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테르seter, 해홍기海紅紀.

[대만태섭] 해홍기海紅紀 04.

제 二 장, 월성무행月城無行 01.

해홍기海紅紀 ~東海使臣 紅川紀行~

슬램덩크 2차 창작, 세테르seter 대만태섭.

월성무행月城無行.

온 사방이 굽이굽이 산이며 언덕이다. 그나마 있는 평지에는 사람 사는 주택보다는 논밭이 빼곡한 모양새는 전형적인 경상도의 시골 풍경이다. 밤 느즈막히 대구 시가지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숙박을 하고 포항을 경유해서 열심히 달리는 동안 여기저기 커브 길이며 심심하면 나타나는 터널에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다행인지 무언지 월성에 도착한 뒤로는 양북면 전체를 관통하는 하천이 있어 진외가 댁이 있는 와읍리까지 비교적 반듯한 도로를 타고 달려 오히려 사정이 나았다. 마을 입구를 경계로 아스팔트 도로가 사라지고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 평상을 깐 마을회관과 함께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이 나타나 엉덩이를 괴롭힌다.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마을 깊숙한 곳에 다다르자 그제야 월성 최문의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나타나 그 위용을 뽐낸다.

드높은 솟을대문에 네 칸짜리 행랑채까지, 양반가 저택이라면 본디 있어야 할 부속건물을 고스란히 유지한 모양새를 보며, 정대만은 과연 할머니의 친정 가문답다는 감상부터 떠올린다. 같은 한옥이지만 솟을대문만 유지한 채 행랑채는 허물어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게끔 현대적으로 개·보수된 정씨 집안의 큰집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그나마 담벼락 바깥쪽으로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마련해놓은 주차장과 저택 모서리마다 세워둔 가로등을 제외하면 겉으로는 손을 댄 흔적이 없다. 당장 눈앞의 저택 부지를 제외하면 가로등이라곤 어귀 양쪽으로 하나씩 있는 게 전부인 마을이니 이 정도면 월성 최문에서도 신경 써 개·보수를 한 셈이다. 당장 눈으로 보이는 모양새를 쫓아 그렇게 판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말문을 잃고 월성 최문의 고택을 바라보는 조카의 모습에 중환이 킬킬거리며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주차장에 차를 댄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철제 뚜껑을 달아 막아두긴 했지만 한참 사용되던 때에는 물길은 후 출입이 간편하도록 사주문四柱文까지 낸 곳이라 주차장으로 쓰기에는 이만한 곳이 따로 없다. 여전히 당황한 마음에 눈만 끔뻑이던 대만이 플레이트 지붕과 주차된 자동차에 가려져 있던 사주문을 발견하곤 입을 다문다.

“들어가자. 대구에서 출발하기 전에 전화해 놨으니까 다들 기다리고 계실 거다.”

“하아…… 알았어요 둘째 백부.”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가 저러니 저택 내부도 전통적인 양식의 좌식 한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게 뻔하다. 완치되어 크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절로 무릎을 향한다. 사정이야 어쨌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먼 친척을 위해 선뜻 방을 빌려주는 만큼, 자신의 울적한 마음을 드러내어 진외가 댁 사람들에게 무례를 범할 생각은 없다. 긴긴 한숨으로 애써 기분을 환기한 대만이 뒷좌석에 실어둔 짐과 함께 승합차에서 내린다. 언제까지 머무를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장기 체류다 보니 최대한 간단하게 챙겼는데도 여기저기 이고 지고 떠멘 짐이 한가득하다. 벽돌 하나만큼 열린 사주문을 통해 성큼 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둘째 백부를 대만은 멋쩍은 마음에 슬쩍 어깨를 움츠린 채 뒤따른다.

산이며 들로 오가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꽃과 나무로 아늑하게 꾸며낸 조경과 담백한 향취로 가득한 기와집 풍경이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마냥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할 거 같은 풍경과 달리 저택 내부는 마냥 왁자지껄하진 않아도 수돗가에 마련된 얕은 평상이며 누마루와 툇마루까지 공터 여기저기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꼭 친가 큰집에서 주도하여 마을 잔치를 준비하거나, 외가에서 공들여 풍어제를 준비하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내도록 어머니 손에 이끌려 외가의 풍어제 준비를 도와야했던 만큼 이렇게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저희들끼리 소일거리를 하며 떠드는 분위기야 대만에게도 익숙하다지만, 동제洞祭 준비를 위해 모였다기에는 시기가 애매하다.

“젊은 외지인 구경하러 마을 사람들은 전부 모인 모양이구나. 대만아.”

“거잣말이죠……?”

“그럴 리 있겠니. 절반 정도는 나도 얼굴만 겨우 아는 사람들인데?”

중환의 태평스러운 말에 대만은 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픈 마음을 꾹꾹 욱여넣은 한숨만 삼킬 따름이다. 아무리 사람들의 이목을 당연하게 여기는 대만이라고 해도 이렇게 껄끄러운 장소에서, 자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썩 반갑지 않은 일이다.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소문이 번진 듯, 별채와 본채 사이의 좁다랗게 난 오솔길 사이에서 검은 중절모에 흰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연세며 얼굴 생김새를 보아하니 저분이 할머니의 손위 형제이신 진외종조부이신 모양이다. 대만이 습관처럼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양새에 노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외숙.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그래. 어서 오게나. 저 젊은 청년이 이번에 함께 온다던 아이인고?”

“예. 막내 중헌이의 외동아들인 정대만이라고 합니다. 대만아, 네 할머님의 큰오라버님 되시는 분이시다.”

말투나 목소리가 마냥 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바라보는 표정에도 은근한 온정이 깃들어, 서로 간에 사이가 가까운 듯 멀어 껄끄러운 관계인데도 대하는 게 어렵지 않다. 대만은 둘째 백부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소개한다. 짧은 인사와 덕담이 오가고, 진외종조부에게 직접 별채까지 안내받는다. 사주문 방향의 대청마루와, 솟을대문이 있는 앞뜰을 바라보게끔 큰방과 연결된 누정이 어우러져 호젓한 분위기를 가진 세 칸살의 별채엔 누가 보아도 중환의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백부들 사이에선 그가 가장 자주, 그리고 오래 월성 최문에 머무르다 보니 반쯤 전용화가 된 모양이다. 예상한 대로 방 칸살에 마련된 가구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좌식 가구였지만, 그래도 전기가 들어올 곳은 전부 들어와 있었고,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난방까지 제대로 현대식으로 개·보수가 끝나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그럭저럭 지내는데 힘들어 보일 정도는 아니다.

평소 생활이야 큰방에서 둘째 백부와 함께할 예정이지만 잠은 대청마루를 사이에 낀 두 칸살 중 객실로 마련된 작은 침실에서 잘 요량으로 짐을 푼다. 나비 문양 장석이 달렸을 뿐 겉보기 모양새가 소박한 옷장에 옷을 정리하고, 책장과 머릿장, 반닫이 함에 나머지 물건들을 차례대로 넣는다. 책장의 맨 꼭대기 층에 농구공을 함께 가져온 받침대에 받쳐 올리는 것으로 짐 정리를 마무리한 대만이 뿌듯한 마음에 웃는다. 오전 느지막하게 진외가 댁에 도착해 지금껏 짐 정리에만 몰두한 탓인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처럼 허기져 다른 일은 생각도 못 할 지경이다. 그는 어슬렁어슬렁 대청마루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아 하나둘 꽃피우기 시작한 진달래 화단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덧 저택 가득히 점심 식사 준비가 한창인 듯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대만은 주린 배를 붙잡고 꿀꺽 입맛을 다셨다.

저택에 상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채의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정찬을 들며 누가 누구인지 소개를 들어도 모를 진외가 댁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는 시간도 끝났고, 둘째 백부는 진외종조부와 긴히 대화할 게 있다며 함께 사랑채 큰방으로 사라져 정대만은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그는 그 길로 아버지와 백부들께는 이종 사촌지간인 종숙께 찾아가 마을 지리도 익힐 겸 요 며칠 제대로 하지 못한 운동을 좀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올린 후 농구공 하나만 어깨에 떠멘 채 저택을 나섰다. 용이 누운 모양새의 바위가 있다 하여 와읍臥邑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답게 흔히 있는 동산이며 뒷산마다 옆으로 길게 누운 용의 몸통을 닮았다. 진외가 댁이 있는 와읍 1리 역시 길게 누운 동산 줄기를 뒷산으로 가진 곳이라 뒤로는 산이요, 앞으로는 강을 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역이다. 그런 마을의 가장 후미진 곳, 월성 최문은 야트막한 뒷산을 등지고 있어 아까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전체적인 모양새는 대충 파악이 끝난 상태다. 이제 마을 이곳저곳 둘러본 다음, 양북면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자그마한 국민학교까지 찾아가 농구 골대가 성한 모양새인가를 확인할 차례다.

마을 자체는 넓어도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집집마다 넓은 마당이며 어린아이 키 높이의 낮은 담벼락을 갖춘 모양새가 제법 조화롭다. 개중에는 양옥으로 새로 지은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살고 있던 초가집에서 지붕만 양철 슬레이트로 바꿨을 뿐이다. 하기야, 마을 유지인 월성 최문이 저렇게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니 웬만큼 담이 큰 집안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선뜻 현대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할 수 없을 거다. 느긋하니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다녀 보아도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장 마을의 절반이 논밭으로 이루어져 사람 사는 곳이라곤 한정되어 있던 탓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내도록 여기저기 호기심에 흘낏거리는 시선이 노골적이었지만, 대만은 애써 모른 척 외면할 뿐이다. 근처에 역사 유적지가 있는 만큼 교통 행정적으로 따지면 마냥 외진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을 테니 자신이 신기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듯 노골적으로 동물원 원숭이처럼 바라보는 꼴은 짜증이 날 수밖에. 그래도 할머니께서 힘써주신 덕분에 머물게 된 곳이니 차오르는 짜증을 마냥 마을 사람들에게 터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만은 또다시 눈이 마주친 마을 주민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주고는 운동화 끈을 새로 꿰어 묶고는 천천히 마을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십여 분 가까이 달려 도착한 학교는 시골 국민학교가 으레 그렇듯 부지는 넓었지만 시설은 전반적으로 노후화가 심했고, 놀이기구며 운동기구는 관리가 거의 되지 않은 탓에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고 농구 골대며 축구 골대, 그리고 배구 네트의 그물망까지 대부분 삭아서 너덜거렸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농구 골대는 축구 골대와 배구 네트에 비해서 상태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뭐, 이런 시골 구석탱이에서 농구만 죽어라 하는 아이들이 드물어 그런 거긴 하지만……. 축구 골대 근처에서 아이들이 실컷 가지고 놀다가 방치된 축구공과 달리 농구 골대 근처에는 농구공을 가지고 놀았다는 흔적조차 없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이 정도면 언제 어느 때고 할 거 없이 농구 골대를 독점할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며 정대만은 스스로를 자위한다. 그는 농구 골대 앞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는, 드리블부터 시작해 이틀 내도록 하지 못했던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얼핏 지루한 듯 뚱한 기색이 가득하던 시선에 선명한 이채가 깃든다. 인상이 진하여 자칫 험상궂게 느껴질 수 있는 깎아지른 듯 단정한 얼굴에 몹시도 진지한 기색이 스며,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들이며 교직원들이 움찔 그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단지 가볍게 공을 튕길 뿐, 시선을 빼앗길만한 화려한 동작을 뽐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진지한 표정과 눈빛이며 단정하면서도 진한 인상의 잘생긴 얼굴, 농구를 잘 모르는 아이들조차도 그가 농구를 몹시도 잘한다고 느끼게 해주는 능숙한 동작은 도저히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같은 동작을 수십여 번을 넘도록 반복하면서도 지루해하기는커녕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텔레비전 속 농구 경기에서나 볼법한 현란한 드리블 동작마저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깔끔하게 해내는 모양새에 우와, 하고 아이들이 감탄을 터트리는 목소리를 아랑곳없이 흘러내린 땀을 무심하게 닦아낸다. 통, 통. 짧은 드리블이 이어지더니 순식간에 공이 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슛이 이어진다.

그 뒤로는 쭉 한결 무아지경으로 슛 연습에 몰두하다가, 슬금슬금 해가 서산머리로 향하는 기색에 얕은 숨을 헐떡이며 자세를 가다듬고는, 마지막 피날레인 양 3점 슛 라인까지 물러서 휙,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저 툭, 던지듯이 3점 슛을 넣는다.

시간이 벌써 오후 4시가 넘어 전교생의 하교 시간을 넘긴 지 오래였지만 내도록 농구 연습에 몰두하는 대만에게 시선이 사로잡혀선 아이들이 저마다 눈치를 보며 대만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구경할 뿐,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사라진 듯이 굴고 있었다. 늘 하던 만큼의 기초 연습을 끝낸 데다 시간까지 늦어 슬슬 돌아갈 요량이던 대만이 운동장 여기저기서 서성거리며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의 양에 픽, 웃음을 터트린다.

“집에 가라 꼬맹이들아. 너희들 부모님께서 걱정하신다. 아저씨도 가야 돼 이제.”

“에이,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아저씨?”

“마지막에 골 넣는 거 되게 멋있었어요. 아저씨 선수예요?”

“그래. 아저씬 대학교에서 농구하는 사람이야. 이제 끝! 아저씨 돌아가서 공부하고 밥 먹어야 해. 집에 가. 얼른! 슛 넣는 건 내일 또 와서 보여줄 테니까.”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들어 이거 보여달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하며 생떼처럼 졸라대는 양을 익숙하게 달래어 집으로 돌려보낸 대만이 저 먼발치에서 와르르 흩어지며 하교하는 아이들을 지친 얼굴로 지켜보던 선생을 향해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농구공을 챙겨 진외가 댁으로 향한다. 내도록 농구에 몰두한 탓에 이곳이 동해안이라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다. 나라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지역이니 인천이나 서울보다 해가 일찍 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걸 생각 못 하고 주구장창 공만 놀렸더니 이래서야 와읍리에 도착할 쯤에는 한치 앞길도 보이지 않을 수준이다. ……다음부터는 점심이 소화되면 곧장 운동하러 오던가, 아니면 오전 중에 오는 게 낫겠지 싶다. 대만은 발목을 살짝 굴려 풀어주고는, 아직 해가 꾸무적꾸무적 서산머리로 향하는 동안에 와읍리에 도착할 수 있게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예정에도 없던 전력 질주에 그만큼 체력을 빼앗긴 탓인지 대만은 베개에 머리를 붙이기 무섭게 곤한 숙면에 빠져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정신은 마냥 잠들지 못하고 몽유도원의 동해 용궁으로 끌려갈 뿐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신물이 나는 용궁의 별천지 같은 풍경 속에서, 동생을 닮아 언제나 덤덤하려 들었던 유혼이 한 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여기저기 안절부절 발걸음을 옮겨댄다. 그 모양새를 동해 용왕이 조금 떨어진 곳에 나긋한 자태로 앉아 가만히, 차분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정대만은 저도 몰래 툭 튀어나오려던 말을 애써 삼킨 채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유혼에게 말을 건다.

“너 뭐하냐?”

 ‘……너.

대만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유혼이 어깨를 흠칫 움츠리더니, 천천히 등을 돌려 서늘한 눈초리로 남자를 흘긴다. 안절부절하며 정신 사납던 기색까지 사라져, 분명하지 않은 얼굴 윤곽이며 생김새에 단정하면서도 무표정한 냉담이 떠오른다. 연령대조차도 일정하지 못해서 언제나 인상이 바뀌는 얼굴에 무표정한 냉담만이 한가득 서리자, 그만큼 음산한 기미가 따로 없다. ……그래. 암만 정순하다고 말해도, 결국 저 유혼 역시도 귀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구나. 대만은 순간 섬뜩해진 가슴을 입술을 깨문 채 아무렇지 않은 척 똑같이 눈을 부라린다. 대만의 그런 맞대응은 유혼이 지레짐작하던 반응과는 많이 달랐던지, 무표정하던 냉담에 곧이어 음산한 미소가 서린다.

비교적 높았던 목소리가 낮고, 서늘하게 내리깔리고 꼭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으르렁거리며 노호한다.


공미포 5,640자.

어….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지 회차 올릴 때마다 같은 소릴 하고 있는거 같은데. 암튼 설정 변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은 지나갔으니까 이제 좀 속도가 붙지…… 않을까요? 아닌가…? 암튼 네. 최대한 빨리 오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그전에 초혼 1-1좀 올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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