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
이런 정의를 내려보자. 안예준은 예민한 사람이다. 몹시도 예리하고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다. 눈이 반은 감긴 저 뚱한 표정을 보고서(저 눈은 놀랍게도 일터에서는 한껏 꾸며내어 말똥하게 떠지곤 한다. 심지어는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가 싶겠지만, 겉보기와 다르게 무른 성정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민하게 타인의 변화를 눈치채는 일이 잦았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곧장 다정으로 착각될 법한 말들을 내뱉곤 했다. 메마르고 건조한 이 땅 역시도 과거에는 분명 푸르른 평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가끔 할 일이 없을 때면 그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는 일을 해 본다. 그럼 입꼬리의 틈으로 웃음이 새어나오곤 했다. 웃기지, 웃기고 말고. 그것은 일종의 비소였다.
그와 저는 어떤 작용점으로부터 발생한 유사한 무엇이 있었다. 서시우는 눈치가 제법 빨랐으며 흐름을 읽는 데 타고난(혹은 학습된) 부분이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같지만 다른 것. 다르지만 같은 것. 무엇을 겪었는가 우리는.
소실이다. 우리의 어떤 부분들이 파도와 풍랑에 깎여 마모되고 뜯어져 나간다. 볼품없고 야윈 꼴을 보아라. 말라붙어 쩍쩍 갈라져가는 가뭄 든 땅과 녹음을 잃어버린 숲이 우리의 터에 남은 전부다. 맥이 끊어진 강과 다시는 솟지 않을 샘 앞에서 애원하여봤자 멸망한 땅은 멸망했을 뿐이요, 나그네 혹은 방랑자 그 누구든지 이 땅을 버리고 다른 땅을 찾아 떠나는 것이 필시 현명하고 옳은 선택인 것이다. 방문자에게 그 어떤 안락도 안겨주지 못하는 혼자서 죽어가는 땅. 이 땅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이 많았다. 그러니...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딱히 다시 새순이 돋는 나뭇가지나 땅을 촉촉히 적시며 솟아나는 수맥을 발견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는 개척자가 아니다. 오히려 남아있는 가지마저 꺾고 발견할 수 있을 흔적조차 흙으로 덮어 가렸을 것이다. 본디 그리 되어 먹지 못 한 성정의 소유자인걸 어쩌할까. 마른 땅을 잘 가꾸어 피워내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나는 지금의 이 볼품없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전부 죽어버려서 생명 따위 품을 수 없는 곳이. 기대할 것 하나 없는 땅이. 그렇기에 그 변함없는 모습을 통해 만족감을 얻기 위해, 당신에게 관심을 가졌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