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GOV] Alice

※ GOV 238 대의

※ 크레인&매뉴얼 자유로운 해석 지향 (CP Only X)

※ 무맥락으로 둘이 춤을 춥니다.

※ 2021 09 16 | Ghost of You(노래제목) > Alice 로 변경됩니다. 

5SOS- Ghost of You 듣고 썼습니다 들어주세요....

https://youtu.be/-T-vhGL9fP8

Here I am waking up  

Still can't sleep on your side

There's your coffee cup 

The lipstick stain fades with time 

If I can dream long enough  

You'd tell me I'd be just fine

I'll be just fine

  크레인은 눈을 떴다. 몇 개월 전 새로 이사한 방의 벽지가 낯설게 들어왔다. 거대한 체구를 일으킨 크레인은 흐린 눈을 깜박거리며 찌른 듯이 아파오는 이마를 붙잡았다. 

 침대 밑에는 어젯밤 아무렇게나 벗어둔 재킷이 널브러져있었다. 보기 흉하게 구겨진 재킷을 밟고, 크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추가 두어 개 풀린 셔츠를 벗어던졌다. 재킷만 벗은 채로 굴러다니다시피 한 탓에 셔츠는 몹시 구겨져 있었고, 어젯밤 끝단이 축축하던 바지는 말라 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 ... ‘ 

그다지 마시지도 않았건만, 크레인은 다시 아파지는 머리에 눈을 찡그렸다. 자신의 주량은 한 병 반이었고, 분명 자신은 반 병가량에서 멈추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취하지도 않은 채 집에 귀가했던 기억조차 생생했다. 

원인모를 두통을 안고 크레인은 부엌에서 콩나물국을 끓였다.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며 국물이 색을 띠길 기다리는 동안, 크레인은 의자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일을 반추했다. 

모두가 바쁜 시기였다. 채널3의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이른 밤부터 장례식장엔 사람대신 허연 화관들만 수두룩했다. 

“ 조의를 표합니다. “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정사진 앞에서 크레인은 가만 고개를 숙였다. 맞은편의 사람도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잠시 뜸해진 틈을 타 물러난 크레인은 앉지도 못한 채 바닥만 내려보았다. 어느덧 쉴 새 없이 들어오던 사람들이 점점 뜸해질 무렵, 더 오지 않겠다 싶은 크레인은 적당한 구석의 자리에 앉았다. 

미리 준비되어있던 반찬들이 종이접시에 담겨 나왔다. 빨간 육개장엔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나무젓가락을 둘로 쪼갠 크레인은 국물이 튀지 않게 주의하며 식은 튀김을 입에 넣었다. 

  

“ 고생이 많아. “ 

“ 아, 카트리지 이사님. “ 

 장례식장의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두드리는 구둣발 소리. 답지않게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난 카트리지는 일어서는 크레인을 만류했다.

“ 있게, 들어갈 테니. “ 

만류당한 크레인은 말없이 카트리지의 인사를 받았다. 이내 하얀 종이식탁보 위로 말없이 술이 오갔다. 주변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마치 아무도 없을 때 수행원들까지 물리고 찾아온 카트리지의 저의를 크레인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RF이사는 화환만 달랑 보내오지 않았던가. 

“ 다들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렇게 가다니 유감이야. 바쁠 텐데... 어지간히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군.  “ 

 카트리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적게 준비했음에도 반찬은 거의 동나 있었다. 그의 말대로, 검은 금요일 직후라는걸 고려하면 극히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온 것이긴 했다. 

“ 그래도 많이 오셨습니다. “ 

“ 노인네가 해놓은 게 얼만데, 그 덕 본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나. “ 

 고개를 옆으로 돌려 한 잔 들이킨 크레인은 빈 술잔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카트리지는 하나의 잔에만 술을 채워 넣고, 다시 들이키기를 반복했다. 술잔은 다시 탁자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 대략적인 개편안 방향은 자네도 알지? “  

 일곱번째 잔을 비우며, 카트리지가 여상하게 물었다. 채널3에게 그랬듯 크레인은 시선을 아래로 낮추며 대답했다. 

“ 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 

“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

“ ...크레인입니다.  “

“ 그래, 크레인. 이제 자네 인생도 필걸세. 부디 조금만 더 수고해주게. “ 

 그럼 이만 가겠네. 정리 잘하고. 카트리지는 크레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구두를 신자, 어느새 입구 바깥에서 기다리던 경호팀이 두꺼운 방벽처럼 그를 감쌌다. 역시나 그랬다. 놀랄 일도 아니었으니 크레인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별로 먹지도 않은 식사를 앞에 두고, 그는 술잔을 탁자위에 올렸다. 빈 술잔이 가득 메워졌다.

휴대폰의 문자 알림이 울렸다. 채널3의 재산관리인으로부터 그의 유언대로 재산을 모두 처분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채널3의 대리인인 크레인의 서명을 받아야한다는 말이 적혀져 있었다. 띵, 연이은 문자에는 채널3이 거주하던 집의 약도와 주소가 있었다. 

“ 네, 그럼 전부 승낙하셨고,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

“ ..다 끝난 겁니까? “ 

“ 네. 이제 이 집도 팔리는 거예요. 원하시면 잠깐 구경하셔도 괜찮아요. 정이 많으실 텐데. “ 

 텅 빈 집에서 마주한 관리인은 자신을 원래 관리인의 후임이라 밝혔다. 채널3이 살아있었다면 곧바로 갈아치웠을 발랄함으로 보아, 새삼 채널3을 죽였다는 걸 실감한 크레인은 속으로만 신음을 삼켰다. 아니다, 열쇠를 여기 놓고 갈 테니까 앞으로 이 주 후까지만 저한테 보내주시면 돼요. 어느새 훌쩍 떠나버린 관리인의 세심한 배려에 크레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채널3의 집을 오게 된 건 이번이 겨우 두 번째였다. 그의 편의상 법적 문제를 위임받아 처리하긴 했으나, 그는 크레인과는 칼같이 선을 그었었다. 사생활에 대한 까다로운 취향을 자랑하던 그는 단 한 번 크레인을 초대했었는데, 이사들과 제휴업체들의 사교파티때문이었다. 그 일 이외에 그가 크레인을 저택에 들이는 일은 없었다. 사실 그 파티도 마지못해 수락한 것이어서, 크레인은 오직 채널3의 대기실과 연회가 벌어지는 홀의 뒤편에만 머무를 수 있었다. 

 이미 집안의 가구들은 상당 부분 처분된 후였다. 드높은 창 너머로 비치는 햇살에 바닥의 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꾸며졌던 집은 참 황량했다. 사람 손을 안 탄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가구를 나르며 생겼을 먼지가 켜켜이 가라앉아있었다. 넓은 복도. 어디 애니메이션 영화의 고택에나 나올법한 문을 열자 한 벽면에 규칙적으로 늘어선 햇살이 쏟아졌다. 아치를 그리며 박힌 유리들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영영 마주하는 눈을 박탈해갈 것만 같았다. 

방은 복도라기엔 양옆이 제법 널찍해, 방과 방을 잇는 또 하나의 방 같았다. 걸려있던 그림들의 자리는 먼지가 덜 쌓여 비교적 밝았는데, 햇살이 조금 더 길어지면 빼죽 솟은 건물들의 그림자가 벽면에 드리우는 듯했다. 크레인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 오롯한 빛 자체로 떨어져 내리는 휘장을 걷어내며 걸었다. 그러다 그는 가만히 멈춰서서 방을 가득 메우는 빛을 바라보았다. 문득 바람이 분 것 같았다. 

“ 크레인. “ 

“ ..매뉴얼. “ 

 크레인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모를 벗어젖힌 매뉴얼이 창가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 여기서 뭣하냐? 다들 밑에서 주인공님 기다리는데. “ 

“ 현장을 보고 있었다. “ 

“ 아, 하긴. 여기라면 잘 보이겠구만? “ 

 창문 너머로 몸을 쭉 뺀 매뉴얼이 창틀에 팔을 괴었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내려다보던 크레인의  눈에 바쁘게 움직이는 현장이 보였다. 주인공님의 예상 동선과 소요 시간, 만나게 될 NPC의 대사와 미리 구비된 아이템의 성능 재확인을 위해 모두가 번잡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 ... “ 

“ 딱 봐도 근심걱정이 많아 보이네. “ 

“ 아니다. “ 

“ 거짓말 하지 마슈. 다 티 납니다, 비서양반. “ 

능청스럽게 답한 매뉴얼의 눈에도 바쁜 현장이 들어왔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신생 RPG 게임의 도시 저택 배경이었다. 제법 높게 세워져 창가에 서 있는 것만으로는 잘 들키지 않으면서도, 아래가 훤히 보여 남몰래 서 있기엔 딱 좋았다. 다들 자기 일을 수행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막내 치고는 대담한 땡땡이를 치는 매뉴얼을 크레인이 내려다봤다.

“ 여기 와도 되나? “ 

“ 내 맡은 일은 다 끝냈으니 걱정하지 마쇼~ “ 

“ ..다 끝냈다면. “ 

 크레인은 다시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픽셀 그래픽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이질적인, 매끈한, 창가를 짚고 있는 자신의 손과는 다른... 우둘투둘한 픽셀들. 크레인은 맞닫은 이에 힘을 줬다. 

...비서양반. 내가 뭐 하나 가르쳐줄게. 

 크레인을 흘긋 올려다보던 매뉴얼이 창가에서 일어났다. 크레인의 손목을 붙잡아 이끈 매뉴얼은 방의 정 중앙에 딱 섰다. 양 손목이 붙들린 크레인은 얼떨떨함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자. 머리 아플 땐 이렇게 하는 거요. 

 매뉴얼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크레인의 오른 손목을 당기면서, 그도 같이 끌려나갔다. 장난하나 싶은 그의 외눈이 흐려졌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도 전에 크레인은 옆으로 한 발자국 더 움직여야 했다. 

 ...뭐 하자는 건가? 

 춤추자는 거지. 

 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뉴얼은 크레인을 붙잡고 휙 당겼다. 덩치가 무색하도록 그는 매뉴얼한테 끌려갔다. 매뉴얼은 크레인의 손목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구둣소리가 불규칙하게 바닥을 두드렸다. 어느새 크레인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손에는 손목을 붙들어 그럴듯한 자세를 취한 매뉴얼은 천연덕스럽게 방 안을 누볐다. 

어처구니없어하던 크레인도 매뉴얼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 그는 먼저 나서진 않았으나 뒤처진 건 아니었다. 고전 영화처럼 크레인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돌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자신 스스로가 도는 매뉴얼의 손을 위에서 붙잡아주기도 했다. 이따금 매뉴얼은 크레인의 목을 붙들며 뒤로 누웠다. 네모난 픽셀과 마찰하나 없는 그래픽의 시선이 맞부딪힐때즈음이면 그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이 순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환상같았다. 

조금 느린 템포로 이어지는 춤은 엉성했다. 그러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발들이 엮여 만드는 나무 바닥의 울림, 눈부시게 쏟아지는 금빛 휘장이면 한적한 방안을 채우기엔 족했다. 

족했다. 

So I drown it out like I always do

Dancing through our house

자, 그럼. 

매뉴얼은 한 걸음 물러나 허리를 숙였다. 무도회의 휘장대신 금빛 햇살이 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크레인도 허리를 마주 숙이며, 어느 귀족NPC처럼 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다 댔다. 마법 같은 정적이 말려 올라가면 크레인은 고개를 다시 올렸다. 세로로 가는 동공에는 차례로, 정갈한 부츠, 시퍼렇고 이리저리 구겨져 있는 점프수트, 금빛으로 반짝이며 너울지는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목덜미의 잘게 부딪히는 금속음과 함께, 더 고개를 올리면… 

With the ghost of you 

 크레인은 춤을 췄다. RF이사와 카트리지이사를 죽이는데에는 채 이 주조차 걸리지 않았기에, 그는 말끔한 차림으로 저택을 종종 찾았다. 대부분을 정리해 이제 자잘한 장식조차 없는 저택의 복도에서 그는 귀신마냥 발을 옮기고 또 옮겼다. 영원히 이어지는 우주철도를 걷듯이, 디디는 곳마다 사막처럼 부스러지듯, 그는 춤을 추었다. 

복도의 창은 늘 열려있었다. 어차피 훔쳐 갈 물건도 없거니와 이제 곧 넘겨질 텐데 굳이 닫을 이유도 없었다. 크레인도 굳이 창을 닫지 않았다. 그때 매뉴얼과 춤추었던 복도에는 늘 햇살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해가 길게 늘어져 그림이 걸려있던, 비교적 깨끗한 자리에 이르면 방은 저택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 되었다. 전자오락수호대의 차기 인사팀장 크레인은 그 한낮 오후의 유일한 방문자이자 주최자였고, 유일하게 매몰되는 자였다. 

  " 비서님, 보고서 보내드렸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 

크레인은 뒤로 누운 매뉴얼의 등을 받쳤다. 신기루같이 희미한 웃음을 띤 매뉴얼의 손이 단단했다.  

 

  " 크레인비서님, 다음 주 월요일에 RF이사님 장례식이 있다고 합니다. "

한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스텝을 밟을 때, 크레인은 매뉴얼의 손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 카트리지 이사님께는 어떤 화환을 보내야 할까요? " 

 

 나쁘지 않았다. 매뉴얼의 눈동자에 비친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는 이상하리만치 눈부시지 않았다. 

 크레인은 춤을 췄다. 

And I chase it down

With a shot of truth

That my feet don't dance

Like they did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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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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