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tty Bad Guy

[매뉴패치] Pretty Bad Guy 10

"저 왔어요."

"음."

매뉴얼의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가게에 찾아왔던 날로부터도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났다. 사우스힐즈의 누군가가 이곳에서 일하는 패치와 마주하게 된다면 분명 무언가, 그리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던 매뉴얼의 생각과는 다르게 샌드위치 가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저녁에는 분주했고, 패치는 가까워진 듯 아닌 듯한 애매한 거리를 유지했으며, 어머니의 얼굴에도 수심이 깃들지 않았고, 학교는 조용했다.

"안녕하세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친구들이 가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싸구려 치킨너겟이나 몇 조각 주고 마는 카페테리아의 급식 대신 매뉴얼이 시리얼 박스보다도 더 많이 보아온 샌드위치 봉투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는 것, 늘 간식을 입에 달고 살던 다이앤이 과자를 조금 줄였다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슬쩍 체육관을 나서려는 매뉴얼을 스턴이 더 적극적으로 붙들어 놓기 시작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었을까. 친구들은 매뉴얼의 바쁘다는 말을 그의 새로운 친구와 놀러 나가기 위한 핑계 정도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매뉴얼이 반박하는 대신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조금 늘었다. 매뉴얼은 패치의 애매한 태도를 거슬려 했고, 거슬리는 부분을 없애 버리려면 어쩔 수 없이 패치와 친해져야만 했는데, 퇴근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패치와 말 한 마디 나눌 짬도 없었으니 짧은 안부라도 나누려면 매뉴얼은 농구부가 끝나자마자 가게로 곧장 달려가야만 했다. 그리고 스턴과 타냐는 그런 매뉴얼의 바쁜 뒤통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으니 매뉴얼이 답답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 놀러 간다. 그런데 고작 10분 일찍 가서 말 몇 마디 붙이는 것 뿐이라고. 너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오늘은 크레인이냐? 타냐는?"

"과학 프로젝트 마무리해야 한다고 학교에 남았어."

"그럼 다이앤 너는 집에 어떻게 가게?"

"버스 타고 가야지, 한참을 뚜벅뚜벅 걸어야겠지만. 안녕하세요, 패치!"

"좋은 저녁이네."

붙임성이 매뉴얼보다도 좋은 다이앤은 금세 패치에게서 이름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사흘을 연달아 찾아와서는 귀찮게 굴어댄 탓에 패치는 질린 얼굴로 이름 다섯 자를 말해주었고, 신나 하는 다이앤과 이마를 짚은 패치를 매뉴얼은 충격받은 얼굴로 바라보았었다. 뭐 물어보지 말라면서요, 나한테는! 억울함이 꾹꾹 눌러 담긴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자 패치도 낮게 말했었다. 지금은 말 걸지 마, 머리 아프니까.

점심시간이면 늘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던 크레인이 종종 다음날의 도시락을 사러 가게에 들렀고, 타냐의 차를 같이 타고 다니는 다이앤이 자주 찾아와 과제를 하다 갔다. 스턴은 가끔 몰려드는 인파에 뒤섞여 매뉴얼을 놀래키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혹여라도 난처한 일이 생길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패치는 매뉴얼의 친구들이 찾아오면 인사 한 마디를 건네고는 구석진 곳으로 비켜났다.

"뭐 먹을래?"

"햄에그로."

"다이앤은?"

"치킨 파니니! 영화 보러 갈래? 타냐 프로젝트가 이번 주에 끝난대."

"주말에?"

"응. 패치도 같이 갈래요?"

"내가 끼어들 자리는 아닌 것 같네."

이미 한번 거절한 패치에게서 긍정의 답을 끌어내기란 아주 힘든 일이라는 걸 아는 다이앤은 곧바로 거절을 받아들였다. 빠른 수긍에 패치가 보이지 않게 안도하는 것을 알아챈 매뉴얼이 웃음을 참으며 주문서를 뽑았다. 패치와 함께 가게를 지킨 시간이 길어지며 매뉴얼도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패치는 표정을 능숙하게 숨길 수 있다던가, 그럼에도 종종 날것의 감정을 티 내곤 한다던가. 패치는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고 느낄 때면 아주 솔직해지는 편이었다. 애초에 그는 타고난 성격이 솔직한 것 같았다. 다만 영화배우만큼이나 그 사실을 잘 숨길 뿐이지.

"같이 안 갈래요?"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안 쓸 걸요."

"그만, 매뉴얼."

패치에게 속삭이던 매뉴얼이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작게 툴툴거렸다. 알았어요, 그만할게요. 항복의 표시처럼 두 손을 살짝 들어 보이던 매뉴얼이 앞치마의 주머니를 뒤져 찾아낸 초콜릿을 패치에게 던졌다. 가볍게 그것을 잡아낸 패치가 잠시 고민하다 포장지를 벗겨내는 것을 본 매뉴얼이 미소 지으며 주방에서 나온 포장된 샌드위치를 받아 들었다.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이었고, 바쁜 날이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도 말 한 마디 나누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그가 많이 먹지는 않아도 단것을 좋아한다는 것, 선을 넘지 않으면 날 세우지 않는다는 것, 그런 것들. 매뉴얼은 조금씩 패치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안녕, 매뉴얼."

"안녕."

매뉴얼은 무언가 작은 것이 제 팔뚝에 와닿는 걸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작게 주먹을 쥔 채 소리 없이 다가와 있던 한나가 그의 시선에 손을 펼쳐 흔들었다. 평소 그가 즐겨 입는 옷차림이 아닌 편한 운동복인 데다 긴 머리를 위로 틀어 올려 단단히 묶은 채였다.

"무용부 연습?"

"응."

"부지런하네."

"공연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한 달 넘게 남은 거 아냐? 의아하게 묻는 매뉴얼의 목소리에 한나가 깔깔대며 매뉴얼의 팔뚝을 다시 가볍게 때렸다. 한 달이면 한참 부족하다고, 비상이야!

"그래, 그래. 네 열정을 몰라봤다. 미안."

"한 번도 보러 온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있나! 언제 올래?"

"공연 날?"

"세상에, 진심이야?"

다른 반, 하나도 겹치는 게 없는 수업,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 친해지는 게 더 신기하리라 생각했건만 매뉴얼은 한나와도 제법 말을 텄다. 자신과는 다른 부류일 거라 넘겨짚었던 것과는 다르게 한나는 매뉴얼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주변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 성격에다 매뉴얼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다가올 줄 알았고, 노래 취향도 잘 맞고. 춤을 좋아하는 금발의 여자아이하고는 친해질 일이 없을 거라 여겼던 매뉴얼은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시기심 많은 퀸카는 드라마 속에나 있는 거였어.

"미리 보면 무슨 재미냐, 이게 농구 경기도 아닌데."

"잊지 말고 오기나 하셔."

"잊지 말고 초대장이나 보내시지."

"난 그런 거 까먹는 사람이 아니거든. 아까부터 뭘 그렇게 혼자 보는 거야?"

한나가 아슬하게 눈높이 위로 올라가 있는 매뉴얼의 휴대폰 화면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발돋움까지 할 기세인 한나를 배려해 매뉴얼은 선뜻 제 휴대폰을 내밀어 주었다. 영화 보려고.

"누구랑?"

"애들이랑. 요즘은 뭐가 재밌냐? 다 비슷해 보이는데."

"음, 이거랑 이거 많이 보러 가던데."

한나가 화면을 이리저리 넘겨 보며 포스터 몇 개를 손으로 짚었다. 드라마, 로맨스, 액션, 여러 장르를 짚어 보던 한나는 곧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네 친구들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매뉴얼도 한나를 따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잘 몰라. 처음 가는 거라.

"언제 가는데?"

"정해진 건 아직 없는데. 다음 주 내로는 가겠지?"

"그럼...."

말을 잇다 말고 한나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봐야 했다. 수업 전에 다녀올 곳이 있다는 말에 팔을 크게 휘저어 알겠다는 뜻을 내보인 한나가 매뉴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는 곧 멀어져 갔다. 매뉴얼은 총총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 발을 돌렸다. 쟤도 바쁘구만.

"영화 보러 갈래요?"

매뉴얼의 물음에 패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 간다고 말하지 않았나?"

"다 같이는 말고."

매뉴얼이 열심히 설명한 요지는 이러했다.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는 건 가는 거고, 어차피 가 봤자 영화 하나가 전부일진대, 추천받아 보니 재밌어 보이는 건 많더라. 혼자 보러 가는 건 심심하지 않겠느냐. 가는 김에 동네 베이커리 추천도 받으면 좋고. 매뉴얼의 열띤 자기변호를 가만히 듣던 패치는 조용히 일갈했다.

"헛된 수작질이네."

"수작질 아니에요!"

매뉴얼은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려 억울한 마음을 표현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친구랑 같이 놀러 가자는 게 수작질이야? 그 동네 수작은 참 별 볼 일 없구만....

"전제부터가 잘못됐군."

"우리 친구 아니에요?"

"고용주의 아들과 친구씩이나 할 만큼 용감하질 않아서."

"그렇게 이야기할 만큼 우리 가게가 크기라도 했으면 좋겠네."

샌드위치로 세계 정복도 하고 말이야. 매뉴얼이 툴툴거렸으나 곧 그마저도 패치의 손짓에 막히고 말았다. 그만 떠들어, 일할 시간이야. 어느 상사라도 싫어할 수 없을 만큼 성실한 패치의 모습에 매뉴얼은 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을 때려 패서 쫓아내다니 그 망할 중국집 주인은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다며 딴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생각의 끝은 옅은 불만에 가 닿고는 했다. 쿠키 꾸러미를 주며 격 없이 지내자고 했더니, 패치는 정말 그 꾸러미만큼의 거리만을 허용해 주었다. 이만하면 말도 놓고, 일하며 잡담도 하고, 시간 비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시 몰라, 정말 잘 맞을 수도 있잖아. 매뉴얼은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제 휴대폰 속의 연락처 몇을 떠올렸다. 이게 수작질이면 난 지금까지 연애를 서른 번도 넘게 했게.

―이번 주 토요일 오후 세 시

―뭐 보러 간다고?

―NCU 신작!!

교실에서는 수업이 한창이고, 교실 뒤편에 나란히 앉은 매뉴얼과 다이앤의 책상 위로는 쪽지가 바쁘게 날아다녔다. 영화 누가 골랐냐, 하고 매뉴얼이 작은 종이에 끄적여 보내면 곧 다이앤의 신난 글씨가 뒷면을 커다랗게 채워 왔다. 나랑 타냐지! 불만이라도 있으면 당장 나오라는 듯한 쩌렁쩌렁한 대문자의 나열에 매뉴얼은 코웃음 치며 종이를 구겼다. 이번 주 토요일... 책 아래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슬쩍 꺼내 달력을 확인해 보는데, 매뉴얼의 곁에서 작고 낮은 크레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적응을 잘 해서 다행이지, 매뉴얼?"

크레인의 경고에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지만 이미 작은 소란을 눈치채고 있던 생물 선생의 눈초리를 피하기란 늦은 일이었다. 아니카의 푸른 눈이 곱게 휘어지자 매뉴얼도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수업을 안 들은 건 아니고... 마지막에 조금. 애써 자신을 변호해 보려던 매뉴얼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의 말은 종소리에 끊겨 버렸다. 금세 시끄러워지는 학생들의 머리 위로 그날의 과제를 큰 목소리로 공지한 아니카가 다시 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번에는 봐줄게.

"다이앤은 마치고 찾아와."

"결과 나왔어요?!"

"그래. 수업 시간에 떠드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죄송합니다!"

"밝아서 좋네~"

그저 하는 말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게 웃던 아니카가 아, 하며 다시 매뉴얼을 돌아보았다.

"너는 마치고 퍼블리에게 가 봐. 찾더라."

"들어와요."

노크하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매뉴얼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깔끔한 듯 조금은 너저분한 상담실의 자리를 지키던 퍼블리의 녹빛 눈동자가 매뉴얼을 담자 반가운 빛을 띠었다.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응. 잘 지냈니?"

"그럭저럭요."

차, 아니면 초콜릿? 밝게 묻는 목소리에 매뉴얼은 차요, 라고 답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상되기에 긴장하는 저와는 다르게 퍼블리는 걱정 없어 보였다. 지금 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나면, 분명 한참을 잔소리하거나 회유하려 노력할 게 뻔한데. 매뉴얼은 그런 말들을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았지만, 뜨거운 차 한잔과 함께 그 시간은 빠르게 밀어닥쳤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미 잘 알겠지만, 나는 너를 잘 모르니까 이해해 줘."

"네."

"대학 진학은 생각 없다면서?"

매뉴얼은 문득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한 번씩은 꼭 듣는 소리였다. 대학을 안 가기에는 성적이 아까운걸. 정말 생각 없어? 매뉴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앵무새처럼 네, 네, 하는 짧은 대답만 반복했다. 그의 태도에서 이 대화를 불편해한다는 마음을 읽었는지 앓는 소리를 내는 퍼블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좋아... 계획은 있니?"

"졸업하면 가게 일이나 맡아 해야죠."

"아버지가 가게를 하신다고 했지."

상담실에는 옅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마우스를 딸각이는 소리와 마우스 휠을 굴리는 소리만이 작게 들렸다. 아마 퍼블리는 매뉴얼의 이전 성적표를 열어보고 있을 터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다. 이렇게 다들 귀찮게 할 줄 알았다면 덜 열심히 할 걸 그랬다고, 매뉴얼은 딱히 공감하지도 않을 생각이나 했다.

"매뉴얼, 나는 네 진심이 듣고 싶은데."

"이게 제 진심인데요."

"평생 아버지 아래서 일하는 게? 정말?"

"평생은 아니겠죠. 언젠가 분점이 생기면 그건 제가 맡지 않을까요."

"네 성적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데?"

"대학을 가라고 말하기라도 하나요?"

"자영업을 하고 싶은 애들은 경영과 경제를 듣지, 생물과 물리가 아니라."

괜한 반항심에 삐죽 튀어나오려던 매뉴얼의 입이 꾹 다물렸다. 조용해진 그를 알아차린 퍼블리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매뉴얼을 바라봤다. 매뉴얼의 것보다 조금 더 짙은 녹색의 눈은 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당당했다.

"다른 선생님은 몰라도 나는 성적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는 자영업에 전혀 관심 없잖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거야?"

"...저는 대학 갈 형편이 안 돼요, 퍼블리."

"그걸 도와주는 게 내 일이지."

"왜 이렇게 열심이세요? 제 말은, 그냥 내버려 둬도 큰 문제 없잖아요."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 하니까."

퍼블리의 미소에 매뉴얼은 눈을 피했다.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지, 그 말이 맞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루기엔 너무 오래 전에 포기한 꿈이었다. 공부를 더 하더라도, 그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경제적으로 자리 잡고 난 이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퍼블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네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한번 천천히 찾아보자. 초등학교 때 적었던 미래 계획표 같은 건 기억하고 있겠지?"

일주일 줄게. 아주 현실적인 계획표와 현실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계획표 두 개를 써와. 10년 정도면 적당하겠다. 알았지? 밝게 묻는 퍼블리의 목소리에 매뉴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미래 계획표라니, 이제 와서 그런 걸 써 봤자 달라질 게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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