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샘플
백 님 편지글 형식 소설 대필 / 23.09.09
일상에 사람이 엮이지 않는 것에는 어느 정도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는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주위에 사람 없는 생을 삶에는 오랜 기간 걸쳐 괴로움에 겨우 만들어낸 것이 반대로 사람 있는 버릇 만들어내는 건 또 덧없이 금방이다. 길거리 고양이의 온기도 채 따스해서 견디지 못하던 것이 원래의 나이었을 텐데 차라리 겨울 얼음장 속에 서 있는 것이 차라리 더 익숙할 텐데 이젠 곁에 사람이 있어도 기꺼이 견뎌내는 맞지 않을 내가 된 것이 다분히 혼란스럽다. 제대로 무엇 하나 생각할 수 없는 내 대가리 속에 한낱 잡스러운 생각들과 동시에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일이다. 또 온기를 잃은 나는 분명 쉬이는 진정하지 못하리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바닷물에 쓰러지는 부질없는 모래성을 보며 울어댈 실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한심한 꼬라지를 하게 될 것을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장맛비 아래서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엉망진창인 물 자국밖에 남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아가 준비된 캔버스는 아마 찢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뿐이라면 오죽 다행이다. 내가 상상하는 이상의 최악은 부디 없기를 바라건만 세상은 과연 내 소원 또한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자비로울지… 나는 나에게 다시금 꼬박 잠겨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지, 혹은 장맛비 속에서 꼬박 숨이 잠겨가는 것이 낫지 않을지.
볕이 들어 주기를 바라는 건 경우 없는 내 욕심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미 받은 축복을 잃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진즉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보다 한 번 빠진 사람은 더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소리는 여느 목적어에나 자주 붙는 일이다. 비록 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나의 처음을 주겠다 네가 내 유일이다 따위의 구구절절 애처로운 로맨스 소설 대사는 말은 나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아주 틀린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래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사실이 아닐까, 감히 내가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이것도 애정 어린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게 또한 맞을까. 욕심을 버리고 살기란 마땅히 좋은 개념이고 나 또한 여전히 갈망하지만 그래도 주님, 단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되겠나이까? 나 다시 생각해도 역시 단지 이이의 곁에 남고 싶습니다. 본디 사람 당연히 멍청하여 같은 소원 빌고 후회하길 반복한다곤 하지만, 비록 나 마찬가지로 차후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같은 일 있던 적에 같은 생각 하지 않은 것도 전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다만 하나… 나는 그 정도로 멍청해질 각오 즈음은 되어 있다 이깟 문장을 곱씹으면서 고작 그 정도의 준비 채 되어 있지 않은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 어떠한 어려움도 나는 모두 견뎌내리라 장담은 내지 약속은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감정의 바다에 기어이 빠져 멍한 정신으로 살아가도 나쁘지 않다는 사람의 증언 맹세 따위의 것 정도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 주어도 좋을 게 아닌가.
그래도 나는 기꺼이 세상이 선물해준 인연을 끊어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끌려가는 삶이 다분히 억울하기는 해도 이 정도 여유는 부려도 될 듯 하여서. 후회하겠지. 그렇게 사람을 잃고도 또 사람을 바라니 주위서 보길 여간 멍청한 짓이 아닐 수는 없다. 결론이 지어지지 않았어도 이 생각 머릿속에 들어찬 것 만으로도 필히 나는 후회 가득 살 것이다. 아마 몇 시간 꼬박 후회하고 훌쩍이고 대략 심장 뜯겨 나갈 지경이니 빛 하나 들지 않는 방 앉아서 죽여 달라 빌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멍청하기에. 그래도 지금은 다만 지금은 멍청한 사람의 멍청한 소원 하나 어찌되든 좋을 미래를 생각한다. 대가리서 제정신이 빠진 멍한 시선 사고방식 사고 흐름 아주 가만히 앉아서 몇 주 꼬박 지내는 일이 있어도 즈음에 내내 지금을 함께 저주하는 일이 있어도 지금의 나에게 시간은 정확하게 내가 좋아하는 지금의 시간은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것이라. 부디 내가 향에 취해 있기를 방해하지 말아 주련, 내가 좋아하는 그 향이 한낱 알코올이라도 내지 따위의 독극물이라도. 그대로 취해 잠기고만 싶다 나의 장맛비는 약산성이 아닌 염산액 그 자체래도 좋으니. 기꺼이 취해 줄 것이며 기꺼이 녹아내리길 반기는 것도 책임의 일부, 당연히 나는 어른이니까. 책임의 무게 그대로 짓눌려 녹아내려 주마. 간절히 바랄 내 한 그대로 침묵에 처박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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