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1차 창작, 커뮤 과록

삣빳뽀의 황지님 커미션, 23.07.10 작업물

공기가 무겁게 침체한다. 코끝에 스치는 묵은 시멘트향,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시커먼 빛깔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행과 열을 맞춰 도열해 있다. 아이들은 마치 군인이라도 되는 양 열중쉬어 자세로 한 곳을 응시한다. 옆 사람과 잡담 하나가 즐거울 나이대의 아이들이 숨소리 하나 없이 긴 적막을 지킨다. 몇몇 아이들의 옷깃은 어딘가에서 심하게 구르기라도 한 듯 찢겨있고, 상처를 급하게 처치한 듯한 붕대 바깥으로는 피가 배어져 나오지만 울거나 앓는 아이는 단 하나도 없다.

아이들의 시선은 오롯하게 한 점으로 수렴한다. 섣불리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숨소리 하나마저도 푹 죽인 아이들의 시선 끝에는 인상이 험악한 덩치 큰 사내가 서 있다. 아직 성장기를 온전히 겪지 못한 아이들을 인형처럼 보이게 만드는 체구, 몸 곳곳에 보이는 흉터와 그을린 피부, 굵은 입술에 물린 시가 하나. 매캐한 연기가 좁은 방안을 한가득 채우지만, 감히 기침 한 번 할 수 없다. 이 역시도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사내는 손에 들린 플립 나이프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허공으로 던지고, 다시 받아내고, 손가락 사이로 노닐기를 반복한다. 한갓진 손가락의 움직임과 다르게, 애초 험악한 인상은 살벌하게 구겨져 있다. 제 앞에 도열한 아이들을 당장이라도 씹어먹을 것 같은 표정. 사내 뒤쪽으로는 두세 명의 어른이 벽에 기대어 있었으나 사내처럼 험악한 낯을 하고 있지 않을 뿐, 심기는 불편한 상태라는 것이 생생히 느껴진다. 착,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플립 나이프의 가죽 손잡이가 사내의 손바닥 안으로 안착한다. 섬뜩하게 일그러진 표정과는 다른 나직한 목소리가 경고처럼 흘러든다.

"알파, 보고해."

처음으로 떨어진 허락이다. 동상처럼 같은 자세를 유지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나와 손끝을 이마에 붙이며 경례한다. 가감 없는 명료한 목소리가 군더더기 없는 말투로 상황을 고한다.

"분대 총원 12명. 현재 원 12명. 예정대로 임무 완수 후 복귀하였습니다."

보고가 끝나자마자 깊은 한숨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제멋대로 숨소리를 내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내가 한 걸음 내디딘다. 칼날이 들리지 않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짓이기며 입을 연다.

"예정대로가 아닐텐데?"

교육 담당인 사내는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 거짓을 고할 배짱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허가가 떨어져야 하므로 아이들은 침묵한다. 긴장된 심장 소리는 마치 포탄이라도 터지는 것처럼 요란하다. 이 자리의 모든 아이가 제발 맥 소리가 남의 귀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고, 마른침을 삼키는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길 바란다.

"무슨 일이 있었지? 솔직하게 보고해라."

진실을 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알파는 역시 걸림 없는 또렷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인다.

"팀원 중 한 명의 돌발 행동으로 임무가 실패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적 무장 인원에게 발각되기 직전, 저와 베타가 무사히…!"

알파의 변명이 끝나기도 전, 사내의 손에 들려있던 나이프가 돌연 칼날을 선뜻하게 빛내며 허공을 난다. 새된 소리를 내며 날아간 나이프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깔끔하게 꽂힌다. 발 옆에 꽂힌 칼날을 내려다보면서 주춤거리는 아이는 루드빅이다. 그러니까, 뭐랬더라. 동생과 함께 이곳에 왔더라나. 18살에, 포탄이 터지지 않은 맑은 하늘색을 눈에 담고 있는 아이였지.

"나와."

칼날을 이용해 아이를 호명한 사내는 느릿하게 손짓한다. 루드빅은 바짝 긴장하여 허락된 열을 벗어나 사내 앞에 선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정상적인 걸음걸이로 꾸미려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그 애처로운 노력이 보이지도 않는지, 사내는 여전히 관자놀이를 꾹꾹 되짚으며 묻는다.

"설명해라. 왜?"

"……동생이, 들킬 것 같았습니다. 제가 시선을 끌면 그사이에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잠시간 정적이 흐른다. 사내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것처럼 돌연 아이의 얼굴을 후려친다. 루드빅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아아, 어지럽지, 저거. 귓바퀴 옆쪽에서 수류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감각. 잘 알고 있지.

"네가 왜 얻어맞았는지 알아?"

내리 매캐한 연기를 내뿜던 시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마치 눈앞에 있는 아이를 이렇게 짓밟고 싶다는 듯, 사내는 떨어진 시가를 사정없이 발끝으로 찌부러뜨린다. 고압적으로 답을 요하는 태도에 루드빅은 하릴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도 못한 채 더듬더듬 답한다.

"저, 저 때문에, 모두가… 죽을 뻔해서, 그래서…."

알파는 사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속으로 질탄한다. 아니야, 멍청아.

"아니야."

알파의 예상한 답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묵직한 군홧발이 뚜벅뚜벅 바닥을 딛는다.

"임무를 실패할 뻔했잖아, 멍청아! 이번 의뢰에 대체 얼마만큼의 선금이 걸려있었는지 알아? 너희 전부를 찢어 팔아도 모자란 금액이야!!"

"하지만… 동생이."

"동생? 아직도 동생 타령할 정신머리가 남아있나? 이 한심한 새끼, 당장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줄까?!"

허튼 변명에 사내의 분노가 바람을 받는다. 휘익, 벽에 기대어 있던 어른 셋 중 하나가 휘파람을 불어 제지한다. 이 상황에서 시체가 나와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고, 아이를 섣불리 죽여봐야 자원 낭비였기 때문에.

"진정해. 진짜로 죽여봤자 자원 낭비야. 아직 처리해야 할 의뢰도 한가득이라고."

사내는 제 앞에 있는 아이를 씹어 삼킬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한 것처럼 루드빅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서 들어 올린다.

"3원칙이 뭐야."

공포에 신경이 절여져 버린 루드빅은 아무 말 못 하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3원칙이 뭐야!!!"

답답한 울음을 견디다 못한 사내가 다시 손을 올리기 직전, 후드를 눌러쓴 금발의 소년이 대신 답한다.

"명령에 따를 것. 생각하지 말 것. 의문을 가지지 말 것."

허락하지 않은 답변이었지만. 이를 지적하기보다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는 것을 우선한 사내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래, 그거야!! 아무 생각하지 말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 명심해,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빌어먹을 소모품, 망가지거나 도태되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이라고 이 새끼들아!!"

화풀이처럼 쏟아지는 폭언에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곳에 있는 이상, 소모품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잘 들어. 다음에도 이딴 식으로 굴면 네 동생이랑 같이 사이좋게 무덤을 파주마.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벌이다. 3일 동안 상자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내려진 명령을 끝으로 드디어 해산 명령이 떨어진다. 모두가 자리를 떠나자, 그제야 제 자리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 쟤는… 그러니까, 실비아였던가. 루드빅의 동생. 무려 3일간 독방행에 처한 오빠를 미처 배웅하지도 못하고 독방 방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애처로운 행동에 알파는 조용히 다가가 조언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어서 방으로 돌아가."

실비아는 울음소리를 억누르며 제 곁에 다가온 알파에게 서럽다는 듯이 항변한다.

"오빠, 오빠한데… 도망치자고 했어. 나 여기 싫어. 근데… 근데, 돌아갈 곳이 없어. 이젠 싫어…."

"루니."

그때, 알파를 루니라고 호명하는 금발의 소년이 후드를 벗으면서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온다. 루니의 눈이 한층 부드러워졌으나 그 미묘한 변화는 겉으로 거의 태가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야, 베타."

"얘는 왜 우는 거야? 난 잘 모르겠어."

베타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실비아를 보면서 의아하고 순수하게 일별한다. 주어진 상황의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루니는 금발 소년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이름이 베타였음을 떠올린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루니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실비아에게 어서 방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베타가 더 이상 우는 아이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방으로 인도하며 작게 말한다.

"글쎄. 네가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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