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인사
청우건우, 캠퍼스au, 취기와 오해와 봄바람
청우문대 4회 전력: “잘 지내?'”, 봄
감사합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어느 봄, 류건우는 어둑한 동방에 처박혀 화사한 봄날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자신의 손을 실과 바늘로 고이 꿰매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딱 하나, 술. 그놈의 술 때문에. 류건우가 부서질 듯 쥐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에는 아주 오랜만에 연락한 누군가와의 채팅방이 떠 있었다.
20xx-12-08 x요일
형 생일 축하해! - AM 12:00
(이모티콘) -AM 12:00
20xx-03-23 x요일
잘 지내? - AM 2:08
그리고 한나절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류청우 때문에.
사건은 정확히 12시간 전, 꽐라가 되어버린 류건우가 비틀거리며 자취방에 들어온 것에서 시작된다. 봄 기운이 돌며 따스해진 날씨와 개강이라는 명목으로 생긴 여러 공짜 술자리 덕에 류건우는 아주 오랜만에 새벽까지 달렸고, 말 그대로 술에 머리끝까지 푹 잠긴 채 돌아왔다. 원래였다면 아무리 공짜 술이라도 자정이 지나기 전에 빠져나왔을 류건우였지만, 오늘따라 류건우의 마음은 허전했다. 오래도록 사귀었던 연인인 류청우와 헤어진 지 정확히 100일째인 날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일이 많았던 지난 학기에, 자신과의 만남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에도 점점 덤덤해지는 류청우를 버티지 못한 류건우가 먼저 잠수를 타며 이별을 선고해버린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심란한 마음은 당연히 술을 불렀고, 술을 마실수록 심란해지는 마음에 또 술을 마시고. 완벽한 악순환의 고리였고, 한계까지 들어찬 술은 류건우의 이성을 아주 예쁘게 도려내버렸다. 흔히들 말하는 새벽감성으로, 그래서 류건우는 아주 충동적으로 류청우에게 잘 지내냐는 흔한 전남친의 톡을 보내버렸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동방 벽에 머리를 처박는 류건우인 것이다.
“아이고 건우야, 아주 학관을 통짜로 만들어버릴 생각이냐.”
“...”
“... 됐다, 그냥 아주 넓게 쓰자 우리. 한 층 다 쓰자 아주.”
“그래.”
그 행동을 막으려던 다른 부원들은 류건우의 퀭한 눈과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표정에 질리거나 애도를 표하며 뒤돌아 나갔다. 단 한 명을 빼고.
“형.”
류건우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물론 그건 불가능했다. 저 앞에 선 류청우라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안 해 주겠지. 류건우는 멍하니 류청우를 보던 눈을 억지로 돌렸다. 사실은 정말 많이 보고 싶었지만, 류청우는 딱히 저를 보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이 잠시 흐르고, 류건우는 대충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가방을 싸들고 일어섰다.
“형, 잠깐만.”
제 손목을 다급히 붙잡는 그 손길이 아니었다면. 강하게 붙잡힌 손목에 류건우의 눈이 당황으로 둥글어졌다. 왜? 어제 그 톡 때문에 화났나? 류건우는 재빠르게 류청우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류건우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류청우는 화가 나면 냉정해졌지, 저렇게 흔들리는 눈을 하지는 않았다.
“보고 싶었어요.”
“왜?”
류건우의 입은 아주 솔직하게 주인의 심정을 날것으로 드러냈다. 손에 이어 이제는 입도 꿰매고 싶어진 류건우에게 류청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한참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어.”
“뭐, 무슨 말이야. 그거 헤어지자고...”
“어?”
“뭐?”
그러니까, 지금 류건우의 눈앞에 있는 게, 아무런 이유 없이 세 달째 연인과 연락이 안 되는데 그걸 이별로 연결짓지 못한 류청우란 말인가. 류건우는 순간 이성이 아득히 떠나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니, 그것보다도 이놈 진짜 바보인지. 어느 누가 연락도 안 되는 놈을 연인이라고 생각한단 말이냐고. 류건우가 이마를 짚자 류청우는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류건우를 앉혔다. 그래,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대충 이런 느낌이긴 했지… 류건우는 붙어버린 입술을 억지로 떼었다.
“일부러 잠수탔던 거야, 너랑 헤어지려고.”
“그때 형이 너무 힘들어보여서, 괜찮아지면 연락하려고 했는데.”
“괜찮아지고 자시고, 너랑 계속할 생각이 없는데 무슨 말이야, 그게.”
“그래서 형, 정말로 나랑 헤어지고 싶어?”
“...”
목이 턱, 막혔다. 홧김에 연락을 끊어버리긴 했지만, 류건우는 분명 류청우를 사랑했으니까. 제가 주는 상처에도 무덤덤하게 웃어버리는 저 바보를. 차마 고개를 젓지 못하는 류건우를 본 류청우가 바보같이 또 웃었다. 어느새 열린 창문 너머로 연분홍빛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싫어.”
“...”
“나는 형 사랑해.”
도대체 이제껏 했던 건 다 뭐란 말인가, 왜 류건우는 저 한 마디를 부정하지 못하는 걸까. 류청우는 류건우의 어깨에 제 머리를 턱, 얹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따끈한 체온에 류건우는 문득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꾹 눌러 삼켰다.
“형도 나 사랑해?”
“...”
류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류건우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스쳤다. 아마 류청우가 머리를 부비는 것 같았다. 그때와 똑같은 애교에 류건우는 참지 못하고 류청우를 꼭 안았다.
“형 없어서 슬펐어.”
“... 그랬냐.”
“응. 많이 보고 싶었어.”
“근데 참았고.”
“응. 그래서 형이 새벽에 톡 보냈을 때 좋았어.”
칭찬해달라는 듯 또 머리를 부비는 류청우를 대충 쓰다듬은 류건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본인이 괜찮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만. 찔리는 건 류건우가 예의를 밥 말아먹은 그 세 달 뿐이었다. 류건우는 혼자만의 이별에 안녕을 고했다. 봄바람이 살랑이며 어둑하던 실내를 채웠다. 아무래도 봄이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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