 두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한 말 괜찮았나?’
‘나 뭐라고 했었더라?’
“클리드?”
다행히 있던 일에 대해서는 못 들었는지, 거론되는 이름만 재차 물어보며 페찬이 아예 시타라의 옆자리에 앉았다.
“클리드 에우 레이프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저를 아까 길을 물어본다고 붙잡았었어요….”
다시 한번 약간 다그치듯이 물어오는 페찬의 반응에 얼떨떨하게 식기를 입에서 빼며 이그니가 답했다. 시타라는 페찬을 놀란 눈으로 동그랗게 쳐다보고있었다.
“이런 미친ㄴ…아니 시타라양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예사롭지 않는 놈에게 걸리셨었네. 괜찮아요?”
욕을 내뱉으려다가 시타라가 그런 페찬의 모습에 아까보다 더 눈에 띄게 놀란 모습을 보고 페찬이 손을 내저으며 말을 고치며 걱정하자 이그니가 빙긋 웃어 보이고는 페찬을 짧게 불렀다.
“페찬씨, 그 사람 유명한 사람인가요? 아까 시타라가 붙잡혀있던 걸 겨우 빼내 왔거든요.”
이그니가 일부러 페찬을 불러가며 아까 있던 일을 덧붙여 물어보자 페찬은 쌓인 게 많았는지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본격적으로 자리까지 잡고 말했다.
“이렌에서 유명한 미친놈이에요. 사람을 으슥한 곳에 끌고 가서는 못 나가게 감금 후에 교리를 따라 낭송해야지 보내준다는 말도 있고, 그 후에는 그 사람의 거주지까지 찾아와 강제로라고 신도를 늘린다고도 하고…다른 곳으로 갔다는 소식이 있길래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필 또 와선….”
“그 정도로 강압적이면 나라에서도 조치하지 않나요?”
페찬이 나열한 클리드의 소문은 상당히 집요함의 흔적이 묻어나왔고, 듣는 두 사람을 질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와중에 이그니는 본인이 오지 않았으면 시타라도 저렇게 당했을것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중간에 에우라고 붙은 성이 있죠? 그건 타국의 ‘귀한’ 손님에게 붙는 중간성이에요. 에드윈의 중간성이 붙을만한 손님으로 귀족이라고 하면 게브하르트밖에 없죠. 그자는 게브하르트의 공작가인 레이프가의 4남이에요.”
생각 외의 거물인 신분에 시타라가 자르던 채소를 식기를 삐끗해 찢어버리고, 이그니가 생각보다 더 답답한 정보에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시자 페찬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타라를 토닥였다.
둘이서 대화할때는 분명 집착이 심한 이상한 사람1로 취급했었지만 페찬의 설명 들은 클리드를 신분 믿고 나서는 귀족가 태생의 미친 광신도가 되기에 충분했다.
“자신은 본교의 5사제라고 소개하며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굴다가 불려갔다고 들어서 두 분 머무는 동안에 편안하게 지내시겠거니 했는데…어쩌다가….”
페찬이 말한 정보와 다른 소개에 시타라가 아예 식기를 손에서 놓고 물었다.
“저한테는 3사제라고 소개하던데요….”
“소환당해서 다녀온 사이에 올랐나? 나라가 어찌 되려고 그놈이 공작가라고….”
“우리…빨리…할 일 하고…떠나버리자.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찬씨….”
그놈에 대해서 더 알아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물어본 이야기는 이그니의 두 가지 이유(하나는 그놈이 제국의 공작가라는 신분, 두 번째는 그 배경을 바탕으로 시타라의 축복으로 발생할 최악의 상황이 그려졌다)로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시타라는 마을 밖에서 절대로 혼자 다니지 말고, 마을에서 굴었던 것처럼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금은 아침이라 조용하지만, 길게 축제 마지막 날까지 즐기다 가시라고 하고 싶었는데 붙잡으면 좋은 일도 아니겠네요. 그놈이 또 언제 꼬일지 모르니. 오늘 코체를 치료하러 간다는 게 2시라 하셨나?”
“큼, 네네 단단히 준비하고 가보려고요. 혹시 베리프씨에게 코체씨가 다친 증상에 관해서 더 상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올바를 소개받을 때 짧게 갇힌 군인에 관한 이야기와 이름을 전달받았던 시타라가 미친놈에게 걸렸다는 사실을 저 뒤편으로 밀어버린 다음 페찬에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곤 베리프를 불러 마저 하던 일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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