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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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몇가지 항목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생일이나 이름 같은 것. 생일(탄생일)이 있기에 내 존재가 세상에 비춰지고, 이름이 있어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부정은 정말 중요한 사항이다. 생일이 너무 싫은 나머지 이상한 단어를 만들어 부르거나, 이름이 싫어 필명·가명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의 시작점
어딘가 대양 한가운데에 던져진 기분이다. 풍덩 소리를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투명한 물에 가둬진 나는 점점 가라앉았다. 빛이 들지 않아 점점 짙어지는 시야에 버둥거리는 나의 팔다리가 보였다. 짙은 파란색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물고기도 무엇도 보이지 않고 물거품만이 방울 거리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15년 만이던가, 그의 변한 모습은 어릴
후에타가 호들갑을 떨며 달려들어 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팀원들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후에타는 바로 이리노에게 달려갔다. “큰일이에요. 큰일!” 이리노는 질린다는 얼굴로 후에타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또 뭔데요?” “이리노 주임님 담당 사니와인 와타리 님의 역사에 문제가 생겼대요!” “네?” 우당탕 의자가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이리노
“하쿠토, 정말 떠난 게 맞니?” 나이 지긋한 남자가 물었다. “네.” “어떻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어. 그건 말이 안 된다.” “가능한 사람들이 있어요.” 남자는 조금 쌀쌀맞지만 떨어져 걸으려 노력했다. 그들의 뒤를 칼을 찬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저 청년은 또 뭐니. 칼까지 차고 있잖니.” “제가 명령하지 않는 한 발도하지 않으니까
놀이공원 구석에 한적하게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다는 누군가 옆에 앉는 걸 느껴 일어나려 했다.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웃으며 그러지 말라 했다. “벰?” “걱정하지마, 나도 그냥 놀러 온 거뿐이니까.” 베일에 싸여 이름조차 알지 모르는 능력자 집단의 일원이었다. “내 친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머나, 내가 그러거라 생각해?” “너희
이따금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 손 끝에서 시작된 데자뷰가 온 몸으로 흐르다 머리에서 터져버린다. 정해진 일과대로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간다.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은 그리움을 자아내고 있다. 물리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가을이 되어 죽은 잎은 구두에 밟혀 바스락 소리를 내었다. 정신없이 걷다보면 붉은 벽돌의 낡은 건물이
눈을 좋아하는 마녀가 있었다.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저 멀리 낡은 성이 나타났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랜 성,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진부한 내용이었던 터라 금방 잊어버렸다. 그 지붕에 앉아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던가, 마녀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
역 위에 서 있던 커다란 HC파크몰이 불꽃과 함께 스러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대참사, 화재 붕괴 사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 연인을 잃기까지. 오늘도 불과 연기가 가득한 악몽 속에서 헤맸다. 그대는 살아 있는가. “담배 좀 피고 오겠습니다.” “너무 자주 피는 거 아녜요?” 신입이 칸막이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