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삼고초려
어스스팤 메가트론x옵티머스 프라임 선동과 날조
BGM… 이거라도 들으실래여?
범우주적 평화와 공존의 상징인 G.H.O.S.T. 창설 30주년 기념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동료 사이버트로니안이 지적했던 것처럼, 기념식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인류가 사이버트로니안과 정식으로 손잡은 지 30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날이라며 애써 변명했으나 이를 진심으로 믿는 동족은 없었다. G.H.O.S.T.는 필요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 비밀스러운 기구가 정말로 사이버트로니안을 위한 것인지는 그조차도 의문이었다.
옵티머스가 G.H.O.S.T.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지극히 사적인 것도 있었다.
종전을 마음먹었어도, 메가트론은 솔선하여 오토봇 배지를 달지는 않았을 터였다.
메가트론과 같은 편에 있고 싶다는 극히 이기적인 욕망 덕분에 G.H.O.S.T.의 우악스러운 규율을 감내하는 중이라는 건 옵티머스가 올스파크로 돌아갈 때까지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물론, G.H.O.S.T.는 지구의 평화와 사이버트로니안의 생존 같은 중대하고 숙연한 이유 때문이라도 외면할 수 없는 단체이기는 했다. 적으로 맞설 수 없다면 답은 하나였다. 지도자의 매트릭스를 짊어진 프라임은 솔선해서 G.H.O.S.T.가 내미는 목줄을 받아들였고, 본보기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토봇은 G.H.O.S.T.에 합류하기 이전에도 옵티머스의 공명한 결정을 칭송하고 따랐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메가트론은 껄끄러워했다. G.H.O.S.T.와의 협력은 필요한 것이라 인정하였어도 일부 인간이 만든 규칙에 따르는 데에는 반대했다. 인류 전체가 지구에서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율을 소수의 사이버트로니안에게 강요한다면, 그건 괜찮았다. 그러나 G.H.O.S.T.는 특수부대였다. 군대는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진 조직이고 G.H.O.S.T.의 총사령관이 한결같이 사이버트로니안에게 우호적일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메가트론의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지적 생명체는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지만 지구에서 그 권리는 인간이 만든 법률과 조직으로 인해 제한되어 있었다. 인간은 사이버트로니안보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므로 G.H.O.S.T.의 설립 취지는 언제든지 오염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했다.
어쨌거나, 30주년까지는 큰 탈이 없었다. 적어도 옵티머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메가트론은 여전히 G.H.O.S.T.의 요구사항에 불만이 많았고, 옵티머스가 너무 무르다며 투덜댔지만 프라임은 내심 그러한 불평들이 기꺼웠다. 옵티머스는 일개 지도자였다. 전능하지 않은 지도자에게는 쓴소리를 가감 없이 해줄 수 있는 현명한 친구가 필요했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저편에서 옵티머스가 모니터를 스캔하다 말고 그를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다. 메가트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로 옵티머스가 저런 얼굴을 한 다음에는 뭔 말도 안 되는 발언을 뱉어 그의 사고회로를 헝클어놓고는 했다.
30주년 기념식. 인간들의 잔치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나? 옵티머스라면 메가트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지는 않을 터였다. 메가트론은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사운드웨이브를 가까이에 두었던 건 충성스러운 통신장교가 시끄러워야 할 때와 조용히 닥치고 있어야 할 때를 눈치껏 파악했기 때문이었다(스타스크림은 그런 눈치가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알다시피, 메가트론은 인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 작은 머리통으로 별의별 무기를 만들어 낸 지혜와 용기는 존중했다. 그러나 아낀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깔끔하게 선을 긋지 않더라도 메가트론에게 감히 다가오는 인간은 드물었으나, 옵티머스는 인간에게는 한결같이 다정했다.
좀 전까지도 옵티머스는 현수막의 글자 폰트를 어떤 것으로 하면 좋겠냐는 시답잖은 물음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폰트 따위, 알게 뭔가? 넌 우리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제발 자신의 직급과 위치에 맞게 행동해라. 메가트론은 옵티머스를 타이르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옵티머스가 지나치게 인간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심취할 때마다 옛 오토봇들은 프라임의 천성을 운운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굴었는데, 메가트론의 생각은 달랐다. 메가트론은 디셉티콘을 이끌 운명을 안고 태어나지 않았다. 천성이란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았고, 그 결과 여기에 있었다. 현수막에 꽃장식은 지저분해 보일 거라며 진지하게 덧붙이는 그의 리더와 함께.
물론, 프라임과 협력해야 지구에서의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는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옵티머스와 손을 잡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적인 욕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오래전부터, 메가트론은 옵티머스가 궁금했다. 프라임을 알고 싶었다. 호기심은 단숨에 갈증으로 이어졌다. 오토봇의 지도자, 매트릭스가 선택한 프라임, 옵티머스, 그는 누구인가? 끝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옵티머스는 불변했다. 그가 추구한 정의와 자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변한 것은 메가트론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메가트론은 온 우주를 대상으로 펼치던 죽음의 무도를 멈추기로 했다.
옵티머스는 너무나 쉽게 그를 용서했다.
그의 옛 부하들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메가트론을 주시하던 옵티머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가트론은 한 번 더, 의식적으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별 뜻 없는 움직임이었으나 옵티머스는 대화 중인 G.H.O.S.T. 요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가트론에게 다가왔다.
“혼자 있기 지루한가?”
“뭐?”
“생각이 깊어져 우리 둘이 그 안에 숨고도 남을 지경인 것 같던데.”
메가트론이 코웃음 쳤다.
“자넨 숨겨주지 않을 걸세. 어차피 G.H.O.S.T.가 호출하면 좋다고 출동할 것 아닌가?”
“30주년 기념식 때문이라면, 자네도 나와 같이 참석해야 해.”
메가트론이 뭐라 항변하기 전에 옵티머스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이미 정해진 일이고 번복은 없네. 내키지 않으면 짧게 머물러도 돼. 그렇지만 얼굴은 비추고 가게.”
“자네는?”
옵티머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뭐. 있을 만큼 있어야겠지.”
“자네만 혼자 둘 수는 없지.”
“혼자 있지는 않을 거야. 기념식에는 말토 가족도 참석할 예정이네.”
그러니 얼굴만 비추고 가라는 건가? 메가트론은 한 줌의 악의도 없는 새파란 시선을 마주하고 비꼼을 참았다. 옵티머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했다. 내키지 않으면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고 떠나도 좋다는 거였다. 메가트론이 나머지 의무를 떠안은 옵티머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조차 못 한 채로.
메가트론은 고개를 내저었다. 옵티머스에 대한 궁금증은 희석되지 않았다.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머리통을 직접 열어 눈치 없게 반짝거리는 사고회로를 관찰해보고 싶었다.
“아, 방금 그거.”
“그거, 뭐?”
“내가 무슨 생각하는 중인지 궁금해하고 있었지?”
옵티머스가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지구 기준으로 고작 15년을 같이 있었는데 이제는 얼굴만 봐도 속내가 짐작이 가. 예전이었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야.”
“그거 잘됐군. 난 도저히 자네 속을 모르겠던데.”
문득, 메가트론은 15년 전을 떠올렸다. 오토봇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업한 적은 있었으나 그가 디셉티콘과 맞서 싸우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메가트론이 올스파크를 사이버트론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협동 작전에서 제 역할을 다하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옵티머스를 제외한 다른 오토봇은 그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주저했다. 메가트론으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태평하게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적이 된 디셉티콘은 무서운 기세로 그들을 압박해왔고, 서둘러 대응하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터였다. 조급해진 메가트론은 옵티머스에게 ‘교환’을 제안했다. 인간들은 ‘교환’을 의식의 교류, 데이터베이스의 공유, 그런 정도로만 이해한 모양이었지만…….
사이버트로니안이 언급하는 교환은 스파크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했다. 사이버트로니안의 가슴 아래 살아 숨 쉬는 스파크에는 생명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억과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스파크를 감싼 에너지 필드는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여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영구히 흔적이 남았다. 그런 스파크를 온전히 맡긴다는 건 절대적인 신뢰를 의미했다. 성실한 군의관, 충직한 부관, 평생을 함께할 반려라도 스파크를 교환하는 건 신중해야 했다.
사실은 굴욕스러운 결정이었다. 메가트론은 ‘교환’이 일방적이어도 괜찮았다. 자신이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올스파크가 사이버트론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그의 고향이 지구처럼 빛나려면 올스파크가 필요했다. 스파크 하나를 내놓아서 가장 원하는 걸 가장 빠르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옵티머스는 거절했다.
‘메가트론, 난 자네의 스파크를 받을 자격이 없어.’
자격 따위를 논하던 답답한 프라임은 결국 아군과 함께 성공적으로 작전을 완수했다. 작전 후 스페이스 브릿지가 파괴되어 사이버트론으로 돌아갈 길이 요원해졌지만, 뭐. 원하는 바는 이뤘다는 것이 중요했다.
메가트론은 지금도 옵티머스에게 스파크를 내어줄 수 있었다. 아니, 스파크를 내어줄 준비를 끝마쳤다고 표현해야 했다. 그때와 달리 일방적인 ‘교환’은 사양이었다. 옵티머스가 메가트론의 스파크를 기꺼이 받고, 그의 것을 내어준다면 받아줄 의향이 있었다. 스파크를 교환한 상대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니 젠체하는 허세는 금방 들통날 터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디셉티콘을 이끌었던 옛 군주로서의 체면이 있지, 풋사랑에 허덕이는 어린애처럼 대놓고 기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
옵티머스가 하나 더 깨달았다는 듯 탄식했다.
“또, 뭐.”
“옛날 일이 하나 떠올랐는데. 그래서 예전에 스파크 교환을 요구했었나?”
“내가 그랬었나?”
“모른 척하지 말게. 정말로 그 때문이었나? 내 신뢰를 얻고, 내 속마음을 알고 싶어서?”
그거보다는 더 복잡하고 섬세하며 로맨틱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걸 옵티머스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려니 배알이 꼴렸다.
“아니.”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는데 쓸데없이 말이 많군.”
옵티머스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는 켕기는 게 있으면 그런 식으로 말하더군.”
“그런 식? 어떤 식으로?”
“바로 지금처럼, 얄밉게 말이야.”
얄밉다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려던 메가트론이 낯선 기척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옵티머스를 찾아온 인간이 멀지 않은 곳에서 주저하며 둘을 보고 있었다. 메가트론은 손사래를 치며 인기 만점의 프라임을 내쫓았다.
“지난 일은 아무래도 좋아. 어서 가 보게.”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니야, 메가트론.”
옵티머스가 메가트론의 어깨를 살짝 쥐었다가 놓으며 덧붙였다.
“자네가 여전히 날 궁금해하는 게 기뻐서 그래. 스파크 교환은 가볍게 얘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군.”
메가트론은 원래 있던 자리로 유유히 돌아가는 옵티머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오늘도 옵티머스 때문에 사고회로가 엉망이 되고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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