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지운 이유는, 이유는.
그만큼 용서할 수 없는 상실이였나보다.
난파선을 꿈 안에서 지운 자는 밀려온 난파선을 보고 그 난파선에 삐죽빼죽 튀어나온 목재의 가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이름도 모르는 난파선 따위 지나쳐 걸을수도 흉하고 두려워 태울수도 있었던 것 허나 왕은 가지를 붙잡고자 한다 하지만 그 나무가지마저도 난파선의 허상이라면. 그 난파선의 주인이 사실 나였다면.
노아가 몸을 기댈 곳을 찾아 앉은 이유는 비단 열감 때문이 아니였다. 언젠가 부실하게 지어진 지붕 밑자락으로 새어들어올 상기될 기억을 버틸 수 없으리라는 작은 두려움 또는 확신의 탓이였다. 도려낸 기억은 언젠가 제 자리를 찾아 다시금 흘러들어온다면 다시금 내 안에 자리잡아 붙을까. 아니면 이미 길을 잊어버려 내 안에 들러붙을까. 어느 쪽이든 나의 것을 되찾는 것인데. 왜 이리 두렵고 괴로울까. 더이상 네가 없기 때문에? 상실을 거머쥔 자의 아픔을 아는가. 노아는 알았다. 상실을 유실한 자의 환상통을 아는가. 노아는 이제 막 알아가고 있었다. 신뢰. 맹새. 충성. 끝없는 믿음… … 인간의 생존본능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괴로워 죽어갈 현자가 되는 대신 살아갈 바보가 되는 것을 택하는 생존본능이란. 그것을 헤집기 위해 본능또한 헤집는 꼴이란. 입꼬리는 더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아릿한 울렁임에 장갑 낀 손등으로 하관을 가렸다. 하늘을 잃은 태양이 울분을 삼켰다. 울분은 버거운 목넘김을 가지고 있었다. 이내 나즈막한 한숨.
“ 자네를 정말로 신뢰하고 아꼈다면. 이리 죽게 둬서는 아니되었을 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네는 아직도 내게 충신이 되고자 하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가볍지 못할까… 내가, 자네를 잊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아. ”
네 부재란 나의 상실이란 믿을 수 없고 믿고싶지 않은 것이라. 위에서 말하던 그 덧없는 생존방식이였을테다. 그리고 노아는 이제 해야할 일이 하나 예정되어가고 있었다. 제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을 나의 신하에게 이별을 소명하는 것. 그의 죽음은 타살이였다 고인 스스로가 유언을 내 앞에서 남기니, 감히 등불을 꺼트린 불나방을 찾아 날개의 출처를 물으리라고. 자네의 날개는 어디에서 태어났나. 왜. 도대체 왜. 불을 보고 달려들 것이면 태양을 향해 날아오다 녹아버리지 왜 등불을 찾아갔나. 불에 달려들어 죽을 나방아. 너는 왜 태양이 아닌 등불을 꺼트렸나. 그리하여 왜 태양을 뚫어버려 초승의 형태를 만들었냐. … … 어디에 묻혔는지 태워졌을지 잠겼을지 모르는 것을 찾아가야했다. 양지 바르지 못한 곳이라면 다시금 자연으로 되돌려보낼 시간을 늦추어 예를 다해야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 모든 일의 첫 발걸음은 결국 내가 내 상실을 끌어안는 것이랬다.
“ … 나 또한. 날 무너트리려 자네를 부러트린 그들에게 분노하네. ”
사건사고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대뇌이다보면 느껴지는 빈 공간이 있다. 손길에 놀랄지언정 내치기는 커녕 그 사람의 손을 잡아 끌려와주길 바라며 잡아 끌던 것. 그 기억을 더듬으면 이내 끌려오는 중력에 의하여 흩날리는 푸르른 하늘빛 머리카락. … … 이런 것을 또한. 너의 존재이고 나의 기억이니. 부러 말하지 않았다. 아직 불확실한 너의 존재가 내게 더더욱 가슴 저리게 하기 전에, 나의 것을 조금 더 담아내자.
“ …또한. 내가 자네를 그리워하길 바라나? ”
그리 말해주게. 그래야 끝에 끝에서, 이내 언제 또 사라질 나의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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