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아몬드, 니켈

선꿈

자놀 by 김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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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알레르기가 생겼다. 평소에 자주 먹던 견과류, 그중에서도 아몬드. 다행히 옆에 누나가 있어서 죽지는 않았는데 여름 캠프 때 빙수 사건 이후로 그런 기분은 처음 느껴봤다. 숨이 막히고 속이 울렁이는 그런 기분. 혹시 몰라 남이 형한테도 말해줬다. 좋아하던 걸 못 먹게 돼서 조금 슬프지만 아몬드 없는 초콜릿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괜찮다. 다른 견과류는 여전히 먹을 수 있기도 했고. 그런데 알레르기 성분 안내에는 아몬드가 없어서 뒷면에 쓰인 글자를 꼼꼼히 봐야 한다. 목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던 걸로 봐서는 분명 조금만 먹어도 큰일 날 테니까. 무섭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심성이 늘어서 좋다고 해야 하나? 성분표를 보는 걸 습관 들이니까 재밌기도 하다.

책상 위에 둔 초콜릿이 사라졌다. 누가 먹기라도 했는지 포장지 한 조각도 안 남아서 결국은 찾지 못했지만. 14일에 시우가 준 거라 아껴두고 있었는데! 누가 먹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벌받을 거야.

금속 알레르기가 존재하는지 정말 처음 알았다. 대체 왜 뜬금없이 생긴 걸까? 어디서 샀는지 모를 귀걸이도 지금까지 잘만 하고 다녔는데. 병원에 가 보니 니켈 알레르기라고 했다.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금속으로 된 걸 본다고 해서 바로 성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앞으론 조심해야겠다.

이상한데, 분명. 어제 초콜릿이 없어진 거에서 모자라 이번에는 지갑까지 털렸다. 도둑이라도 든 건가? 멀쩡한 지폐는 두고 동전만 없어진 걸 보면 대체 뭘 훔치려고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동전만 가져갈 이유가 없을 텐데. 이해가 안 된다. 다른 게 목적이라도 고작 초콜릿과 동전 몇 개를 가져간다니? 대체 누가, 왜 그런 걸까?


중간고사도 끝났으니까, 데이트! 그런 생각으로 시우와 남은 약속을 잡았다. 물론 조시우는 시험을 그다지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기에 당장 시험 직전 주말에라도 남이를 보러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역시 민폐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시험 기간이 되기 한참 전부터 한 약속이었다. 시험 때문에 한참 못 보고 자습하느라 바빠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못했었으니 분명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을 거였다. 그중에서도 남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난 이틀간 이어진 이상한 절도 사건에 관한 것. 애초에 절도라고 하는 게 맞기는 한 걸까? 만약 도둑이 든 거라면 모름지기 현금과 귀중품 같은 것을 노려야 할 텐데, 그런 것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고 심지어는 대놓고 화장대에 올라가 있던 부모님의 귀중품도 전부 그대로 있었으니까. 무슨 도둑이 초콜릿과 동전 몇 개를 가져갈까? 그것도 저금통에 가득 든 것 대신에 지갑에 조금 든 것만? 동전은 그렇다 쳐도 남은 시우에게 받은 초콜릿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먹어놓고 잊어버린 거 아니냔 반응이 대다수였고. 남은 미안하고 서러워서라도 시우에게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시우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선물한 초콜릿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자 약간 서운해한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초콜릿을 무작정 찾아 나설 수도 없으니까. 둘 다 영문을 전혀 알지 못해서, 그저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고 영화도 보고, 저녁까지 먹을까 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서로 집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보는 서로의 얼굴은 무척이나 다정했고 그만큼 그리웠던 얼굴이라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아직은 그 이상 오래 있기 어려운 시기니까. 졸업하고 나면, 아니, 수능이 끝나면 시우랑 내내 붙어 있어야지. 그렇게 정다운 인사에 안타까움을 약간 담아 서로에게 건네고도 남이는 의문이 들었다. 행방은 궁금하지 않으니까, 그저 누가 그랬는지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솔직히 초콜릿이나 동전 몇 개 가져가서 뭘 하겠어, 그러니까, 왜 가져갔는지만 알려주면 안 될까.


시우한테 알레르기가 생겼다. 시우가 방에서 초코바를 먹었는데, 시우는 그걸 먹자마자 숨이 막힌다고 얘기하더니 쓰러지려 했고 옆에 있던 시우의 누나가 119를 불러 다행히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금방 괜찮아졌고 원인은 아몬드였다. 어떡해, 원래 견과류를 좋아해서 초콜릿도 꼭 견과류가 든 것만 먹고 그랬는데. 다른 견과류는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걸 보고 있다가, 문득 시우가 준 초콜릿이 떠올랐다. 아, 아몬드 들어있는데, 그거. 깜박하고 시우랑 같이 먹으면 어떡해?! 놀란 남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초콜릿을 서랍 안 깊숙이 넣었다. 아몬드가 들어있는 음식은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겠다.

시우한테는 알레르기 같은 게 없어서 다행이다. 갑작스럽게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뜻이니까.

시우한테 알레르기가 생겼다. 신기한 걸 보여주겠다더니 동전을 팔에 대고 문질렀는데, 그대로 살이 붉어지더니 문지른 부분이 그대로 부어올랐다. 아니, 그거… 신기한 게 아니라 알레르기잖아! 그대로 병원에 끌고 갔더니 병원에서도 맞다고 했다. 니켈 알레르기라고. 동전에 니켈이 들어있는 건 처음 알았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도 피부에 닿으면 따갑고 가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서, 눈을 뜨자마자 지갑에 있던 동전을 전부 저금통으로 옮겼다. 앞으로 동전은 가지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으니까. 데이트할 때도 조심해야지.

성인이 되고 나서 갑자기 생기는 경우도 있다지만 뭐 어때, 지금은 아무것도 없잖아. 먼저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왠지 안심되면서도 금세 긴장을 완전히 놓게 될까봐 마음 졸이게 되는 걸까. 아, 맞다. 오늘 서랍에서 없어졌던 초콜릿을 찾았다.

내가 서랍에 초콜릿을 넣었던가?

그러니까, 시우에게는, 알레르기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시우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해서 초콜릿과 동전을 옮겼던 걸까? 그리고 대체 왜 그러고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을까? 초콜릿이야 먹어도 되는 거고 동전은 시우가 만지지 않도록만 하면 됐을 텐데. 며칠 동안 궁금해하던 도둑의 정체가 사실은 나였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꿈이라도 꿨나? 아, 그런 거라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은데. 꿈에서 시우한테 알레르기가 생긴 걸 진짜인 줄 알아버려서, 잠도 덜 깬 상태로 그걸 시우한테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했던 거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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