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Just One Bite
트랜스포머원 메가트론x옵티머스 프라임 선동과 날조의 단편
<트랜스포머 원> 엔딩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결말 스포 주의)
다음편 있습니다 (언제 갖고 올지는 모름)
메가트론은 아이아콘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당분간은. 영원히 아이아콘 밖을 맴돌 수는 없었고 언젠가는 프라임을 마주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이버트론에서 아이아콘은 스포트라이트를 과하게 받은 작은 무대에 불과했다. 메가트론과 그의 디셉티콘에게는 더 넓은 기회의 땅이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메가트론이 아이아콘을 외면하게끔 두지 않았다.
운명. 기분 나쁜 말이었다. 모든 트랜스포머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메가트론은 프라임으로 되돌아온 옛 친우를 떠올릴 때마다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를 느꼈다. 그것이 오라이온 팍스에게 매트릭스를 권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물론, 팍스가 기적 같은 의술로 목숨을 부지했다 하더라도 그와 함께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게 현실이긴 했다. 하지만 프라임을 미워하는 것보다 프라이머스와 매트릭스를 비난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메가트론이 아이아콘으로 돌아온 건 지하 50레벨 밑을 탐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이가드, 특히 쇼크웨이브는 지하에 엄청난 무기가 숨겨져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광부였던 D-16은 50레벨 밑으로도 공간이 있느냐고 멍청하게 되물었겠지만, 메가트론은 어떠한 가능성을 가늠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이버트론의 내부 구조를 단순화하면 이랬다. 지표면 아래 트랜스포머들이 거주하는 도시가 있고, 그 밑으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들이 있으며, 내핵에 프라이머스의 스파크가 있었다. 13명의 프라임이라면 지하 곳곳에 숨겨진 ‘미지의 공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겠으나 그들은 이제 후세대를 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메가트론은 작전을 짰다. 지하 51레벨로 통하는 통로를 찾기 위한 양동 작전이었다. 메가트론이 아이아콘 외곽에서 하이가드 몇몇과 함께 난동을 부리는 사이 쇼크웨이브와 사운드웨이브가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 잠입한다. 진입이 어려울 경우, 메가트론이 아이아콘에서 도망치는 척 직접 통로를 뚫고 들어갈 예정이었다.
“아이아콘에서 침입자를 가둬놓을 만한 공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새로 감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까 여기, 여기에 수감되겠죠. 지금 프라임이 당신을 바로 죽일 리 없어요. 처음 수감될 때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되는지를 잘 기억해두셔야 합니다.”
쇼크웨이브는 지하를 탐사한다는 생각에 매우 들떠 있었지만, 미끼가 될 메가트론을 염려해 상세히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작전 개시 당일, 메가트론은 적당히 소란을 피우다 오토봇 뱃지를 착장한 옛 동료들을 때려눕히는 것을 망설이는 척, 두 손을 올리고 항복했다. 함께 왔던 하이가드 넷 중 둘은 황급히 도망치고, 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항복하여 사로잡혔다.
오토봇은 메가트론과 하이가드 둘을 따로 수감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낯선 오토봇이 메가트론을 심문하러 찾아왔고, 아이아콘에 온 이유를 물었다. 메가트론은 그저 웃거나 무시했다. 심문이 난항을 겪자 수감자 대접도 질이 나빠졌다. 제대로 잘 수 없게 매달아놓은 채 심문을 쉼 없이 이어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에너존 연료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직접적인 고문은 삼갔다. 우스우리만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메가트론과 디셉티콘 간부들이 예측했던 상황은 옵티머스 프라임이 수감 시설에 나타나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프라임과 마주한 건 추방 이후 처음이었다. 거친 전투로 먼지를 뒤집어쓴 옵티머스 프라임의 가슴에는 에너존 색으로 빛나는 매트릭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따위 것이 없어도 오라이온 팍스는 늘 눈에 띄긴 했다. 아이아콘의 모든 것은 프라이마 프라임의 색으로 번쩍였고, 팍스는 그에 질세라 활기찬 도색으로 빛났었다. 지금은 복도의 음침한 조명 덕에 그늘져 보였다. 디셉티콘처럼. 표정은 가늠되지 않았다. 잘나신 프라임께서 귀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계셨기 때문이다.
여태 감감무소식이다가 왜 찾아왔지? 메가트론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심문을 하다 짜증이 난 오토봇이 그에게 재갈을 물려놓은 상태였다. 간만에 본 옛 친우의 몰골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옵티머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디.”
메가트론이 시뻘건 눈을 부라렸다. 디셉티콘이 행동을 개시한지 벌써 몇 사이클이 지났다. 프라임이 그의 새로운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메가트론.”
그래도 메가트론은 옵티머스를 계속 노려보았다. 옵티머스는 적의에 가득 찬 시선을 매끄럽게 무시하고는 외부 키패드를 조작하여 창살을 해지했다. 트랜스포머들에게 치명적인 독을 품은 창살이 자취를 감추고,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 옵티머스가 다시 방 안의 키패드를 조작했다. 이때까지도 메가트론은 벽에 연결된 사슬로 양 팔을 벌린 채 엉거주춤 매달려 있었으나, 속박이 갑작스레 느슨해지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두 무릎을 꿇어 바닥에 얼굴을 갖다 박는 것을 간신히 멈춘 메가트론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전기 사슬까지는 풀어줄 수 없어. 사실 지금도 몰래 온 거거든.”
옵티머스는 메가트론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으며 덧붙였다.
“재갈은 풀어줄게. 소리 지르거나 난폭하게 굴면 안 돼. 알았으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메가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엉덩이를 꿈질꿈질 움직여 가까이 다가온 옵티머스가 한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가에 붙인 재갈을 떼어 냈다. 감사 인사는 필요 없었다. 메가트론은 인사치레 대신 프라임이 이곳에 납신 용건을 물어보려 했다.
“잠깐만.”
옵티머스가 메가트론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흉이 진 것 같은데.”
사슬이 팔에 감겨 있어도 이만큼 가까운 거리라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아이아콘으로 오기 전에 결박을 풀고 탈출하는 방법을 최우선 프로토콜로 탑재했으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프라임을 때려눕히고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재갈에 흉 진 입가 따위를 걱정해주는 프라임은 흔치 않은 구경거리였다. 지금은 참아야 했다. 메가트론은 나지막이 물었다.
“왜 왔지?”
“나도 알아. 바로 오고 싶었지만, 다들 안 된다고 하더라고. 적어도 네가 돌아온 이유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참으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버티더라. 그래서, 뭐.”
옵티머스가 그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제자리에 앉았다. 멍청한 프라임은 질문의 의미를 오해한 듯 했지만, 메가트론은 되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내가 온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옵티머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혹시 쿠인테슨과 협력 중인가?”
“아니.”
“날 죽이려 왔어? 매트릭스를 빼앗으려고?”
“넌 내가 바보로 보이나?”
“그럼 됐어.”
뭐가 된 거지? 메가트론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옵티머스가 난데없이 마스크를 해제하여 따질 기회를 놓쳤다. 추방 이후, 아니, 그가 유일하게 신뢰했던 이의 손을 놓아버린 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게 된 얼굴이었다. 아이아콘을 떠나라고 종용하던 때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차분해 보이는 얼굴. 기억하고 있던 낯익은 얼굴과 다른 점이 거의 없어서 일순 메가트론은 화가 치밀었다. 프라임을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곱씹을 때마다 과거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가슴팍을 후벼 팠다.
디셉티콘 뱃지로 가린 그의 상처에서 울화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옵티머스는 팔뚝의 저장 공간에서 작은 에너존 큐브를 꺼내 본인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른 에너존 큐브를 집어 들어 메가트론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자.”
“뭐?”
“아, 해.”
익숙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메가트론은 분노 수치가 일정 이상을 넘어서면 도리어 차분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부 팍스 덕이다. 메가트론은 옵티머스에게 또박또박 고했다.
“싫어.”
“배고플 텐데. 독은 없어. 네가 안 믿을까봐 직접 먹기까지 했는데.”
메가트론이 코웃음쳤다. 네가 독을 쓸 리 없지.
“내 손으로 먹겠다.”
“말했잖아, 사슬은 풀어줄 수 없다고.”
“이 상태로도 알아서 먹을 수 있어.”
“고집부리지 마.”
“해보지 않고 왜 고집 부린다고 매도하는 거지?”
“그냥 아, 해주면 안 돼?”
“내가 왜.”
반박하기 위해 열린 입술 틈으로 큐브가 우겨넣어졌다. 큐브는 순도가 높은 것이었는지 뱉기도 전에 입 속에서 녹아 흡수되고 있었다. HUD에 나타나 있던 에너존 경고 팝업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프라임 덕분에 연료 부족은 면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메가트론은 화가 났다. 정확히는, D-16이 막무가내 친우의 행동 때문에 노발대발하던 옛날처럼 빡쳤다.
“지금 나랑 장난…….”
“쉿, 소리 지르면 들킨다고.”
큐브 하나를 더 꺼내어 메가트론에게 날쌔게 먹인 옵티머스가 안절부절못하며 덧붙였다.
“감시카메라 루프를 걸어놓아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바로 들켜.”
“이런 식이니까 다들 널 못 오게 한 거겠지!”
“너여서 조금 유별나게 군 건 맞아. 하지만 네가 어떤 이유로 돌아왔건 간에 에너존까지 주지 않고 심문한 건 잘못된 거였어.”
메가트론은 옵티머스를 혀로 난도질하고 싶었다. 그는 침입자였다. 아이아콘이 그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면 프라임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그를 경계하고 있어야 했다. 매트릭스를 보유한 프라임이 죽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 감히 위험을 무릅쓰다니? 프라임은 몰랐다. 적의를 가진 침입자에게 호의를 베풀어봤자 살의로 돌아올 뿐이다. 메가트론은 필요하다면 옵티머스를 죽일 수 있었다. 또다시, 얼마든지, 잔인하게.
‘너는 날 죽이는 것도 옳지 않다며 네 오토봇들을 막을 테냐? 그렇게 또 죽고, 버려지고, 다음에는 프라이머스가 널 무엇으로 살려낼까?’
하나만 더 먹자고 달래는 옵티머스의 목소리가 여러 명의 발소리에 묻혔다. 환장하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 옵티머스가 사슬로 자유롭지 못한 손에 에너존 큐브 하나를 떨구고 마스크를 장착했다. 메가트론이 주먹을 쥐어 큐브를 감춤과 동시에 엘리타가 오토봇 가드 둘과 함께 등장했다.
“감동적인 재회는 다 하셨나?”
“엘리타, 내가 다 설명할게.”
“설명은요, 무슨. 현명하고 자비로우신 프라임께서 다 뜻하는 바가 있으셨겠죠. 감시카메라를 고장 낸 것도, 아이아콘 추방자와 마주보고 사이좋게 앉아계셨던 것도, 우리를 따돌렸던 것도 매트릭스가 안배하신 일이죠. 그렇죠?”
“사령관…….”
엘리타의 목소리가 스산해졌다.
“나한테 혼날래, 아니면 재즈와 아이언하이드에게 돌아가면서 혼날래?”
“1절만 부탁합니다.”
“좋아. 따라와, 옵티머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 옵티머스가 메가트론을 흘끔 돌아보았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여 배웅한 메가트론은 홀로 남겨지고서 망연해졌다. 어느새 그는 적으로 만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헤어지는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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