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적법한 여행 2
IDW1 휴전AU 메가트론x옵티머스 프라임
이번 편은 과거입니다 (첫 번째 단둘이 여행S2)(막 이래)
메가트론이 옵티머스 프라임과 휴전을 동의한 날로부터 열 번의 스텔라 사이클이 지났을 즈음에 아이아콘의 임시 내각 앞으로 홀로그램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지구의 인간과 흡사하게 생겼으나 몸집이 두 배는 컸고, 두 쌍의 눈과 파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끝낸 사이버트론의 대표가 은하의회에 참석하여 은하계에 입힌 전쟁 피해에 대하여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사이버트로니안들끼리도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였다. 사이버트론은 오랜 전쟁으로 많은 것이 부족해졌다. 시설 복구에 힘쓸 노동력과 자원이 모자랐고, 한때 적으로 맞서 싸웠던 상대 진영에게 베풀 인내와 자비가 넉넉하지 않았다. 오토봇은 메가트론이 먼저 휴전을 제안했으니 디셉티콘이 진 것이라 주장했고 디셉티콘은 심하게 반발했다. 무엇보다 최악인 건 오토봇과 디셉티콘 진영에 가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던 제3진영의 태도였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오토봇과 디셉티콘 앰블럼을 짊어진 모두를 사이버트론에서 추방하고 싶은 것처럼 굴었다.
몇 차례의 암살 시도와 언쟁 끝에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은하의회로 떠났다. 그들은 사이버트론의 임시 대표로서 청문회에 가까운 회의에 참석하여 다양한 종족의 대표와 정치적인 논쟁을 벌여야 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각오했다. 갑작스레 그들을 체포하여 전쟁 배상금을 뜯어낼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계산을 마쳤다. 하지만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은 눈앞에 놓인 지표까지는 예상치 못했다.
허공에 떠 있는 홀로그램 그래프는 일부 사이버트로니안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였으며, 질문은 총 세 개였다. 사이버트론은 은하계를 향해 적대적이었던 태도를 후회하는가? 옵티머스 프라임이 좋은 지도자였다고 생각하는가? 내전 초기 디셉티콘의 저항이 정당했다고 생각하는가?
세 개의 그래프 바가 동일하게 절반만 차 있는 것을 확인한 메가트론이 옆을 흘끔거렸다. 옵티머스는 평상시처럼 전투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표정을 읽기 어려웠지만, 어깨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 서 있는 덕분에 프라임이 내뿜는 전자기파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사이버트로니안의 스파크가 활성화되어 있는 동안 끊임없이 생성되는 전자기파에는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이나 단편적인 생각이 담겨 발산되기 마련이었다. 옵티머스와 뒹굴며 싸웠던 전적이 있는 메가트론에게는 상대의 전자기파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전투가 한창일 때는 맞서 싸우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에 호승심 넘치는 전자기파를 내뿜어 화답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회의 내내 옵티머스의 전자기파에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메가트론은 그때부터 옵티머스를 신경 쓰기 시작했던 게 분명했다.
“먼 길을 와 준 사이버트론의 대표 여러분. 우리가 직접 조사한 결과와 같이 사이버트로니안은 여전히 깊은 고민과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이버트론 원주민의 절반은 은하 행성들을 대상으로 한 침략 전쟁을 후회하고, 오토봇 지도자가 그들을 끔찍한 전쟁으로 몰아넣은 것과 별개로 디셉티콘의 대의에 회의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우리 은하의회는 사이버트론의 첨예한 이념 갈등에 간섭할 의지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능력 밖의 일임을 인정합니다. 은하의회는 이 시각 이후로 사이버트론에게 가했던 각종 제제를 해지하며 각 행성과 자유롭게 교류할 것을 권장합니다. 또한,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내전으로 피해 입은 행성은 은하의회 기준에 준하여 사이버트론에 개별적으로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최종 결의안을 읊은 자는 아이아콘으로 메시지를 보냈던 두 쌍의 눈을 가진 의원이었다. 메가트론은 저 말도 안 되는 설문 결과는 물론이고 결의안에 일일이 꼬투리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옵티머스에게 팔뚝이 잡히자 신기하리만치 반발하고픈 충동이 사그라졌다. 하긴, 예상했던 것보다는 온건한 결론이었다. 은하의회는 사이버트론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을뿐더러 이후에도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선언했다. 즉, 각 행성이 개별적으로 시비를 건다면 은하의회는 중재하지 않고 뒷짐만 지겠다는 거였다. 이제 잘해봤자 배상금이라는 이름의 빚더미에 앉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주변 행성들이 담합하여 그들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내각이 필요해.’
행성 단위로 파산하지 않으려면 배상금 협상과 행성 간 외교를 맡을 책임자를 서둘러 물색할 필요가 있었다. 전후 처리는 나중에―아니, 메가트론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협상과 전후 처리는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 엄청나게 바빠지겠지만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은하의회가 열린 우주 기지에서 세 번의 사이클만큼 떨어져 있는 소행성 지대에는 만일을 위해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의 동료들이 대기 중이었다. 드리프트와 로디머스, 사이클로너스는 은하의회가 갑작스럽게 둘을 억류할 경우 그들을 구출할 임무를 맡았다. 구출에 실패하더라도 아이아콘에 일이 잘못되었음을 즉각 알려 사이버트론이 무방비하게 은하의회의 공격에 두들겨 맞지 않게끔 조치했다. 메가트론과 옵티머스는 보급형 에너존까지 동력에 쏟아 부어 한 번의 사이클 만에 동료들과 합류하는 귀환 경로를 짰다. 지긋지긋하게 전쟁을 겪은 메가트론과 옵티머스는 연료 섭취의 최소화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있었고, 몇 사이클 정도는 그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지 않아도 거뜬히 버텨냈다.
메가트론이 보급형 에너존을 함선의 엔진으로 주입시키는 동안 옵티머스는 항해 경로를 재설정했다. 작고 아담한 함선의 경로 설정 방식은 구식이라, 사이버트론에서 출발할 때 퍼셉터가 직접 설정을 만져주었었다. 우주에서 미아가 되고 싶지 않다면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몇 번 애먹은 끝에 함선이 재설정된 경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옵티머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실 텐가?”
조종석으로 온 메가트론이 에너존이 담긴 큐브를 건넸다. 로디머스 일행과 합류하기 전에 섭취하는 마지막 에너존이었다. 큐브를 양손으로 받아 든 옵티머스가 전투용 마스크를 해제하지 않고 멍을 때렸다.
“독은 안 들었어.”
에너존을 홀짝거리기 시작한 메가트론이 덧붙였다.
“수면제를 넣을까 고민하긴 했지만.”
“메가트론.”
“자존심 상하더군. 내게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더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근심걱정으로 오프라인 될 기세인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메가트론.”
옵티머스가 차분하게 되물었다.
“회의 자료는 전송받았나?”
“설문 결과를 포함해서 말인가? 받기는 했지만 보도용 자료였어.”
“그럼 원본은 공유하지 않겠다는 거군.”
“정식으로 요청하면 받을 수 있겠지.”
메가트론은 직접 요청하는 대신 사운드웨이브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이 회의에 참석하기로 결론내리기 전에도 은하의회는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하며 몇 번이나 독촉 메시지를 보냈고, 사절단까지 보내 압박을 가했었다. 다소 성급해보였던 행동이 일부 사이버트로니안들의 의견 취합을 숨기기 위한 연막이었다고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었다. 그 ‘설문’이란 것이 협박과 뇌물 없이 진행되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정황을 파악하려면 첩보전에 능한 전문가가 나서야 했다.
어쨌거나 당장 중요한 건 몇몇 사이버트로니안의 불평불만이 가득 담긴 설문 조사 결과가 아니었다. 메가트론은 에너존을 다 마시고 부조종석에 걸터앉았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아.”
“재판에 대한 논의도 재개되겠지.”
“재판? 지금 그게 중요한가?”
메가트론이 질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오토봇과 디셉티콘 대다수는 메가트론과 옵티머스 프라임이 전쟁 범죄에 대한 재판을 받길 원했다. 제3진영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생존이라는 핑계 아래 벌인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옛 수장들을 피고로 세우길 원하는 이들은 한둘만이라도 본보기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진영의 옛 수뇌부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며 일축했으나—스타스크림조차도 기소에는 반대했다—동의하는 이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옵티머스는 시민들이 원한다면 법정에 서겠다고 응답했고, 고지식한 프라임을 말리지 못한 메가트론은 공개 연설을 들은 직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사실, 메가트론이 옵티머스와 함께 은하의회에 출석한 건 지상형 트럭으로 변신하여 법정으로 롤아웃하려는 프라임을 주저앉히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이버트론에서,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행성에서 벌인 학살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면, 메가트론은 기꺼이 그럴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순교자가 될 마음은 없었다.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게 승리의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는데도 휴전을 결심한 건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오토봇을 짓밟고 승리하는 것과 그들을 짓밟은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건 별개였다. 그러니 종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이기적인 결정이었다. 동시에 모두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메가트론은 욕심이 많았다. 그는 사이버트론을 눈부시게 재건하고 싶었고, 재건된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싶었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칭송하며 정의롭고 배곯지 않는 새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다. 옵티머스 프라임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을 때—그의 말을 인용해 부패한 기득권에게 대들었던 오라이온 팍스처럼 여전히 같은 것을 원한다고 확신했을 때 메가트론은 오토봇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정확히는,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사이버트론의 미래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적어도 의회에 출석하기 전의 메가트론은 그렇게 믿었다.
“중요하지. 재판은 피해갈 수 없네.”
예전 버릇 못 버린다고, 옵티머스는 이번에도 메가트론의 의견에 제동을 걸었다.
“오토봇과 디셉티콘은 너무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네. 단순히 휴전을 외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에는 쌓인 앙금이 많아.”
“그래서 우리 둘을 매달겠다는 억지에 응하겠다고?”
“필요하다면.”
“프라임…….”
옵티머스가 재차 강조했다.
“말했듯이, 필요하다면. 지금까지는 절충안을 고민하고 있었네. 하지만 의회에서 제시한 지표를 본 다음에는…….”
“옵티머스.”
고저 없는 부름에 옵티머스가 푸른 옵틱을 끔뻑거렸다.
“나와 자리를 바꾸지.”
“자리?”
“그래. 지금 당장.”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옵티머스는 메가트론이 하자는 대로 했다. 메가트론은 조종석에 앉았음에도 몸을 반쯤 돌려 항로 대신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옵티머스가 까닭을 물으려는 찰나.
“프라임, 지금부터 이어지는 말을 들은 직후 에너존을 마시고 눈을 붙이도록 하게.”
“뭐?”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무슨 권한으로? 옵티머스가 발끈했다.
“그 어떤 지도자도 사회 구성원 전원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 없네. 자네는 이걸 나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가끔씩 짐작 가는 바가 없다는 것처럼 굴어.”
“…….”
“자네 말대로 누군가는 전후 처리에 앞장서야 하지. 하지만 판결이 정해져 있는 재판에 기소되는 건 화풀이밖에 안 돼. 그건 전후 처리가 아니야. 우리가 수많은 오토봇과 디셉티콘을 대표하여 법정에 서야 한다면 무죄 판결의 가능성이 절반 정도는 되어야 하네.”
“메가트론, 자네의 말뜻은.”
“토론하자고 꺼낸 말이 아니야. 생각을 멈춰.”
“아니, 근데.”
“근데, 뭐? 반박은 압수하겠네.”
“무슨…….”
“무슨도 압수.”
옵티머스가 빈정거렸다.
“내 입을 틀어막을 거면 수면제를 타는 게 나을 뻔 했어.”
“안 그래도 후회 중이네.”
정적이 찾아온 둘 사이에 작은 기계음이 끼어들었다. 옵티머스가 마스크를 해제할 때 나는 소리였다. 큐브의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던 옵티머스가 에너존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선은 고집스럽게 정면을 향한 채였다. 메가트론은 동행을 따라 정면의 무한히 펼쳐진 우주를 응시했다.
이제 할 일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전후 처리, 배상금 협상,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의 (사회적) 생존을 돕기.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 가지 문제는 메가트론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휴전이라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옆에 앉은 고집불통을 잘 구슬릴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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