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의 이야기

2020 빽도 COC관계의 종언 엔딩 그 이후의 이야기

 

 " 어우, 올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집 참 맛집이야, 그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도원은 속으로 지갑의 죽음을 추모했다. 떠나간 임자를 그리는 아련한 눈이 창문밖을 응시하다, 북받치는 억울함에 조금 올라간 눈초리가 백흠을 응시했다. 야무지게 들어간 쌈이 그의 볼을 볼록하게 채웠다. 잡귀 하나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봐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 있는 건가 싶을정도로 깨끗한 사람임에도, 고기를 흡입하는 수준은 귀신 들린 사람보다 더 빨랐다. 

 " 천천히 좀 먹어. 그러다 체하면 너만 고생이다. "

 " 배고팠단 말이야. 그리고 이상한 것도 먹어서 지금 입가심이 좀 필요하다구. "

 " 뭔 입가심? 애벌레라도 먹었어? "

 " 웩! 넌 애벌레가 먹고 싶냐? " 

 " 아니, 이상한 거 먹었다며 . "

 " 여튼, 좀 이상한게 있어. 너는 몰라도 돼. "  

 백흠은 다시 고기를 입안에 쑤셔넣었다. 혹여나 머리카락이 떨어지면 안된다고, 앞머리를 바짝 뒤로 넘긴탓에 드러난 이마가 훤했다. 그 열정에 도원은 혀를 내두르며, 깨작깨작 파무침을 집어먹었다. 

 

 ' 요새 좀 이상하단 말이지. '

 도원은 젓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지난날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한 발짝 늦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 주스도 안마신지 일주일은 된 것 같았다. 특히 붉은 색은 좀.. 꺼리는 것 같았다. 물론 사람이 변할 수는 있지만, 굳이 나누자면 그는 잘 변하지 않는 쪽이었다.

“ 도원아. “

“ 응? “

 밥 두 공기를 깨끗하게 비운 백흠이, 도원을 응시했다. 순간 귀를 막고 싶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으나, 

“ 후식은 뭐야? 육회? “

 이미 늦은 뒤였다. 

“ 내...돈.... “

 한창 털린 도원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고기-육회-떡볶이-빙수까지의 풀코스는..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백흠은 자신의 모든 주머니를 뒤집어 털어보이며 슬쩍 뒤로 물러났고, 그 몫은 고스란히 도원의 것이었다.

“ 째째하게 뭘 자꾸 그르냐, 친구한테 기부 했다쳐. “

“ 야, 경찰 월급이 되면 얼마나 된다고.. “

“ 잘나가는 분이 생색은. “

 한 대 쳐?  지갑을 보내버리다 못해 조각조각 아주 지옥 깊숙한 곳으로 박아넣은 장본인이, 저 반들반들한 얼굴로 배를 두드리는 낯짝이 아주 배알이 뒤틀렸다. 도원은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흉흉한 기세를 감지한 령들이 한 발짝 떨어졌으나 신경을 한움큼도 쓰지 않으며, 살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 어? 누나? “

 누나의 ㄴ이 들리기도 전에, 도원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풀고 누구보다 단정하고 정갈하게 자세를 바로했다. 백흠의 목소리에 돌아본 사람은 도원에게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백흠아? “

“ 누나!! “

 백흠은 누나, 남궁슬흠에게 와락 안겼다. 두 남매는 남이야 알바인듯 뜨겁게 포옹하고서, 서로 한없이 귀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 누나가 왜 여깄어? 지금 업무 볼 시간 아니야? “

“ 아, 방금 이 근처에서 미팅하고 오는 길이었어. 봐봐, 우리 이사님들 계시잖아. “

 슬흠은 뒤로 고개를 까딱했다. 그제야 백흠의 눈에 묵묵히 서 있는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사람들이, 어미새를 따르는 병아리마냥 슬흠의 뒤에서 2열 종대로 서 있었다. 

“ 안녕하세요, 아저씨들! “

 익숙한 얼굴들에 백흠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인자하게 웃으며 목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 중 두엇은 주춤거리다 백흠의 어깨 너머를 보고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 누나, 이따가 밥먹으러 올거지? “

“ 아, 오늘은 출장가는데... “

“ 또 출장가? 언제 오는데? “

“ 글쎄.. 내일모레쯤?  “

“ 오늘 저녁에 가? “

“ 오늘 밤에 가. 저녁은 같이 먹고 갈게. “

  때마침 저 멀리 서 있는 도원에게로, 적갈빛 눈이 느리게 굴러갔다. 사랑스러운 막내동생의 친구에게 흘긋 웃어보인 슬흠은 시무룩해하는 동생의 두 어깨를 붙잡고 다독였다. 

“ 이따 저녁때 알려줄게. 어머니한테 보고해야하는 것도 있어서. “

“ 알았어. 본가로 올거지? “

“ 응. 그런데 친구랑 놀고 있었어? “

 슬흠이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소름돋게 날선 눈이 도원에게 싱긋 웃었다 도원은 침을 삼키며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를 늘어뜨렸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수장 앞에서 긴장하지 않기는 쉽지 않았다. 

“ 이름이.. 도원이었나? “

 슬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주춤한 도원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그를 올려다봐야했다.  

“ 응. 도원아! 우리 누나. 지난번에도 몇 번 봤지? 인사할래? “

인사 안해줘도 돼... 

" ..안녕하세요. " 

" 그래, 안녕~ 우리 백흠이랑 자주 놀아줘서 고맙네. 이야기 많이 들어. "

 듣지마..... 세요 

“ 우리 도원이, 백흠이가 많이 속 썩이지? “

 능글맞게 휘어진 눈이 도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이 많은 의미를 담고 도원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흠은 그저 해맑게 웃고있을 뿐이었다. 그가 백흠을 향해 몸을 돌리는 그 찰나에, 도원은 머릿속으로 현재 슬흠의 범죄이력과 추정되는 혐의중에서 공무원 금품수수건을 읊었다. 다행히 슬흠은 공무원 금품수수 혐의가 없었다. (동생은 있었다.) 

“ 누나로써 미안하네. 대신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

“ 진짜지 누나? 그럼 소고기 사주는거다? “

“ 그래, 친구들 싹 불러, 누나가 다 사줄게. “

 씩 웃으며 검지뒤로 나타난 아름다운 블랙카드의 자태에, 백흠은 함지박한 웃음을 지으며 슬흠의 앞에서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보였다. 팔방팔방 뛰어다니며 사랑해! 사랑해! 를 외치는 자본주의의 노예 남궁백흠.

“ 들었냐? 임도원? 너는 이런 누나 없지? “

 입을 삐쭉이는 한껏 얄미운 자태는 사흘밤낮을 굶고 끓인 라면을 채간 얌체놈이 따로 없었다. 

“ 그거 시스콤이다. “ 

“ 아니거든! “

“ ...뭐? 시스콤? 다시 한 번 말해볼까?  “

  일순간 묵직하게 번뜩이는 눈빛에, 백흠을 제외한 모두가 침을 삼켰다. 도원이 가까스로 철회하려는 말을 꺼내려는데, 

“ 으하하, 시스콤 맞지~ 나는 브라콤이고. 그치 백아? “

“ 우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너는 참 불쌍해. 누나, 우린 우애가 좋은 남매라서 쟤가 질투하는거야. “

“ 하하, 그렇다고 도원이 너무 괴롭히지 말고. “

 슬흠이 뒤에서  폭신하게 껴안자, 보통 사람보다 큰 백흠이 테디베어처럼 쏙 들어갔다. 워낙에 덩치가 크다보니 어지간한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작았다. 

“ ..쟤만 당하는 줄 알아? “

 백흠은 어떻게 누나가 그럴 수 있냐는 듯, 잔뜩 억울해하며 올려다봤다. 험난한 홀로서기를 자부하는 K-국에서, 자기편인 혈육이 나타났다고 아주 내숭을 작정하고 떠는 중이었다. 물론 그의 경우엔 내숭이 아니라 몸에 배인 어리광에 가깝긴 했다. 흐뭇하게 웃은 슬흠은 그의 볼따구를 잡아 늘리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 어이구, 그래서 우리 백이 화났어? "

" 그건 아니지만.. " 

" 삐졌구나! " 

" 안삐졌어. "

대형견을 다루듯 백흠을 슥슥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거칠었지만, 내려다보는 눈길 하나만큼은 다정했다. 새삼 흉악한 범죄자도 인간이긴 인간이구나, 증명사진으로는 그렇게 서릿발 날리던 사람이 인간 마쉬멜로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음, 사람을 한 쪽 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되지, 도원은 느껴지는 묵직함에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다. 

" 으악!! "

거머거리마냥 철썩 붙은 백흠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 리트리버처럼 방방대고 있었다

" 도원아. 이거봐라. "

" 뭔데. "

씩 웃은 그의 손가락에는...교통카드도 가능한 병아리 체크카드가 들려있었다.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오로지 오일 밤낮동안 물만마신 거렁뱅이가 잘 차려진 따끈한 한 상에 달려들듯, 동물적으로 도원이 물었다.

" 얼마? "

" 60. "

" 뷔페 ㄱ? "

" ㄱ. "

윤리의식에 반하는 일은 맞으나, 도원은 아주 잠깐 남궁가에 들어가고 싶다는 유혹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옳지 못한 일을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결론적으로, 둘은 작살냈다. 뭐를? 뷔페를.  

녹색 이쑤시개를 전리품으로 돌리며 위풍당당하게 걸어나오는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그들의 뒤 편에선 직원들이 한가득 쌓인 접시를 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본전을 수 십배는 뽑은 영수증이 그들의 휘장이요 번쩍거리는 체크카드는 용맹하게 길을 뚫는 선봉장이었다. 성실하게 크고 위장이 넓적한 성인 남성 둘에게 풍요로운 계좌란, 아무리 저쪽에 여포가 있고 장비와 관우가 있더라도 이쪽에는 바주카포와 레일건이 등 뒤에 버티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 멋진 전투였다. " 

“ ㅇㅈ. “

" 이제 소화시켜야지? "

" 펌프? "

 위대한 식사의 전투가 끝나면 그다음은 펌프의 장이었다. 수 년간 백흠과의 친구를 연장해온 결과, 도원은 믿도끝도없이 이어지는 현란한 스텝에 지치다 못해 안가겠노라 시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초강경펌프파 백흠과 극진보안락추구파 도원. 결국 둘은 (백흠이 펌프하는 사이에 맛을 들인) (세 가지의 버튼을 게임에 맞춰서 때리는) 손바닥 혹사 게임을 같이 하기로 성공적인 타협을 마무리했다. 

" 후후후...펌프 경력 약 49년의 실력을 보여주마. "

" 늘 하던걸로, 딜? "

" 딜. " 

 늘 그랬듯, 도원은 백흠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기분좋은 백흠이 가끔씩 팔을 올리던 게 굳어진 습관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눈에 띠게 움찔한 백흠이 슬그머니 옆으로 빠져나갔다. 발을 헛디뎠나 싶어 옆으로 다가가면 그만큼 백흠도 게처럼 자작자작 움직였다. 사사삭? 자작자작! 바람이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많이 더운 모양이었다. 

팝! 콱! 탁! 트확! 

 누울자리를 보고 드러눕는 얌생이보다 더 정확하게 내리꽂는 백흠의 발은 한 치 오차도 없었다. 왕년에 펌프 좀 부숴먹은 실력은 사뿐사뿐 나비가 되어 내려앉는동안 친구따라 호기롭게 하-드 스테이지에 들어서본 도원은 꼬여버린 스텝을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땈! 따다닥! 살려줘! 따딱!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정확하게 도원은 꼬치를 모두 뀄다. 게임창에 어른거리는 고기가득 버섯가득 야채 가득한 꼬치는  노릇노릇한 픽셀 연기를 휘날리며 그 위로 연타점수 SS를 띄우고 있었다. !@MISS: NO, GOOD: NO, PERFECT: ONLY@! 완벽한 점수를 감상하며, 꼬치는커녕 횡량한 막대기만 남긴 백흠은 버섯을 끼우느니 차라리 픽셀 꼬치를 감상하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화끈거리는 손바닥을 후후 불던 백흠의 눈에 반짝거리는 것이 스쳐지나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백흠은 곧장 달려가 유리창에 찰싹 붙어섰다. 

“ 야, 백흠. 왜그래? “

“ 나 저거.... 갖고싶어... “

“ 저거? “

 인형뽑기기계 안에는 최근에 나온 펭X인형이 들어가 있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하나, 기분나쁘게 못생긴 인형의 선구리가 반짝반짝 조명을 받아 묘하게 깐지났다. 백흠의 눈이 떨어질줄을 몰랐다. 슬쩍 잡아당겨도 유연함만 과시할뿐 어떻게든 붙어있으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 도원아, 잠깐만 기다려. “

“ 야, 너 또 어딜..! “

 말릴틈도 없이뛰쳐나간 백흠은 헐떡거리며 만원짜리 수십장을 들고 왔다. 

“ 아까 그렇게나 먹었는데 그만큼 남았어? “

“ 내 전재산. 이제 나 이거빼면 이번달은 용돈없이 지내야해. “

“ 미친놈... "

 광기에 들린 눈으로 돈을 집어넣은 백흠은 예사롭지 않게 조이스틱을 튕겼다. 우드득, 관절에서 나는 소리도 여간 서늘한게 아니었다. 

그러나 기계도 마냥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힘이 원래 없는건지, 저런! 놓쳐버렸네요ㅠㅠ하며 약을 올리는건지. 미끄덩거리는건 일쑤였고 제대로 걸렸다 싶으면 들리자마자 자꾸 뛰어내렸다. 결국 짜증난 백흠이 오기가 들어 다른 인형을 집으면, 다른 인형은 줄기차게 뽑혔다. 그 많은 인형중에서도 오직 펭X 인형만 틀어박힌채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승부욕에 불붙은 백흠의 지폐가 점점 줄어들었고,

“ 이제 이거 진짜 마지막이다, 진짜. “

백흠은 최후의 선언을 발표했다.

‘ 그래, 힘내. ‘

“ 퍽이나. “

조명, 집게의 힘, 인형의 위치. 360도에서 면밀히 검토한 위치에서,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내리누른 백흠은 초조한 발을 동동 굴렀다. 

지이이잉.

끼익. 

.

.

툭. 

“ **....... “

“ 내가 한 번 해볼게. “

“ 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냐 진짜.. “

“ ..되는데? “

“ 엥? “

 정말이었다. 눈뜨인 심봉사보다 펄쩍 뛰어오른 백흠은, 설렘으로 가득찬 가냘픈 떨림을 숨기지 못하고 배출구의 인형을 집어들었다. 

“ 우리..아가.. “

‘ _(._. _( ‘ 

 백흠은 인형을 품에 꼬옥 안고서 눈물을 닦아내며(안울었다.) 주섬주섬 무언가를 집어올렸다. 

“ 도원아, 이거 내가 줄게.. 너 닮아서 뽑아봤어. “

 백흠이 훌쩍거리며 내민건 깜찍한 검정 오징어 키링이었다. 녹색 죽은 눈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징어 인형을 도원의 손에 꼬옥 쥐어주고서, 허무하게 남은 이천원을 지갑에 다시 넣었다. 

 

 이제 정말로 할 게 없어진 둘은 오락실을 나왔다. 조그마한 인형들을 품 안에 쏟아넣은 백흠의 배가 통통했다.

“ 그래도 오늘 즐거웠네. “ 

“ 응...  그리고 그거 정말 너 닮았어. “

“ ..아니거든. “

닮았거든! 아니야. 맞다고! 우리 아가도 인정했어! 백흠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도원도 지려들지 않았다. 

“ 저녁 어떻게 할래? 약속있어? “

“ 음.. “

“ 난 집 가서 비빔면 먹을건데.. 먹을거면 오고 아님 말고. “

“ 계란 스팸 넣어주면 감. “

“ 딜. “

들뜬 발걸음이 경쾌하게 땅을 디뎠다. 참으로 즐거운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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