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2. 캐릭터를 짤 때

ETC by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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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를 받는다.

사이비 아니다. 진짜다. 갑자기 어느 순간 ‘아, 이런 캐릭터가 좋겠다.’하고 설정값이 떠오르기도 한다. 각 잡고 써야할 때도 ‘오? 이거 괜찮은데?’하면서 정수리에 뭐가 뚝 떨어진다. 물론 후자의 경우의 결과는 종종 실패로 이어진다.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생각을 짜내다 보니 진부하거나 맘에 안 드는 결과물이 나중의 나를 실망시킨다.

외관이나 성격, 전투물이라면 포지션과 무기 등은 꽤 초기에 섬세하게 정하는 편인데, 딱 한 가지의 예외가 있다. 이름. 정말 대충 짓는다. 타자기 막 두드려서 짓기도 하고, 이미 있는 말들을 비틀기도 한다. 말장난을 즐기는 편이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뱀’이라는 키워드, 뱀이 천천히 기어가는 효과음에서 ‘서서히’, 그렇기에 그 캐릭터의 이름은 ‘서서희’가 되었다. 또, 맹목적인 목표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눈치를 많이 보는 캐릭터가 있다-그래 시발 꿈파 자캐다 몇 년이나 묵혔지?- 늘 이해해야만 했으니 키워드는 ‘이해’, 그렇기에 이름은 ‘이혜하’가 되었다. 아님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이름 후보다. 악보 제목이 ‘문리버’였기에 ‘문리버’, 마침 인터넷을 켰는데 나무위키-심심하면 나무위키 타고타고 들어가서 정보 읽기 놀이를 한다-에 아비누스 페이지가 보여 ‘아비누스’, 슈크림 먹고 있어서 ‘슈’, 그냥 달이 보여서 ‘천월하’ 등등.

그래서 선 이름 후 방치라, 나도 모르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뜻이 나름 캐릭터의 본질과 연관되어 뜻밖의 서사를 만들기도 한다. 비앙카의 뜻은 ‘순수함’이라는 뜻인데, 인외적 존재가 점점 감정적 사고를 넓혀가며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죽어가는 삶이 참 이름값을 따라간다.

외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평범함이다. 엄청 특이한 외관 디자인을 선호하지 않는다. 공식 미인 설정을 잘 짜지 않는다. 단, 이건 한 캐릭터로 모두가 놀아야 하는 상황으로 제한한다. 금발, 백발, 금발, 갈발, 적발에서 가장 많은 캐릭터들이 탄생한 것 같다. 그리고 부연으로도 ‘말라비틀어진', ’색이 죽은‘, ’끝이 갈라진‘ 등 좋은 머릿결이 아니라는 상황도 강조한다. 혹은 곱슬을 강조하거나 하는 식이다. 보통 외관에서 평범성이 도드라지는 캐릭터들은 내면이 강하거나 주인공형-악역이나 말라비틀어진 캐릭터군은 아니라는 말이다-에 가깝다. 반대로 외관이 화려하거나 미인 속성을 받은 친구들은 종종 어딘가 빠그라졌다. 그 예로, 피뇨엠, 이름 없는 공주-아가페라 불렸다-와 르상티망-저명한 화가의 그림 중 하나-, 메르헨 듀스-연쇄살인마-, 에니샤 앙글라즈 등이 있다. 물론 이런 계혈이 많다~ 정도지 정형화된 상황은 아니다. 이혜하만 봐도 추녀 속성에 성격까지 박탈감, 우울, 질투로 가득 차있어 좋은 반례로 작용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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