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여율
한 여율의 일상은 단조롭다. 아파트를 나서서 아르바이트처를 가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오전의 대부분은 그 시간으로 소모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름의 볕을 피해 공원에 있는 그늘에서 지금 막, 구입한 핫도그를 입으로 씹어 넘기며 한 여율은 문득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르바이트에서 잘리는 거야 저에게는 흔한 일이었다만, 때마다 그 핑계가 아주 그냥 차곡차곡 갱신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오늘은 뭐였더라. 여율은 반쯤은 맛도 모르고 핫도그를 부지런히 씹어 넘겼다. 손을 탁탁, 털고 가방에서 오전 내 마시던 물을 꺼내 한 모금 꿀꺽, 삼켜 넘긴다. 푸하, 시원스런 소리와 함께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갈색의 머리칼이 한 움큼 쏟아지기 무섭게 손목에 걸린 끈으로 머리를 높게 묶는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듯이.
“…. 핑계도 좋지. 동양인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주제에.”
늘상 비슷한 일로 여율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리고는 했다. 80프로의 경우는 도둑으로 몰렸고 나머지 20프로는 일을 못 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오늘 오전 아르바이트의 경우는 드물게도 20프로의 경우에 해당했다. 물론, 그들이 직접적인 이유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의 눈치로 여율이 추측하고 있을 따름이지.
처음에는 꽤 많이 울기도 했더랬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전에 없던 차별을 온 몸으로 받았으니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조차도 이골이 났는지 어지간한 일에도 여율은 울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일지도 모르고. 그치만 오늘따라 유독 설움이 차올랐다. 그게 날씨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여율은 옷자락을 쭉 당겨 눈 아래를 꾹 눌러냈다. 그럼에도 굳이 눈물을 내비치거나 보이고 싶진 않은데….
“-저기.”
그 때,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여율의 시선이 절로 올라간다. 아직 대낮인데.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오른 생각에 여율의 눈꼬리가 한껏 치켜올라간다. 내가 뭐, 동양인이고 여자인게 그렇게 사는데 힘든 일인가? 이런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여율은 옷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슬쩍 저를 부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
“이거, 쓰세요. 필요해 보이셔서.”
남자는 단정한 어조로 말하며 여율의 앞에 손수건을 내밀었다. 체크무늬의 손수건과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여율의 입술이 절로 벌어졌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며, 짧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훑었다. 아, 경찰제복. 경찰이구나.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을 확인한 여율이 그제서야 남자의 손에서 손수건을 받았다. 작게 고마워요. 중얼이고는 눈 아래를 슬쩍 문지르기도 한다. 그 찰나의 순간 제복에 붙은 명찰을 여율은 빠르게 확인했다.
‘말리부 맨더슨.’ 이 근처에서 근무하는 경찰인가? 온갖 의문이 우후죽순처럼 머릿 속에 무수한 물음표를 만들어냈다.
“그럼, 이만. 그건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율이 거절의 말을 전달하기도 전에 사내, 말리부가 멀어져갔다. 급하게 멀어지는 뒷 모습을 보며 여율은 제 손에 남은 손수건을 괜스레 여러번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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