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기록

식사 약속

맹주님 밥 먹이기 프로젝트

-주의: 6.0 효월의 종언 메인 퀘스트 스포일러 / 민필리아에 관한 이것저것 날조

민필리아 워드에 대한 어느 고원 부족 모험가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워드 씨는 동향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되게 비실비실하네.’

뭐, 세상 모든 고원 부족이 건장한 체구여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 모험가는 민필리아의 외양에 대해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민필리아가 모험가에게 일을 맡기고, 혈맹의 일원들을 소개해 주고, 심지어는 예전에 광부 일을 했다고 말해주는 순간까지도, 모험가는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근데 우리 맹주님은 왜 이렇게 삐쩍 마른 거냐.’ 어느새 호칭도 ‘워드 씨’에서 ‘우리 맹주님’이었다.

처음으로 나눠 먹은 건 토끼 파이였다. 검은솔 정류소 근방의 마물을 정리하고 간단히 배를 채우려는데, 연락이 오는 바람에 급히 저녁별 만으로 가야 했다. 일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모험가의 머릿속에는 가방 한구석에 곱게 포장된 한 끼 식사가 맴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민필리아 씨가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네.’

뜬금없는 질문에도 맹주는 친절하게 답해줬다. ‘아뇨, 식사는 아직.’ 모험가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떴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식사를 거르면 쓰나? 토끼 파이를 나눠 먹자고 권한 건 그래서였다. 동향 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민필리아 씨는 사양했지만 마침 누구나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자기 것이 아닌 꼬르륵 소리를 모험가는 모른 척했다. 파이 절반을 뚝 떼서 내밀었다. 두 고원 부족, 맹주와 맹원, 사무직과 현장직은 사이좋게 음식을 해치웠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모험가가 나눠 먹을 만한 음식을 보며 민필리아 워드를 떠올리게 된 것은.

모험가가 모래의 집까지 부지런히 실어 나른 음식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숲을 오가며 발견한 열매들과 입가심으로 먹는 말린 과일들. 도도 가슴살, 파프리카, 토마토를 끼운 꼬치를 직화로 구운 미코테식 고기산적. 영양의 정강잇살과 들양파, 커르다스 당근을 버터에 볶아 속을 채운 양치기 파이. 단순한 맛이 일품인 짭짜름한 프레첼. 토마토를 꽃처럼 얹어 모양을 낸 그리다니아풍 토마토 파이. 새콤달콤한 롤란베리 치즈를 쓴 케이크. 파인애플이 들어간 신대륙풍 케이크와 시금치 키쉬, 그 외 기타 등등.

각국 모험가 길드의 명물 메뉴들도 빠질 수 없었다. 모래늪의 폭신폭신한 크럼펫. 물에 빠진 돌고래 주점의 촉촉하고 달콤한 라노시아 토스트와 이국적인 맛의 신대륙풍 옥수수빵. 덤으로 레스토랑 비스마르크의 그 유명한 비스마르크 달걀 샌드위치. 아쉽게도 칼라인 카페의 랍토르 스튜는 포장해 가기 어려웠다. 모험가는 언젠가 민필리아를 데리고 와서 먹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국에는 민필리아도 모험가에 적응했다. 새벽의 혈맹 회의 도중의 일이었다. 모르도나로 거점을 옮기기로 한 뒤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는 자리였다. 비전투원 호위는 누가 담당할지, 물자 수송 지휘는 누가 맡을지…. 모험가는 연락책 겸 돌발 상황 대처 인력으로 일찌감치 결정되었지만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알테마 웨폰을 파괴한 영웅은 소탈하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회의가 길어지는 틈을 타 모험가는 느닷없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새벽의 혈맹은 신경 쓰지 않았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던 영웅이 소일거리를 꺼내는 광경에는 다들 익숙했다. 다만 이번에 모험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벌꿀 머핀이었다. 그는 빵을 반으로 갈라 한쪽은 자기 입에 욱여넣었다. 남은 한쪽은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러곤 민필리아를 불렀다.

민필리아는 웅얼거리는 발음도 용케 알아들었다. 맹주는 늘 그랬던 것처럼 ‘왜요?’ 물으며 고개를 돌렸다. 모험가는 다른 설명 없이 반쪽짜리 머핀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맹주가 자연스럽게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맛을 음미하는 동안…. 새벽의 혈맹 일동은 눈을 의심하며 제각각 굳어 있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산크레드였다. 그는 현직 바람둥이답게 민필리아와 모험가가 무슨 사이인지부터 추궁했다. ‘너희, 무슨 사이야?’라고 본인은 말하고 싶었겠지만, 목소리가 마구 떨린 탓에 실제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너, 너, 너희…. 무슨 사이야.”

정작 민필리아와 모험가는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맹주와 맹원 사이죠?’라는 게 민필리아의 대답이었고, ‘친구 사이지?’라는 게 모험가의 대답이었다. 산크레드는 다른 맹원들을 둘러보며 급히 지원군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 사이 민필리아는 ‘이거 맛있네요!’ 하며 남은 빵을 마저 해치웠다. 모험가는 한술 더 떴다.

“산크레드, 혹시 벌꿀 머핀 좋아해? 어떡하냐, 이제 더 없는데…. 심부름 값으로 받은 거라서 말이다. 어디서 파는지는 아니까 다음엔 충분히 사 올게.”

산크레드는 할 말을 잃었다. 모험가는 머쓱해졌다. 언행만 보면 영락없는 한량이지만 산크레드는 사실 책임감이 깊었다. 그는 민필리아를 가족이나 다름없이 여겼다. 그래서 너와 친구인 것처럼 민필리아와도 친구인 거라 나름대로 돌려 말한 거였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듯했다.

새벽의 혈맹은 회의 중에 간식을 자제하는 편인가? 모험가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 질문에는 입가에 웃음을 매단 야슈톨라가 답해줬다.

“네, 지금까지는요. 다들 따로 찾지 않았거든요. 앞으로 굳이 뭘 먹어야겠다면 쉬는 시간을 따로 가져야겠네요. 회의 예절에도, 식탁 예절에도 어긋나니까.”

모험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흥미롭게 관조하던 이다는 결국 폭소했다. 파파리모는 신나게 웃어대는 파트너에게 회의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민필리아로 말할 것 같으면, 조금 민망했다.

“미안해요, 여러분. 평소에 뭘 나눠 먹다 보니 버릇이 됐나 봐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맹주가 중심을 잡은 덕분에 어수선한 분위기는 빠르게 수습되었다. 자리가 파한 뒤에야 모험가는 회의가 끝난 뒤에 머핀을 나눠 먹는 게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일하면서 먹는 간식이 제일 맛있는 법 아닌가? 모험가가 얻어 온 생강 쿠키와 향차를 나눠 먹으면서, 타타루는 ‘그야말로 꿀맛 아니겠어용!’ 하고 동의했다.

망자의 종소리로 거점을 옮긴 뒤에도 모험가는 민필리아의 식사를 종종 챙겼다. 맹주의 규칙적인 식사에는 돌의 집 바로 위층에 들어선 주점이 크게 공헌했다. 큰도롱뇽 꼬리살로 만든 스테이크와 사냥꾼식 키쉬는 모르도나 지역에서 맛보게 된 별미였다. 생소한 재료였지만 모험가도, 민필리아도 음식에 대해서는 꽤 모험심이 있었다.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늘 맛있는 걸 먹을 순 없었거든요.”

민필리아는 지나가듯이 그렇게 말했다. 울다하에 살게 된 지도 오래됐지만 가끔은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이 그립다는 얘기도.

“게다가 난 요리는 영 안 맞아서요. 정확히 어떤 음식들이었는지도 잊어버렸고.”

요리사 길드는 갑작스러운 가입 상담도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 크리스탈 브레이브가 막 출범한 탓에 무척 바쁘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험가에게는 소질이 있었다. 요리를 즐기지 못했더라면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배움을 계속하진 못했을 것이다. 요리사 길드에서 지급한 요리책에는 각 모험가 길드의 명물 메뉴 조리법 역시 기록되어 있었다. ‘랍토르 스튜를 직접 해줄 수도 있겠는걸. 그리고 다른 요리들도….’ 모험가는 알라미고 요리의 레시피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울다하 왕궁 지하 수로에 들어섰을 때.

새벽의 혈맹이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대로 적을 막기 위해 뒤에 남고, 마지막으로 민필리아가 멈춰 섰을 때.

“약속했잖아요, 요리를 해주기로. 그러니까 꼭 살아 돌아갈게요. 대신 맛있는 걸 준비해줘요.”

그래서, 모험가는 최선을 다했다.

모험가는 이슈가르드의 낯선 가정식과 디저트를 하나하나 맛보고, 주의 깊게 기억하고, 조리법을 물었다. 포르탕 저택의 ‘식객’은 말 그대로 식탐이 많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감감무소식인 맹주와 맹원들 생각에 심란한 날이면 주방을 빌렸다.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을 포기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로만 요리하는 건 실력 향상에 제법 도움이 됐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전에 배를 채웠다. 그러면 좀 나았다.

민필리아는 약속을 잘 지켰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모험가는 믿기로 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처럼 성실한 사람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기는 법이다. 별의 대행자가 된 민필리아를 만났을 때 모험가는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식사는 같이 못 하겠구나.’

민필리아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모험가는 영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농담을 던지려고 했지만 영 잘되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말문이 자꾸 막혔다는 것이다. 그냥 이슈가르드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얘기하는 쪽이 나았다. 진홍 수프는 아마 민필리아 입맛에도 맞을 것 같다, 어둠밤 솜 알과 마롱 글라세라는 디저트가 아주 달고 맛있었다, 신세 졌던 집의 요리사를 졸라서 만드는 법을 배워 왔는데….

배워 왔는데.

모험가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뒤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실체 없는 손가락이 젖은 뺨을 스쳐 지나갔다.

“듣기만 해도 맛있어 보여요. 아쉽네요.”

민필리아의 마지막 당부는 다음과 같았다. ‘잘 먹어야 해요.’ 모험가는 힘없이 웃었다. 이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리세에게 똑같은 말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연이 어떤 최악을 불러올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기라바니아로 떠나기 전, 모험가는 없는 시간을 쥐어 짜내 벌꿀 머핀을 구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것뿐이었다. 산크레드와 리세, 모험가가 잃은 사람들과 모두 관련된 음식은. 앞으로는 큰일을 해치울 때마다 다 같이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모험가는 생각했다. 난데없는 빵 파티에 알리제는 의아해했다. 나머지 맹원들은 모험가의 독촉에 못 이겨 다들 머핀을 하나씩 먹었다. 갓 구운 빵은 아주 따끈했고 기막히게 맛있었다.

모험가는 맹주의 당부를 잘 지켰다. 랄거의 손길에서는 해방군의 식사 준비를 돕느라 팔에 근육통이 오도록 메밀을 씻었다.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한 요리를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1인분의 식사가 담긴 그릇들이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는 광경에서는 묘한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카샤를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모험가는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이 맛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짐 대초원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모험가는 요리사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특히 오로니르 부족의 에수겐은 손님이 여명의 옥좌에 머무는 동안 늘 기가 쭉 빨린 채였다. 향신료를 강하게 쓰는 아짐 대초원식 요리는 모험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민필리아도 아마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둘은 입맛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알라미고 해방 기념 만찬은 어느 성도교 몽크가 먹고 기절했다는 이맘 바이을드였다. 이젠 먹어보기만 해도 어떤 재료들을 어떤 식으로 조리했는지 대충 알 거 같았다. 모험가는 이맘 바이을드의 조리법을 캐내며 예측이 맞아들어갈 때의 즐거움을 느꼈다. 새벽의 혈맹의 리세, 한때는 이다였던 리세와의 마지막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헤어졌던 동료들을 1세계에서 다시 만날 때마다 모험가는 이렇게 말문을 텄다. 그동안 식사는 잘하고 있었는지. ‘민필리아’로 불리던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어리둥절해했고 산크레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그 얘기부터 꺼낼 줄 알았지.”

빛의 범람 최전선에서 민필리아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동안 뭘 먹었는지, 알라미고 지역의 음식과 1세계의 음식은 어땠는지, 그런 얘기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모험가는 애써 삼켰다. 지금은 회포를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민필리아의 이름을 물려받았고, 산크레드가 지켜온 아이가 자기 자신으로서 발을 내디디려 하는 순간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모험가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이 정도였다. 우리는 잘 챙겨 먹고 있어.

린이 린으로서 맞이한 첫 식사는 모험가가 담당했다. 재료가 없어 벌꿀 머핀은 못 굽는 게 아쉬웠지만,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었다. 린에게는 그 아이만의 음식이 필요했다. 모험가는 산크레드가 잡아 온 오뷤을 해체하며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지 궁리했다. 기라바니아의 제염촌에서 소금을 잔뜩 사둬서 다행이었다. 1세계를 모험하는 틈틈이 현지 채집물로 조미료를 만들어둔 것도. 모처럼 솜씨를 부린 오뷤 구이는 호평이었다.

원초세계로 돌아온 뒤에는 당부를 지키기 힘들었다. 사베네어와 갈레말드는 마음 편하게 음식에 공을 들일 상황이 아니었다. 달에는 당근뿐이었다. 엘피스는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한가롭게 사냥이나 채집을 시도했다가는 어떤 성격 나쁜 고대인이 인상을 썼을지도 몰랐다. 미식 불모지인 샬레이안에서 했던 식사가 가장 괜찮았다. ‘돌아오면 라스트 스탠드의 현인 버거를 먹어야지.’ 아이티온 별현미경에 진입하기 전의 다짐이었다.

막상 민필리아의 혼이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나타났을 때, 모험가는 후회했다. 더 열심히 먹을걸! 하지만 지금은 후회마저도 시간 낭비였다. 민필리아를 따라가며 외쳤다. 기라바니아 지역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당신이 지켜낸 1세계에는 어떤 음식들이 있었는지. 제법 실력 있는 요리사가 된 당신의 친구가 또 어떤 요리들을 만들었는지. 종말을 막아낸다면 이번 여행에서 새로 방문한 지역의 음식도 꼭 먹어보겠다고도.

인도자는 묵묵히 나아갔다. 반응이 없어도 괜찮았다. 틀림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을 테니까. 별바다가 씻어내리기 전까지는 민필리아의 혼에 이 말들이 남아 있을 테니까.

“다음에는 꼭 같이 먹으러 가요!”

모험가는 어디서든 낯선 사람들과 식사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태어난 민필리아와도 우연히 스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당신이 언제쯤 세상에 돌아올지도 모르는 데다가, 그때는 더 이상 나의 맹주도 나의 친구도 아니겠지만…. 민필리아, 당신이라면 알겠죠? 지킬 수 없는 약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이 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남은 생을 살아갈 테니까요.

종말을 막아내고, 먹는 즐거움도 모르는 놈과 사생결단하고, 라그나로크 선에 빈사 상태로 귀환한 뒤.

모험가가 정신을 차리며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카르니야릭.”

왜 다 죽어가는 꼴로 온 거냐고 엉엉 울며 화내던 알리제는, 카르니야릭이 라자한 식 가지 요리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두 배로 울며 화를 냈다. ‘당신 머릿속엔 먹는 일밖에 없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이 다정한 친구는 속상해할 터였다. 간식거리를 챙겨오지 않은 게 뼈아팠다. 모험가는 알리제가 진정할 때까지 말없이 도닥여줬다. 그 와중에도 배꼽시계는 정직했다. 음식 얘기로 원성을 샀던 터라 참아 보려 했으나, 라자한 거리를 돌아다니다 맡았던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바람에…. 결국 모험가는 가까운 도시 아무 데나 내려서 뭐라도 먹고 가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위리앙제 빼고.

“샬레이안에서 타타루와 쿠루루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큰일을 치렀으니, 다 같이 모여 식사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모험가는 맞는 말이라며 머쓱하게 헛기침했다.

“죽다 살아났더니 못 먹은 거에 미련이 맺히지 뭐야.”

산크레드가 얼른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돌아가서 뭘 먹을지 정해 보자고.”

선내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야슈톨라가 산크레드의 말에 딴지를 걸었고(‘방금 죽었다 살아난 사람에게 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샬레이안에서 먹을만한 건 정해져 있지 않나요?’), 알피노는 르베유르 저택에 식사를 부탁할까, 제안했다. 에스티니앙마저 라자한 정박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역시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라하는 모험가가 평범한 식사를 해도 괜찮은지 판단하기 위해 몇 번이나 몸 상태를 점검해줬다. 레포릿들이 참전한 뒤에도 식사 메뉴 토론은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모험가는 이상하게 카르니야릭에 미련이 남았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재료 구성과 조리법을 보건대 민필리아가 좋아할 만한 요리였다. 앞으로도 나는 새로운 음식을 접할 때마다 민필리아를 떠올리겠지.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하는 게 곧 그 사람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모험가는 요란하게 꼬르륵거리는 배를 문지르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받아놓고 까먹은 간식거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 옛날 친구와 나눠 먹었던 벌꿀 머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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