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의신]해가 뜨지 않는 낮
5주차 주제 : 극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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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하늘은 어슴푸레했다. 아주 흐릿한 별이 반짝이고, 맑고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가득 채웠다. 검푸른 하늘 아래로 쌓인 눈이 희미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조의신은 몇 차례 호흡했다. 겨울 특유의 내음이 호흡 위로 쌓인다. 이런 곳으로 여행을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막상 이곳으로 오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약간의 한기가 일었으나 그것 이상으로 새로운 감회가 있었으므로.
그래, 이곳도 나쁘지 않았다. 황지호가 추천하는 것들 중에 나쁜 것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오천 년을 산 호랑이의 연륜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 테니…….
“…….”
주위로 잠잠한 고요가 가득하다. 조의신은 하늘 위의 흐릿한 별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망막 위로 검푸른 밤하늘이 가득 담긴다. 그는 익숙한 곳이 아닌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했다.
**
황호가 갑자기 북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모든 일이 끝나기 한 달 전쯤의 일이었다. “조의신. 이번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나?”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북유럽으로 여행을 같이 가보는 것은 어떤가?” 그 말은 뜬금없는 구석이 있어, 조의신은 머릿속으로 계획들을 세워보며 은광고의 정원 내부를 거닐다 말고 그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여행을?”
“지금 가면 극야를 볼 수 있을 거다. 나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여행 장소로 적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 이 몸도 꽤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쳤다.”
“그래서 한반도를 두고 해외로까지 나가겠다고?”
“그래. 조의신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해가 뜨지 않는 낮이지. 그것도 괜찮지 않나? 별이 아주 잘 보일 거다. 어차피 모든 일이 다 끝난 이후를 가정한 게 아닌가.”
새벽별인 너는, 어둠이 사라진 낮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바람이 불어 한차례 황호의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해가 뜨지 않는 낮이라. 그래, 그가 바라는 것은 분명 극야極夜이다. 황호는 차라리 계속해서 해가 뜨지 않기를 바랐다. 조의신이 그 햇살 속에 영영 숨어질까 두려웠던 탓이다. 조의신은 황호의 모호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곱상한 눈매 안, 항상 웃음기 가득 담아 빛나던 눈동자 가득 서린 그 감정을. 삼킨 말을 듣지 못하였음에도 조의신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직감했다. 왜였을까? 호의를 기민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이임에도 불구하고…….
“황지호.”
“…….”
조의신은 달빛을 등지고 웃는다. 웃음을 따라 번지는 새하얀 입김. 황호의 눈 안에 서린 모호한 감정에 대해 조의신은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신을 향한 타인의 호의를 민망해하는 이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마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황호란 같은 반 친구였고, 철없는 노친네였고, 호족의 수장이었기에. 황호 또한 그 사실을 사무치게 알고 있다. 그러나 황호가 간직한 감정을 알지 못함에도 그의 은인의 목소리는 사뭇 다정하다. 그렇지만 밤이 영원한 게 아니듯, 낮 또한 영원한 게 아니잖아…….
“하하하! 그것도 그렇지! 내 은인은 언제나 다정하구나. 그만큼 본인 몸도 좀 생각해 주면 좋으련만.”
황호는 결국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조의신은 또 허튼 소리를 한다는 얼굴을 하고서 황호를 노려보았다. 그는 그 시선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웃었다. 사실은, 조의신의 그런 표정 때문에 더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밤하늘 별빛이 반짝인다. 황호가 밤을 바라는 까닭은, 밤이라고 하여 완전히 어둡기만 하지 않은 탓이다. 달이 있고, 별 또한 그 자리를 지키는 탓에. 자신의 이능파 색과 꼭 같은 밤하늘을 등지고 조의신은 서 있다.
곧 노려보던 표정을 풀고 조의신도 따라 웃었다. 다정한 어조, 호의를 가득 담은 웃음을 그린 채로. 아, 황호는 그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다정함을, 겪어본 이들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이래서 그는 해 뜨지 않아 별이 온전히 보이는 낮을 바라는 것이다.
황호는, 그의 은인이 보여주는 그 다정을 ――했다…….
“조의신. 바람이 차다. 이만 우리 저택으로 돌아가지.”
“조금 더 보다가 가. 오늘은 날씨가 좋고, 별들이 꽤 많이 보이니까. 이런 도시에서 별이 이렇게 많이 보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잖아.”
“조의신…….”
평소랑 다른 행동에 마음 한구석이 덜그럭거렸다. 조의신은 아무리 큰일을 앞두고 있어도 전혀 티 내지 않았고, 일이 닥치고 나서야 행동으로 보여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른 행동을 보일 일이 있던가? 그러나 황호는 의구심을 보이는 대신 말없이 조의신의 곁에 섰다. 조의신의 걸음 뒤로 황호의 그것이 따라붙었다. 나란히 서서 걸으며 그 둘은 그 이후로 간간이 이번에 의신이 세운 작전의 상세와, 그 이후에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라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으나, 사실 다른 날과 그다지 다를 것은 없었다.
얼마 후, 황호가 깊은 잠에 빠지기 직전까지도 그 일상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
“다녀올게.”
“위험한 짓이에요, 의신이 형.”
“그렇습니다, 조의신! 차라리 넘어가야 한다면 저나 저기 있는 흰 호랑이가 넘어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해요 적호. 이미 초상 우주와도 거래를 끝냈으니까. 확실하게 위치를 알고 있는 건 저뿐이에요.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성공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게 나라는 걸 은호, 너도 알고 있잖아. 가호로 이어져 있는 너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겠지. 다른 사람이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 됐다면 나도 너희에게 맡겼을 거야.”
조의신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아니, 차분했나? 저택 안을 맴도는 아주 희미한 혈향. 이곳, 저택의 지하에 잠들어있는 이의 영혼의 행방을 찾기 위해 어떠한 일을 행했는지 여기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이가 없었다. 친우였던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걱정 때문일까? 가장 합리적인 작전이었고, 이미 정해진 일임에도 저택에 있는 호랑이들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했던 백호가 입을 열었다. 호랑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조의신. 다시 이야기하지만 호족은 너와 남이 아니다. 황호 또한 너와 남이 아니지.”
“…….”
그렇지만, 조의신은 지금…….
**
언젠가 봤던 책에서 보았던, 그런 풍경이다. 그래, 책으로만 접했고, 황호의 입으로 들었던 극야였다. 분명히 그가 함께 가자고 말 꺼냈던 그곳이다. 사실, 제 입으로 답해주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이 끝나면 같이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던 곳…….
초상우주의 힘을 빌어 차원을 넘어온 그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일순 넋을 놓고 말았다.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는 않아 황호 모르게 찾아봤던 풍경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조의신은 관 속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황호를 분명하게 눈에 담았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자신이 마치 꿈 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악몽이 자신의 곁을 맴도는 것처럼……. 왜냐하면, 이것이 악몽이 아닐 수는 없으니까. 얼마 전의 밤, 그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이후를 기약하던 이와의 끝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황지호는 어디에 있어?
인간으로 환생한 거야?
내가 황지호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어?
황호의 관 앞에 앉은 조의신은, 황호가 대체 왜 자신을 위해서 깊은 잠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악수를 감내한 것인지 영영 답을 내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야 그는 짐작한다. 아마도, 그 또한 자신을……. 밤하늘을 노려보고 있자니 하얀 숨이 파스스……검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온몸에 스밀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주변을 바라보던 조의신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을, 그를 만나러 가면서 이렇듯 조우하게 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가면 극야를 볼 수 있을 거다. 나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여행 장소로 적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 이 몸도 꽤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쳤다.”
저벅, 걸음을 떼자 눈 위로 그의 발모양대로 발자국이 남았다. 조의신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길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찾는 이를 만날 때까지. 깊은 잠에 빠진 그를 찾으러 가기까지. 아름다운 정경이 스친다. 해가 뜨지 않은 낮. 하늘에는 여전히 희미한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 조의신은…….
“그래. 조의신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해가 뜨지 않는 낮이지. 그것도 괜찮지 않나? 별이 아주 잘 보일 거다.”
조의신은, 왜 황호가 그렇게 극야를 보러 가기를 원했는지 조금은 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교신 스킬을 수없이 사용하고 몇 차례 피를 토하기를 반복했다. 조의신은 답을 찾았고, 대가를 바치고 결국 이곳으로 넘어왔다. 황호가 있는 곳이다. 그는,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천천히 떼었던 무거운 발걸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점차 속도를 붙인다. 조의신은 눈 내리는 정경을 지나쳤다. 신단수를 닮은 커다란 나무, 나무가 가득한 숲, 하늘, 하늘, 하늘……. 하늘 위의 별이 반짝였다. 아주 희미한 빛이었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별이었다. 낮에도 눈에 이렇듯 분명히 보이는. 황호가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억을 잃고 환생한 와중에도 이러한 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조의신은 못내 견딜 수 없어진다.
황호는, 기어이 그에게 이 극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황지호.”
한참을 달리던 발걸음이 멎는다. 어떤 인영이 있었다. 조의신은 누구인지 확신하여 이름을 불렀다. 그의 이름은 황지호도, 황호도 아닐 테지만 그저 그를 부르기로 했다. 조의신에게 있어서 그는 언제나 그의 친우인 황호일 것이기에. 극야. 해가 뜨지 않는 낮의 하늘 아래 어떤 청년이 서서 하늘 위로 흐릿한 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그저 별을 눈에 담고서. 조의신의 그 부름에 의아한 낯으로 돌아보는 얼굴. 기억 속의 얼굴과는 달랐다. 닮은 것이라고는 곱상한 눈매 하나뿐인 그 남자를 보며 조의신은 추위로 인해 빨간 손을 내밀었다. 기억하고 있던 이와 전혀 다른 것이 없음에도 그는 확신했다. 다른 이일 리가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데리러 왔어.”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것만 같은 충족감이 인다. 조의신은 언젠가의 밤에 황호를 보며 그러했던 것처럼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아, 어두우나, 드디어 낮이다. 이 지난한 악몽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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