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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 타입 8

1차

본래 지구란 별은 위태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지구는 천천히 멸망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들은 지구의 멸망을 막고자 노력해 보았으나, 잘되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멸망하게 될 거, 그전까지 마음껏 살아보자. 그런 마인드였다.

주형은 폐허가 된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본래 타 연구실에는 잘 오지 않았는데, 변덕이 생겼다. 건전지가 아슬아슬한 손전등으로 내부를 둘러보던 도중, 한 시험관을 발견했다. 유일하게 깨지지 않은 시험관 속에는 한 소녀가 있다.

주형은 능숙하게 시험관을 열었다.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시험관이 열렸다. 그 안에 있는 소녀는 시험관을 나오자마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두 눈동자가 주형을 향했다.

“와아, 예쁘은 사라암….”

소녀의 첫마디였다.

예쁜 사람? 주형은 어이가 없었다. 예쁜 걸로 치면 소녀가 더 예뻤다. 주형은 고민하던 도중, 소녀의 왼팔에 있는 코드를 보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까.

“네 이름은 유리.”

“유리이이?”

“유리이이가 아니라 유리. 뭐, 상관없으려나. 앞으로 그게 네 이름이니까 잘 기억해.”

유리는 눈을 깜빡인 채 주형을 보았다. 어쩐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주형은 적당히 바닥에 굴러다니는 천을 가져다가 유리에게 건네주었다. 쟤에게 맞는 옷이 있으려나. 적당히 넉넉한 사이즈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예상 외로 주형을 잘 따라다녔다. 어미 새라고 각인된 걸까?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주형을 잘 따라다녔다. 누군가 데려가면 좋을 텐데. 그런 바람으로 유리의 코드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왼팔 상단 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소매가 없는 옷만 입히면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리를 데려가지 않았다. 제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 벅찼기 때문이다.

주형이 아는 범위 내에서 유리를 데려갈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쭉 없겠지. 주형은 유리의 코드를 가렸다. 긴 옷을 입히고, 곁을 허락했다. 오랫동안 지낸 탓에 유리가 없다면 꽤 쓸쓸해질 거 같다고 판단했다.

“유리!”

하지만 유리와 지내는 나날이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 시험관에 오래 있었던 부작용일까. 유리는 종종 폭주할 때마다 짐승처럼 행동할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이런 유리를 막아내는 것만으로 벅찼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무난하게 유리를 막을 수 있었을 무렵. 주형은 유리에게 무기를 선물했다. 무기는 길쭉한 낫 형태였다.

“이게 머지?”

“무기. 맨손으로 싸우면 너만 아프니까, 앞으로 그걸로 싸워.”

“아하!”

처음에는 어색했던 무기도, 나중에는 능숙하게 다루었다. 싸우는 유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도 참 무르군.”

“헤헤, 그럴 수 있짜나! 이상한 거 아냐.”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우연히 변덕을 부려 들어가게 된 연구실이었다. 거기서 이렇게 평생 곁을 허락해줄 수 있는 이를 만났다는 건, 과연 우연일까? 제가 저지른 행동임에도 주형은 믿기지 않았다. 뭐, 유리는 즐거워 보이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주형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리는 마치 고양이처럼 고롱고롱 소리를 냈다. 어쩐지 유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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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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