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불가, 白

작가노트

天使狩獵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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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寂の形 / The Shape of Silence_ 2058년 개인전

어떤 기억은 몸과 하나가 되어 떼어낼 수 없다.

해말간 사기그릇에 담긴 흰죽, 따뜻하다.

창백한 백자 유골함에 담긴 유해, 차갑다.

백색에 대한 나의 기억은 생과 사를 아우른다.

내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 오타루시는 눈의 고장이다. 이곳의 눈은 수분 함량이 적어 깃털처럼 가볍다. 한편, 겨울은 길고 무겁다. 겨우내 응결된 수분이 두텁고 고르게 쌓이며 지상의 경계를 지워낸다. 회백색 하늘과 지평의 경계도 모호해져 백색의 무한이 펼쳐진다. 천연 흡음재에 사위가 가로막혀, 울음도 웃음도 들리지 않는다. 내뱉은 숨결이 하얗게 퍼지는 형상이 되고, 피가 흐르고 박동하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극한의 정적이 있다. 동토의 땅에 발을 붙이고 삶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 정적과 무한, 매 순간 생명감을 일깨우는 이곳의 겨울 때문이다.

백색의 광석이 풍화되면 백토가 된다. 이 원료를 채굴하여 곱게 분쇄해 정제하고, 물로 세척하여 점성을 띠게 만드는 과정에는 억겁의 시간이 전제되어 있다. 이렇게 긴 세월을 품고서 내 앞에 놓인 백자토는 연골처럼 말랑하다. 이 흙덩어리를 주물러 기포를 제거하고 밀도를 높인다. 물레를 자전축 삼아 회전하는 백토 안으로 손을 밀어 넣는다. 바닥을 넓힌 만큼은 공백, 끌어올리는 움직임은 기벽을 만들고, 그릇의 형태가 갖춰진다. 단 한 번의 손길, 찰나의 스침에도 형태를 완전히 바꿀 가변성을 가진 질료. 굽칼로 기벽을 얇게 깎아내는 순간까지 매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경계를 지나친다. 물성이 변하기 전에, 형태가 결정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미리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기물은 가마 안에서 열기를 견디다 못해 깨어지기도 한다. 훼손된 유골 같은 파편이 실려 나오면, 이 작업을 몇 년을 해왔음에도 초연해지는 법이 없고 여전히 입안이 쓰다.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몇 시간을 걷는다. 눈을 푹푹 밟으면서, 자작나무 껍질을 만지며, 고드름 몇 개를 부러뜨리고, 우유를 나눠마신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다 보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처음부터 다시. 불을 이긴 기물은 마치 땅속에 묻혀있다가 갓 파낸 것처럼 투박하다. 조심스럽게, 한참을 깎아내고, 표면을 연마하고 나서 깨끗하게 씻는다. 그렇게 마침내…….

이 세계에서 영원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빚고 깎아내는 그 순간만큼은 손끝에 영원을 스쳐보았다고 나는 감히 믿는다. 나는 공백 속에서 자유롭게 구상한다. 그릇은 자기 자신 아닌 물질을 담기, 라는 목적론에 의해 안이 우묵한 형태로 정의된다. 그 불변하는 기본형 안에 나는 어떤 미감을, 색감을, 면적과 두께를 깃들게 한다. 머릿속에 그린 형태, 나의 꿈, 몽상의 원형을 물리적 현실로 끌어내는 행위. 이것을 몸을 열어둔다고 표현하겠다. 내 신체와 감각을 관통하여 현현하고자 하는 존재에게 내 손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릇은 존재해 온 이래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품어왔다.

그러니 내가 만든 백자가 흰 벽과 조명의 전시장을 떠나서 누군가의 삶을 배경으로 하기를. 그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같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히 닳아가는 것을, 입술이 닿을 때마다 입자가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그래서 그와 하나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의 몸 안에는 백자가 들어 있다.


Interview_도예가 히로세 시온

Q. 첫 개인전이다. 초심을 짚어볼까. 도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해달라.

A.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까닭은 실체를 만지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도예를 선택하게 된 것은 재료의 물성 때문이다. 공예인의 길을 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선호하는 재료가 생기는데, 내 경우는 흙이었고. 물렀다가 단단해지는 변화가 좋았던 것 같다. 불과 물을 먹는 것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 마음은 여전하다.

Q. 오타루에 정착한 지 2년이 됐다. 홋카이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좋은 점은? 작가로서 어떤 영감을 받는가.

A. 매일 얼음판 위를 걷기 때문에 균형 감각이 늘었다.(웃음) 오타루가 고요한 도시라고 기술했는데, 이따금 행인들이 넘어지며 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미끄럽기 때문에 작품을 운반하는 도중 깨진 적이 몇 번 있었다. 뼈 아프지만, 이곳을 떠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설국의 정경은 언제나 가장 좋은 영감이 되니까.

Q.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신체에 남은 화상 흉터는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수복을 거부하는 이유를 듣고 싶다.

A. 도예는 불을 운용하는 일이고. 깨어진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도예가로서의 책임감과 정체성을 새기기 위한 고집이다.

Q. 오늘의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공예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A. 작품의 기본 형태는 비슷하지만, 미세한 선의 차이에 의도가 겹겹이 녹아있다. 그런 미감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되는데, 요즘은 여느 때보다 사랑과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세운 계획이 있는데, 1만 개의 백자를 빚기. 남은 건 예순셋 정도….

(리빙아트 도쿄 205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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