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세대

렘브리안트

탄생.

함장실 문을 열었더니 그가 있었다. 또 시작이야, 새플리는 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보고 있는 그것을 보았다. 입에서 욕이라고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그는 그것에게서 눈을 돌렸다. 내가 드디어 맛이 갔군, 환각을 본다고 메피에게 말하면 당장 자신을 구속 시킬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벽에 살짝 머리를 박았다.

"강제로 독립 시키니까 좋아요?"

자신도 모르게 그 가짜에게 묻고 말았다. 그 무표정이 미안함을 가득 담은 거 같아서 다시 눈을 돌렸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그런 표정 지을 이가 아니다. 이건 그냥 내 환상이야.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새플리 부함장.

"영원히 당신을 원망할거에요."

차마 마지막에 당신에게 하지 못한 말을 툭 내던진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마, 내가 보고 싶은 건 그런 모습이 아니라고. 하, 자기 좋을대로 하는 환각이군.

-새플리

"사라져."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그것을 보며 그리 말하며 새플리는 함장실을 벗어났다.

***

-새플리.

“사라져.”

새플리는 단호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레이안느 헤일로이었던 것은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육신이 사라져도 그의 사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힘과 존재는 인류의 곁에 남아 그들을 보존해야한다.

레이안느 헤일로. 아니, 레이안느 렘브리안트는 손을 뻗어 고개를 돌린 그에게로 그 손을 향한다.

어느것도 느낄 수 없다.

그의 손을 새플리가 지나쳐간다.

홀로 남아버린 렘브리안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인류를 위해 모든걸 바친 그에게 남은 것은 공허와 고독뿐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바라는 것은 인류를 위한 희생이 맞았는가?

하지만 렘브리안트는 이내 그 의문을 집어넣는다.

인류를 지키는 도구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다.

아마도.

*

플래닛이터와의 거래 후, 오로지 인류를 위한 영원의 에너지로만 남기로한 렘브리안트에겐 오로지 고독뿐이었다.

느껴지는 것은 인류가 자신을 활용하여 살아간다는 것과 광활한 고요.

그 사이로 이따금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 준 새플리의 기분이 느껴지기도했지만 헤일로에게 남은 건 무감각뿐이었다.

세월이 흐른 렘브리안트는 플래닛이터와의 거래에서 입은 피해를 어느정도 복구시켰다. 렘브리안트는 신체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렘브리안트는 그러지 않았다.

첫째는 그를 만든 자신의 창조주들의 뜻을 다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금기를 범한 초월적 존재의 출연은 플래닛이터와의 거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하여 렘브리안트는 자신을 그리워하는 인류의 목소리에 침묵했다.

인류는 나아갈 힘을 지녔으며, 그 자격을 완성시켰다.

자신이 그것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렘브리안트는 인류가 그리웠다.

그는 그의 생각보다 더 인류의 삶을 사랑했던것 같다.

그들과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고, 공감하고 또, 싸워나가는.

그들과 어울리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렘브리안트는 미련을 덜어내기 위해, 그의 일부를 받은 새플리를 통해 자신을 일부 재구성했다.

단지 미련을 덜어내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몰아붙여가며 빈자리를 견디는 그를 보아도.

-......

렘브리안트는 남아있던 모든 감각을 차단했다.

-......

렘브리안트는 사고를 정지한다.

-......

렘브리안트는 존재를 잊는다.

-......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

공백 속에서 렘브리안트는 어떠한 접근을 강제로 느낀다.

그것은 렘브리안트의 소멸을 바라지 않는다.

렘브리안트의 눈이 띄어진다.

그곳은 어느것도 담겨있지 않다.

-......

렘브리안트는 다시 사고한다.

안녕, 렘브리안트.

인사를 받은 렘브리안트는 그것이 자신을 창조했음을 느낀다.

레이안느 톰페리아와 유토피아가 아닌, 더 거대한 개념.

렘브리안트는 내게 질문한다.

-태어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렘브리안트는 생각한다.

당신은 탄생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굴러가는 섭리의 일종이라 생각하는가? 무언가의 의도라 생각하는가?

-의도가 있었다면, 당신은 제게 이런 감정을 주지 않았겠지요.

옳다.

나는 의도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대의 의지를 믿는다.

-의지?

그대가 갖고 있는 감정. 사고. 행동.

나는 세상의 구성에 여섯가지 의지를 부여했다.

그것은 나의 의도가 담긴 대화이기도하지만, 동시에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불확실성의 원인이다.

개연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인과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우연과 충동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는. 그저 그렇게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그럼 우리의 탄생과 파괴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대는 인류가 이유를 갖고 태어났다 생각하는가?

혹은, 인류는 태어나는 것에 이유를 붙이고 살아가는가.

그들은 그저 탄생했기에 살아간다.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 또한 마찬가지다.

그대를 삼키려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대의 감정의 원인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태어났기에 살아가며 창조한다.

그대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 우리와 당신은 따라잡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인류의 논리에 갖혀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지마라.

나는 그대의 위에 있으며, 그대는 나의 위에 있으니.

자신을 누군가의 의도라 칭하면 그대는 도구가 될 것이며,

자신을 이해하고 사고를 퍼뜨리면 그대는 세상의 섭리가 된다.

-당신은 섭리입니까? 아니면, 섭리마저 창조했나?

나는.

그 어느것도 아니다.

그대의 의지를 들어라.

-나의 의지?

그대가 바라는 것.

-......

렘브리안트는 눈을 뜬다.

렘브리안트는 다시 코어의 흐름을 느낀다.

렘브리안트는 자신을 사용하는 인류를 느낀다.

렘브리안트는 누군가의 슬픔을 느낀다.

“새플리.”

*

렘브리안트는 그의 ‘후계’를 바라본다.

그는 당신의 후계인가?

-아니, 그는 나의 소중한-

렘브리안트는 잠에 든 새플리를 쓰다듬는다.

렘브리안트는 새플리의 머릿결을 느낀다.

렘브리안트는 의지한다.

-새플리, 깨워서 미안합니다. 일어나보세요.

눈꺼풀이 올라간 보라빛과 마주한다.

“또…”

새플리는 눈을 찌푸렸다.

-제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렘브리안트는 사과한다.

“사과하지마세요.”

-새플리.

“그런 얼굴로…”

렘브리안트는 희망한다.

-저편은 조금 외롭더군요.

새플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렘브리안트는 새플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염치없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렘브리안트는 미소 지었다.

새플리의 머리에서 떼어내는 손 사이로 그리운 감정이 밀려온다.

이윽고 감정은 선명한 감각이 된다.

허공에서 늘어나는 이 느낌은 봉오리처럼 터져오른다.

다가오는 봄의 태양처럼 서서히 타오른다.

이것은 생명의 탄생이다.

“!!”

선명해지는 감각에 새플리가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멀리 떨어진 휘하 함선들의 코어부터 이어지는 힘이 느껴졌다.

헤일로호의 구석구석에서부터 중앙의 코어로 무언가 모여드는 것이 느껴진다.

새플리의 시선이 환상의 ‘헤일로’와 맞닿는다.

자상한 미소가 그곳에 있다.

“함장…님?”

환상은 사라지고 새플리는 다리에 힘을 넣는다.

“이봐- 바보 함장…우왓! 깜짝이야!”

사령관실의 문이 열리고 사령관실로 들어오던 란타나와 부딫힌다.

하지만 새플리는 멈추지 않았다.

새플리가 있었던 사령관실엔 어느것도 남아있지 않다.

“저거… 쉬지않고 일하더니 드디어 미쳤군. 메피스토텔레스를 불러야겠어.”

새플리는 복도를 달렸다.

그를 향해 인사하는 선원들은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존재 하나만을 쫓아 달렸다.

새플리의 빨라진 발걸음은 헤일로의 코어 중심부에 도착한다.

몰아치는 숨을 고르며 잔잔히 고동하는 코어 앞에 선다.

에너지의 파장인 그것은 마치 생명의 태동과도 같이 느껴진다.

새플리의 통신기가 울린다.

[이봐, 플리플리. 란타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괜찮은거 맞아?]

“......”

오로지 새플리의 숨을 고르는 소리만 들려온다.

[뉴플리? 너 어디야?]

새플리는 통신에 집중할 수 없었다.

빛나는 중심 코어에서 피어오르는 것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잠에 빠져있는 듯, 눈을 감은채 태동하였다.

새플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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