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회랑

시간의 교차로 5. 엇갈린 궤적

시간: 3년 전

서녘이 내려앉을 무렵. ‘나’는 다시 교차로로 돌아왔다.

‘나’에게 있어 오늘은 영감을 자극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가서 그려놓은 디자인을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겠지.

3년 전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난건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아까운’ 만남이었는지를 아는 것은 방관자인 나 뿐이었다.

…아니, ‘아깝다’라는 말은 좀 이상할지도. 이건 결국 무수히 많은 만남과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니까.

마치 각기 다른 공연의 무대에 서 있던 배우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16살의 ‘나’는 예신과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중에 몇 대의 셔틀 버스가 ‘나’의 옆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승객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승객들이 신경 쓰였다. 천진난만한 아이, 청춘이 한창일 고등학생, 백발의 노인…… 그 중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이제 나는 광대한 과거의 시간 속에서 내가 알고있는 현재와의 ‘공통점’을 찾는 게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신과 같은 관점에서 그런 사람이나 사물을 찾아내는 것처럼ㅡㅡ

‘우리는 이 시기에 이미 마주쳤었구나.’ 하고.

정류장 앞에는 곧 관광 지점으로 향하는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차에 올라탔다.

예신: 소화가, 이쪽이야.

소화가: …예신?

고개를 든 ‘내’가 주위를 둘러보면, 목소리의 주인은 버스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잠시 넋을 놓았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이 시간의 예신은 세상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아름다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밤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살랑이고, 스쳐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그에게 빛을 더했다.

예신: 자, 이리와.

버스에 올라선 예신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나’의 손을 잡아당겨 그대로 버스 위에 태워주었다.

예신: 손이 차가워졌네.

소화가: 계속 밖을 돌아다녔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입고 다녔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예신: 그래, 그럼 다행이다.

예신은 ‘나’의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예신: 밖에 나가보니 어땠어?

소화가: 응, 재밌는 게 정말 많았어요. 영감을 주는 디자인도 있었고.

예신: 그랬다면 다행이다. 네 마음에도, 무언가 변화가 있었니?

예신은 ‘내’가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소화가: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예신: 새로운 만남은 있었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신은 그런 ‘나’를 책망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졌다.

예신: 괜찮아. 네가 준비가 된다면, 그때 이 세상과 친구가 될 수 있을거야.

버스 운전사: 승객 여러분, 이제 곧 커브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착석하신 고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마시고, 입석하신 고객들께서는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운전기사의 안내 방송이 끝나자마자, 차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예신에게 기대었고, 그는 곧장 그 어깨를 감싸안고 지탱해주었다.

예신: 흔들리니까 조심해.

버스는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며 여러 교차로를 천천히 지나 목적지로 향한다.

거리의 축제 분위기도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길 모퉁이에 장식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조명이 하나씩 점등되며 겨울 밤을 비추었다.

소화가: 예신, 한 해 동안 고마웠어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마친 ‘나’는, 무심코 얼굴을 붉혔다.

예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의 ‘나’는 아직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여러모로 서툴렀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 말은 분명 예신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시선을 돌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 앞의 예신은 지금의 그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다정함도 여전했다.

예신…… 항상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6. 불꽃놀이와 달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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