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봄과 함께_예신의 새해(2)
언제였을까, 일 때문에 먼 곳에 가게된 예신이 약속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연말에는 함께 새해를 맞이하자고.
나는 ‘혹시 제때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지만…… 대망의 섣달 그믐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를, 그저 조용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예신이 말하는 ‘먼 곳’이, 내 상상 이상으로 턱없이 먼 곳이었다는 것을.
예신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초조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몇 번이고 전화를 걸까 고민했지만, 만약 서둘러 오고 있는 중이라면 미안할 것 같아 나는 주저하고 있었다.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다.
이젤 앞에 서 보아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붓을 든 채로 몇 번이고 창 밖 오솔길에 눈길이 가버렸다.
예신이 돌아오면,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나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에 들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예신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바깥을 보니, 가로등의 불빛은 모두 꺼져 있고, 하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소화가: 어라…… 지금 몇 시지?
예신: 오후 6시야. 슬슬 저녁 시간이지.
소화가: 어? 설마 벌써 새해예요?! 제가 그렇게 오래 잤어요……?
예신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햇살에 비친 그의 실루엣은 너무나도 몽환적이라,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예신: 잠들었었구나. 오늘은 아직 섣달 그믐날이야.
문득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예신: 자, 손 씻고 오렴. 식사해야지.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음식으로 상이 넘칠 것만 같았다. 예신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고, 그 앞자리에는 내 식기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예신의 맞은편이 아닌 그의 옆에 앉기로 했다.
예신은 시선을 돌려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화가: …오늘은 여기 앉을래요.
조금이라도 예신과 가까이 있고 싶었다.
예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식기를 눈 앞으로 옮겨주었다.
소화가: 예신, 오늘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신: 미안해, 내가 불안하게 만들었구나.
우리는 조용히 새해맞이 잔치를 즐겼다. 배가 부르기 시작하자 불안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새해를 맞이하는 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란함’이라고 확신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이런 기분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 예신 뿐일 것이다.
예신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나는 세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그가 가르쳐주기 때문에.
예신: 소화가, 하고 싶은 건 없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상관 없어.
소화가: 아니에요. 예신이 돌아와서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걸로 충분해요.
소화가: 앗, 하지만……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과일 케이크가 먹고 싶어요.
예신: 그래, 네가 원하는대로 만들어줄게.
그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바깥에 가로등이 길을 비추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계를 확인해보면 벌써 12시가 지나 한밤중이었다.
방 안은 나 뿐이고, 예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좀 전에 그건…… 꿈이었구나…….
똑똑똑,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보면, 앞에 서있는 것은…… 역시나, 예신이었다.
소화가: 예신, 나…… 꿈을 꾸고 있었나봐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멀리에서부터 찾아와준 그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매력적인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신: 그 전에…… 자, 너를 위한 선물. 그래서 어떤 꿈을 꾸었니?
그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신이 내게 준 것은 내가 꿈 속에서 먹고싶다고 했던 과일 케이크였다.
소화가: 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예신, 어서와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지금에와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꿈 속의 예신은 어쩌면 그의 정신체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연말까지 시간이 없으니 최소한 내가 원하는 것을 꿈 속에서라도 들으려고 했다든지.
나는, 내 오른편에 앉아있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이라면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그를 만질 수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변화는 매우 기쁜 일이었다.
예신: 왜 그렇게 봐?
내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요리를 나누고 있던 그의 손이 도중에 멈춰섰다.
나는 그대로 시선을 떨어트리고 미소 지었다가,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소화가: 예신을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후 캠핑카는 순조롭게 달려나갔고, 그동안 다른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나와 예신밖에 없었다. 둘만의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이윽고 캠핑카는 황야의 한가운데서 멈춰섰다.
하늘은 어느덧 어두워져 날카로운 초승달이 뜨고 있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면 곧 밤 12시였다.
소화가: 오늘은 예신도 함께 소원 빌어요.
예신: 아니, 나는…….
소화가: 부탁해요.
내 진지한 표정을 보고 예신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가 소원을 빌고 있는 동안, 나는 그의 가까이로 몸을 가져갔다.
예신: …소화가?
내가 다가가는 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감고있던 예신이 입술을 달싹였다.
소화가: 응.
예신: 뭐하는거야?
멀리에서 불꽃놀이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숨어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ㅡ
소화가: 이게 하고싶었어요.
잠에서 깨어나 옆을 보니, 바로 옆에 예신의 잠든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귀를 기울이면 그의 잔잔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집에 있을 때라도 내가 먼저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이게 되었다.
무방비한 상태의 예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바깥을 보니 눈은 이미 그쳐 있었고, 옅은 황금빛의 햇빛이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차 안의 창가에 조용히 자리잡은 나는 조심스레 커튼을 걷었다. 창문 유리는 결로현상으로 인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손끝으로 유리를 만져보자, 손이 닿는 곳을 따라 물이 맺혔다.
나는 창 위에 예신의 이름을 써내려갔다.
그 짓을 네 번쯤 반복했을까, 갑작스레 뒤에서 누군가가 끌어안았다.
내 목께에 얼굴을 묻은 예신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소화가: 미안해요, 내가 깨웠어요?
예신: 아냐.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예신: 새해 복 많이 받아, 소화가.
예신이 이제 막 깨어나 아직 잠긴 목소리로 그렇게 인사했다.
예신: 뭘 하고 있었어?
나는 다급하게 창 위에 적고있던 글자의 흔적을 손으로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도하기도 전에 예신에게 제지당했다.
내 손을 부드럽게 잡은 그는 ‘예신’이라는 글자 옆에 내 이름을 써 넣었다.
그리고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직 잠들어있는 나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비: 우냐ㅡ.
졸린 눈을 한 나비를 끌어안은 예신이 나비의 육구를 그대로 창 유리 위에 대고 밀었다. 이것으로 나와 예신의 이름 옆에, 나비의 발바닥 사인이 완성되었다.
예신: 자, 이제 다시 자러 가렴.
그렇게 말하며 예신은 다시 나비를 담요 위로 돌려보냈다.
몸을 둥글게 말고 뒤척이는 나비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일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소화가: 방금 예신, 안일어나는 어린 아이를 깨우는 아버지 같았어요.
예신: 그런가?
일순간 굳어졌던 예신이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고요한 이른 아침, 그 미소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예신: 확실히 지금의 우리는 가족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함께 해왔다. 하지만 옛날에는, 둘 다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번도 거리를 두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 세상에서 그저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것만큼 사람을 안정시키는 것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새해는 제때 찾아온다.
그리고 그도 계속 옆에 있어줄 것이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그곳에.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팔을 들어 예신의 목에 감고 그에게 물었다.
소화가: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예신: 네가 가고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소화가: 의외의 대답이네요. 예신이 무계획적인 일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예신: 이번 연말에 계획한 건 ‘너를 만나는 것’ 뿐이야.
예신: 이렇게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함께 보내는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예신이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말투도 그의 입술도 무척 따뜻했다.
ㅡ그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마치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다.
예신: 싫지 않지?
햇빛이 눈부셔 눈을 가늘게 뜬 나를 보고, 예신은 그 빛을 손으로 가려주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
ㅡ‘싫을리가 없잖아요.’
하얀 캠핑카에 몸을 싣고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
도착한 그 장소에서는 도대체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지평선 너머까지 가득 찬 맑은 수원지?
아니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하지만 무엇보다도 보고 싶은 것은 새해를 축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도 예신과 손을 잡고 그들과 섞여 축하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연인들처럼.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ㅡㅡ
우리 사이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여행의 피로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깊어지는 사랑을 알기 위한 저울이기 때문에.
마치 여로에서 때때로 나타나는 표지판처럼, 그 길은 끝이 없다.
분명 어디까지나 계속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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