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새벽
비정기 1천자 챌린지 01 - 1618자 - 다음에는 더 줄일 수 있게..
변덕규의 하루는 새벽 네 시 반에 시작되었다.
그는 늘 그렇듯 알람이 울리기 전 슬며시 일어나, 알람을 끄고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물을 한 컵 끓여 따뜻한 녹차를 우려 마시는 동안 커튼을 열어 바깥의 날씨를 보고, 샤워를 마치고 적당히 편한 옷을 주워 입은 후 집 아래층에 있는 가게로 내려가 하루를 시작했다. 가게 앞 길을 빗자루로 적당히 쓸어내고 있으면 그의 아버지 때부터 거래를 이어온 식자재상의 트럭이 늘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항상 사용하는 재료들을 수량에 맞춰 먼저 받고, 철이 바뀌면서 새로이 들어온 재료들 중 추천받은 몇 가지를 골라 받아들고 가게로 들어갔다. 오늘의 제철 물건은 바지락이었다. 변덕규는 ‘바지락이 철이니 이제 슬슬 삼치가 맛이 떨어지겠구나. 구이용 생선을 바꾸는 것이 좋겠어.’ 등의 생각을 하며 식재료를 차곡차곡 냉장고에 정리했다.
그는 주방에서 면기를 하나 꺼내들어, 물을 받고 소금을 탄 뒤 바지락을 적당히 담아내고 위를 완전히 덮을 수 있는 크기의 냄비 뚜껑을 찾아 덮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나와 가게 문을 잠근 후에 그대로 집으로 올라갔다. 슬슬 해가 뜨면서 주위의 공기가 빛에 데워지고, 차가웠던 이른 새벽의 긴장이 풀리면서 배고픔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집에 들어온 변덕규는 바지락을 담은 그릇을 싱크대에 올려두고, 쌀통에서 쌀을 두 컵 꺼내어 빠르게 씻고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두부와 버섯과 계란을 꺼내어 본격적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두부를 깍둑썰며 그는 문득 이 모든 것이 매우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변덕규는 요리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생업이란 고단했고, 그도 인간이었기에 가끔씩 몰려오는 이런 감정들은 그도 주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아무것도 안 만들자니 그에게는 밥을 해 줄 사람이 없기에, 결국 먹고 살려면 아무리 지겨워도 직접 움직여야만 했다.
밥솥에서 증기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 해감된 바지락을 헹궈내고 편수냄비에 물과 함께 담아 요리술 약간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계란까지 뭘 만들기는 정말 너무 귀찮은데 밥에 그냥 얹어 먹을까, 고민하던 중 닫혀있던 방의 미닫이문이 드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두운 문 틈새에서 어젯밤 함께 잠들었던 그의 연인이 밥 냄새를 맡고 일어나서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고개를 쑥 내밀었다. 검고 곧은 머리카락이 온 사방에 뻗쳐 있어 제법 웃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 일어났냐?”
“네.. 좋은 아침..”
윤대협은 트렁크만 덜렁 입은 채로 부엌에 서 있는 변덕규에게 한달음에 다가갔다. 그는 춥다고 투덜대며 변덕규의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묻었다. 윗옷을 입으라는 핀잔은 딱히 통하지 않았기에, 덕규는 190cm의 매미를 달고 주방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는 새에 피곤함도 지겨움도 맞닿은 채 전해지는 체온에 녹아 버려서, 변덕규는 자신이 오늘 아침에 피곤하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작은 그릇을 하나 꺼내어 계란을 깨 넣고 알끈을 빼낸 뒤, 국에 넣어두려고 썰어둔 버섯을 조금 집어 잘게 다진 후 소금과 함께 계란에 넣고 섞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계란을 빠르게 섞어내는 경쾌한 소리가 작은 주방을 채웠다. 변덕규는 자신이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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